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영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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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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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김세라

DUMMY

정체불명의 남자를 사무소에 데려오자마자 세라는 최대한 눈을 가리며 품이 넓은 옷을 그에게 건넸다.


"우와 집 좋네요."

"그만 구경하고 와서 옷이나 걸치세요."


그녀에게서 옷을 받아 입고는 붙임성 있는 태도로 입을 여는 남자.


"아직 어리신 거 같은데 혼자 사세요?"


그 뻔뻔함에 감탄하면서도 세라는 순순히 대답했다.


"미성년자라 독립은 안 했어요. 여긴 그냥 제가 사무소로 쓰는 곳이에요."

"부자신가 보네."

"운 좋게 꽤 벌었거든요."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 보이는 외모에 비해 어른스러웠던 그녀가, 나이대에 어울리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귀여웠는지 남자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뭐예요."

"아뇨. 뭐, 암튼 두 번이나 옷을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거리에서 알몸으로 활보하고 다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른 모습. 적어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는 모양이다.


아니지. 애초에 알몸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기본적인 상식이 없다는 뜻인가.


골치 아픈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남자에게 물었다.


"옷이야 뭐,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는데. 진짜 당신 정체가 뭐예요?"

"알려주고는 싶지만 정말 기억이 안 나는지라."

"이름이나 나이도 모르는 거예요?"

"으음. 전혀 기억 안 나네요! 아! 나이는 25살 정도였나?"


왜 이렇게 해맑은 거지.


기억도 없이 알몸인 채로 거리를 나돌아다닌 주제에 남자는 쓸데없이 해맑았다.


"저기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면 부끄러운뎅."


조금 전까지 알몸이었던 사람이 뭐가 부끄럽다는 건지.


어이없어하면서도 세라는 차분히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의 평균 키보다 작은 키. 대강 160 후반 정도 되지 않을까. 키랑 외모만 보면 남자가 말한 25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이게 과연 동안인 건지 아님, 남자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일단 그를 25살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조금 전, 그가 보여준 놀라운 광경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의 눈에 인식되지 않는 능력과 괴물을 단번에 분해해 버린 엄청난 힘.


과연 그 두 개의 능력은 양립될 수 있는 것인가.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 처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사람은 있지만, 어쨌든 [눈]에 관련된 능력이라면 [눈]을 매개로 발동해야 한다.


적어도 그 엄청난 힘과 인식되지 않는 능력은 괴리감이 심했다.


단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가능성이 있긴 한데.


'굳이 깊게 파고들지 말자.'


여러모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깊게 연관되고 싶지 않을 뿐더러, 기억을 잃은 그에게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모른다." 겠지.


"그럼 혹시, 능력자에 대해선 아세요?"


세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남자의 상식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능력자? 으으음. 아아! 그거죠. 요상한 문에서 괴물이 나오자마자 등장한 사람들. 괴물이랑 막 치고받고 싸우는."


허공에 주먹을 휙휙 휘두르며 말하는 남자.


대충 맞는 말이었다. 역시 본인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사라졌을 뿐, 기초적인 상식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다만 한 가지 남자는 말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 문은 없지만요. 5년 전에 부숴버렸으니까."


이제 이 세상에 문은 없었다. 5년 전 문 안에 있는 이계에 들어가, 문을 만들어 낸 흑막을 없애고 문을 파괴한 영웅들이 있었으니까.


"네? 부서졌어요?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것도 기억이 안 나시는 거예요?"

"으음. 잘 모르겠네요."


남자가 정말 25살이면 5년 전에는 20살. 당시에 중학생이었던 자신도 알고 있는데 남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기초상식이 5년 전, 아니면 더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렇게 추측하며 세라는 남자에게 설명했다.


"5년 전에 국가에서 모집한 능력자 군단이 다른 세계를 탐사하러 잠입했었데요. 그분들이 이계에서 문을 만들어 내고 있던 흑막을 무찌르고, 결국엔 문을 파괴할 수 있었다고 해요. 대단한 분들이죠."

"그렇구나.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어라? 근데 그럼 아까 그 괴물은 뭐예요?"


당연한 의문이었다. 문이 사라졌으면 괴물도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을 파괴했을 때, 합쳐졌거든요. 다른 세계랑."

"합쳐졌다니, 그게 무슨."

"설명하기에 복잡하니까설명하기 복잡하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문이 파괴된 뒤에 다른 세계에 있던 주민들과 괴물이 대량으로 이쪽 세계에 들어오게 됐어요."


그리고 문을 파괴한 능력자들의 중재로 큰 소란 없이 금방 이계 사람들과의 교류할 수 있게 됐다나 뭐라나.


고작 5년 전에 있던 일을 옛날이야기 하듯 말하는 세라를 바라보며 남자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떠올랐나요?"

"아뇨. 전혀. 근데 뭔가 간질간질하긴 하네요. 떠오르는 듯한, 떠오르지 않는 듯한."

"하아."


