프로젝트 화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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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작품등록일 :
2024.09.08 23:21
최근연재일 :
2024.09.19 01:52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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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47

작성
24.09.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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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고고하고 아름답게(6)

DUMMY

"함께 최고의 기숙사로 만들자!"

"우리 세대는 불야성이 될 거야!"

"모두 수고했어!"

"우리 대단하지 않아?"

"있잖아."

"더 위대한 기숙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달칵.

추억으로 가득 찬 사진으로 뒤덮인 방의 불을 껐다.


***


드르륵.

"어?"

"어?"

욕실의 문을 연 칸나와 마주쳤다.

타악!

칸나의 손이 힘껏 문을 닫았다.

"...뭐 하고 있어?"

닫힌 문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잠깐 들려왔다.

"...청소?"

"그걸 왜 네가 하는데."

드륵.

조심스럽게 다시 문을 연 칸나는.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짓단을 접은 내 모습을 확인한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만 보고 문을 닫는건 좀 가슴아픈데...?"

"...시끄러."

살짝, 귀가 붉어진 채로 칸나는 대욕탕의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욕실 안에는 당연히 벗고 있을거라 생각했단 말야."

"아, 벗어야 되나?"

철컥.

칸나가 검집을 움켜쥐는걸 보고서,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욕실 청소를 하고 있어?"

"그야, 밥도 얻어먹었고 잠자리도 받았는데 청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하아..."

칸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는.

자신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제는 네 생각을 좀 알 것 같아. 보나마나, 두 명이서 기숙사 전체를 관리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 마음대로 도와주려는 거 아냐?"

"타심통이 있구나?"

"너, 은근히 단순하거든?"

소매를 묶은 칸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바닥솔을 가져와서 물통에 첨벙첨벙 쑤셔넣었다.

"과격한걸."

"어차피 청소하다보면 젖어."

그 말을 내뱉은 칸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고는.

파앗, 두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싸쥐었다.

"...너, 설마?"

"오해입니다."

"제자님이라고 하지만, 속은 새까만 변태녀석..."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들고 물러섰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비누를, 밟아버렸다.

"잠...! 위험해!"

시야가 하늘로 치솟는 것과 동시에.

칸나가 물통을 걷어차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촤아악!

차가운 물살이 쏟아졌다.

뚝... 뚝...

그리고.

내 머리를 감싸쥔 채.

함께 쓰러진 몸 위에 올라서, 붉은 머리카락 끝에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는 칸나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제자님, 욕실 비누 교체... 헉!"

드르륵!

문이 열리고 금사과가 비누상자를 가지고 나타났다.

타악!

금사과의 손이 힘껏 문을 닫았다.

"느, 느긋하게!"

"아, 아니야! 야! 아니라고!"

내 가슴을 밀치며 벌떡 일어난 칸나가 순식간에 문을 열고 금사과를 뒤쫒아 달려가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둘을 지나쳐 걸어오며, 청매화가 욕탕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며 중얼였다.


***


"다 같이 목욕이에요!"

금사과가 콧노래를 부르며 뜨거운 물에 발을 집어넣었다.

"헉, 뜨거워!"

화들짝 놀라며 발을 뺀 금사과의 뒤를, 청매화가 가로막고서 두 어깨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저, 저기...?"

"자, 천천히 들어가자?"

"...!"

꽉 잡힌 어깨에 도망치지 못하고 뜨거운 물에 잠긴 금사과는 저항에도 부질없이 서서히 몸이 잠겨나갔다.

"대단하네, 항상 물이 식을 때 까지 도망치는데."

칸나는 머리 위에 수건을 두르고서 온탕에 발을 집어넣었다.

"삐이잇..."

"가만히 있으면 더 좋아질거야."

청매화의 손에 붙잡힌 금사과는 열기에 얼굴을 물들이고는 굳은 비명을 입밖에 흘렸다.

"음..."

칸나는 물 속에 몸을 담그며, 청매화를 힐긋 바라보고는 중얼였다.

"같은... 학년일 텐데..."

"...응?"

부글부글.

입술까지 물속에 담근 칸나는 눈매를 좁혔다.

"그러고 보니, 제자님은? 함께 젖었던거 같은데."

"작은 욕탕이 있어. 거기 마저 청소하고 씻겠대."

후우, 얼굴을 든 칸나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였다.

"...오랜만이야."

