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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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작품등록일 :
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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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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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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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땃쥐

DUMMY

게이트를 넘었다.


‘흠.’


차원 간 게이트를 넘을 때처럼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이로군.’


산이었다.

아래를 둘러보니 숲의 전경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도 보였다. 그리고 맑은 하늘도.


‘······이렇게 넓은 지역이 단순히 봉인을 위해 격리되어 있다고······.’


헌터물 지구에서도 강력한 몬스터는 존재했다.

일명 재앙급이라 불리는 몬스터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가진 걸로 추정되지만, 대화 따위는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핵폭탄으로도 유효 타격을 주기 힘든 재앙급 몬스터들은 한 기 한 기가 문자 그대로 재앙이었다.

나 역시 사라를 재앙급 몬스터의 레이드 도중에 잃었다.

아니.

잃은 건 아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재앙급 몬스터도 일국의 전력을 다하면 어떻게든 토벌은 가능했다.

그런데 이 고대 마룡이라는 놈은 토벌이 끝난 뒤로도 악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장기간 지역을 격리해뒀다.


‘무슨 체르노빌 원전 지대도 아니고.’


대체 그 고대 마룡이라는 놈은 어느 정도의 몬스터였던 거지?

단순한 재앙급을 넘어선 수준인 건가?


‘마왕급인 건가?’


재앙급을 넘어선 재앙급 몬스터는 하나뿐이었다.

마왕.

원작의 최종보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뭐. 어차피 죽은 놈이니까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이 몸도 넘어가 보겠느니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셀레스티아였다.

그녀가 게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같은 차원 내부라면 2인까지는 통과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건 일종의 실험이었다.

차원 간 게이트는 아직 1인승인 게 확실했다.

하지만 같은 세계 내부를 잇는 게이트는 불확실했다.

실제로 아직 게이트는 유지되고 있었다.

용량이 남는다는 의미였다.


“으앗!”


팅!

하지만 게이트에 접근하려던 셀레스티아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그와 함께 반사적으로 게이트가 닫혔다.

꺼진 모양이다.


‘······용량이 부족했던 건가?’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졸지에 나는 산에 조난당한 신세가 되었다.

고지대라서 그런지 숲보다 서늘하다. 나는 배낭에서 캠핑용 의자를 꺼내 앉았다.


[지금까지 수집한 지형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지도 작성 중······.]


나는 태블릿을 열어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그때.

쐐애애애애애애애액!저 멀리서 파공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금발을 휘날리는 날개 달린 소녀.

셀레스티아였다.

탁.

내 앞에 착지한 셀레스티아.

발밑의 마법진이 그녀를 받아냈다.

충격과 반동을 마법진이 전부 흡수하는 모양.


‘신기하군.’


염동력으로도 비슷한 묘기를 부릴 수는 있지만, 마법진의 화려한 모습은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너무하지 않느냐! 필멸자여! 혼자 그렇게 포탈로 이동하다니!”


살짝 삐진 표정이었다.


“1인용인 걸 깜빡했어. 자. 이거 먹어.”


나는 부스럭대면서 초코바를 꺼내 그녀의 입에 물렸다.


“우웁. 뭐든 공물로 해결하면 통할 줄 아느······. 고, 공물이 좋기는 하지······.”


날름날름 초코바를 녹여 먹는 셀레스티아.

현룡왕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참 알기 쉬운 드래곤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탁하고 간이용 의자를 접었다.


“이제 너희 집 소개해주냐?”

“아, 물론이지. 오너라! 이 몸의 가디언들이여! 이 몸의 손님이 도착했도다! 어서 맞이하도록!”


가디언이라고?

내가 팔짱을 끼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자 동굴 안쪽에서 조그마한 기척 여러 개가 느껴졌다.


찍! 찍찍찍찍!

찍찍찍찍!


곧이어 안쪽에서 포실포실해 보이는 새하얀 털과 베이지색 털이 인상적인 햄스터 무리가 나왔다.


찍찍!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우리를 보는 햄스터 무리.

말이 햄스터지 일반적인 햄스터보다는 컸다.

그러니까 딱 토끼 크기?

귀엽긴 하다.

이하나를 여기 데리고 오면 한 마리 분양해달라고 떼를 쓸 정도로.

털이 복실복실한 게 쓰다듬고 싶군.


“이게 뭐지?”

“가디언이다. 이 몸을 위해 봉사하면서 레어를 관리하는 종족이지. 이 몸은 ‘땃쥐’라고 부르고 있노라.”


찍!

척.

일렬횡대로 늘어선 땃쥐들이 거수경례했다.

아니.

이걸 경례하네.

