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엔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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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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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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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덟 살

DUMMY

* * *


1970년 6월 13일 토요일. 인천의 한 보육원에 엄마의 젖을 몇 번 빨아보지도 못했을 것만 같은 갓난아이가 버려졌다.


“차라리 잘됐다.”


보육원장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문 앞에 놓인 아이를 안았다.


“가난과 불행은 나누면 배가 되거든.”


아이와 함께 놓인 메모지는 읽지도 않고 꼬깃꼬깃 구겨 바닥에 버렸다.


“널 버린 부모가 지어준 이름 따위 내가 대신 버려주마.”


그는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라도 된다는 듯 아이에게서 부모의 흔적을 모두 지우려고 했다.


“넌 지금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네 성은 ‘이’다.”


그는 아이를 가여워할 여유가 없었다.


“이름은 ‘해강’이 좋겠다.”


그에겐 이 아이 말고도 챙겨야 할 고아만 무려 스무 명이었으니까.


“남자라면 이 바다를 떠나 한강이 있는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 할 테니까.”


챙겨주고 싶지만 챙길 수 없는 다 큰 고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려면 열심히 살아야 할 거다.”


그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챙겨주기 위해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도 누구보다 차가운 가슴을 가진 사람처럼 살았다.


“열심히 산다고 이름값을 할 것 같진 않지만, 어쩌겠니. 세상이 원래 이런 걸.”


누군가는 이런 그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욕하고 손가락질했다. 그 덕분에 고아라는 역경을 딛고 1인분은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한 이들조차 그랬다.

그가 이렇게까지 고아에게 가혹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직업이 보육원장일 뿐이고.”


한계. 그는 냉정히 말해 자기 앞가림만 하기에도 벅찬 이였다.


“이 세상은 나보다도 냉정하단다. 고아는 동정의 대상이라기보단 기피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라는 거지.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착한 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의 착한 척 몇 번으론 고아의 인생이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예전에 깨달았다.


“그래도 열심히 살면 밥을 굶진 않을 거다.”


* * *


보육원장 강만식에게 ‘이해강’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는 행복보육원의 고아 중 가장 특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피아노는 누구한테 배웠니?”

“안 배웠어요.”

“아니, 피아노를 안 배웠는데도 피아노를 이렇게 잘 친다고?”

“그냥 누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세상에······. 그럼 악보 읽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악보 같은 거 읽을 줄 몰라도 되잖아요.”


‘서, 설마 절대음감?’


보육원에 봉사하러 왔던 피아노 전공자는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유년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연주 실력에 깜짝 놀랐다.


“원장님, 해강이는 천재예요!”


이에 호들갑을 떨며 원장을 찾아갔다.


“그래서요?”

“네?”

“피아노가 재능만으로 도전할 수 있는 겁니까?”


원장은 이런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


“그건······.”

“돈 많은 부모가 작정하고 뒷바라지를 해줘도 피아니스트가 될까 말까한데 돈 많은 부모는커녕 가난한 부모도 없는 놈입니다.”


고아에게 재능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원장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정 그렇게 해강이를 도와주고 싶으면 후원금을 주십시오.”


사실 이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의 돈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착한 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려주면 됐으니까.


“새옷이라는 걸 살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해강이부터가 피아노보다 새옷을 바랄 겁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새옷이라는 걸 입어본 적이 없는 녀석이거든요. 아, 배냇저고리는 새옷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이해강의 음악적 재능은 잠들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재능을 잠재운 강만식 원장이 그의 재능을 깨우려고 했다.


“공부나 하라면서요.”

“공부해서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면 피아노를 맘껏 칠 수 있지.”


강만식 원장은 이해강의 음악적 재능이 공부의 동기가 되길 바랐다.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어.”


그는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 연필을 제대로 쥔 후부턴 낙서라는 걸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너도 알다시피 국민학교 선생님은 다 잘해야 하거든. 다 가르쳐야 하니까.”

“저 같은 놈도 대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겁니까?”


봉사자들에게도 직언을 날리는 그가 원생들에게 직언을 아낄 리 없었다.


“고아니까 더 대학교를 가야지.”

“공부도 기술이라는 건가요?”

“기술이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원생에게 어차피 대학교도 못 갈 텐데 뭐 하러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냐며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자격증을 딴 후 졸업하자마자 바로 기술자로 취직하라 노래를 부르던 원장이 이해강에겐 인문계 고등학교 넘어 대학교 진학까지 ‘강요’했다.


“그것도 가장 명예로운 기술이지.”

“가장 명예로운 기술이요?”

“너부터가 그랬잖아. ‘저 같은 놈도 대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겁니까?’ 이게 무슨 뜻이겠니?”

“대학교만 나와도 대박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 나라엔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문턱도 못 넘어본 사람이 흘러넘치지. 이런 세상에서 대학교를 나온다. 선생님이 된다. 얼마나 멋지니?”

“멋지네요.”

“고아니까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는 말은 틀렸어. 공부는 아무나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넌 잘할 수 있어. 머리가 꽤 좋거든. 그리고 공부는 피아노와 달리 아주 싸지.”

“진짜 공부나 해야겠네요.”

“너무 오래는 하지 마라. 공부도 알고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가거든. 그리고 고아는 빨리 돈을 벌어야 하지.”

“알아요.”


여덟 살. 고아의 한계를 깨닫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고 깨달아서도 안 될 나이였지만, 그는 강만식 원장의 조기 교육 탓에 고아의 한계를 깨달음은 물론, 현실과 타협하는 법까지 깨달았다.


“너라면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다.”


강만식 원장은 이해강에게 더 큰 꿈을 선물해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한 번의 실패에도 크게 휘청일 수 있는 고아라서였다.


“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기서 살아도 된다.”


