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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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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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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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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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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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음유시인 수필.


정복전쟁.




39권 198페이지부터 201페이지까지.






15년전.


크로세 제국의 정복전쟁 마지막 날.

내가 그곳에 서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니겠는가?


나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였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내가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이유는!!

전쟁의 양상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 였다!

나는 크로시아 평원이 한눈에 보이는 크로산맥의 정상에서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대하고 위대한 크로시아 평원에 수백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평원을

사이에 두고 맞서 있었다.


안타깝도다!


너무 극명한 차이었다.

거인과 어린 아이의 싸움이 아닌가?

제국이라는 거인과 황국이라는 어린아이는 팽팽한 긴장감을 내뿜으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거인의 군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우리 어린아이의 군대는 거인에 비해 장난감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정신병자의 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국군의 위세를 보고 있노라면 그 작자가 주장했던 '세상은 둥글다' 라는 말에 속어넘어 갈 것만 같았다.


제국군의 군대는 절도 있었으며 통일되어있었다.

도열한 병사들의 심장부위엔 노란 용의 무늬가 하나같이 새겨져 있었고,

그 모습은 극도로 단정했다.


그들이 늘어선 곳 사이사이에 제국기가 우뚝 솟아 있었다. 제국기에 새겨진 골드 드래곤은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위세만으로 이길 수 있는 군대는 바로 저런 군대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바로 크로세 제국 제국병들이다!

그들은 하이오겐 황국의

광활한 평야와 총 열 다섯 개의 성중에 열 개의 성을 단 일주일만에

함락시키고 하이오겐 황국의 마지막 보루인 크로시아 평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함성은 그들이 이루어낸 승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나는 분명 그들과 까마득한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함성소리는 바로 나의 옆에서 지르는 함성같았다.


북소리가 울렸다.


장엄한 북소리는 제국군의 진영으로 부터 들려왔다.

제국군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에서 조차 황국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북소리는 나로 하여금 심장이 쪼그러들게

만드는 긴장감을 선사했고 나의 눈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대륙군의 선두에 백마를 탄 기사하나가 튀어 나왔다. 나는 재빨리 장거리 돋보기를 꺼내 그를 주시했다.


저게 누구였더라.. 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는 분명 바이서스 백작이었다!

바이서스 백작이라면 하이오겐 황국의 몰락한 가문의 백작이 아니었던가? 그의 가문은 자신의 조부의 몰락과 함께

무너진 가문이었다. 정권의 교체 시절 대장군이었던 명성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가문은 백작가로 강등당하고 변방으로 귀향살이를 갔다.


그 이후로 단 한번의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던 가문이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선두에서서?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중대한 전투에 왜 그가 선두에 서 있는가?


대장군은 어디에 갔는가?


끝없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햇다.


더 이상 큰 함성이 울리지는 않았다.

그저 지축이 흔들릴 뿐이었다.



- 쿵! 쿵!



거인의 발자국 소리였다. 제국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달리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내는 소리 처럼 정확히 발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다.

거인이 작은 벌레를 짓밟으려는 듯이 한발 한발 다가 왔다. 그 소리는 세상을 울리며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선사했다.


소리만으로도 세상을 짓밟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선두에 있던 바이서스 백작이 손을 높이 들고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화살모양으로 기마병들이 따라 달려나오기 시작햇다.


도대체 저 병력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맨땅에 박치기를 하는 것은 저것보다는 덜 무모할 것이다.

정녕..이렇게 대륙의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인가.


그들은 달려가고 있었다. 호롱불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그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황국의 땅에서 태어난 황국인인 나의 심장이 무너져 간다.

그들의 죽음이 눈앞으로 스쳐지나간다.


황국이여 황국이여.. 나의 대륙이여..


나는 하늘의 도움을 원했다. 기적같은 도움이 황국군에게 내려주기를 기원했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마지막을 위로하며 그리고 대륙의 암울한 미래를 염려하며..


헌데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나는 눈을 가렸다.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감히 실눈조차 뜰 수 없는 그런 빛이었다.

그 빛은 대륙군과 제국군의 정중앙에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나는 실명을 무릎쓰고! 실눈을 떳다.


그 모습을 눈에 담지 못한다면 나는 음유시인으로써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전장은 멈추어 있었다. 달려가던 대륙군도,

그리고 걸어오던 제국군도 모두다 눈을 가린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손으로 눈커풀을 잡고 눈을 뜨려 애썻다.

