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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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통로
작품등록일 :
2024.09.09 02:20
최근연재일 :
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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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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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DUMMY

낡은 철문이 먼지를 일으키며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철문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듯 위태로워 보였다.

폴드는 탁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탁자를 들춰 내고 나무바닥을 향해 소리쳤다.


"oi pean!"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박혀 있는 못들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나무판자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맨바닥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폴드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켄트를 들쳐 업었고,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던 아르는 그제서야 켄트를 업는 것을 도와 주었다. 폴드는 지체없이

움직이며 말했다.


"공녀님. 이쪽으로 오십시요!"


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켄트의 옷과 검을 안아들고 폴드의 뒤를 따랐다.


"셋 셀 때까지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가겠다!!"


문밖의 병사들은 문을 두드리던 것을 멈추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하나!!"


폴드는 앞장서서 천천히 내려가며 알 수 없는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폴드와 비의 머리위로 빛의 정령이 나타났고, 좁은 계단이 밝게 밝혀졌다.


"둘!!"


폴드는 허공에 떠있는 나무판자를 향해 소리쳤다.


"dey fied!"

"셋!! 부셔버려!!"


콰앙!!


문이 떨어져가는 소리와 동시에 떠있던 나무바닥과 못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아르와 폴드가 내려간 계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르는 그모습에 넋을

잃었지만,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온 빛의 정령에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폴드를 뒤따랐다.

지하를 살피던 병사하나가 외쳤다.


"여기 피 묻은 헝겊이 있습니다!!"


병사는 밤새 켄트의 피로 얼룩진 헝겊을 들고 자신의 상관에게로 달려 왔고,

그것을 건네받은 기사는 헝겊의 피가 다 마르지 않은 것을 확인 하고는 인상을 지푸렸다.


"분명 이곳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한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창고안을 휙 돌아보고는 소리쳤다.


“놈들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이미 벗어났을 테지만 이곳에도 샅샅히 뒤져!!"

"옛!!!"

"두 놈만 남아라!! 그리고 넌 다른 조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놈들은

분명 근처에 있다. 움직여!! "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기사와 나머지 병사들은

다시 갑옷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세 명의 병사들은

책상과 탁자를 부숴버리기도 모자라 정리되어있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순식간에

지하실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아무런 수확이 없자 곧바로 멀어진 자신의 부대를 뒤따라 뛰어나갔다.

그들이 전달한 정보는 곧 영주성을 통해 전달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지시가 내려올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그들은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귀롤 들리는 종소리 때문이었다.

복귀를 알리는 종소리.

그들은 순간 왜 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달콤한 휴식이란 생각에 기분 좋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만 항구의 길거리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둡고 좁은 계단이라 이동속도가 느린 탓인지 꾀나 깊숙한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통로였다.


"공녀님, 이제 다 왔습니다."


아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계단의 밑 부분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통로의 끝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있었다. 야위었지만 큰 키의 폴드의 머리에서

한 뼘 정도 되는 천장에는 빛의 정령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간의 주위는 울퉁불퉁한 검은 톤의 암석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반대편으로 다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공간에 마련되어있는 것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돌 침대 하나와 돌 탁자가

전부였다.

폴드는 침대 위에 켄트를 눕혔다.

그리고는 아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내려온 반대쪽 통로로 사라졌다.

아르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켄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켄트는 어느새 많이 회복이 된 듯 편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 켄트를 조용히 바라보던 아르의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녀는 탁자로 자리를 옮겨 멍하니 벽을 쳐다보다가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아르는 무서운 꿈을 꾸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오스만 항구의 영주성은 백작의 작위에 어울리지 않는 큰 성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오스만 항구는 거대한 섬 나라인 롬 제국과 중립국인 신성왕국 그리고

유르시아 대륙의 대규모 물량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대륙과 제국과는 단 일분일초도 같이 숨쉴 수 없을 정도의 철천지원수라 하더라도

교역마저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우위에 있는 물건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넓디 넓은 대륙에서는 식량의 문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으나, 너무도 넓은

평지만으로 이루어진 대륙은 광석이라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제국은

그 반대였다.