"...? 아, 손님 말이지?"

"그것도 그렇지만."

칸나는 얼굴이 빨개진 금사과를 바라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랑 같이, 욕실을 청소한 거."

"..."

청매화는 금사과의 어깨를 붙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후다닥.

금사과는 물에 빠진 참새마냥 자리를 박차고 도망쳐버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칸나는.

물기에 젖은 붉은 눈동자를 속눈썹으로 덮으며,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넓은 토지, 막대한 자원, 수많은 인재. 이 기숙사에는 모든 것이 있었어."

어둠에 가려진 본관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나는 이야기했다.

"내가 계속 노력한다면."

철썩.

칸나는 차가운 밤공기 위로 일어섰다.

하얀 수증기가 온 몸에서 피어올라 달빛 아래로 흩어졌다.

"...저 불빛을 다시 켤 수 있을까?"

수면에 닿은 칸나의 주먹이 꽈악 움켜져,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려 파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칸나의 눈동자가 수면 위에 흔들렸다.

"그건..."

청매화는 달빛 아래 피어난 칸나를 바라보며 떼었던 입술을 다물었다.

"크, 큰... 큰일이에요!"

우당탕!

그 때.

밖으로 도망쳐나갔던 금사과가 욕탕 안으로 뛰어들어오며, 창백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야?"

뒤를 돌아보는 칸나의 모습에, 헉 숨을 멈춘 금사과는.

콜록, 콜록 기침을 뱉어내며 쥐어짜듯 소리쳤다.

"...제자님이, 사라졌어요."

첨벙!

금사과의 눈동자에 수면 위에 몸을 일으킨 청매화의 모습이 비쳤다.


***


"크크큭..."

산등성이 아래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무리지어 앉아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혼자서 오다니."

나는 셔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혼자 오라는 도전장을 받았으니까."

"용기는 가상해. 허나."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학생이 정류장 벤치에서 일어서며 철컥, 검을 움켜쥐고 말했다.

"제자님이 혼자서 다니면 우리같은 집관학생들이 어흥 하고 잡아가는거 몰라?"

"...!"

"뭐야 그 표정은? 겁에 질린 건가? 이제 와서 호위학생을 부르려고 해도 늦었다고?"

스윽.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서며 학생들은 킬킬킬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여기에 적힌게 사실이겠지?"

손에 쥔 도전장을 들어보이며 물어보자.

앞서 나선 학생이 과장되게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난 전달 역할을 맡았을 뿐인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얌전히 우리를 따라오라고..."

그리곤.

"아~ 여기 탈게요."

다가온 순환버스를 향해 휘적휘적 손을 흔들었다.

덜커덩.

"큭큭큭... 얌전히 올라타라고, 제자님."

삑. 삑.

"학생입니다."

소녀들이 카드를 찍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삑."

품을 뒤져 마침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총본산 카드를 찍고 학생들 사이에 껴서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갈 길은 이제 없다고."

"큭큭큭, 막차거든."

"다치지 않게 얌전히 자리에 앉자고..."

수십 명의 학생들이 올라탄 버스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막 빈 자리에 앉으려고 둘러보자.

내 뒤에 올라탄 학생이 앉을 자리가 없다는걸 알아차렸다.

"네가 앉으렴."

"...큭큭."

등 뒤에 따라온 학생이 비켜준 자리에 앉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입을 닫았다.

"...성인은 카드 찍으면 학생입니다 소리 안 나는 거야?"

"나 처음봄."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학생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저, 저기 나... 제자님이랑, 이야기 해 봐도 될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그치만! 우리들이 언제 제자님을 만나보겠어? 총본산은 반야원에 있고, 삼매원에 있는 우리들이 언제 볼 일이 있겠냐고!"

"멍청아! 지금 그럴 때야?"

리더로 보이는 학생이 버럭 소리질렀다.

"나도 제자님이랑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걸 참고있다고!"

"어?"

"어?"

"너 이자식, 평소에 나서는거 싫어하면서 이번에는 자꾸 나설 때 부터 수상하다 싶었는데!"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짝, 짝.

짧게 손뼉을 두드려 잠시 이목을 모았다.

"스승에게는 사사로이 쥐는 주먹이 없다고 했다. 너희들의 선생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언제든지 상담 요청을 한다면 어느 곳이든 만나러 올 거야."

"헉."

"그리고 모두들, 버스에서는 조용히 합시다."

