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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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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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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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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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DUMMY

아이작의 미간에 약간 주름이 졌다.

"왜 그러느냐?"

"곧 있으면 누님이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아이작은 여전히 의아한 눈치였다.

데본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것이니,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잠시 외출하고 싶은데요."

"그래서? 네가 나가고자 할 때 너를 막을 사람은 집안에 아무도 없다."

"압니다. 하지만, 제 전속의 말과 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더군요."

그때서야 아이작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오래 두문불출하니 잠시 다른 곳에 가져다 쓴 모양이다. 질책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라 이르마."

"감사합니다."

"바깥은 지금 나가려는 것이냐?"

"네. 제가 외출할 만한 날이 드물어···."

"알아들었다. 내 말과 마차를 빌려주지."

그는 바로 줄을 당겨 밖에 서 있던 부관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후작님?"

"그래."

가주 대리는 가주에 준하는 작위를 임시로 받았다.

공작인 형의 자리를 대신한 아이작은 귀족 사회에서 후작으로 불렸다.

그는 데본을 가리키며 부관에게 말과 마차, 시종 그리고 기사 몇을 내어주라 일렀다.

"수행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아이작과 매한가지로 데본을 보고 몹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낯빛을 감추었다.

그는 수하들에게 아이작의 명을 전했고 잠시 후 마차가 대문에 준비되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데본은 달갑지 않은 사람과 마주쳤다.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계모의 아들, 배 다른 동생 도노반이었다.

데본을 보자 그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데본···형? 왜 형이 여기 있어?"

데본은 상대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한참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도노반."

의도가 통한 듯 그의 얼굴이 마치 잘 익은 살구처럼 붉어졌다.

그도 잠시, 도노반은 난간에 기대어 턱을 치켜들고 비뚜름하게 웃었다.

"허구한 날 골골거리더니, 오늘은 좀 몸이 좋아졌나 봐? 이렇게 방 밖에도 다 나오고 말이야. 난 연무장에 검술 지도 받으러 하러 가는데. 형은 어디 가?"

"누님 선물 사러 잠시 시장에 간다. 네 말대로 허구한 날 골골거리는 몸이라. 반나절이라도 괜찮을 때 다녀오려고."

다행인지 도노반은 그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는 허약한 형이 한 번 숙이고 들어온 것에 만족한 양 데본을 지나쳐 다른 통로로 향했다.

그리하여 데본은 더한 잡음 없이 마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오늘 그와 함께 할 로지까지 자리한 뒤, 그는 마부를 향해 큰 소리로 명했다.

"출발해라."


***


분주한 거리, 활기 띤 사람들.

달려가던 마차는 어느덧 시장에 도착했다.

데본은 부득불 따라와 시중을 들겠다 우기는 하인들을 모조리 남기고 로지와 기사 둘만 대동한 채 평민인 척 장터를 걸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어려서부터 원인 모를 병증에 시달리느라 성 근처로는 와본 적이 드물었다.

그의 경험이란 악한의 무기로 살면서 보고 들은 일에 오로지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데본은 속으로 실소인지 아닌지 모를 것을 흘리고는 다시 한 번 오늘의 목적을 되새겼다.

그는 분명 '누님의 선물'을 사러 여기까지 왔다.

다만 그 선물에 그의 가설을 시험하기 위한 재료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지.

다시 말해 일부는 기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은지는 머지않아 알게 될 터였다.

속내를 감추고,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색이 곱거나 독특한 보석 몇 개를 살폈다.

실상 기사에다 치장에 별 관심 없는 레니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철저히 편협한 관점에서의 선택이었다.

옆에 선 로지는 이토록 선물 고르기에 열정적인 도련님을 차마 말리지 못하는 유모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뒤에 선 기사들은 속뜻을 몰라서인지 미묘한 표정이었으나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데본은 아랑곳하지 않고 레니의 선물을 마저 고른 뒤 로지와 다른 하녀들에게 준다는 명목으로 자잘한 보석이나 장신구도 몇 개 샀다.

그리고 다시 마차에 타 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구입한 물건들을 정말로 아랫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나머지는 방 안의 보석함에 모아 챙겼다.

밤이 되자, 그는 보석함을 다시 꺼냈다.

상자를 여니 대단한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알알이 굵고 오색찬란한 보석들이 그의 눈앞에서 반짝였다.

낮의 시장행은 바로 이를 위함이었다.

이 가운데, 하급 원석으로 착각당해 가공된 마석 몇이 섞여 있었다.


***


검이었던 때 데본은 악한과 같이 세상을 누비며 여러 비밀을 듣고 접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자신의 마나 하트와 관련된 것이었다.

악한이 말하기를 그의 마나 하트는 강력했으나, 처음부터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마나 하트의 특성이 오히려 몸에 독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큰 힘이 훅 들어왔다 고일 새도 없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니, 자연스레 마나를 다뤄보지도 못하고 내내 속살만 벌어졌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고통을 감내한다면 마법을 쓸 수야 있었겠지만 결국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 죽어 검의 먹이가 되었으니 참 의미 없는 인생이었다며 악한은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데본에게 또 한 가지 진정 중요한 정보를 남겼다.

