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포인트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정용(正龍)
작품등록일 :
2024.09.10 17:13
최근연재일 :
2024.09.13 20:2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11
추천수 :
26
글자수 :
33,978

작성
24.09.13 20:26
조회
65
추천
5
글자
17쪽

리셋의 시작.

DUMMY

미쳐 버릴 노릇이었다. 지금 자신이 정신을 잡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망할!”


또다시 리치를 만났던 시점으로 떨어진 것이다.

수혁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또다시 절벽에 몸을 던졌다.

그렇지만 또 한 번 죽어야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차도 살피며 조심하고 걷는데 공사판에서 떨어진 돌에 맞고 즉사해 버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드래곤에게 서른일곱 번이나 덤비고 죽던 자신이었다. 포기하긴 일렀다.

그렇게 죽고 다시 리치를 만났던 시점으로 돌아오기를 수십 번.


수업이 모두 끝난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앉아 있던 의자를 집어 들었다.


“야, 돈 좀······.”


“닥쳐!”


콰앙!


수혁이 휘드른 손에 강건우가 대자로 뻗어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후하······.”


속이 다 후련하다는 듯 깊은 숨을 내쉰 수혁은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또 유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가는 도중 멀쩡한 건물이 붕괴돼 수혁을 덮친 것이다.

그때 알 수 있었다.


2시 30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무슨 사고가 터졌다. 그리고 그 사고 중심에는 자신이 있고, 기어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수혁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두 세상을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그렇게 70번을 왔다 갔다 했을까?

멍하게 리치가 남긴 로브를 쳐다보던 수혁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동안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힘없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나한테 진짜 왜 이러냐···.”


누군가가 위에서 가지고 노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아빠,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온 손을 잡으시던 따듯한 손길도, 어서 일어나라고 눈을 뜨라고 절규하는 외침 소리도.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었다. 부모님의 억장을 무너트리는 경험을 몇 번이나 만드는 것일까?

과연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가?


더 이상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마지막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수혁은 다시 절벽을 찾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죽어 이 세상으로 넘어왔다.

넋 나간 사람처럼 눈앞의 로브를 쳐다보던 수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엄마, 그동안 괴롭혀서 죄송합니다. 부디 저를 잊고, 행복하게 잘 사십시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욕심이었다.


매일같이 자신이 죽고 부모님이 슬퍼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무한 반복적인 굴레에서 자신만 빠져 준다면 부모님은 나라는 존재를 서서히 잊고 다시 웃을 날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래, 그게 맞아.”


수혁은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효였다.

하늘을 보던 수혁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리치가 입고 있었던 로브가 보인다.


“그냥 나 여기서 산다, 이 개새끼야.”


그렇게 말한 수혁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도, 굶주린 늑대들이 주위를 배회할 때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솟아오르던 아침.


수혁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 * *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섬뜩한 칼이나 도끼, 각양각색의 무기를 몸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확실히 수혁이 그리워하고 있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혁은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가끔 더러운 거지라며 침을 뱉고 욕지거리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밥을 훔쳐 먹다 쫓겨 산속에서 리치를 만났으니 차림새는 확실히 거지가 맞았다.


수혁은 그 말들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들리지 않는 것인지 마냥 걸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한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어 보이는 2층으로 된 건물.

바로 거지들의 소굴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14년 동안 살았으니 말이다.

안의 풍경은 별게 없었다.


공사판의 건물처럼 골격만 잡고 시멘트만 발라 놓은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저분한 옷가지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는 점이었다.

거지들이 잘 때 덮는 것들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구걸을 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빠악!


난데없는 소리와 함께 수혁의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뒤에서 누군가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다.


“야, 밥그릇.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돈 좀 벌어 왔나 본데?”


산발을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누런 치아에서 악취가 풍겼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이 밥그릇이었다는 것을 잠시 깜박했었다.


“내놔 봐.”


그가 손바닥을 척 내밀었다.


“없어.”


짤막한 말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귀를 수혁의 입가에 가져갔다.


“밖에서 혀가 잘려 왔나, 말끝이 짧다? 아니면 내 귀가 먹은 거야? 어? 다시 말해 봐, 뭐라고?”


“없다고.”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돼지 밥을 훔쳐 먹다 뇌에 기생충이라도 기어 들어갔나······.”


그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푸닥거리할 때 됐지? 요즘 덜 맞았더니 아주 몸이 근질근질하지, 어?”


번쩍 올려진 그의 손이 수혁의 뺨으로 떨어졌다. 아니 수혁의 손이 한발 더 빨랐다.

그의 손을 낚아챈 것이다.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운 사내가 눈에 불을 켰다.


“이 새끼 봐라······. 놔! 안 놔?”


수혁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만히 사내를 쳐다보았다. 구걸을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이놈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몰랐다. 기절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새끼가!”


그가 다른 손을 들어 수혁의 뺨을 내리 칠 때였다.

그 순간, 사내는 수혁이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 등으로 전해지는 숨이 턱 막히는 고통.

수혁이 파리 쫓듯이 사내를 내던진 것이었다.


흑마법은 다양하게 이용이 가능했다.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힘도 몇 배나 증가시킬 수 있었다.