"...너, 너 때문이잖아."

"조용히 해..."

"..."

심야의 마지막 버스가 조용하게 산길을 지나갔다.


***


"하차입니다."

삑.

학생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리며 총본산의 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했다.

도착한 곳은 정정진숙사로부터 상당히 멀어진 정류장.

그리고, 예전. 기숙사였던 흔적이 남은 곳이었다.

"여긴..."

그런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이지만.

생활의 흔적이 희미하게 뭍어있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나무젓가락 한 짝이라던가, 찌그러진 캔 음료 같은 것들이.

이곳은.

"자, 스톱."

다시 입을 연 리더 역할인 학생이, 내 곁에 다가와 말했다.

"제자님이 이곳을 보면 곤란하거든? 그러니까, 눈을 가릴거야."

그 말과 함께.

안대를 두 손에 든 학생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 그럼 제자님. 지금부터 눈을 가릴 테니까..."

"진정하고 천천히 씌워줘."

"네, 네에...!"

떨리는 손길에 차가운 손가락이 얼굴을 스치는게 느껴졌다.

서서히 시야가 가리며, 안대가 씌워진다.

"다 됐어?"

"네, 네...!"

조금은 소극적인 목소리가 멀찍이 물러나고.

리더 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좋아, 이제 출바..."

"난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가?"

"..."

내 소매가, 붙잡혀 당겨지는게 느껴졌다.

"횡포다!"

"남용이다!"

"시... 시끄러!"

누군가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제자님, 발 밑에 돌 조심해."

"아, 눈 앞에 나뭇가지."

몇 번이고 발목이 삐끗하고, 얼굴에 나뭇잎을 맞아가며 걸어가기를 한참.

"도착했어."

마침내 멈춰 선 곳엔.

스륵.

안대가 풀리고.

길에서 동떨어진 외딴 암자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은거니까."

"편지의 주인은, 그 안에 있을거야."

"뭐, 우리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말이지."

나는 학생들의 앞으로 걸어가.

암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울리는 소리.

그 안으로 신발을 벗고 발을 들여놓았다.

향로에 향이 타고 있었지만, 불상이 있어야 할 곳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대신.

몸을 숙이고 있던 무언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마치, 코끼리가 일어나듯, 혹은 거대한 뱀이 똬리를 풀듯 서서히 몸을 일으켰으나.

몸이 일어날 수록 그 덩치는 더욱 작아져.

마치 소녀와 같이 줄어들었다.

어두운 가사를 입은 그녀는.

텅 빈 불단 위를 바라본 채,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쪽을 바라보지 않는건가?"

"제자님께 보여드리기엔... 부끄러운 모습이라서 말이죠."

그녀의 목소리가 작은 암자 속에 울려퍼졌다.

"넌 누구지?"

"기숙사를 퇴사한 갈 곳 잃은 학생들의 리더, 조직화된 집중관리학생들의 단체, 우두머리, 혹은 존재하고 있을 외부 세력, 흑막..."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마치 빙그레 웃은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바람 한 점 없는 암자 속에서 향의 연기가 흔들리는 것 처럼 보였다.

"무릇 마땅히 존재해야 할 서사란 이 곳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편지 내용대로, 당신이 기숙사를 노리는 건가?"

아아.

"저야말로 그것으로 말미암은 존재이지요."

탄식과 신음이 울려퍼졌다.

"저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

향의 연기가 거세게 흔들렸다.

"업이란 참으로 무거운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정하고, 지금이 미래를 결정하는 단순한 순환을 너무나 가벼이 여기는 것이지요."

가사 입은 자는.

서서히 타들어가는 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업화란 불같이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야 말로 업화이지요."

연기가 암자 속에 자욱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곳에서야 실체를 가질 뿐인 저는 제자님께서 보살피는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려는 마음조차 말입니다. 그저, 이렇게... 결과가 되어 지켜 바라볼 뿐입니다."

희뿌연 연기 속으로 가사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갔다.

"단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보리살타를, 뵙고자 부득이 걸음을 청하였으니 노여워 마시기를."

향이 모두 타들어간 자리엔.

어느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연기가 사라진 불단 위에 놓여있는 것은.

"...노트?"

붉은색의 얇은 책자.

그 이름은.

"프로젝트..."

"제자님!'

덜컹!

급히 문이 열리고.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듯한 청매화와, 금사과, 칸나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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