마석을 삼켰더라면 심장이 치유됐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석은 으레 몬스터를 처치하면 나오는 이른바 마물의 심장으로, 보통은 연금술이나 아티팩트의 재료로 쓰였다.

마나가 응집되어 있으면서도 독기 또한 강해 사람에게는 직접 쓰지 않았다.

이따금 흑마법사라 불리는 자들이나 부족한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억지로 마석을 취하다 탈이 날 뿐이었다.

그러나 꿈 속에서의 삶은 마나 하트를 가진 데본이라면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에게 마석은 극독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을 돋우고 상처를 메꾸는 치료제였다.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만 해도 한갓 꿈이라 여겼지만, 열흘 전의 사건 이후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어쩌면 오늘이 그의 미래를 달라지게 하는 중대한 기점일지도 몰랐다.

"······."

손에 땀이 절로 났다.

데본은 마른침을 삼키고 마석을 내려다보았다.

본디도 둥근 모양이었을 마석은 보석 취급 당해 세공이 되어 있어 더욱 반들반들했다.

곧 그는 개중 하나를 들어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변화는 즉시 일어났다.

찰나 몸이 크게 맥박 치는 듯한 감각에, 데본은 저도 모르게 움찔 떨며 허리를 굽혔다.

심장에 머물러 있던 고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마치 전신이 하나의 심장이라도 된 느낌.

잠시 후 이상이 수그러들자, 그는 무언가 뚜렷이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고통.

늘 그와 함께 하던 은은하면서도 지겹던 그 고통이, 마석을 삼킨 뒤로 한결 줄어 있었다.

단 한 개, 그것도 하급 마석이 들어갔을 뿐인데 이토록 거짓말 같은 변화라.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효력이 다했는지 아픔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데본의 마음은 들뜬 채였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 용기 내어 하급 마석 몇 개를 더 집었다.

그는 그것들이 몸 안에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고 차분하게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로지와 샹들리에를 움직였을 때처럼 마법을 시도한 것이다.

이번에도 결과는 놀라웠다.

전보다 힘을 쓰기가 훨씬 수월해졌을 뿐만 아니라 몸을 짓누르는 통증도 사라지다시피 한 상태였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떤 불가사의한 마력이, 심장의 구멍을 막고 마나가 옳게 돌도록 기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데본은 허공에 둥둥 뜬 방 안의 집기들을 올려다보다 남들이 깨지 않게 주의해서 사뿐히 내렸다.

그때 또 다시 코에서 피가 흘렀다.

아직 난조가 딱히 체감되진 않는데, 몸에서는 지금이 무리라고 받아들인 듯 싶었다.

다행히도 피는 금방 멎었다.

한 번에 마석 여러 개를 먹었던 것이 마냥 허튼 짓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데본은 심호흡을 한 뒤 마지막 남은 마석을 손에 쥐었다.

유일한 중급 마석. 이전에 삼켰던 자잘한 하급 마석들과는 질이 달랐다. 심지어 핵 근처에 난 흠집을 무시하고 보면 제법 상급에도 필적할 만했다.

이런 양질의 물건이 어쩌다 보석으로 둔갑당해 일반 시장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검으로 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정보였겠지.'

때때로 마석이 보석으로 오인 받아 용처 외에 풀리는 일이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렇게 세공된 마석을 구분하는 방법도.

데본은 그를 데리고 다녀준 악한에게 냉소를 담아 감사했다.

직후 그는 마석을 곧바로 목에 넘겼다.

"······!"

그 다음 일어난 변화는 좀 더 극적이었다.

희고 푸른 불이 그의 살을 넘어 뼈와 근육, 마침내 영혼까지 사르는 것 같았다.

다만 그것은 고통이나 사멸의 불이 아니었다.

순수 혹은 정화. 치유 혹은 회복.

굽고 움츠러들어 있던 육신을 바로 서게 하는 힘이 일순 온몸에 퍼졌다 다시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그 황홀한 자극을 데본은 제자리에 앉아 충분히 만끽했다.

절차가 끝났을 때는 몸뿐 아니라 정신이 사뭇 단단해져 있었다.

데본은 거울 앞에 선 채 손목이며 발목을 괜스레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머리는 유례 없이 밝고 명징했고 몸통과 팔다리에 새 기운이 넘쳐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운 좋게 얻은 중급 마석만으로도 나타난 대단한 효과.

동급이나 상급, 또는 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비슷한 마석을 여럿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데본이 입술을 깨물었다. 좀체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곳곳이 빈 보석함을 다시 제자리에 갈무리한 뒤, 풀썩 침대에 누웠다.

보랏빛 눈이 두어 번 천장을 훑고 눈꺼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잠이 든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 이후의 일이었다.

태어난 이래, 그는 아주 간만에 내일이 기대된다고 생각했다.


***


다시 오 일 가량이 흘렀다.

성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같았지만 오직 데본이 있는 별채만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바로 그의 누나이자 기사, 레니가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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