수혁은 지금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이 새끼가···.”


그가 허리를 짚고 일어났다.

그리 심하게 손을 쓴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일어설 수 있었다.

놀랍다는 그의 얼굴도 아주 잠시였다.

분노의 악을 쓴 사내가 다시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또다시 기둥에 처박히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수년 동안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얻어맞던 밥그릇이었다.


그동안 장사 같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기엔 너무 어리다.

밥그릇이 열여섯 살이었던가? 열일곱?

자세히는 모른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거지들이 수두룩하다.


사내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을 때, 수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드래곤에게 덤빌 때보다 힘이 덜했다.

리치를 만났던 순간, 딱 그 힘만이 느껴졌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밥그릇이 미쳤다!”


사내의 앓는 소리에 수혁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2층에서 거지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옷은 추레했지만 몸은 건장했다. 다른 거지들에 비해 충분히 잘 먹은 탓이었다.

이렇게 2층에 사는 거지들은 1층에 사는 거지들에게 구걸과 적선을 강요해 독식했다.


말만 공동체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2층에 사는 놈들에게 귀가 따갑게 듣던 소리였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구걸하다가 몰매를 맞아 뒈지거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잘못 주어먹고 죽어 나가는 건 1층이었다.

놈들은 그냥 적선해 온 돈과 음식을 빼앗고 먹는 것밖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도망?


그럴 수 없었다.

잡히면 모두의 앞에서 맞아 죽는다.

몇 번 있었던 그 본보기에, 겁을 집어먹고 누구도 이 소굴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허리를 짚고 있는 사내에게 거지들이 무슨 일이냐며 몰려왔다.


수혁은 밖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이곳에 찾아온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니, 아무 생각 없이 걷고 걷다 보니 이곳이었다.


무엇을 원했던가?


같이 얻어맞으며 땅바닥을 정신없이 굴러다녔던 정? 반겨 줄 사람? 그딴 건 하나도 없었다.

다시는 이곳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수혁이 건물을 막 빠져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저 새끼 도망간다. 날 집어 던졌다고!”

“밥그릇이?”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저 새끼 잡아!”


그 말을 끝으로 거지들이 갖은 욕설을 뱉으며 수혁에게 달려갔다.


“그래, 그래야지.”


혼잣말로 중얼거린 수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달려오고 있는 거지들은 총 일곱.

전이었다면 벌벌 떨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혁이 한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동시에 전신에서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그 순간.


안개는 눈 깜빡할 사이에 수혁의 손으로 모여들어 일곱의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거지들이 화들짝 놀라며 움찔거렸다.

하지만 늦은 후였다.

수혁이 만들어 낸 검은 구체는 그들에게 쏟아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펑! 펑! 펑!


총 일곱 번의 폭발음이 건물에 울려 퍼졌다.


숯 검둥이가 된 거지들은 딱딱하게 서서 눈만 껌벅껌벅했다.

고통은 뒤늦게 찾아왔다.


“아아아악! 뜨거!”


“으악! 거지 살려!”


용암을 뒤집어쓰면 이러한 고통이 찾아올까?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몸에 붙지도 않은 불을 끄려 바닥을 구르는 거지도 있었고, 이리저리 날뛰며 돌아다니는 놈들도 있었다.


수혁이 독하게 손을 썼다면 그들은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잿가루가 되어버렸을 것이었다.


애초에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사람을 한 번도 죽여 본적 없는 수혁으로서는 무의식적인 판단이었다.


수혁은 짤막하게 말을 뱉었다.


“꺼져.”

“으아아악!”


그들은 귀신에게라도 홀린 것처럼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 번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수혁이 2층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내가 뭘 그리 잘 못했기에 그렇게 나를 괴롭혔을까.

분노가 치솟자 생각이 바뀐다.


“형아······.”


뒤에서 들려오는 미성의 목소리에 수혁이 몸을 돌렸다. 구걸을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와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들은 손에 뭔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그 종류가 다양했다.


감자, 고구마, 흙먼지가 들러붙은 만두, 가지가지였다.

수혁이 슬쩍 웃어 보였다.


“배고프지? 들고 서 있지 말고 어서 먹어.”

“안 돼···. 혼나.”


한 아이의 말에 수혁이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음식도 마음대로 먹지를 못한다.


구걸해서 얻은 것들은 먼저 2층의 놈들에게 보여야 했으니까.

그전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수혁 또한 그랬었다.

음식이나 얻어 온 물건이 내 입속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공동체란 말도 안 되는 것에 의해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지는 모두 놈들에게 달려 있었다.


“괜찮아, 이제 먹어도 돼.”


재차 부드럽게 말해 보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천천히 흔든다.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을 떠올린 동작이었다.


2층에 있는 그 자식.

놈의 지휘하에 모두가 움직인다.


이 거지 소굴의 왕초, 그 개자식 때문에 아이들이 굶주린 배를 잡고도 먹지를 못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수혁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계단을 밟아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왕초,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붉은 태사의에 앉아 있었는데, 닦고 광을 내 충분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의자는 넉넉했지만 그의 살을 모두 다 받쳐주진 못했다.

