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영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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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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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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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남과 해결사

DUMMY

벌거벗은 남자가 있었다.


뭔 뜬금없는 소리냐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정말이다.


실제로 그녀의 눈앞에는 거리를 알몸으로 활보하고 있는 변질자가 있던 것이다.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돌리고 눈을 비벼 보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


아무리 두 눈을 비벼봐도 그녀의 앞에 알몸인 상태의 변질자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핸드폰을 꺼내고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아니면 알몸의 남자를 보자마자 도망쳤거나.


안타깝게도 김세라라는 소녀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저, 저기요."


은은하게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 그게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수십 년 전, 갑자기 이 세계에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문에서 뛰쳐나온 괴물들은 도시를 부수고, 사람을 죽였다.


그런 와중 이계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세계 곳곳에 나타난 능력자들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고, 어느새 그들은 히어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뭐, 그녀는 딱히 히어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특별한 힘을 각성한 능력자였다.


그녀의 눈은 현상을 관측하고, 숨겨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간, 은 아니시죠?"


때로는 힘의 잔재가 보였으며, 때로는 범인의 증거물을 찾았고, 때로는 유령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편견을 갖지 않고 벌거벗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변질자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유령을 보는 것은 드물지만, 그래도 눈앞에 변태가 덜렁거리고 있는 것보다는 유령이 백배 천배 더 나았다. 유령은 주로 미련을 해결해 주면 간단히 사라져 주는 존재였으니까.


"인간인데요."


다시 한번, 세라는 현실은 잔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재빠르게 112를 눌렀다.


"자, 잠깐!"

"앗! 제 핸드폰 돌려주세요!"

"아니! 갑자기 왜 신고하시려는 건데요!"


이런, 야생의 변태에게 핸드폰을 빼앗기다니.


전투 능력이 전무한 그녀는 두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꼴을 보고 말하시지!"

"내 꼴?"


세라의 말에 남자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좌우상하 천천히 천천히.


어디를 어떻게 봐도 알몸. 아직 꽃다운 나이의 여고생에게 보여줄 만한 꼴은 아니었다.


"꺄악!"

"당신이 소리를 지르면 어쩌자는 거야!!"


이제서야 양팔로 몸을 가리며 소녀 비명을 지르는 남성.


아무래도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지금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왜, 왜 내가 알몸인 거야!"

"그건 나도 모르죠!"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준 건데!"

"그건······."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이곳은 한적한 도로긴 하지만 사람이 아예 다니지 않는 곳은 아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밤도 아니고 이런 대낮에 알몸으로 돌아다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니.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남성을 향하는 것이 아닌 세라를 향한 것이었다.


"이, 일단 이거라도 걸치세요!"


겨울이 지나가긴 했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외투를 벗으면 춥기야 하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의 알몸을 계속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남자는 세라가 건네준 외투로 우선 아랫도리를 가리며 입을 열었다.


"고,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예요?"

"한국, 서울인데요."

"서울, 서울. 음······. 이름은 알긴 아는데. 뭐지. 뭘까요? 이 되게 어색한 느낌은?!"


묻고 싶은 건 이쪽인데 되려 질문을 해오는 남성.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세라는 그의 손을 끌고 되도록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시선이 점점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수상한 남자를 향해서가 아닌, 자신을 향해서.


"정말 인간 맞아요? 귀신이 아니고?"

"아니. 제가 어딜 봐서 귀신이라는 겁니까?"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능력자들이 등장하고 꽤나 개성적인 외모를 타고 태어나는 사람이 많아진 건 맞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특이한 외모였다.


다른 곳은 전부 평범한 동양인 남성 같은데 머리카락만 새하얗다니.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아니라면 그는 능력자라는 뜻이 된다.


"그러고 보니까 방금 내가 만졌잖아. 그럼 유령은 아니라는 건데."

"글쎄 아니라니까요."

"그럼 왜 그 꼴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데요?!"

"그건 당연히······."


음······, 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남자.


한참을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억이 안 나는뎁쇼."

"네?!"


어이가 없다는 듯한 세라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했다.


"왜 여기에 있었는지는 물론이고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으으으음."


척 보기에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백 퍼센트 신용은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온 그녀가 판단했을 때, 그는 거짓말을 하는 성격처럼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기억상실이세요?"

"······아마도?"


본인의 일인데도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것 같은 그의 태도가 발언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결국 세라는 머리를 싸매며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은 이런 이상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거냐고.


"뭐, 어떻게든 되겠죠. 하하하."


