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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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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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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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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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DUMMY

제자.

나는 제자가 많았다.

협회 고문과 아카데미 교관을 겸임한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고문은 말이 고문이지 사실상 땡보직이었다.

하는 일은 별로 없고 돈은 많이 받아가는 그런 꿈의 직장.

그래서 사무실에서 계속 놀고 있자니 좀이 쑤신 내게 김선혁이 악마 같은 목소리로 유혹했다.


[공대장님.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이군요.]

[이럴 거면 은퇴시키지 애매하게 이런 땡보직 줘서 날 굴리는 이유가 뭐냐?]

[할일 없으면 후학 양성이나 해보시겠습니까? 고문이랑 겸임 가능합니다.]

[후학 양성?]

[아카데미 교관입니다. 어떻습니까? 일도 편하고 공대장님이 가르친 헌터 제자들이 나중에 끈끈한 인맥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은퇴 이후에 꿀 잘 빨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선혁의 말은 언제나 그럴싸했다.

그래서 나는 알면서 또 속고 말았다.

그렇게 맡은 헌터 아카데미 교관 일은 아주 빡치는 일이었다.

일이 편하기는 개뿔 혈기왕성한 젊은 각성자들은 허구헌날 사고나 쳐대고 아주 이런 복마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몇 년 안 하고 그만뒀다.

그래도 제자는 많이 길렀다. 은퇴 직전까지 연락하던 녀석들도 제법 됐다.

하지만 그중 무협으로 따지면 내 직전제자라고 할 만한, 내게 일대일 개인 교습을 받은 사람은 둘뿐이었다.


“······당신입니까?”


왼쪽 눈을 가린 비대칭 앞머리 은발이 인상적인 차가운 인상의 늘씬한 20대 미녀.

정장 차림의 그녀는 등에 헌터용 라이플을 메고 있었다.

내 양대 무장인 총과 칼 중에서 사격술 쪽을 이어받은 첫번째 제자.

성루아였다.


“선생님과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내 산하로 처음 들어올 때 그녀의 신분은 신정그룹 회장의 서녀.

사생아였다.

신정그룹에서 골칫덩이 사생아인데다 각성자여서 그룹 내부 위치가 애매해진 그녀를 내게 맡기면서 인맥을 구축하려 들었다. 대신 내 은퇴를 도와준다고 했으니.

윈-윈인 거래였다.

그런데 내게서 독립한 그녀는 뛰어난 헌터로 성장하더니 어느새 신정그룹을 전부 집어삼키고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눈앞의 그녀가 국내 수위를 다투는 재벌그룹의 총수라는 뜻이었다.


“······선배. 그렇지만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리 봐도 그 사람이랑은 전혀 안 닮았잖아요! 사부님이랑만 닮았는데! 쌍둥이 같은데! 그렇죠? 그렇죠?”


옆에서 푸른 머리에 발랄한 미모가 인상적인 20대 미녀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정신 사납게 왔다갔다 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등에는 대검이 매여져 있었다.

그녀는 내 두 번째 제자.

헌터 아카데미 수석 입학, 수석 졸업.

김선혁 공인 본인을 뛰어넘는 재능을 지닌 역대급 천재.

나와 김선혁이 부재해도 세계를 홀로 수호할 수 있는 헌터계의 차기 영웅.

게이트 고아 출신이면서 밝다 못해 조증이 의심되는 성격을 지닌 그녀.

이하나는 내 총칼 중에서 칼을 물려받은 두 번째 제자였다.


“이하나 헌터. 정신 사나우니 그만 좀 돌아다니세요.”

“으앗 선배!”


이하나를 붙잡는 성루아.

그래.

이 두 명이 찾아오리라 예상했다.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이 둘은 김선혁, 류사라 다음으로 나와 가까운 애들이었으니까.

이럴 때는 역시 김선혁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얘는 또 어디 갔어?’


김선혁은 없었다.