찰칵.

나는 헌터 바이저에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흠.

이하나가 좋아하겠군. 사진을 보여줘야겠다.

땃쥐라고?

아무리 봐도 햄스터인데.


“어떠냐. 귀엽지 않느냐? 후후. 고대 마룡의 힘을 받은 땃쥐들이 천여년의 세월을 거쳐 진화한 존재들로 어느 정도 지능이 있기에 이 몸이 직접 권속으로 삼았느니라.”

“혹시 놀 사람이 없어서?”


나는 셀레스티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녀가 이 봉인지를 얼마나 지켰는지 모른다.

하지만 영겁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겠지.

신화 시대를 언급하는 걸 보면 일만 년이 넘을지도 모른다.

드래곤의 정신이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억 년 버튼도 아니고 일만 년 동안 계속 이런 데서 있다가는 나라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아, 아니, 아니니라! 저, 절대 심심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절대 오랜만에 지성체를 만나서 들뜬 것도 아니니라! 이 몸은 위대한 현룡왕. 고독은 이 몸의 친구와도 같지. 홀로 서는 존재인 드래곤이 고독을 느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엣헴하면서 헛기침하는 셀레스티아.

하지만 그녀의 꼬리는 나를 반기듯 살랑거리고 있었다.

옛날에 봤던 영화가 생각난다.

주인공이 무인도에 표류하는 영화였는데, 고독에 미쳐가던 주인공은 배구공에 손바닥 자국을 찍고 윌슨이라고 이름 붙여서 친구로 삼았었지.

셀레스티아를 보니 그 영화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햄스터, 아니 땃쥐는 그녀의 윌슨인 건가?


“그래. 그렇다고 쳐주지.”

“좋아. 안내해주겠다. 문을 열어라! 이 몸의 충실한 종복들이여!”


[찍!]

[찍! 찍찍!]

[뀨! 뀨뀨!]


땃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레어 문 앞에서 무언가 조작했다. 마법진이 떠오르면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끼이이익.

문 너머로 어둠이 펼쳐졌다.


“후후.”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린 셀레스티아가 꼬리를 살랑대면서 나를 내부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화륵.

화륵. 화륵.

벽에 걸린 등불이 자동으로 타올랐다.

형광등이 아니라 등불이라니. 마법인가? 옛날 런던에 설치됐다던 가스등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

웬만한 아파트 단지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차원이 다른 크기의 공간이었다.

동굴, 아니 절벽에 가까운 그 벽에는 황금빛 광맥이 있었다.


“이게 오리할콘 광맥이니라.”

“그렇군. 표본을 채취해도 돼나?”

“어차피 많으니 마음껏 해라.”


그녀가 말했다.

나는 배낭에서 로봇 하나를 꺼내 작동시켰다.

철컥, 철커덕.

유선형의 매끈한 원반처럼 생긴 로봇, 채취 유닛이 가동하면서 오리할콘 표본을 잘라냈다.


“이, 이건 또 무엇이냐? 골렘인가? 미약한 마력이 느껴지는구나.”

“마력 전지를 탑재한 채취 로봇이야.”


게이트 너머에 있는 건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금속을 포함한 신소재도 있다. 오직 게이트에서만 출토되는 소재들. 그 소재를 채취하려면 채취 로봇이 필수였다.

원래는 짐꾼을 데려갔지만, 이제 서서히 짐꾼 대신 채취 로봇으로 대체되는 추세였다.

아직 가격이 비싸서 보급이 더뎠지만.

채취 로봇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짐꾼 노조가 파업까지 불사했을 정도로.


“골렘이라는 거구나.”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채취 로봇에 명령을 입력했다.


“대단하군. 이 정도 양이라니. 광산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그래서. 보여줄 건 이게 다인가?”

“손님을 초대했으니 차를 대접해야겠지. 이 몸의 종복들이여! 다과상을 준비하거라!”


[찍! 찍찍찍!]

[찍찍!]


척.

땃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자, 여기는 광장이다. 이제 이 몸의 정원으로 초대하지.”


그녀가 나를 다시 앞섰다.

나는 셀레스티아를 따라 통로를 다시 걸었다. 그렇게 얼마간 걷자 눈앞이 밝아졌다.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햇빛이 비쳤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기화요초가 피어오른 아름다운 정원.

그 가운데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찍!]

[찍찍찍!]


땃쥐들이 정원에 뛰놀았다.

내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땃쥐 하나가 의자 다리를 잡아 끌었다.


[찍!]


드르륵.

의자가 앉기 좋게 빠져 나왔다.


[찍찍!]


기특한 듯한 표정을 짓는 땃쥐.