혹시나 예전에 있었던 큰 사건을 말해주면 기억이 돌아올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른 것 같았다.


세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끙끙대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우선 경찰서로 가서 신원조회를 부탁해 보죠. 혹시 당신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해놨을지도 모르니까."

"으음. 네, 계속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럼 가볼까요?"


기억을 되찾는 게 베스트였겠지만, 이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었다. 공권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세계가 합쳐진 뒤, 늘어난 범죄율과 괴물에 의한 실종 사건이 늘어나고 경찰 조직도 상당한 개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지문 같은 과학적인 수사 이외에 능력자의 힘이나 이계에서 넘어온 마법 기술을 응용한 수사가 발달한 것이다. 물론 아직 5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정립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경찰이라면 모종의 이유로 과학적인 검사를 할 수 없어도 다른 수단을 사용해서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라는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서에 가기만 하면 이 사건은 종료. 길거리에서 알몸으로 배회하던 알몸남과는 더 이상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그러나 그 안일한 생각은 경찰서에 도착한 직후 무너져 버렸다.


왜냐하면.


"찾을 수가 없다구요?!"

"네. 지문 기록도 없고, 마법으로 관련된 사람이나 물건을 찾아봤는데 전혀 모르겠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저 사람, 평생 외딴섬에서 혼자 살다 온 사람인가요?"

"그, 그게. 저도 모르겠어요."


믿고 기다리던 조사 결과는 꽝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찰이 더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점점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향해 그녀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때요?"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는 남자.


세라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죠?"


세라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묻고 싶었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가 뭐냐고.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겠지만.


"······우선 사무소로 돌아가서 생각하죠."

"그, 그래도 또 신세를 지는 건."

"괜찮아요. 거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만든 공간이니까."


더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대신 공짜로 지내게 할 생각은 없어요. 그곳에서 살게 해주는 대신, 제 일을 도와주세요. 마침, 일손이 부족해서 직원을 뽑으려고 했거든요."

"도와준다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 무지막지한 전투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예요! 전 못 싸우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민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남자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민 손을 잡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사장님? 아니지 사무소라고 했으니까 소장님?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

"편하게 부르세요. 그냥 김세라라는 이름으로 부르셔도 되고.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대답해 드리자면."


세라는 자켓 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꺼내며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엇이든 해결해 드립니다.], 통칭 해결사 사무소. 말 그대로 의뢰를 받으면 무엇이든 해결하는 사무소에요. 어쩔 땐 범죄 사건에 도움을 주고, 어쩔 땐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찾아주기도 하죠. 그리고 또 어쩔 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대화를 해주기도 해요."

"간단히 말하면 동네 잡일꾼 같은 거네요."

"윽. 좀 멋이 없긴 하지만, 비슷한 거죠."


본인은 해결사라는 어감이 더 좋은지, 잡일꾼이란 단어에 입을 삐죽이는 세라.


그런 그녀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남자는 말했다.


"혹시 제 의뢰도 받아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럼 제 기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의뢰비는 일하는 걸로 갚겠습니다!"


사실 무상으로 도와주려고 생각했지만, 세라는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본인이 결정한 일이다.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사람만 특별 취급하면 나중에 곤란해질 것 같기도 하고.


"우선 이름을 정하도록 하죠. 이름이 없는 상태면 불편하실 테니까."

"하긴 그렇네요."


정체 모를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건 그녀의 선의도 있었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다.


"으음. 철수? 같은 건 어떨까요?"

"교과서도 아니고 그게 무슨. 머리카락이 흰색이니까 하양이는 어때요?"

"네? 제 머리카락 하얀색이에요? 흑발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녀의 사무소는 괴물의 퇴치 같은 의뢰는 전혀 받지 못했다.


그녀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지만, 괴물을 퇴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국가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본인도 자신의 능력으로 전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타협하고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


"머리가 흑발이 아닌 건 놀랍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양이는 좀. 외국인같이 화이트? 라거나."

"그것도 촌스러운데요."

"으음. 어렵네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괴물을 쓰러트렸을 때 보였던 강한 힘의 기운.


그 정도의 힘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규모였다.


아마도 상위 히어로 수준이 아니었을까?


A급? 아니 어쩌면 S급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귀찮으니까, 알몸남으로 하죠. 몸남이 어때요? 몸남이."

"그건 더 싫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직접 정할 테니까."


그 힘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테지.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줬던 그 능력자처럼.


"좋아. 그럼 무난하게 갑시다! 머리가 흰색이니까 백씨를 써서, 백남일 어떤가요!"

"무난하네요. 일단은 그럼 그 이름으로 부를게요. 남일 씨."


어느새 도착한 사무소 앞.


멈춰선 세라는 남일에게 손은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백남일 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세라 소장님!"


악수하는 두 손.


남들을 돕기 위해 행동하는 소녀와, 정체불명의 남자.


두 사람의 만남은 기이하게도 운명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그것을 깨닫게 되는 건 사흘 뒤, 한 점쟁이의 의뢰를 받은 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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