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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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3 01:28
최근연재일 :
2024.09.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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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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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계절

DUMMY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아슬린도 평가 시험을 보름 앞두고 있었다.

이번 시험에 통과하면 그녀는 정식 수련 기사가 되고, 원하는 상급기사 밑에서 검을 쥘 수 있게 된다.

의복과 잠자리 등에서도 더 나은 대우를 받을 뿐만 아니라, 평민 출신이라도 기사단 소속이 아닌 자들에 비해 몇 가지 특혜가 더 주어진다.

그 희망이 그녀를 매일같이 훈련장에 나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을 휘두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첫째 도련님에게서 얻어온 고서도 큰 몫을 했다.

훈련장 출입이 금지된 시각까지도 밤마다 달빛에 의지해 교본을 보며 혼자 움직임을 상상하길 하루, 이틀, 그리고 보름이 넘어가자 실력이 교관 눈에까지 띄게 일취월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디 성실했던 데다 산골 출신이라 체력도 남들에 크게 처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유독 고전하는 분야가 있었다.

대련.

스타인의 검술을 배우면서도 한편 고향의 것을 고집했던 아슬린은 밀리기 몸도 키도 저보다 큰 사내들과의 대결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어느 길 하나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고난 체질마저 상대에 못 미치니 생긴 문제였다.

하지만 노바레드의 검에 대한 해답을 찾은 뒤로는 달랐다.

그녀의 공세와 방어는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마음 쓰는 일이 줄어들어 반대로 스타인의 검에도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노바레드의 검과 스타인의 검 사이를 오가며 유연성을 추구하는 노력까지 더해져 적어도 대련에 있어서는 극적인 성장을 이뤘다 할 만했다.

교관도 이러한 변화를 눈치챘는지 하루는 대놓고 칭찬을 입에 올렸고, 그녀를 눈요기로만 여기던 동기들도 하나둘 그녀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약자가 어느 날 남들과 대등한 입장에 선다는 게 결코 본인에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특히 우월감과 열패감이 한데 얽히고, 추한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면 더더욱.

어느 날, 개인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아슬린은 근처에 선 사내들이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품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지?"

"밤마다 불려간다는데···."

"누가 알겠어.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주는 약이라도 선물 받았을지도."

그녀에게는 익숙한 음담패설이었다.

다만 이제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첫째 도련님까지 함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녀의 신경을 몹시 거슬렀다.

그녀는 바로 돌아서서 따질까 하다가, 자신은 혼자고 그들은 다수인 데다가 자칫하다가는 데본의 명예가 만천하에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익숙한 일이다···시험을 통과해 큰아가씨 밑으로 들어간다면 그래도 줄어들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못 들은 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사내들이 옆으로 움직여 그녀가 가는 길을 막아섰다.

"안녕, 아슬린."

선두의 사내가 느물거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슬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없이 그들을 지나쳐 틈새로 들어가려 하자, 그는 다시 앞을 막으며 킬킬댔다.

"아슬린, 요새 얼굴이 좋아 뵌다? 우리 몰래 뭐 맛있는 거라도 얻어먹는 거냐?"

"비켜."

"이거 섭한데, 동기끼리 이 정도 잡담도 못하나?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대화도 못할 만큼 바쁜 건 아니겠지. 간혹 남들 다 쉴 때 혼자 어딜 가야 한다거나···."

아슬린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녀는 속으로 신경을 외며 어떻게든 불씨가 커지는 상황만은 피하려 했다.

그러나 상대는 기어이 도를 넘었다.

"부모님은 아실까 모르겠어, 소중한 딸이 검을 드는 것도 모자라 남 시중까지···."

부모에 대한 모욕.

검에 대한 진심의 모욕.

마지막으로 주인이나 다름없는 데본에 대한 모욕.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종아리를 호되게 걷어찬 아슬린이 검을 꺼냈다.

비웃고 조롱하던 이들은 그녀가 분에 못 이겨 누구의 목이라도 벨 거라 생각했는지 움찔했다.

특히 방금 그녀에게 다리를 얻어맞은 놈은 꼬리 만 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었다.

뽑은 검을 여전히 치켜든 아슬린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 중에서 누구 나와 대련할 사람 있나?"

공교롭게도 사내들은 모두 최근 그녀와의 대결에서 진 이들뿐이었다.

게다가 숙소 근처에서 소란이 일자 점차 남들의 이목이 모여들었다.

상부에서 여자 생도에 대한 괴롭힘을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대로라면 운 나쁘게 본보기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결국 전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아슬린은 그들을 얼마간 더 노려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가 되니 무리 중 누군가의 입술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저 쌍년!"

다른 이들도 온갖 험한 말로 그에게 동조해댔다.

그때 누군가가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년이 정말 그 환자와 붙어먹는다는 게 사실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다 헛소문이지."

다른 남자가 곧바로 반박했다.