이해강은 한국교육대학교에 합격한 덕분에 다른 원생들과 달리 성인이 되었음에도 보육원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보육원을 나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강만식 원장의 말대로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며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선 그때 만약 책상 앞이 아니라 피아노 앞에 앉았으면 어땠을까? 노트에 글자 대신 그림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교육대학교가 아니라 법대를 갔으면, 의대를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꿈을 무조건 응원함은 물론, 어떻게 하면 제자들에게 더 큰 꿈을 선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선생님이라서였다.

무엇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으면 어땠겠냐 싶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너무 일찍 자신의 한계를 정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은 한 가족의 가장이 되며 사라졌다.

가장은 누구보다 모험이 필요한 존재임과 동시에 절대 모험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렇게 그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그러다 아내와 함께 고속도로를 타고 여행을 가던 날, 역주행 중인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형 사고를 겪었다.


‘손주는 보고 죽을 줄 알았는데 아들 결혼식도 못 보고 죽는다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진 못했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결혼했고. 사랑하는 자식을 셋이나 둔 그의 삶이 너무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여긴 다 좋은데 딱 하나가 별로야.”

“저 고아들?”

“어.”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여, 여긴······.’


“목욕하러 왔으면 목욕만 해 이 녀석들아! 물은 왜 자꾸 버리는데!”


‘모, 목욕탕이라고?’


죽어서라도 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던 그의 눈과 귀로 익숙한 목욕탕과 더 익숙한 나체의 중년 남자들이 들어왔다.


“이 냉탕이 너희 거야?”


‘인천의 그린사우나······.’


이해강은 단번에 자신이 발을 붙이고 있는 목욕탕이 유년기의 수영장이었던 행복보육원 근처의 그린사우나라는 걸 눈치챘다.


“우리도 돈 냈는데요!”


‘이경민?’


성인이 된 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옛 친구도 단번에 알아봤다.


“이놈아, 그게 목욕비지 물값이야? 이 목욕탕 사장이 고작 그 돈 받고 여기에 있는 물을 다 버리라고 하든?”


‘쌀집 아저씨······.’


“아, 왜 때려요!”

“때릴 만하니까 때리지!”


‘꿈일까?’


“제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요! 잘못은 아저씨가 했······.”

“이놈이 그래도!”


‘어느 쪽이든 안 돼!’


“죄송합니다!”


그는 보고 싶었지만, 온갖 이유로 보지 못한 친구가 그때의 기억대로 쌀집 아저씨에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일만은 막기 위해 허겁지겁 친구를 대신해 허리를 숙였다.


“아니, 뭐가 죄송해!”

“원장님한테 혼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사실 진짜 막고 싶은 건, 쌀집 아저씨의 매타작이 아닌 옹졸한 복수였다.


“쳇······.”


목욕탕 손님의 손찌검엔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목에 핏대까지 세우던 이해강의 친구 이경민이 원장에게 혼나고 싶냔 이해강의 한마디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냉탕을 나갔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라니까. 내가 보육원에 다달이 갖다주는 쌀을 먹고 사는 새끼가 말이야!”


나체의 중년 남자는 냉탕에서 이경민을 쫓아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혀를 차며 온갖 말을 해댔다.


‘치사한 새끼!’


이경민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원장에게 혼나는 게 싫어 꾹 참았다.


‘휴······.’


기적적으로 수십 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이해강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경민과 함께 탈의실로 나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온몸을 꼬집어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영화 속 주인공처럼 회귀라도 한 걸까?’


죽는 와중에도 자식 생각만 하던 이해강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씨발 돈 아까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떡볶이를 먹었지!”


‘그래. 냉탕에서 수영하며 놀아보겠다고 떡볶이도 포기하고 목욕탕에 다녔었지.’


그는 몸만 어려진 게 아니라는 듯 옛 추억에 젖어 배시시 웃었다.


“뭐 씨발?”


그런데 냉탕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쌀집 아저씨가 탈의실로 나오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시 한번 말해봐.”

“아저씨한테 한 말 아닌데요?”

“그럼 누구한테 한 말인데?”

“그냥 한 말이에요!”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걸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 어디서 어른한테 소리를 질러!”


쌀집 아저씨의 분노는 전염병처럼 목욕탕 손님 전체에게 번져갔다.


‘이게 꿈이 아니면 지옥에 떨어진 건가?’


이해강이 마른침을 삼키며 쌀집 아저씨의 옹졸한 복수가 일으켰던 나비효과를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그가 다시 한번 쌀집 아저씨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정의 정도를 떠나 중년의 남자가 이제 막 국민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벗은 몸으로 수십 명 앞에서 허리까지 숙이며 사과하는데 사과를 안 받아줄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너 병신이야?”


그런데 이경민이 조용히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발로 걷어찼다.


“자꾸 뭐가 죄송하다는 건데! 죄송할 사람은 저 아저씨잖아!”


‘망했다······.’


“냉탕에 오줌을 싼 건 우리가 아니라 저 아저씨라고!”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아저씨가 오줌을 싸니까 그 오줌을 탕 밖으로 퍼낸 거라고요!”


철썩!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쌀집 아저씨의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는 거고. 그는 여덟 살 꼬마 이경민을 두들겨 팰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지 마세요!”

“꼴에 친구라고 감싸는 거냐?”


그에겐 이경민과 이해강 모두를 두들겨 팰 힘이 있었다.


“아이고 형님, 그만 하십시오! 이러다 애들 잡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목욕탕에 있는 모두가 중년 남자에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두 아이를 가만히 지켜볼 만큼 매정하진 않다는 사실이었다.


‘쌀은 어떡하지?’


이해강은 쌀집 아저씨의 주먹보다 옹졸한 복수가 무서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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