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공 학우위원장 김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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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수달
작품등록일 :
2024.09.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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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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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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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위원장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살며시 문이 열렸다. 다크 서클이 턱 밑까지 흘러내린 수영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수영을 보자 양춘이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걸어 나왔다.


“참모장 왔는가.”


양춘은 소탈하게 웃으며 수영을 맞이하고는 소파에 앉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위원장, 무슨 일로 불렀어?”


양춘이 권한 자리에 앉으며 수영이 물었다.


“내야 뭐, 늘 우리 학우들의 행복과 학교의 부흥에 관한 생각들뿐이지.”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래가 이번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양춘과 같은 단세포 꼬맹이는 생각과 행동을 구분할 줄 몰랐다. 생각이 곧 말이 되고 말 한마디면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성실한 무능력자를 앞에 두고 수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 뭔데?”


“학우들의 쾌적한 식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가, 식당 앞에 교정을 새롭게 손보는 기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수영은 조금이라도 양춘의 명령이 떨어지길 미뤄보기 위해 재차 물었다.


“어, 어떻게,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그건 이제부터 수영이, 니가 생각해 봐야지. 나는 아주 큰 나무 몇 그루랑 오래된 벤치 한두 개면 충분하다. 전통 있고 유서 깊어 보이게.”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양춘을 보며 수영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이 눈에 선 했다.


“수영아, 걱정하지 마라. 학우들을 향한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되면 마, 모든 일이 다 잘 될 끼다.”


“그, 그래. 최선을 다해볼게.”


무책임한 말들을 늘어놓고 양춘은 호탕하게 웃었다. 낯빛이 흙색으로 변한 수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거리를 떠맡았다.


*


“위원장님, 진짜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작전 참모가 벌컥 화를 내며 수영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고 있는 수영을 보고는 애처로운 마음에 고개를 홱 돌렸다. 작전 참모는 1학년이지만 생각이 바르고, 일머리가 좋아 참모진으로 발탁된 인재였다. 그리고 특히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은 수영을 무척 잘 따랐다.


수영은 참모진을 비롯하여 교내 모든 학생에게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번 학우 식당 앞 교정 재정비 사태에 참모진들이 참모장실로 몰려와 그녀를 위로했다.


물론 바로 이 점이 양춘이 수영을 참모장으로 발탁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는 심성이 착하고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으며 매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엘리트였기에, 양춘은 부려 먹기 좋고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떠넘기기 쉽고 최악의 경우에도 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녀를 권력의 표면적인 2인자로 기용했다. 그리고 양춘의 예상은 적중했다.


“수영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군수 참모가 의견을 제시하자, 옆에 있던 인사 참모도 동의하며 수영에게 태형을 불러 이번 일을 해결하자고 했다. 수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참모들의 말에 수긍했다.


“서기국장 불러.”


참모장실엔 전운이 감돌았다.


상석에 수영이 앉아 있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태형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참모진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었다.


“이번 일엔 기계과와 운송과의 협조가 가장 중요할 텐데, 서기국장이 학과 대표자 회의에서 힘 좀 써주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정보 참모였다.


“아유, 요새 다들 힘들어.”


태형이 능글맞게 웃으며 정보 참모의 의견을 어물쩍대며 받아넘겼다.


그런 태형의 비협조적인 모습에 참모진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수영은 잠자코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때 참다못한 작전 참모가 무언가 발언하려는 순간, 태형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나는 참모장이랑 얘기하러 왔는데, 이 떨거지들은 뭐냐?”


가늘게 뜬 눈에서 참모장과 참모진들을 대하는 태형의 태도가 명확히 엿보였다. 구조적으로는 수영이 태형의 직속 상사였지만 실제 권력의 경중은 태형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거친 말에도 참모진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 다들 그만하고. 태형아 우리 일이 되게끔 하자.”


수영의 말에 태형은 거드름을 부리며 소파 깊숙이 몸을 뉘었다. 그러고는 수영에게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듯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자재를 구하려면 기계과와 운송과의 도움이 필요하고, 교정을 꾸미려면 조경과와 인테리어과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학과자치본부장으로서 태형이 니가 좀 나서주라”


듣고만 있던 태형이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


“참모장이 시키면 내가 해야지 뭐 어쩌겠어. 내일 학과 대표자 회의에서 말해볼게.”


태형의 대답에 수영이 한시름 놨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일 나도 참석할게. 물론 발언권은 없겠지만.”


“그럼, 내일 봅시다.”


태형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찰싹 내려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수영도 일어나 태형을 배웅했다. 참모진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참모장실을 빠져나가는 태형의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


회의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누구든 먼저 발언하는 사람이 덤탱이를 쓸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누구 하나 억지로 총대 매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다들 자유롭게 얘기해 봅시다.”


회의가 지지부진해지자, 태형이 학과장들을 다독이며 의견을 구했다.


학과 대표자 회의는 서기국장이자 학과자치본부장인 태형을 중심으로 각 학과별 대표자가 모여 학과 간 상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기구이다.