"귀족이 자기 여잘 뭐하러 이 땀내 가득한 소굴에 둬? 뭘 믿고? 나였으면 진즉에 방 한 칸 내주고 검은 뺏어서 들어앉혔다. 아무튼 아니야. 둘이 그런 사이였으면 저렇게 검 연습이나 하게 놔둘 리가 없어."

"그러면 전에는 뭐하러 별채에 불려갔던 거야?"

"나도 모르지···어쨌든, 마음에 안 들어. 요즘 들어 저년 콧대가 아주 그냥 장난이 아니라고."

그들은 몇 마디 더 아슬린에 대한 험담을 나누다 다른 여자들로 화제를 돌렸다.

지나가던 생도들이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았으나 이내 갈 길을 갔다.


***


한편 데본은 오랫동안 허약하게 누워 지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그의 성장은 한창 때의 청년이라 해도 유별날 만큼 빨랐다.

레니 역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그의 모습에 희망을 가질 정도였다.

스스로의 변화에 놀라기는 데본도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마석에 담긴 힘이 그의 억눌려 있던 체질을 한없이 발현시키는 듯했다.

역시 누가 뭐래도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이 맞았다.

"대단하구나, 데본. 두 달 만에 내 한 수를 막다니."

레니가 놀라움과 다정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용맹한 새끼 늑대 같은 동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괜찮은 성과야···네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기대되는걸."

"과찬이십니다, 누님."

"아니야. 솔직히 나는 아직도 네가 어떻게 내 검로를 파악했는지 모르겠거든."

레니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검사로서 천골로 타고났다지만 어린 시절에는 힘 좋은 덩치들 앞에서 한계를 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부족함을 그녀는 속도로 메꿔왔고, 그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그녀를 오늘날의 기사 레니 스타인으로 만들었다.

그녀와 항상 대련하는 부관들은 물론 제 아무리 대단한 기사라도 현란한 움직임에 휘말려 한두 번은 직감으로 겨우 대처하거나 끝내 실수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몸을 가꾸었을 뿐인 동생이 어떻게?

데본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감각.'

마나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뒤, 그는 레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마나가 인간의 오감을 매우 날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극치에 이른 사람은 적이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거나, 피가 살갗 아래서 흐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했다.

심장을 치유하기 전의 데본은 늘 드나드는 마나에 대한 통제력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마나는 분명 한순간이나마 체내에 머물며 몸의 주인에게 영향을 미쳤을 터.

그렇잖아도 구멍이 아물지 않아 늘 고통에 시달리던 어린아이가 오감이 기민하기까지 했으니.

비로소 데본은 자신이 왜 어린 시절부터 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남들을 곤란하게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현재는 마석으로 상처를 매일 좁혀가고 있어.

그는 마침내 다른 이들처럼 마나의 장점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감응 수준은 레니가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민감한 상태가 길게 지속되었던 탓에 남들보다 훨씬 더 벼려진 감각을 갖게 된 걸지도 몰랐다.

스스로를 다룰 수 없었던 시절에는 그마저도 괴롭고 아프게 다가왔으나 이제 데본은 그것을 축복이라 여기기로 했다.

실제로 그의 오감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던 까닭에 다소 빈약한 신체 능력을 마나와 더불어 보완해주었다.

벼락같이 내려치는 레니의 칼날을 겨우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물론 아직 이와 같은 비밀을 이야기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데본은 그녀에 대한 칭찬과 존경심을 섞어 대충 얼버무렸다.

"그야 누님께서 좋은 스승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후후. 내 부하들은 내가 만난 스승들 중 최악이라던데."

그때 멀리서 시종 하나가 다가와 레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전갈을 들은 레니가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미안, 데본. 오늘은 더 지도를 이어갈 수 없겠구나. 삼촌께서 내게 볼일이 있으시단다."

"삼촌께서요?"

데본은 살짝 의아해졌다.

딸의 병이 나은 후로 아이작은 그녀와 시간을 보내느라 바빠 그들 남매와는 대면하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간혹 시종이 별채를 찾긴 했으나 거의 주인이 보낸 선물을 가져올 때뿐이었다.

하지만 웃어른에 가주 대리인 그가 오라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

레니는 부관에게 검을 넘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데본은 오늘 배운 것을 속으로 되뇌이며 다시금 검을 휘두르는 데 열중했다.

이후 그가 막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때, 등 뒤에서 빈정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와, 형! 요즘 검 연습 좀 한다더니 진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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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는 계절 NEW 18시간 전 3 0 10쪽
8 거래 24.09.18 3 0 11쪽
7 아슬린 24.09.17 5 0 12쪽
6 작은 승리 24.09.16 7 0 12쪽
5 가족 24.09.15 6 0 10쪽
4 꿈이 아닌 24.09.15 8 0 11쪽
3 현실로 24.09.14 6 0 12쪽
2 긴 꿈(2) 24.09.13 7 0 12쪽
1 긴 꿈(1) 24.09.13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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