그 빛의 중심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빛은 조금씩 옅어져 가고

그 중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빛무리에 휩싸인 중심에서 검은색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점점 더 빛이 희미해져 가고 검은색 물체가 눈에 완전히 들어오려 할 때 였다. 제국군의 지휘관 막사가

있는 곳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 빛을 쳐다보았는데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빛이었던 흰색 빛무리보다는 턱없이 약한 빛이었지만

분명 스쳐갈 수 없는 자주색 빛이 지휘관 막사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금새 약해졌고,

그 빛을 의식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새어나온 자주색 빛은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나쁜 색이었다.


끔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빛이 사그러들기 직전 지휘관 막사의 출입구가 거칠게 걷어지며 로브를 입은 한사람이 뛰쳐나왔다. 그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장거리 돋보기를 통해 본 그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고, 곧 일사분란하게 그 명령이 제국군 전역에 퍼지는 듯 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차분하고 굳건해 보이던 제국군들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흰 빛무리로 인한 전장의 침묵이 깨어졌다.


모든 제국군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흰 빛무리의 중심지로 그들이 달리기 시작하자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산이 무너질 것 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재빨리 빛무리의 중앙으로 돋보기를 옮겼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적어도 스무명 이상이었다. 다들 검은색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고 단 한명

검은색 머리의 여인만이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검은색 복장과 흰색

복장 둘다, 이제껏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복장이었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듯한

그 옷은 발목과 손목이 체형에 맞출 수 있도록 끈과 같은 걸로 동여매져 있었고

상의와 하의 역시 몸에 달라붙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마치 여광대들이 입는 옷과 같은 형태의 옷을 통일되게 입고 있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흰옷을 입은 여인이 안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천으로 돌돌 말아져있는 어떤 물건 같았다. 그들은 그 여인의 주변을 둘러싼 채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제국군을 확인한 그들은 자신들의 검을 빼어들었는데

의복이 통일되어있던 것에 반해 그들의 무기는 제 각각이었다.

창을 든 이, 검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짧은 검을 양손에 든 이, 그리고 활을 든 이도 있었다.


그 잡다한 무기로 거대한 제국군은 돌진 앞에서 그들은 분명 흔적도 없이 사라질것이 불보듯 뻔해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바이서스 백작이 다가와있었다.


그는 재빨리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 뒤를 십여명의 기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나는 분명 보지 못했다. 허나 백작의 뒤를 따르던 기사들의 뒤에서 십여명의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그들을 넘겨버렸다.


백작은 그것도 모르고 달려가며 검집을 풀어헤치더니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양손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갔고 그만큼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어떤 말을 외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다급한 외침에 답을 하지 않는 듯 했고 백작은 급기야 손발을 써가며 제국군을 지명했고 그제서야 그들은 제국군들을 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은 그들을 이끌고 뒤돌아 섰다가 잠시 주춤했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기사들이

보기 좋게 기절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지체되지 않았다.

통일된 복장의 인영들은 일사분란하게 기절한 이들을 말에 실어 말을 출발시켰다.


백작은 그들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아마도 왜 말을 전부 보내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허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세상에 말보다 빠른 사람이라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족이 분명했다.


결국 맨 마지막에 남겨진 것은 백작이었고 백작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 부리나케 말을 타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전진해 있던 기마병들이 모두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거대한 제국군이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이제 성난 제국군이 몰아치고 있었다.


마지막 전장의 거대한 충돌이 시작되고 있었다.


콰앙?


대체 그 소리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나는 그때의 그 굉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거대한 제국군의 무리들이 대륙군과 맞닥드리기 직전에 대륙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땅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대륙이 터져 나가고 있었고, 제국군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와 같던 제국군들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그렇게 전장이 피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륙군이 서 있는 땅을 제외하고

제국군이 밟고 있는 모든 대륙의 땅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무섭고 끔직했던 그 모습이 바로 정복전쟁의 마지막 전장 크로시아 평원의

전투의 막바지였다.


그렇게 제국군이 몰살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전장을 물음표 전장이라 명명한다.


그 날 있었던 그 알수 없는 모든 일들은 더 이상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들을 다시 보았다는 사람도, 또 그 빛들의 정체도. 그저 그 빛에서 내려온 용족들이 그 전장을

승리로 이끌어주고 다시 승천했다는 그런 말들이 떠돌 뿐.


10여년이 지나기까지 그 일은 그저 동화처럼 갖가지 추측들이 나돌 뿐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정복전쟁은.. <중략>




- 201page-










프롤로그






큰 성이 있었다.


거대하지는 않았으나 품위 있어 보이는 성이었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세상은 밝았다.

큰 성이 불타고 있었다.

불타는 거대한 성의 성벽과 창문, 외벽에 마련된 계단등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 불이 붙거나 철로 만들어진 무기들을 꽂은 채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들리는 것 이라고는 오직,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들 뿐이었다.