단편적인 예일 뿐, 그들이 교역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미 불어난 인구와 한정된 자원, 그리고 상승할 만큼 상승한 문화적인

요소들등 기초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상상치도 못한 부분까지도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이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원수가 될 정도의 전쟁을

시작한 계기 역시 그러한 자원적인 이유였다.

전쟁을 하려면 식량이 있어야 하고 또 적을 죽이려면 무기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신들이 이 땅의 구조를 만들때는 서로를 뺏기 싸우게 만들기 위해 자원을

분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중요한 요소들이 그들에게 나뉘어져 있었다.

하여 그들은 서로의 자원을 쟁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웠지만 그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였다. 결국 수많은 목숨들의 희생되고 나서부터 서로는 서로의 자원의

한정된 부분 안에서 교역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오스만 항구는

끊임없이 성장해 왔다.

제국과 대륙간의 전쟁속에 묻혀진 사회적 현실이나 정치적 이야기들은 이미 세 살배기

어린아이 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로 퀘퀘묵은 시사꺼리지만 영원히 식지 않는

시사꺼리이기도 했다. 그런 시사와 부의 중심지인 오스만 항구의 영주인 프라스 백작은 오늘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비대한 몸집에 채워주어야 할 영양분을 벌써

다섯시간째 채워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악독한 계집만 아니였다면, 자신은 이미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음식속에 파묻혀 오늘도 쾌감과 만족감으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번 들어올까말까 한 회의장이 아닌 자신을 극락으로 보내줄 향기가 넘치는

자신의 전용식당에서 말이다.

그런 그의 눈이 원망스러운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나?”


피오네 공녀의 차가운 말에 백작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닙니다 공녀님.. 다만.. 공녀님이 시장하시지는 않을까 해서..”


피오네 공녀는 경멸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더러운 돼지 같은 놈”


백작은 흠칫 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대륙의 황제의 바로 아래라 할수 있는 공작가문의 딸이라고 하지만

공작의 신분이 아니었다. 설령 공작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입지상 저렇게

심한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공녀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피오네 공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너를 그 자리에 그대로 앉혀두고 꼭두각시로 이용할 생각이었건만,

네 몸의 비계는 작은 잔일 하나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무겁겠구나”


백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기어코 책상을 손으로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 언사는 잊지 앉겠소! 당신이 아무리 피오네 공작가의 공녀라 해도..”

“죽여라”


백작은 순간 흠칫 하며 자신의 뒤를 돌아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은 자신의 가신인 기사들이었다.

공녀를 수호하기 위해 따라온 기사들은 영주성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의 섬뜩함에 놀라 뒤를 돌아본 그였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예의가 없으십!!..컥..”


백작은 자신의 심장을 뚫고 나온 검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자신의 가슴과 십수년동안 자신의 가신으로 있었던 기사의

얼굴을 보기위해 힘겹게 고개를 돌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끊을 놓쳤다.

공녀는 그 모습에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치워”

“예”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주군의 시신을 들어 밖으로 사라졌다.

공녀가 말했다.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냐”

“간밤에 은신했던 흔적을 찾은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사옵니다. 모든 병력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만..”


공녀의 시선이 기사에게로 옮겨졌다.

보고중이던 기사는 흠칫하며 한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네놈들을 살려두는 것은 그년을 찾기위해서 일 뿐이다. 만약 그년을 찾지 못한다면

네놈들이 대신 죽어줘야 겠다”


기사는 온몸을 떨며 얘기했다.


“제,제발.. 목숨만은.. 사,살려 주십시오..”


공녀는 한쪽 입고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이놈의 성은 주인이나 종이나 속에서부터 썩어 문들어진 것은 마찬가지로구나.