내 기감을 속이고 사라진 모양.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수습하는 수밖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버지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두 분 모두 아버지께서 아끼던 제자분들이라고 들었어요.”


일단 모른척하기로 했다.

김선혁과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김선혁이 얘네 둘에게도 딱히 안 알려준 걸 보니 나도 숨기는 게 맞다.

그렇게 판단했다.

그가 저 둘에게도 내 신분을 숨긴 이유가 있겠지.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이 있다면, 거기 일단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아, 아끼던 제자! 맞아요! 저, 사부님이 엄청 아낀 제자였어요!”


붕붕붕.

역시나 정신 사납게 왔다갔다하는 이하나.

얘는 내 밑에서 배울 때도 그렇고 왜 저렇게 방방 뛰는지 모르겠다.

탁.

하나의 몸이 멈췄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아드님이 사부님이죠? 그렇죠?”


평소처럼 웃고 있는 하나.

하지만 그 눈동자는 한없이 진지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정확하게 정답을 찍다니.

무서운 아이로군.

내가 뭐라하려던 순간.


“잠깐. 이하나 헌터. 근거 없이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면 안 됩니다. 제가 말하죠.”


성루아가 하나를 제지했다.

앞머리에 가려져 하나뿐인 붉은 눈빛이 반짝였다.


“선생님과 저는 정말 막역한 사이였어요. 저는 선생님에 대해서는 뭐든 다 알고 있어요.”


성루아가 나를 바라보면서 그녀 특유의 나긋나긋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세간에는 그 사람이랑 선생님이랑 서로 연인이었다는 루머가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죠. 하지만 저는 알아요. 두 사람의 사이는 그냥 동료 사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요. 전부 조사했거든요.”


성루아가 말했다.

그녀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평상을 툭툭 두드렸다.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람’이란 류사라를 말하는 것일 터.

그녀의 말이 맞다.

사라랑 나는 그냥 동료 사이였다. 그냥.

서로 목숨을 맡길 정도로 의리가 두터웠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 순간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군.


“······아니에요. 아버지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돌겠군.

내가 내 입으로 사라를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게 될 줄이야.

미안하다. 사라야.

어쩔 수 없었다.


“어, 방금 표정! 선배도 봤어요?”

“······멈칫했군요. 마치 오랜 추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표정······. 그 사람과는 닮은 구석 하나도 없는 얼굴······.”

“그건 갑자기 사적인 이야기를 물으시니 당황해서······.”


아니.

내가 머뭇거린 구간은 1초도 안 될 텐데 그걸 캐치했다고?

성루아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들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안면몰수하고 말했다.


“아닌 거 맞는 거 같은데! 사부. 아무리 바보인 저라도 눈치 정도는 챌 수 있다고요!”


옆에서 이하나가 끼어들었다.


“헌터계에 보고된 적 없는 디버프인가요? 아니면 다른 모종의 수단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복제인간?”


성루아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다시 젊어진 거죠. 선생님?”

“그러니까······.”

“우선 저는 선생님에 대한 기록을 전부 찾아서 모조리 외우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선생님과 그 사람이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는 증거도 기록도 전부 없어요. 거기에······. 아까 멈칫한 데다 결정적으로 지금 귓불 만지셨죠?”


뜨끔.

나는 손을 귓불에서 떼어냈다.


“다른 손으로는 평상도 살짝 두들기고 계시고······. 선생님이 긴장하거나 거짓말했을 때 나오던 버릇이네요. 전부.”

“역시 선배는 대단해! 내가 생각만 하는 걸 전부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

“좀 조용히 하시죠. 이하나 헌터.”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이하나를 입 닫게 만든 성루아가 말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너무 똑같잖아요. 선생님 20대 시절 사진이랑.”


그녀가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슥슥 터치하더니 내게 보여줬다.

거기 안에 있는 건······.

나도 휴대폰 용량이 없어서 지워버린, 게이트가 열리기 전 한창 회귀 코인 재벌을 꿈꾸던 20대의 내 사진이었다.


