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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9.10 17:13
최근연재일 :
2024.09.13 20:26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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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추천수 :
26
글자수 :
33,978

작성
24.09.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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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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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가족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가?

DUMMY

상당히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마치 따뜻한 물속에 피곤한 몸을 푹 담근 기분이다.

그리고 밖에서 아른아른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하여 다시 단잠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공간은 비좁았지만 아주 포근했다.


난생처음 느끼는 환경.


그래서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꺼풀을 연다면 그 모든 느낌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염병할 삶은 언제나 그랬듯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방에서 나를 밀어 내고 있었다.

있을 만큼 있었으니 이제 나가라고 떠미는 것만 같았다.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아니,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고작 해 봐야 꼬물거리는 수준이다.

그저 밀리면 밀리는 대로 물처럼 흐를 수밖에.


‘망할.’


이번엔 눈에 힘을 주어 봤다.


무엇인가에 엉겨 붙어 있는 눈꺼풀은 겨우 뜨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이건 그냥 죽음일까?

드디어 수십 번의 죽음과 삶, 그 굴레 끝에 저승에 온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정수리 위에서 가느다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신음 섞인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몸이 물 밖으로 쑥 하고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어두웠던 세상이 새하얀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너무나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언어였다.


신계? 신들이 쓰는 언어인가?

내 망할 삶을 유희 삼아 위에서 재미나게 구경하던 그분들?


‘염병할 것들!’


눈을 뜨고 어떻게 생겼는지 면상이라도 보아야 했다.

왜 보고만 있었냐고,

내 꼴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도 재밌었냐고 멱살이라도 잡아채야겠다.

꽉 감고 있던 눈을 조금씩 떠 보았다.

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난생처음 보는 기구들과 초록색 마스크와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


‘뭐냐?’


아무리 눈을 껌뻑여 봐도 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웃고 있었다.


의사는 갓 받아 낸 아기를 보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찡그리지도 않고 울음을 토할 분위기조차 잡지 않는다.

그저 또렷한 초점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신생아의 시력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후 2, 3일이 지나고서야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눈동자로 좇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후 1개월이 지나면 수평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신생아는 마치 다 보인다는 듯이 자신을 또렷하게 직시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혹시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의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손을 들어 신생아의 엉덩이를 가볍게 내리쳤다.

하지만 의사의 손길은 그에게 결코 가볍지 못했다.


짝!


‘아악! 망할 자식아!’


“응애! 응애!”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후끈한 고통에 그가 악다구니를 쳤다.


가만?


‘뭐? 응애?’


“응애!”


신생아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의사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기의 목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받쳐 산모 옆으로 다가갔다.


“아주 잘생긴 아들입니다.”


산모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과 힘에 겨운 모습에도 미소를 그렸다.

의료진이 그녀의 품에 신생아를 조심스레 옮겼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서 웃기는 일이지 않은가?

따뜻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


수혁의 감겨 있던 눈이 급하게 뜨였다.

보이는 것은 신생아실의 천장.

너무 졸음이 쏟아져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이것은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같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수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려 애썼다. 하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근육이 아직 발달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천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신세.


‘여긴 또 어디냐······?’


머릿속에 해일이 밀려오는 것처럼 복잡해졌다.


‘뭔가 잘못됐다.’


드래곤 브레스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하루 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번엔 아기의 몸이라니?

그것도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다. 수혁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고 짜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실마리 하나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알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아기의 몸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냐······.’


잠이 깬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졸음이 무섭게 찾아왔다.


‘잠들면 안 된다!’


수혁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힘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눈꺼풀이 닫히는 틈새로 그의 눈에 형광등이 얼핏 보였다.


‘그런데 저건 어떤 마법일까?’


그렇게 수혁은 다시 잠에 빠져 버렸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수혁은 느껴지는 진동에 잠에서 깨어났다.


“수혁아, 엄마 오셨네?”


간호사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가족과 신생아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투명한 유리로 다가갔다.


수혁의 눈에 그녀가 담겼다.


20대 후반으로 작은 얼굴에 긴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따뜻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눈이었다.

사람의 눈빛이 저토록 따사로울 수 있을까?

옛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구걸을 못해 오면 험한 매질에 잠조차 제대로 청할 수 없던 나날들.


모두 자신에게 손찌검을 해 댔다.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고, 기절해 하루를 꼬박 깨어나지 못한 날이 수두룩했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냥 물건이었다.

먹을 것을 배달하고 구걸해 돈을 가져오는.

맹세코 저런 눈빛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요. 왜?


톡, 톡, 톡.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유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혁아, 잘 잤니? 엄마 알아보겠어?”


유리 반대편에서 작게 넘어오는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가 수혁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어?”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아기가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신생아들은 근육이 없어 잘 움직이지 못하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간호사가 아기를 더욱 창가로 가까이 데려간다.


“엄마를 알아보는가 봐요. 이러기 쉽지 않은데.”