그리도 살고 싶다면 네놈도 나가서 찾아라.”


기사는 지체없이 뒤돌아 달려나갔다. 막 회의장을 벗어나려던 순간 그의 귀에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기사는 그녀의 입이 열리는 순간부터 얼음처럼 자리에 굳어있었다.


“토일른에게 내가 찾는다고 전해라”

“예!!”


기사는 재빠른 대답과 함께 도망치듯 사라졌다.

주군을 배신하는 댓가로 공작가의 금화를 받아 든 순간부터 자신의

목숨은 공녀의 말한마디에 좌우되는 상품일 뿐이었다.

상품은 자고로 최상의 질을 유질 할 때에만 쓸모가 있는 법,

기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공녀는 회의장 가득히 풍기는 피 냄새를 음미하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


“차라리 피 냄새가 낫군. 역한 돼지 냄새 보다는.”

“의외로군요.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프라스 백작을 이리 간단히 죽여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피오네 공녀는 아무도 없는 회의장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전혀 놀랍지 않은 듯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은 제거하면 그만이다.”

“과연 공작전하 역시 같은 생각이실까요?”


순간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라면 모습을 들어내라!”


회의장의 넓은 원탁아래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쥐였다.

분명 성안의 음습한 공간에 집을 짓고 서식하는 쥐들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모습을 드러낸 쥐가 다른 쥐들과 다른 점은 그 작은 눈이 피를 흘리듯

붉다는 점이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구강구조와 신체적결함으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포유류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입장이 입장인지라 직접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공녀님”


쥐는 심지어 그 작은 고개까지 조아리며 인간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초유의 사태에도 공녀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겁이 많은 놈의 입에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을 테지.”

“하하하. 그럴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공녀님 제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공녀님께도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공녀는 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당장이라도 눈앞의 작은

포유류를 찢어 죽일 만큼의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쥐가 말했다.


“공녀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지요”


정중이 고개를 숙이는 쥐의 모습에 공주의 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자신을 놀리는 작은 짐승을 더 이상 봐 줄수 없는 듯 했다.


“공작전하께서 돌아오시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쥐의 말에 공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말이 사실이냐?”

“네 틀림없습니다”


공녀는 들어올린 팔을 내렸으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어떠한 기별도 받지 못했다. 어찌하여 네놈이 그 사실을 알았으며 또 어찌하여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냐?”


쥐는 자신의 몸뚱이를 작은 손으로 가르키며 얘기했다.


“제게는 사람보다 뛰어난 첩자들이 많습니다. 그 정도야 쉽게 알 수 있지요.”


공녀의 표정이 모멸감으로 찌푸러 들었지만 쥐는 전혀 게의치 않는 듯 말했다.


“또한 공작전하께서 돌아오시면 하루속히 영내를 정비하려 하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녀님께서는 귀환 하실 수 밖에 없게 되십니다. 하여.. 저희의 언약이 충실히 지켜 질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공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내정에 내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네놈과의 약조는 지킬 것이니 조급해

하지 말아라. 그것이 그리도 걱정이 되어 오두방정을 떤 것이냐? 네놈의 능력도

보잘 것 없구나”

“하하하하하!”


느닺없이 터진 쥐의 웃음에 공녀의 비웃음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무엇인가 착각하고 계시옵니다 공녀님. 일단 지금과 같은 공녀님의 행동은

공작전하께서 영내를 정비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옵니다. 막무가내로 귀족들을

도살하신다면 귀족들은 공작전하께 더욱 협조 하지 않으려 할 테니까요”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그때마다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역시 성격이 괴팍하시군요”


공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이 앉은 의자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모습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내려놓으시지요 공녀님. 공녀님 역시 제 말에 귀를 귀울이셔야 할겁니다.