방 한쪽에 위치한 벽난로의 장작은

타오르는 성처럼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방의 문은 굳게 닫쳐 있었지만, 문의 틈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갑옷소리,

금속의 마찰음, 고함소리는 벽난로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색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는 중년인이 있었다.

그의 머리는 하얗게 새어 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지만 그의 상체는 꿋꿋이 펴져 있었다.


그는 말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 편에는 한명의 기사와 로브를 입은 여인 하나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침착해 보이는 중년인과는 반대로 그들의 마음은 편하지 못한 듯 했다.


비명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몸이 조금씩 들썩거렸으며,

표정은 더욱 일그러져 갔다.

알 수 없는 방안의 침묵과,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소음의 괴리감은 그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 시키고 있었다.


고개 숙인 기사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공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벌써 저들이..!!"


대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시녀와 그녀의 손을 잡은 소녀,그리고 기사 한 명이 들어왔다.

시녀의 얼굴은 지옥을 경험한 듯한 표정이었고, 뒤이어 들어온 기사의 검에서는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녀의 손을 잡고 있는

흑발머리소녀의 얼굴은 담담하고 침착했다.

소녀는 분명 대륙인들의 생김새와 조금 달랐다.


이제 막 소녀의 티를 벗어던지려는 듯한 소녀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음영이 뚜렷한 대륙인들의 모습과 달리, 갸름하면서도 둥근 얼굴, 크지만 그리 크지 않고 선이 살아있는 눈.

크지 않으면서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 대륙인의 전형적인 생김새를 그녀에게서 찾아 볼수 없었다.

제일 구별되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였다.

마치 사람을 빨아드릴 것만 같은 흑안.

그것이 그녀의 눈이었다.


"아바마마, 이게.. 무슨 일이예요?"


소녀가 들어오자 그제서야 자리에 일어난 대공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와 눈 높이를 맞추었다.


"아르야.. 잘 들거라.."


대공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구나. 네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소녀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네,네?.”


대공이 말했다.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보지 말아라. 두 번째는 이 것을 결코 잃어버리지 말거라”


그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풀어 그녀의 목에 걸어 주었다.

보라색 보석 하나만이 매달린 목걸이는 한 공국의 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목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투박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백옥같은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가 네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지만, 오늘, 아니 스스로 하지는 못할 것 같구나. 허나 이것만 알아다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너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 할 것이란다.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에도 내가 네 애비였음을 잊지 말아다오.”


소녀의 머리칼이 그의 손등을 스쳐 지나갔고, 그의 눈엔 투명한 액체가

솟구치려 했다.


"아바마마..그게 무슨..?"


쾅!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이 걷어찬 문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 졌고 조용했던 방안으로 시끄러운 소음이 밀어닥쳤다.

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빼들고 침입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검을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침입자들은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거나

혹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여기다! 대공을 찾았다!!"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고, 병사들의 갑옷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기사들은 그들의 검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무엇들 하는가. 아르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라."


소녀는 눈을 부릎떳다.


"아바마마!! 안되요!"


대공은 딸을 지나쳤다. 그리고 십 수년 빼보지 않았던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서 빼어내며 문 앞에 섰다. 수하들은 잠시 넋이 나간 듯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서져라 무릎을 꿇었다.


"대공전하 만세!! 하이오겐 황국.. 만세!!용서하십시오.. 전하.."


그들은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대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주인은 결코 도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수하들은 소녀의 양팔을 붙잡고 벽난로로 다가갔다.

벽난로의 위에 있던 촛불을 치우자 벽난로가 옆으로 밀려나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그들은 곧바로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자,잠깐만요! 이거 놔요!! 아바마마!! 놔요!! 이것 놔요!!! 아바마마!!"


소녀는 절규했다. 그녀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소리쳤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수하들을 뿌리치려 했으나 힘없는 소녀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르야.. 사랑한다.. 사랑한다.."


대공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를 향해 수십 명의 병사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는 검을 휘둘렀다.

그를 뒤로 한 채 벽난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본래의 위치를 찾아갔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길인 대공과 아르의 사이를 암시하듯 제 자리로 돌아온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벽난로의 뒤쪽으로 생겨있는 통로는 칠흙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길을 잘 아는 듯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몇 갈래의 갈림길에서도 지체없이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길은 곧게 뻗어있지는 못했다.

구석구석에 튀어나온 철근들과 돌부리들,

미끄러운 이끼와 흐르지 않아 썩어 버린 구정물의 악취가 그들의 걸음을 방해했다. 앞서 가는 이는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방해물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들이 걸어온지도 십 여분이 지났다.

뛰는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것보다는 빨랐다. 그들 중에 유독 숨을 고르는

소녀는 자신의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럴수록 입술을 부서져라 깨물었다.

