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딛고 재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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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달
그림/삽화
푸달
작품등록일 :
2024.09.12 11:37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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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5
추천수 :
492
글자수 :
97,365

작성
24.09.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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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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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글자
6쪽

001 : 프롤로그

DUMMY

“빌어먹을...”

단골 바의 육중한 문을 힘주어 여노라니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이곳에 올 땐 늘 들뜬 기분이었는데.

승진 턱을 내면서도 남의 일 같다가 이 바에서 혼자 한잔할 때야 겨우 실감이 났었다.

바닥에서 긁어모은 주식이 상한가를 쳤을 때도, 동창놈에게 들은 정보로 일찌감치 매입한 비트코인으로 꽤 벌었을 때도 어디다 자랑하기보단 이 바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였었지.


그렇듯 늘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에 함께했던 곳인데 이런 기운 빠지는 일로 찾게 될 줄이야.

퇴근 직전 감 전무의 해고 소식과 함께 내게도 대기발령이 떨어졌다.

퇴근 직전에 이따위 발표를 하다니... 정말 끝까지 직원들을 빨아먹는군.


굳은 표정으로 바에 들어서자, 얼굴이 눈에 익은 바텐더가 희미한 웃음으로 아는 체를 하곤 재떨이를 내밀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는 내 모습에 바텐더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단골 대접인 건가.

마침 다른 손님이 없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늘 먹던 걸로 한잔.”

“예, 손님.”

얼마만의 실내 흡연인가.

담배 한 대에 양주 한 잔이 어우러지니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업체에 취직했다고 좋아하기 무섭게, 일복이 터졌었다.

감 전무가 상품기획 팀장이던 시절, 중국은 정말 대박 시장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말이 없었다.

화장품, 치약 같은 일상 생활용품부터 초대형 플랜트 자재까지 미친 듯이 팔려나가 매출 실적은 언제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물론 내가 과장에 진급하자마자 사드 사태로 매출이 나락까지 떨어졌지만, 그마저도 시장 다변화로 나름 대비를 해온 터였다.

그 와중에 매출 하락의 불똥이 중국 담당자인 내게 떨어질 걸 염려해, 1년에 딱 하나 나오는 TO를 잽싸게 낚아채 버클리대 MBA까지 보내준 감 전무였다.

덕분에 화공과 출신이었던 내가 경영학 박사들과도 학벌에서 밀리지 않았고 말이다.


나름 능력도 있고 공도 혼자 독식하지 않는 데다 방계긴 하나 로열패밀리인 감 전무의 줄을 타고 나도 승승장구했었지.

다만 그런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어물쩍대다 결국 대어를 놓치는 게 그 양반의 한계였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대기 발령이라...

곧 그룹 내 재배치가 있을 거고 감 전무의 오른팔이라고 소문난 나는 끈 떨어진 연처럼 여지없이 한직으로 밀려나리라.


‘미안해, 자네 덕분에 임원까지 꿰찬 놈이 자네 하나 임원 못 만들고 이렇게 떠나게 돼서 말이야.’

‘뭘요, 전무님 덕분에 회삿돈으로 미국 MBA도 다녀오고 최연소 부장까지 달았으면 됐죠.’

마지막으로 감 전무와 나눈 인사가 떠올랐다.

가진 것 많은 감 전무는 끝까지 사람 좋은 역을 했고 나 또한 내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하면서도 내가 가진 주식이니 코인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필요는 없지.


자기 후임으로 날 상품기획팀장까지 올려준 양반이라 해도 말이다.

덕분에 회사 생활은 신나게 해봤으니, 후회는 없다.


됐다, 그만 생각하자.

내가 뭔 짓을 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고릴라 같은 놈의 멍청함 앞에서 뭐가 소용이 있었으랴.

감 전무의 해고와 함께 대기발령이 떨어진 건 감 전무가 파벌 싸움에서 밀린 것도 있지만 내가 최근 애완동물 통조림 사료와 간식 사업을 말아먹은 탓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회장이랍시고 자기 캐리커처를 떡하니 박아 넣은 고릴라 놈 때문이 아닌가.

절대 SG 그룹 제품인 걸 고객들이 알아선 안 된다는 게 마케팅의 핵심이었는데 말이다.


회장 놈이 자신이 대한민국 밉상 1순위인 걸 모른다는 게 우리 그룹의 가장 큰 리스크였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놈에게 히든 마케팅이 먹힐 리가 없지.

그걸 계산 못 한 게 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나.


그리 보면 떠날 때가 된 거다.

그룹에서 대기 발령자가 가는 길이야 뻔하지.

수출 담당도 아니고, 매출 안 나오는 지방 할인점을 맡아서 몇 년 욕받이 하다 잘리기밖에 더 하겠나.

사표 던질 날이 언제 오나 싶었는데, 좀 빠른 것뿐.


20년 가까운 회사 생활에서 남은 건 ‘미국 대공황이 동아시아 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다소 올드한 논문으로 따낸 MBA 학위와 월급쟁이가 모았다기에는 다소 많은 금액의 저축뿐.


그래, 이게 어디냐.

이마저도 아무도 믿지 않고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내 실속을 차린 덕분이지.


“잘했다. 안태수. 한국에서 고아로 태어나 이 정도면 잘한 거야.”

나는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과연 그런가.

가족도 안 만들고 일만 한 댓가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그 회장 놈의 멍청함을 내가 뒤집어쓰는 게 맞는 건가.

애써 눌러놓은 울분이 다시금 삐져나오려 했다.

그만 마셔야 할 때다.

마지막 잔을 입에 털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좆 빠지게 일해봐야 결국 이렇군...’

나는 다를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우습다.

결국 나 같은 놈은 피 빨려서 버려지는 소모품인데 말이다.

친구 놈들 말대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오퍼상이라도 해볼걸...

남 좋은 일만 해주다가 청춘이 다 갔네.

대리운전이나 불러야겠다.

그전에 화장실부터 다녀와야....


어, 이렇게 취할 정도로 마시진...

갑자기 온 세상이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쿵!


작가의말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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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 본 어게인 (1) +3 24.09.16 542 25 13쪽
8 008 : 시드머니 (4) +4 24.09.15 621 32 15쪽
7 007 : 시드머니 (3) +2 24.09.15 580 25 12쪽
6 006 : 시드머니 (2) +5 24.09.14 693 32 14쪽
5 005 : 시드머니 (1) +4 24.09.14 647 31 17쪽
4 004 : 첫 출근 (2) +3 24.09.13 694 38 16쪽
3 003 : 첫 출근 (1) +3 24.09.13 738 39 15쪽
2 002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6 24.09.12 807 40 15쪽
» 001 : 프롤로그 +12 24.09.12 867 4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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