어차피 저희는 한 배를 탄 사이니까요. 명심하십시오. 공녀님이 이루어 내신 업적의 뒤에

저희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그 업적이 언제든 반역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저의 편지 한통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공녀의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의자의 떨림 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분노해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의자를 내려치지 못했다.


“뭐.. 어차피 그것은 공녀님의 사정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는 않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공녀님의 정치방침에 참견을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또다시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쥐의 모습에 공녀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네놈이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본론만 얘기하고 썩 꺼져라!!”


쥐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르 공녀일 뿐입니다. 지금의 수색작업으로는

그녀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나서고 싶지만.. 워낙 보는 눈이 많고, 또 혹여나

그로 인해 공녀님과 저희와의 관계가 들춰지게 된다면 저희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될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조언을 드리고자 찾아왓습니다.”


공녀는 여전히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이냐 그것이!”

“그들은 지금 정령술사와 함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병사를 투입해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공녀의 눈썹이 움츠러 들었다.


“정령술사 말이냐? 그 존재도 희귀한 놈들이 어떻게 공녀와 함께 있는 것이지?”

“공녀님께서는 바이서스공국을 너무 얕보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자신의

머리를 잃었고 주 병력이 자리를 비웠다고는 하지만

그외의 중심 세력들은 점조직 처럼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조직이 하나의 매개를 통해 모여들게 된다면 이미 점령한 바이서스의

성 보다 수 배나 큰 조직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숫자가 아닌 실력에서 말입니다.”


공녀는 잠깐 생각에 잠기었다가 얘기했다.


“지금 내 휘하에는 마법사가 없다. 정령술사를 찾기위해서는 고서클의 마법사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 휘하의 마법사들은 기본적인 마법들만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일 뿐이다.”

“물론이지요. 전 대륙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는 고서클의 마법사가 이런곳에서 찾아

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공녀님께서 오스만 항구의

수색병력과 모든 기사들을 하루동안 사라지게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잠시동안 풀어졌던 공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그 틈을 노려 오스만 항구를 네놈들 것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냐!”

“하하하 공녀님. 너무 앞서나가지 마십시오. 다만 저는 저희가 공녀를 찾도록 협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만약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더 이상 공녀님과 제가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녀를 찾는 일 외에는 그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겠노라고

제 목숨을 걸고 약조 드리지요.“

“네놈의 약조를 내가 어찌믿고 그런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이냐!!”


쥐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허허, 조금 섭섭합니다 공녀님. 저희는 어차피 신뢰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또한 어느 하나가 배신하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하는 처지인데 어찌 그것을 몰라 주신단 말입니까.

더군다나.. 공녀님께서는 더 이상 저와 같은 존재 때문에 불편해 하지 않으셔도

되시는 일이니 서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공녀는 쥐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귀에도 두 번 다시는 저런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인간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얘기했다.


“오스만 항구는 아직까지 우리 공작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귀족들과

기사들이 내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쥐는 박수를 치며 얘기했다.


“하지만 공녀님께서는 한가지 방법을 이미 만들어 두셨군요.”


공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냐?”


쥐는 피분수가 뿜어졌던 자리를 앙증맞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손에 살해 당한 오스만 영지의 백작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객은 이미 항구를 벗어 났고, 백작의 휘하로 귀족의 직위의 있는 이들은

당연히 그 자객을 색출하여 목을 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 된다면 내정에 대한

공작 전하의 우려에 대한 화살을 피할 보루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녀의 눈이 빛났다.


“괜찮은 방법이군. 하지만 그 자객을 당장 어디서 만들어 낸다는 말이지?

이 일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맡길 수 있는 놈들을 하루아침에

찾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쥐가 말했다.


“이미 백작의 시체를 들고 가지 않았습니까? 백작을 살해한 자객들이..”


공녀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 보다 간단한 일이군.”


쥐는 그제서야 모든 얘기가 끝나다는 듯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는 더 이상 공녀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하루동안은 이 성안에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은 찾을 수 없겠군요.