소녀의 입엔 진득한 핏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꺄 악!"


일행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아르 아가씨!!"


아르는 곧바로 일어섰다.


"괜찮아요, 잠시 발을 헛 딛었을 뿐 이예요"


일행은 다시 걸었다. 어둠이 수하들의 분노와 수치스러움이

뒤엉킨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르는 자신의 팔을 움켜잡었다.

바닥에 뒹굴던 나무조각이 그녀의 팔에 깊은 상처를 남긴것이었다.

상처를 감싸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서 따뜻한 피가 비집고 나왔다. 아르는 악취와 피로, 그리고 통증때문에 현기증을 느꼇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더욱 입술을 깨물었고 그녀의 입술을 따라 흘러 나온 피가

웃옷을 적셔갔지만 그녀는 느끼지도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한마디 말만이 가득차 있었다.


'결코..뒤돌아보지 말아라'


빛이 보였다.


희미한 빛이었지만 그들에겐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무엇보다 밝은 빛이었다. 그들 앞엔 얕은 수로가 펼쳐져 있었고,

수로 양편으로 어둠이 짙게 깔린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세 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카누 두 대가 밧줄에 매여져 있었고, 아르와 기사한명 그리고 로브를 입은 여인이 카누를 타고 밧줄을 풀었다.

다른 카누에는 한 명의 기사와 하녀가 타고 밧줄을 풀었다.

수로를 따라 카누는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아르의 팔을 붙잡고 있는 작은 손 사이에서 피가 흘러 내려 소매를 흠뻑 적시고

있었고, 입술을 타고 흐른 피는 웃옷을 적시고 있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기사는 부서져라 노를 움켜잡았다.

기사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와 같이 노를 젓고 있는 여인도 역시 소름끼치도록 이를 갈고 있었다.

아르는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자꾸 감겨 오는 눈을 들어 뜨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아르는 조용히 무너졌다.

기사는 자신의 셔츠를 찢어 그녀의 팔에 매었다.


"아악!"

"아가씨.. 지금 잠들면 안됩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이 수로만 벗어나면 됩니다.."


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표정도 알아보지 못 할 만큼 지저분했다.

진흙과 피와 땀이 범벅이 되어서 아르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울면 안 돼 .. 잠들면 안 돼.. 참아야 돼..'


아르는 소매로 눈가를 닦고 목을 움직여 피곤함을 떨쳐 내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르는 자신의 눈이 지나쳐온 숲을 쳐다 보았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번쩍였다.

그녀는 숲을 더욱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살을 찌푸렸다.

횃불이었다.

희미하던 횃불의 수는 점점 늘어 가기 시작하더니 수백개의 횃불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소녀의 목구멍으로 비릿한 액체가 흘러 들어갔다. 수하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두 갈래의 수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아르와 같은 카누를

타고 있던 기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두대의 카누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르는 놀라며 기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말을 하려 했다.

왜 저쪽방향으로 가느냐고 말 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이 열리기 전에

그녀의 손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왔다.

자신이 떠는 게 아니었다. 기사의 몸이 떨리는 것이었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 또한 떨고 있었다. 여인의 눈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아르는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가 타고 있는 카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기사가 자신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아르는 멀어져 가는 카누를 보며 중얼거렸다.


"안돼.. 안돼.. 안돼.. 이런거.. 싫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기사의

목소리였다


"대공전하만세!! 하이오겐 황국 만세!!"


쾅!!!!


천지가 흔들렸다. 붉은 불길이 하늘을 치솟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메웠다.

그리고 희미하게 호각소리도 들려왔다.


"안돼에에에에!"


기사는 아르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르는 기사의 손을 깨물며 그의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기사의 손은 피가 흐를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기고 있었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작은 소녀가 하는 주먹질이 아플리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막힌 그녀의 입에서 새어져 나오는 비명은 시퍼렇게 날이 선 검처럼 자신의 심장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여인이 쥐고 있던 노는 그녀의 악력에 짓이겨졌다. 부서진 파편은 여인의 손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지만, 그녀 역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욱더 노를 움켜쥐었다. 아르는 끊임없이 기사의 가슴을 두들겼다. 여인은 노를 놓았다. 그리고는 아르의 두 팔을 잡고 그녀를 껴안았다. 아르는 발작 같은 행동을 멈추고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안고 있는 여인도 편하게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르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손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카누는 어둠 속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달빛이 미치지 않는 숲 속 수로를 따라서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검은 달과, 타오르는 거대한 성의 모습이 비명소리와 어우러져 하늘을

수 놓았다.


지옥 같은 밤은 더욱더 깊은 밤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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