정말로 그랬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아기들이 가족들을 알아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저 유리창 너머의 아빠, 엄마를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수혁의 행동에 간호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들어 올린 아기의 손이 덜덜 떨린다.

벌써 힘에 부치는 것이다.

그에 간호사가 손을 보태어 아이의 손을 들어 올려 주었다.

그렇게 유리창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의 손끝이 마주하게 됐다.

아기 엄마의 미소가 더욱 부드럽게 짙어졌다.


“그래. 엄마야, 수혁아.”


‘엄마···?’


무엇을 뜻하는 언어일까?

가슴을 뭉클거리게 만드는 시선으로 그녀는 엄마라는 말소리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


수혁이 그녀의 손가락을 잡으려는 듯 더욱 힘을 주어 유리창을 밀어 보았다.

하지만 아기의 힘에 비해 강철 같은 유리는 꿈쩍도 않는다.

그것은 아기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수유 더 해도 될까요?”

“이미 2시간 전에 모유를 수유하셔서 더 이상은 아이가 게워 낼 수 있어요.”


그랬다. 이미 2시간 전에 아이에게 젖을 물렸던 그녀였다. 하지만 수혁은 꿈에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쏟아지는 잠결에 본능적으로 젖을 빨았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말에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수혁은 온 집중을 다해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듯, 머리에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눈 하나 껌뻑이지 않았다.


“수혁아, 아빠가 바빠서 못 오셨어. 너무 섭섭해하면 안 돼?”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아들을 달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면회 시간이 꽤 흐른 터라 아기가 힘이 들 수도 있어 돌아가려는 것이다.


“우리 아들 이따 봐.”


한 번 더 자신의 아들을 두 눈에 꼭 담은 그녀가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어?”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품 안에 있던 아기가 세차게 버둥거렸다.


‘이거 놔!’


“응애!”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에 아기의 손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마치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듯 허망한 손길로 비쳐 보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법처럼 시선만으로도 온몸을 따뜻하게 물들게 했던 그녀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런데 이 망할 눈꺼풀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나 무거운지 천근같아 수마에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헷갈렸다.

수마와 씨름하며 그녀가 떠나지를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불이 꺼지는 것처럼 의식이 꺼졌다 켜졌다는 반복했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철칙이었다.

거지로 빌어먹고 살았을 때도 그랬고, 드래곤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정확히 그 예감이 빗나갔다.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품에 지금 자신이 안겨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아.”


꿈에서나마 간절히 원했던 가족,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존재.


그 엄마라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이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사라져 버렸던 것처럼 느껴졌던 흑마법 기운?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몸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우리 수혁이 졸리는구나?”


그녀의 말에 천천히 닫히고 있던 수혁의 눈꺼풀이 급하게 뜨였다.


‘잠들면 안 된다!’


망할 놈의 수마가 또다시 또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수혁은 눈을 더욱 부릅떴다.

엄마의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눈에서 놓치기 싫었다.


그런 수혁의 모습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잠드는가 싶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땡그랗게 뜬다.

눈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맑은 아이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까지 되는 것이 아닌가?


“수혁아?”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났다.

빨리 아들의 상태를 의사에게 보여야 했다.


“오늘 퇴원 수속 하시는 날이네요?”


때마침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우, 우리 아기가 이상해요!”


다급한 목소리에 간호사가 그녀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음··· 잠이 든 것 같은데요?”


의사의 의견도 비슷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순히 잠이 든 것뿐입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의사의 진단에 그녀는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퇴원 절차를 마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수혁을 품에 안은 그녀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돈을 생각하자면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뒷좌석에 올라탄 그녀가 혹시라도 무서울지 모르는 수혁을 달랬다.


“띠띠빵빵 자동차네?”


수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세상은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는 건물들은 숲을 이루었고, 쇳덩이들이 저절로 굴러다녔다.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들인가?’


안을 뜯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수혁은 택시 밖에서 보이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모조리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이제 자신이 지내야 할 세상이기에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 수가 없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것은 자신이 거지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자리를 점해야만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몇 푼이나마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명당을 차지할 수는 없었다.

다른 힘이 좋은 거지들이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수혁이 신기해요?”


말똥말똥한 눈으로 밖을 쳐다보는 수혁의 모습에 그녀가 미소를 그렸다.


수혁은 시선을 돌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정보를 모으는 것도 좋지만 언어를 우선적으로 익히는 것이 시급할 것 같았다. 아니, 한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어 내고 싶었다.


언제나 가능할 것 같았지만 막상 입을 떼 보면 말소리가 이상하게 흘러나왔다.


혹시 지금은 될까?

수혁은 앙증맞게 닫고 있었던 입술을 열었다.


엄마.

“응애.”

‘빌어먹을!’


옹알이 수준이다. 몸이 어서 크길 기다리는 수밖에.

수혁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미소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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