회의실에는 직사각형으로 책상에 놓여 있고, 최상석에는 태형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녀 주위로 건축과장, 기계과장, 정비과장, 운송과장, 조경과장, 인테리어과장 등등이 줄지어 앉아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태형의 뒤로 배치된 의자에 수영이 앉아 회의를 관망했다. 학과장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수영은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들도 새로운 학우위원회가 설치되고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마냥 이번 사태에 발 벗고 나서달라고 하기 미안했다.


“우리야, 뭐, 무슨 일을 얼마나 하던 업무량이 크게 달라지진 않으니까 상관없다만. 서기국장, 학우위원회 출범 이후에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당장 학과 중앙 회의만 가도 학년 대표들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고, 감당하기 힘들어.”


무거운 침묵의 장막을 걷어내고 정비과장이 입을 열었다.


“학과 중앙 회의뿐만이 아니야, 학년 회의나 학급 회의에서까지 파업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니까.”


건축과장도 용기를 내어 불만을 토로했다.


“알지, 알지. 그래서 내가 급양국이나 복지국에 예산도 대폭 늘려주고 우리 학우들의 노고에 적합한 보상과 처우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엄청 푸쉬하고 있다니까.”


태형이 학과장들을 달래며 말했다.


“나도 태형이가 우리 챙겨주려고 고생하는 거 다 알지. 근데 이게 뭐 카더라만 떠돌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우리도 난감한 거지.”


건축과장이 답답한 심정을 이야기하자, 다른 학과장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한숨을 푹푹 내쉴 뿐 회의는 진전이 없었다.


“혹시, 내가 좀 얘기해도 될까.”


지켜만 보던 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에 끼어들었다.


“거, 미안하지만 참모장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수영을 보고 태형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말고 내가 개인적으로 학과장들한테 부탁하면 안 될까? 다들 상황이 녹록지 않는 거 잘 아는데, 이번 한 번만 나 좀 도와줘.”


실핏줄이 터져 새빨개진 눈으로 수영이 학과장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러자 다들 차마 수영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지 저마다 길게 탄식을 내뱉었다. 태형만이 얘 좀 봐라, 하는 기색으로 그런 그녀를 흘겨봤다.


“내가 요즘 한숨만 늘어서 큰일이다.”


기계과장이 푸념을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속전속결로 처리합시다.”


“그래, 여기 앉아서 우리끼리 떠든다고 위원장 생각이 바뀔 리도 없으니 기계과장이랑 운송과장이 뒷산에서 나무 캐오고, 정원 꾸미는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 벤치는 인테리어과에서 어떻게 좀 해봐.”


조경과장이 상황을 정리해 나가자 다른 과장들도 알겠다며 동의했다.


“그리고 직접적인 관계없는 학과에서도 부반장급 이상으로 인력 지원 좀 해줘, 그래야 빨리 끝내지.”


건축과장이나 정비과장도 조경과장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기색으로 수긍했다.


“수영이, 니 부탁이니까 우리도 이번에는 더 이상 군말 없이 하겠는데, 자꾸 이러면 진짜, 반드시 어디선가는 터진다.”


조경과장의 충고에 수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내가 잘 못해서 미안해.”


수영의 사과에 학과장들은 애정 어린 짜증을 쏟아냈다. 사과받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둥, 수영의 사정은 자기들도 잘 안다는 둥 그녀를 두둔하는 말들을 내뱉으며 회의는 끝이 났다.


일을 잘 풀렸으니 다행이라며 태형은 입으로 웃고 있었지만, 수영과 학생들 사이의 이런 분위기가 못마땅한 듯 두 눈엔 어렴풋이 살기가 서렸다.


학과 대표자 회의가 있고 난 뒤, 이튿날부터 학우 식당 앞 교정 재정비 공사는 조경과장의 주도 아래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기계과에서 굴삭기와 지게차를 끌고 학교 뒷산에 올라 쓸 만한 나무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운송과 학우들이 화물차를 이용해 학교까지 자재를 운반했다.


교정은 조경과장의 설계대로 착착 시공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과에서는 전통 있는 유서 깊어 보이는 오래된 벤치를 제작하는 데 난항을 겪긴 했지만, 미술적 역량이 뛰어난 학과장의 활약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모양이었다.


양춘은 위원장실 창가에 서서 뿌연 먼지를 풀풀 날리며 활발하게 진행되는 공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땀 흘려 일하는 학우들을 보며 그녀는 흐뭇해했다.


“다들 열심히 네요.”


양춘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현이 말했다.


“역시 내가 참모장 하나는 기똥차게 뽑았다 아이가.”


기쁜 마음에 양춘이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히고 껄껄대며 웃었다.


그러나 양춘의 기대와 달리 무리한 공사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리고 부실한 보급품과 식사로 학생들의 불만은 날개 돋친 듯 태양을 향해 치솟았다.


작가의말

과연 양춘은 무사히 교정 재정비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 인가!


2화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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