“후후. 그대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 칭찬을 바라는 구나.”“칭찬은 어떻게 하면 되지?”

“쓰다듬어주면 된다.”


이건 좀.

끌리는데.

나는 딱 봐도 복실복실해 보이는 땃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찍!]


기분 좋은 듯 울음소리를 흘리는 땃쥐.

예상대로 털 감촉은 복실복실했다.

기분 좋았다.

인형을 만지는 기분.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쪼르르르.

셀레스티아가 내 찻잔에 차를 채웠다.


‘홍차는 아니군. 녹차도 아니야.’


정체 모를 풀로 우려낸 듯한 차였다.


“그대가 이 금지에 온 능력은 알았다. 아까 보여준 공간이동 능력으로 온 것이겠지.”

“정확하군.”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박구성이라고 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박구성은 이제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김선혁이 만들어준 신분증의 이름은 따로 있었다.

나와 사라의 아들이라는 신분 말이다.

그 이름은.


“박시우.”


요즘 인기 많은 이름에다, 자식이 아들이면 지어주려고 했던 이름이라고 덧붙였던 김선혁의 표정이 떠올랐다.

다른 이름도 아니고 자기 아들에게 지어주고 싶은 이름을 내게 붙이다니.

내가 본인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역시 정상은 아닌 놈이로군.’


하긴 정상이면 주인공 못 하긴 한다.

나는 김선혁의 센스에 혀를 찼다.


“박시우. 그렇군. 확실히 이 세계에는 없는 작명법이야. 그대의 능력이 특별한 건 알았다.”


그녀가 차를 마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바라봤다.


“이세계의 방문자여, 그대는 여기에서 무엇을 얻어가려고 하는 것이지? 약초? 오리할콘?”

“······내게는 동료가 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고 싶은 동료지. 하지만 우리 세계의 힘으로는 그녀를 살릴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불로초에서 가능성을 봤다. 나아가 이 세계에서 가능성을 봤다.”


류사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늘 선배라고 스스로를 부르라고 강요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항상 투덜대면서도 마지막에는 나를 감쌌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시험하려고 한다.”

“그렇군.”

“그리고 여기라면 은퇴하기 좋은 장소 아닌가?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내가 원래 세계에서 좀 유명한 영웅이라서 말이야. 내 세계에서는 조용히 은퇴 생활 즐기기에는 글렀거든. 그러니까.”


나는 가방에서 종자를 꺼냈다.

토마토, 고추, 감자, 고구마 등등의 씨앗이 있었다.

시장에서 사 온 평범한 상품 작물 종자들이었다.


“여기서 귀농 좀 하려고.”

“······농사 말인가?”


내 말에 셀레스티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렇다.

목표 하나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내 궁극적 목표는 여전히 건재하다.

나는 유유자적 은퇴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

30년이나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데.

내 은퇴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을 수 없다.

그리고 이세계는 완벽했다.

외부와도 격리되어 있고, 날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으며, 시골 텃세도 없다.


“어차피 너도 심심하잖아. 좋은 이웃으로 같이 지내보자고. 그래도 여긴 마을 발전 기금 같은 건 없어서 좋네. 요즘 시골이 시골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세계 시골이면 좀 다르겠지.”

“마, 마을 발전 기금? 이, 이웃!? 그, 그리고 이 몸은 절대 무료하지 않다! 절대 고독하지 않다는 말이다!”


눈동자가 뱅글뱅글 도는 셀레스티아.

뒤이어 쓸데없는 변명을 덧붙였다.


“왜, 싫어? 심심한 거 아니었어?”

“흥. 그럼 당분간 그대를 지켜보도록 하지. 현명룡으로서 이세계의 방문자를 관찰하는 것도 이 몸의 업무 중 일부니까. 그리고 그대가 말한 농사 말인데······.”


셀레스티아가 말했다.


“이 몸이 특별히 권속들을 빌려주겠다. 감사히 여기도록.”


[찍!]

[찍찍!]


셀레스티아의 말에 동조하듯 땃쥐들이 울었다.

권속이라니 저 땃쥐들 말인가?


“쟤네를 빌려준다고?”

“물론. 이 몸의 권속들은 만능이다. 당연히 농사에도 일가견이 있느니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셀레스티아.

찍! 찍!

뒤이어 땃쥐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경례했다.

아니.

진짜로? 쟤네들이 농사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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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땃쥐 +3 24.09.18 493 29 13쪽
10 자비로운 현룡왕 +2 24.09.18 467 19 12쪽
9 초코바 +7 24.09.17 614 22 11쪽
8 미지와의 조우 +4 24.09.16 704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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