“······젊어진 본인인가요? 아니면 복제인간······? 복제인간이라면 지금 당장 협회장······.”


복제인간 같은 헛소리는 어디서 주워 들은 거지?

오해가 더 불거지기 전에 인정해야겠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니 이런 나도 잃어버린 사진 같은 건 어디서 찾은 거냐? 루아. 너 나 스토킹하냐?”

“역시 선생님이셨군요. 글쎄요. 비밀이에요.”


성루아가 작게 웃었다.

아니.

솔직히 사진 나올 때 진심으로 소름 돋았다.

얘가 나를 과하게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사람이니까 알고 있었다.

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내 제자지만 가끔 무섭다.


“저는 사실 처음부터 선생님인거 알아봤어요. 선생님 아래에서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5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녀가 성인이 된 뒤에 바로 독립시켰다.


“제가! 제가 선배보다 먼저! 사부님 본 순간부터! 사부님인거 알아봤어요! 그렇지만 뭔가 어떤 점이 사부님 같다고 선배처럼 근거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해서, 그래서······. 역시 선배는 대단해요!”


옆에서 이하나가 손을 번쩍 들다가 뺨을 긁으면서 웃었다.

하.

그래.

저렇게 순수하게 웃는 모습.

성루아를 보다 보니 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반면에 대단하다는 칭찬을 들은 성루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하나 잘했다.”

“좋아요!”

“······하나만 칭찬하는 건가요?”


번뜩.

성루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속없이 웃고 있는 하나와 눈빛을 번뜩이는 성루아.

둘은 사이좋은 사매처럼 보이지만, 실은 살짝 복잡한 관계였다.


“아니. 너도 잘했다.”


이 스토킹 짓을 잘했다고 칭찬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지만 칭찬을 안 하면 그거대로 난리니까 어쩔 수 없다.


“칭찬 감사해요. 선생님.”


그녀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에휴.

결국 이렇게 되었군.


“너희 말고 이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

“당연하죠. 선생님. 사실 하나보다 제가 먼저 오고 싶었는데 하나가 멋대로 전용기에 무임승차하는 바람에······.”


기감으로도 감지했지만, 제트기를 운용했던 경호원들은 이미 멀찍이 뒤에 있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안 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 감이 선배 비행기를 타라! 라고 했거든요! 선배면 무조건 사부님한테 갈 거 같아서요!”

“······여전히 잘 맞는 감이로구나.”


이하나.

김선혁을 뛰어넘은 재능의 소유자.

희대의 천재.

그녀는 재능뿐만 아니라 감이 좋았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야말로 김선혁보다 더 주인공 같은 게 그녀였다.


“······.”


성루아는 아무 말 없이 이하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다시 젊어진 거예요. 선생님?”

“복제인간 의심은 안 하는 거냐?”


아니.

복제인간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선생님 같은 분이 이 세상에 선생님 말고 또 있을 리가 없잖아요?”

“맞아요! 처음부터 사부님! 저는 알아봤다고요!”


성루아랑 이하나가 동시에 말했다.

뭐.

이미 들킨 마당에 저 둘에게는 설명해둬도 괜찮겠지.

김선혁이 무슨 그림을 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숨기는 건 실패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그건 내가 말해주지.”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선혁이었다.

아니.

이 새끼가?


“야, 너 어디 가고 이제 오냐?”

“공대장님이 제게 주신 샘플 분석 결과가 전부 도착해서 이제 막 가져오던 참입니다.”


그걸 가지러 굳이?


“그리고 오랜만에 제자들이랑 회포도 좀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선혁이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하.

무슨 그림인가 했더니 이 인간이.

허탈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선혁이 계속 말했다.


“그래서, 제가 사정을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 분석 데이터도 공유하고.”

“알겠습니다.”


김선혁이 태블릿을 들었다.

드디어.

내가 가져온 각종 영초 및 이세계 표본에 대한 가치 분석 결과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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