감사합니다.”


쥐는 조용히 탁자밑으로 사라졌다.

쥐가 회의장의 바닥에 아주 작은 균열로 사라지기 직전 공녀의 메마른 음성이 들려왔다.


“다시 한번 묻지. 도대체 네놈들이 아르공녀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공녀는 자신의 질문이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번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떠한 결론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저들이 내건 어마어마한 조건에 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르공녀의

신병 뿐이었다. 자신 역시 바이서스 공작가의 혈육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 것은 맞는

일이지만 이미 그들은 얻을만큼 얻었다.

더군다나 공녀의 입지상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바이서스 공작가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공녀는 어차피 반쪽짜리 공녀이다. 그녀가 살아 돌아온다고 한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다.

조금이라도 변수를 없애기 위해서는 죽이는 게 맞을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너희들이 그토록 큰 도박을 하는 것이지? 그년을 빌미로

우리의 약점을 잡아두겠다는 것이냐?“


공녀는 자신의 생각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쥐를 더욱더 노려보았다.


“죄송하옵게도 그 점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결단코,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또 아르 공녀로 인하여 공녀님과 마주칠 일 역시도 없다는 것을 약조드리지요.

상호간에 이득이 된다라는 것 정도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구멍속으로 몸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공녀는 그런 쥐구멍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설마.. 제국의 황태자도 그년을 연모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녀는 이내 고개를 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국의 황태자가 아르 공녀를 보게 된 것도 불과 1년전

대연회장에서가 처음이었다. 아르는 철저히 베일에 쌓여진 존재엿다.

그 이전 단 한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단지 1년전 그 연회장에서의 모습이 전부였다.

단 한번도 본적이 없던 흑발과 흑안의 외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가냘파

보이면서도 당당해 보이는 그 걸음걸이. 그녀의 등장은 모든 이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처음 보는 바이서스 공국의 외동딸. 바이서스 아르.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일이었겠으나, 그것이 아니라 할 지라도

그곳의 모든 이들은 그녀가 풍겨내는 기운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녀의 신비스러운 모습에 연회장의 모든 것이 그녀를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황태자의 눈길..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한번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네년이 나의 앞길을 막으려고..”


그녀는 신경질 적으로 이를 갈다가 곧 그 행동을 멈추었다.

이미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더 이상의 경쟁자는 없었다.

그녀가 설령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녀를 지탱해줄 것들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은 막대한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황태자까지..

자신의 그만큼의 이득을 얻었다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녀 따위는 충분히

양보할 수 있었다. 황태자의 눈빛을 생각하면 갈아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더 이상 경쟁할 값어치가 없는 망국의 공녀일 뿐이었다.

이제 약조만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공녀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는 약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약조도 오스만 항구를 하루만 비어 주는 것 만으로 마무리 된다.

더 이상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놈의 면상도 더이상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그것 만으로 그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때 회의실 문 반대편에서 딱딱한 목소리의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님. 토일른입니다”


그녀는 때마침 찾아온 자신의 충복의 목소리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어와라”


그녀의 말에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기사는 중년의 차가운 인상을 가진 기사였다.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자신이 들어온 회의장 안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본디 너를 부른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다만, 뭐 어찌되었든.. 백작이 살해 당했다.”


기사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공녀는 얼음같으며 자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그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는

자신의 충복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너를 찾아간 놈과 문 밖에 있는 놈들이 흉수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제거될

필요는 없다.”


기사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공녀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말 뜻을 이해한 기사를 향해 그윽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르 공녀를 추적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

한 시간 이내로 철수 한다”

“알겠습니다. 더 하명하실 일은 없으십니까?”


공녀는 고개를 저었다.


“소신 물러가겠습니다.”


기사가 회의장 문을 나간 뒤 공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는 회의장 가득히

풍겨지는 피비린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스만 항구의 영주성에 십여년 간 울린 적 없는 비상종 소리가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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