넉살 좋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든 그럼 경찰서나 가보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이런 일은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괜히 복잡한 사정에 엮이기 싫었던 세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었든 뭐가 어쨌든 간에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능력 탓일 것이다.


어차피 하루 종일 능력을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경찰서에 알아서 가준다면 엮이고 싶지 않은 이 사건과도 바이바이. 안녕인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그녀는 지금 일 때문에 바쁜 입장이었다.


정체 모를, 어쩌면 변질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투자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에 대해 조사하러 왔으니까.


"저기."

"뭔데요?"

"감사합니다. 옷까지 빌려주시고."


솔직하게 감사를 전하는 남자.


"······별거 아니에요."


세라는 무심코 퉁명하게 대답해 버리고는, 사건이 주로 일어난다고 하는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인적이 드물······지는 않은 다리.


적어도 낮에는 사람들이 꽤 오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납치를 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거나 능력자뿐이겠지.


그녀의 눈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을 관측할 수 있었다.


미약하게 남은 증거나, 그 힘의 잔재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그녀는 두 눈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흐릿하던 형체가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안개와도 같은 그것은 보통 괴물이나 능력자가 사용하는 힘의 잔재였다. 그리고 지금 그 안개와도 같은 것이 어디론가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다리 밑?'


생각보다 가까운 장소.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싶었지만, 이상했다.


관측하는 그녀의 눈으로 봐도 다리 밑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힘의 잔재를 따라가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을 텐데.


아무리 봐도 안개는 도중에 끊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현재 보고 있는 그 안개는 힘의 잔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착각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나큰 착각을 해버렸다.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던 안개는 힘의 잔재 따위가 아닌, 이 실종 사건의 범인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안개는 빠르게, 또 정확히 사람들의 시선이 비어있는 곳을 노려 움직였다. 그곳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있었다.


미아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이는 훌쩍이며 홀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안돼.'


마치 투명한 공기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괴물. 그 괴물이 노리는 것이 저 아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


평소 같았다면 상황 파악만 하고 곧바로 히어로를 불렀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두 눈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밀쳐냈다.


그 순간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허나 공기의 형태를 한 그 괴물을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아 죽었다.'


많은 의뢰를 받아왔고, 거의 다 운 좋게 해결해 왔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허무한 실수 하나로 죽게 된다니.


세라는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 다행이다. 안 늦었네."


그 순간이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이건 또 뭐야?"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세라는 조심스럽게 두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건 아랫도리만 간신히 가린 채로 어느새 검붉은 형체가 된 괴물의 공격을 막고 있는 한 남성이었다.


"아니, 외투에 지갑을 놓고 가셔서 돌려주려고 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필사적으로 세라를 먹기 위해 몸체를 비트는 괴물을 가볍게 막아낸 그는 주변에 울려 퍼지는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 괴물은 또 뭡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울에서 이런 괴물을 키우게 된 겁니까? 괴물은 문 근처에만 살 텐데."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여유로운 그의 태도에 세라의 불안감도 사라져갔다. 어째서인지 그의 등 뒤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뭐야. 갑자기 사라졌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붙들고 있던 괴물은 다시 공기의 형태로 돌아갔다.


'그래. 저 상태로는 공격도 못 하고, 먹지도 못하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 보면 투명한 괴물이 굳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포식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저 괴물은 공기인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대로 놓치면 안 돼.'


그렇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인간 쪽도 마찬가지였다. 투명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저 상태에서 공격이 먹힐지도 의문스러운 상황.


만약 여기서 저 괴물을 놓친다면 더욱 영악해진 저 괴물을 없앨 기회는 다신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데 어떻게 하면 좋지? 저 괴물이 다시 아까처럼 실체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이미 힘의 차이를 느낀 영악한 괴물이 다시 싸움을 걸어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흠. 으득."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초조해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남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고는, 주변에 피를 흩뿌렸다.


"아."


세라는 남자의 본능적인 행동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영악해도 괴물은 식욕에 지배당하는 생물이다. 그러니 만약 인간의 피 냄새가 주변에 퍼지게 된다면.


"옳지."


괴물은 인간을 먹기 위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으럅!"


한심한 기합 소리.


무술이랑은 인연이 없어 보이는 허접한 펀치 자세.


그러나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주먹이 괴물에게 부딪히는 순간 퍼지는 강렬한 타격음.


괴물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런 거, 본 적 없어.'


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능력을 갖는 일은 없을 터.


그렇다면 저 남자의 능력은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이 아니었단 말인가.


기억을 잃은 이 남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들. 그 의문들 속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어느새 남자는 다시 완벽히 알몸이 되어버렸단 사실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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