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헌터전문 한방병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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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민
작품등록일 :
2024.09.1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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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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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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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낡아빠진 고물 자전거는 노인네의 기침소리마냥 꺽꺽대는 신음을 연신 토해 냈다.


유통기한이 몇 시간 안 남아서 1+1로 구입한 편의점 도시락을 챙겨든 채,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은 낡은 자전거를 끌고 8차선의 텅 빈 도로를 계속 달렸다.


거리를 따라 좌우에 쭉 늘어선 빌딩은 대부분 파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거나, 멀쩡해 보여도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은 것이 유령 도시를 연상시켰다.


부-웅!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오르느라, 낑낑대며 페달을 밟는 동안 헌터를 가득 실은 육중한 장갑수송차가 먼지를 풀풀 휘날리며 지나쳤다.


콜록-!


피할 틈도 없이 폐부 깊숙이 먼지를 집어삼켰다.


‘망할 새끼들,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달려야 할 것 아냐?’


빠르게 멀어지는 장갑수송차 앞쪽에는 꽈배기처럼 칭칭 꼬여 있는 무지개색의 거대한 고리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폭이 2미터, 둘레가 자그마치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빛의 고리.


바로 게이트였다.


‘참나, 하필이면 저딴 게 여기에 생겨나서.’


허공에 둥둥 떠서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일곱 빛깔 고리를 한동안 노려보다 페달을 다시 밟았다.


얼마 후, 다시 멈춰선 곳은 16층 건물 앞이었다.


건물의 벽면에는 명성한방병원이라는 거대한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 망한 마당에 한방병원은 무슨.’


대충 자전거를 세우고 4개의 우람한 기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현관을 통과해서 한방병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과거에는 로비였을 넓은 공간에는 파티션으로 대충 구분된 진료실, 침구실, 물리치료실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환자가 올까?’


흰색 가운을 걸치고는 진료실의 책상에 앉아서 중고 컴퓨터를 켰다.


지난 엿새간의 경험에 의하면 한의원을 찾는 환자의 숫자는 일일 0명이었다.


심지어 환자는 고사하고 병원을 찾는 외부인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늘부로 돈은 다 떨어졌고,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계속 사 먹으려면 환자가 한 명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나저나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원래 나는 아틸라스 대륙에서 주신이자 태양신을 받드는 주논 교단의 대주교로,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대륙 북부의 성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순탄했던 여정은 주민이 떼죽음을 맞이한 산속 화전마을과 마주하면서 뒤죽박죽 엉켜 버렸다.


‘돌림병이었을까?’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마을을 수색하다가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지구라는 낯선 세상에서 한의사 이수호의 몸으로 깨어났다.


바닥의 끊어진 노끈을 보아 하니 원래의 이수호는 자살을 시도한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영혼이 그의 몸뚱이를 차지한 듯싶었다.


덕분에 존재 자체를 몰랐던 낯선 세상임에도 언어와 사회의 질서 및 한의학 지식을 비롯해서 지구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지구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는데 30여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많은 것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한때는 한방병원으로 수많은 환자가 찾았던 이곳도 어느 날 갑자기 인근에 4급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지금처럼 파리만 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자살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


침술 명의로 명성을 날렸던 이수호의 아버지는 전 재산을 쏟아부은 것으로도 부족해서 95억 원을 대출받아 초대형 한방병원을 개원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게이트가 생겨났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에 의해서 비명횡사했다.


그 이후의 이수호의 삶은 상상하는 그대로였다.


95억의 거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되레 불어만 났고,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사채에도 손을 벌린 상태였다.


부원장의 자격으로 대출 보증을 섰기에 빠져나갈 방법이 딱히 없기도 했지만,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머뭇거렸다가 빚잔치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을 알고 의술이 발달한 이런 세상을 골라서 이수호로 환생시켜줬을까?’


아틸라스 대륙의 가난한 소작농의 큰아들로 태어난 나는 다섯 살에 부모님과 두 동생을 병으로 잃었다.


가족들이 죽어 갈 때, 너무 어렸던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주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을 뿐이었다.


그때 어느 순간 온몸에서 밝은 빛이 분출되었다.


빛의 정체는 신성력이었고, 때마침 마을을 방문했던 피터슨 추기경이 그걸 목격했다.


피터슨 추기경과의 만남은 내 운명을 결정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를 따라서 주논 교단에 투신했다.


교단의 인사들은 기대어린 시선으로 날 주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재능은 신성력과 신성마법만이 아니었다.


‘성기사의 길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단언하는데 사제가 아닌 성기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대륙 최연소 마스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동생들을 무력하게 떠나보냈던 아픔 때문에도 사람들을 치료하고 살리는 치료계열 신성마법에만 매달렸다.


‘세상에 이런 의술이 존재했었다니.’


그런 나에게 이곳의 한의학을 알게 되면서 느낀 첫 감정은 감탄과 경악이었다.


그야말로 한의술은 온갖 병을 고칠 수 있어서, 신성마법을 제외한다면 철저히 약초의 효능에만 의지하는 아틸라스 대륙의 의술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사제들의 신성마법이 한의학을 능가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신성마법은 그 대단한 능력에 비해서 한계가 뚜렷했다.


단적으로 신성마법은 신성력을 품고 있는 극히 일부의 사제만 펼칠 수 있었다.


내가 역대 최연소 기록을 경신하면서 주교와 대주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알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기사의 검술과 수도승의 전투술을 배운 게 천만다행이네.’