그는 비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척 보아도 200Kg은 거뜬하게 넘어 보였다.


알 수 없는 짐승의 가죽을 몸에 걸친 그의 뱃살은, 옷을 비집고 나와 몇 겹이나 겹쳐 있었다.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눈두덩마저 살이 쪄 작은 뱁새눈을 한 그가, 수혁을 보며 삶은 닭 한 마리를 입에 가져갔다.

그 장면 또한 어디서 쉽게 보지 못할 묘기 수준이었다.

통째로 그의 입으로 들어갔던 닭은 순식간에 뼈만 남긴 채로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그가 입을 몇 번 우물거리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수혁에게 물었다.


“뭐냐? 아래 시끄러운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냐?”

“있고말고. 도망쳤다.”


“도망을 쳐? 누가?”


“네놈의 2층 부하 놈들.”


수혁의 말에 그가 걸쭉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그의 지방들이 뒤흔들렸다.


“껄껄껄! 네놈이 오늘 뭘 잘못 주워 먹었구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까지 놈을 본 적은 횟수로 두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간단한 심부름을 하면서 잠깐 본 것이다.


과연 제대로 설 수나 있을까?

그때의 의혹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키도 2미터가 넘었다.


뱁새 눈을 한 그가 수혁을 직시했다.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렸다간 네놈은 죽는다. 다시 묻는다. 무슨 일이냐?”

“죽어도 사는 몸이니 꽤 골치 아플걸.”

“그래도 이놈이 끝까지 말장난을!”


그의 솥뚜껑 같은 손이 휘둘러졌다.

손바닥의 면적이 얼마나 크고 빨랐던지 바람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덩치를 생각하자면 놀라운 움직임이다.

더해 체구에 실린 힘까지 생각해 본다면 두개골을 부숴 버리고도 남았다.


수혁은 가만히 날아오는 손을 쳐다보았다. 아니 늘어트린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동시에 날아오는 그의 손바닥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둘의 동작은 그야말로 아주 찰나에 일어났다.


수혁의 주먹과 그의 손바닥이 닿았을 때였다.


퍼엉!


폭발음이 들리며 핏물이 허공으로 튀었다.


“크아아악!”


왕초는 비명을 지르며 휘둘렀던 자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이 완전히 터져 나가 살점이 너덜너덜했다.

수혁이 주먹 끝으로 응축된 기운을 터트린 것이다.

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는 그에게 수혁이 입을 열었다.


“해 먹을 만큼 해 먹었으니 이제 그만 꺼져라.”


도대체 얼마나 처먹어야 몸을 저리 불릴 수가 있을까?

얻어터지고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겨, 구걸해 온 것들이 놈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버렸다.


“이노오오옴!”


왕초의 눈에서 새빨간 실핏줄이 돋아났다.

손에서 느껴지던 고통도 분노가 잠재워 버렸다.

감히 벌레만도 못한 놈이 하극상을 벌이다니, 죽어 마땅했다.


이성이 사라지고 살심으로 번득이는 눈을 한 그가 지면을 박찼다.


쿠웅!


입이 떡 벌이지는 광경이었다.

황소만 한 체구의 그가 허공으로 몸을 날린 것은,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수혁에게 떨어져 내리는 그가 대자로 몸을 펼쳤다.

자신의 체중으로 수혁을 깔아뭉갤 심산이었다.


피식 웃으며 그를 올려다 본 수혁이 중얼거렸다.


“몸뚱이는 3D인데 생각은 1차원적이구나.”


왕초의 그림자가 이내 수혁을 덮쳤다.


콰앙!


바닥에 실금이 쩌적 하고 갈라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떠올랐다.


“큭큭큭.”


바닥에 배를 깐 왕초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배에 지방이 많이 낀 탓에 느낌은 없었지만, 분명 놈은 피떡이 되어 저승 구경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빌어먹을 놈.”


상황이 종결되자 그제야 터진 손에 통증이 찾아왔다. 폭약이라도 숨겨 왔던 것일까?

폭음과 함께 손이 터져 나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바닥을 보며 누워 있던 그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때, 목에 가벼운 느낌이 전해졌다.


“내가 그동안 너에게 바쳤던 것들, 이제 돌려받아야겠다.”


수혁의 말소리에 왕초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배 아래 깔려 있어야 할 놈이 자신의 목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곧장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등짝에 바위를 올려놓은 것만 같았다.

바닥에서 살을 꿈틀거리고 있는 그를 쳐다보던 수혁은 발에 흑마력을 집중시켰다.


동시에 믿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었다.


왕초의 살덩이들이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후에는 머리털까지 빠지기 시작했다.


그가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변해 버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나고 볼은 홀쭉해졌다.

기름기 번들거리던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치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처럼 바뀌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그의 생기를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리셋 포인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리셋의 시작. +2 24.09.13 66 5 17쪽
5 리셋의 시작. +1 24.09.12 66 2 11쪽
4 리셋의 시작. +1 24.09.11 75 6 11쪽
3 가족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가? 24.09.10 80 3 10쪽
2 가족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가? 24.09.10 87 4 13쪽
1 시작. +1 24.09.10 138 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