한의학을 알게 되면서 경악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놀랍게도 한의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십사경맥과 기경팔맥에 십이경별과 십이경근을 비롯해서 낙맥까지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했다.


명칭만 다를 뿐, 그것들은 대륙에서 마력로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총 365개나 되는 경혈도 이미 알고 있었다.


혈 자리라고 불리는 그것들은 마력로드의 로드 포인트와 완벽하게 일치했고, 한의학은 그런 혈 자리에 침과 뜸을 놓는 방법으로 병을 치유하고 있었다.


즉 마력로드와 로드 포인트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고, 그 흐름에 몹시 민감한 나는 정확한 자침과 안성맞춤의 보사가 가능했다.


‘거기에 신성력까지 결합시키면 엄청나겠지.’


차원의 벽을 넘는 과정에서 대부분을 상실한 건지, 과거의 1%에 불과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성력을 품고 있었다.


‘홀리하트가 없어서 신성마법을 못 쓰는 것은 안타깝지만 침술과 신성력을 결합시키면 기적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시라도 빨리 신성력을 곁들인 침술을 사용해 보고 싶었다.


주논께서 내게 두 번째 삶을 허락한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은데 좀처럼 환자가 안 오니 답답했다.


‘오늘도 환자가 안 올까?’


답답한 마음에 바깥을 기웃거리는 사이 두 대의 차가 문 앞에 멈추는가 싶더니 일곱 명의 사내가 내렸다.


병원의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게 환자가 분명해 보였다.


드디어 개시였다.



***



차에서 내린 사내들은 곧장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환자가 단체로 왔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미소를 짓는데 병원에 들어선 사내들의 표정과 행동이 이상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들은 날 불구대천의 원수 보듯 대했다.


‘왜 그러지?’


“아이고-! 한의사 선생, 우리 돈 떼어먹고 어디로 튀었나 했더니 이런 곳에 숨어 계셨어?”


“고객님, 이런 곳에 있으면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어?”


“아!”


어째 몇몇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더니 이들은 내게, 아니 이수호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들이었다.


“아이쿠! 고객님, 놀라셨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아휴-! 또 변명부터 하네. 내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무조건 돈부터 내밀라고 했죠? 만약 나중에도 변명부터 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죠?”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슈트를 빼입은 탄탄한 체구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헤어 젤을 발라서 스포츠형 머리를 송곳처럼 뻣뻣하게 세운 30대 중반의 그는 대부업체인 태강캐피털의 김태식 부장으로 전직 복서출신의 C급 헌터이자 이들의 우두머리였다.


“오해가 있는데 제가 도망친 게 아니에요.”


“또, 또!”


“아니 진짜로······”


“쯧쯧,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것이 우리가 너무 신사적이었나 봐? 하긴, 그러니까 야반도주를 하셨겠죠?”


“그건 미안합니다.”


“한의사 선생,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의외로 깡이 좋네.”


내가 빌린 돈은 아니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들의 행패를 감내할 수는 없었다.


“한의사 선생, 괜히 내 성질 건들지 말고 좋게 말로 할 때 후딱 뛰어옵시다.”


“당장은 어렵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갚을게요.”


“저번에도 말은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그래 놓고 또 어디로 도망가려고?”


“절대 도망 안 갑니다. 제 명예를 걸고 약속하죠.”


“명예? X까는 소리하고 있네, 그런 사람이 돈이 있어도 한 푼을 안 갚아?”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병원 그만둘 때,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꽤나 두둑하게 챙겼다던데?”


“형님, 한의사 월급을 생각하면 최소 몇천은 받았을 겁니다.”


“아니에요. 퇴직금은 받았지만 그건 카드사에서 송두리째 인출해 간 통에 만져보지도 못했고, 위로금 같은 것은 아예 받지도 않았어요.”


“얼레, 오리발을 내밀어?”


“거짓말이 아닙니다.”


“선생, 믿을 만한 정보통이 알려 준 거니까 거짓말 그만해.”


“천만에요. 오해예요. 정 못미더우면 급여통장을 보여 드릴게요.”


“됐고,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각서부터 쓰자고.”


내가 있는 그대로를 얘기해도 당최 말이 안 통했다.


“각서라뇨?”


“우리가 다 써왔으니까, 선생은 여기에 지장만 찍어.”


“싫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요? 서로 험한 꼴 보지 말고 그만하시죠.”


“우리도 이렇게까지 막나가지는 않은데 선생이 먼저 신뢰를 어겼잖아?”


김 부장이 얘기를 하다 말고 내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전직 프로복서이자 근접계열 C급 헌터인 그는 꽤나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였지만 검술과 전투술로 단련된 내게는 엉성해만 보여서 몇 번이고 여유 있게 피해 냈다.


그게 쪽팔렸는지 얼굴이 시뻘게진 김부장은 악을 바락바락 지르며 맹렬히 돌진하다가 별안간 픽 쓰러졌다.


갑작스레 바닥에 널브러진 그는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끌려 나온 생선마냥 계속 펄떡거렸다.


‘뭐지, 설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덩치들이 부랴부랴 김 부장 주위로 모여들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형님, 눈떠보십시오.”


“막내야, 형님이 왜 이러는 거냐?”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저건, 전간 발작 같은데?’


흡수한 한의학 지식에 지금의 증세와 관련된 정보가 많이 있었다.


온몸을 수시로 펄떡거리면서 오른팔을 심하게 부들부들 떠는 게 흔히 간질로 부르는, 전간에 의한 대발작 증세로 상태가 심한 것이 응급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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