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엔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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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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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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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의 피아노 천재

DUMMY

* * *


‘이런 애들도 아는 게 피아노의 위대함이지.’


고아들에게 쇼팽 녹턴 2번을 연주해 준 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쭉 훑으며 씨익 웃었다.


“저도 쳐볼래요!”


하지만 이들의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도대체 피아노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연주가 끝나자마자 자기도 피아노를 쳐보겠다고 달려드는 아이들의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워본 적도 없는 피아노를 도대체 어떻게 친다는 거지?”


그녀는 피아노에 대한 존경심이 넘치고 자신의 연주 실력에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으로서 피아노를 아무나 칠 수 있는 악기 정도로 여기는 듯한 아이들의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칠 수 있어요!”


자신감이라기보단 객기에 가까운 태도가 특히 그랬다.


“건반은 두드릴 수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막 두드린다고 음악이 되는 건 아니야.”


그녀는 피아노 문외한의 연주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려주겠다는 듯 피아노를 마구 두드렸다.


“하지만 배우면 너희도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할 수 있지.”


그렇다고 그녀가 보육원에 기증한 피아노를 독점하려는 건 아니었다.


“우와!”


그녀는 피아노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아이들도 쉽게 따라 칠 수 있는 젓가락 행진곡의 도입부를 연주하며 아이들에게 피아노는 장난감이 아닌 악기라는 걸 제대로 알려주었다.


“이렇게 한번 쳐볼 사람?”

“저요!”


질서라는 게 없이 피아노로 손을 뻗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위로 들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그래. 네가 쳐보자.”


그녀는 손을 든 아이 중 가장 덩치가 큰 아이를 피아노 앞에 앉혔다. 아이는 가장 성숙한 아이답게 손가락 두 개면 되는 젓가락 행진곡의 도입부를 아주 훌륭히 소화했다.


“그럼 이제 이것도 한번 쳐볼래?”


하지만 진짜 젓가락 행진곡은 손가락 두 개만으론 부족한 곡이었다.


“어······.”


음악은 아름답지만, 어려운 것이라는 게 다시 한번 증명되자 그녀와 함께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천천히 해보자.”


자기가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 보여주러 온 것만 같았던 그녀가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재능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해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 * *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보육원장 강만식은 봉사자의 피아노 레슨이 끝나자마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도 감사합니다. 아이들 덕분에 음악의 위대함도 확인하고. 음악 덕분에 아이들의 위대함도 확인해서 즐거웠거든요.”


사실 그녀는 회사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보육원의 일일 피아노 선생님이 된 상황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솔직히 고아들한테 피아노는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피아노의 대중화를 위해 보육원에 피아노를 기증하자고 했을 때, 말은 못 했지만, 이런 탁상공론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행복보육원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온갖 보육원이 ‘온누리악기’의 업라이트 피아노를 기증받은 건, 온누리악기의 사회 환원책이자 마케팅 전략 덕분이었다.


“아무리 피아노가 고아들이 치는 악기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리 없는 악기라고 해도 돼지 목의 진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보니 피아노가 아이들의 훌륭한 목표는 되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손가락 두 개면 칠 수 있는 젓가락 행진곡의 도입부를 치다 열 손가락이 필요한 젓가락 행진곡이 치고 싶어진 아이들은 진심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나아가 그녀처럼 언젠간 쇼팽의 녹턴 2번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싶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라도 헛짓거리를 할 수 없는 거죠.”

“사치 맞습니다.”


원장이 그녀가 느낀 걸 못 느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으로 보육원에 사는 고아들의 인생이 달라질 순 없었다.


“고작 짜장면과 탕수육에 밀린 피아노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건······.”

“뭣보다 선생님 말씀처럼 피아노는 아름답지만 어렵죠. 젓가락 행진곡은 어찌어찌 칠 수 있게 돼도 그다음은 어떨까요?”

“음······.”

“게다가 하농은 고통스럽죠.”


그가 피아노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하농의 연습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칠 수 있었어?’


원생만큼이나 원장을 무시하고 있던 그녀가 깜짝 놀랐다.


“이 보육원은 피아노보다 쌀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쌀보다 옷을 바라죠. 그런데 보육원이 후원품을 가릴 순 없으니 쌀도 옷도 아닌 피아노가 생겼을 뿐입니다.”

“아, 안 그래도 그 부분은 회사가 조만간······.”


클래식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의 작은 악기회사가 전국의 보육원에 피아노를 기증한 건 명백한 부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육원이 바라는 형태의 후원을 약속해 줄 순 없었다.

그럼에도 온누리악기가 이런 모험수를 던진 건, 고아도 피아노를 치는데, 부모가 있는 집안의 아이는 피아노를 더 쳐야 하는 것 아니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마침 대한민국은 집집마다 피아노를 들일 형편은 안 돼도 자녀들에게 피아노 학원 정도는 보낼 여유가 있었다.


“이 피아노를 파는 게 온누리악기에 실례가 되는 일일까요?”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원장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군.’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해강이 피식하며 나 홀로 텅 빈 피아노 방에 들어왔다.


‘이번 생에도 마음 편히 보육원에서 피아노를 칠 순 없겠네.’


그의 손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피아노 조율사의 연장통이 들려 있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칠 수 있으니까.’


원장은 그에게 마음껏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라도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된 그가 피아노로 할 수 있는 건 동요 반주와 피아노 조율뿐이었다.

어려운 곡을 치기에 그의 손은 너무 굳어 있었고. 그는 이 한을 피아노 조율사가 되는 것으로 풀었다.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게 피아노라도 조율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피아노 조율로 돈을 벌러 다닌 건 아니었지만, 근무하던 학교의 피아노와 지인들의 피아노 정도는 고치며 살았다.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니?”


그런데 피아노 조율이 다 마무리되려던 찰나, 온누리악기 직원과 함께 방을 떠났던 원장이 나타났다.


‘난감하게 됐군······. 그런데 원장님도 설마 조율을 하러 온 건가?’


원장의 손엔 보육원의 연장통이 들려 있었다.


“학교에 있는 피아노랑은 다른 소리가 나서요.”

“네가 그걸 느꼈다고?”

“네.”


‘대단하군.’


그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너무 미세한 문제라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나 홀로 피아노를 들여다보러 온 원장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직접 이 피아노를 고치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를 칭찬할 순 없었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의 쌀과 옷이 되어야 할 피아노가 쓰레기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다 더 고장이 나면······.”


이에 원장이 다급하게 피아노의 건반 하나를 눌렀다.


‘말도 안 돼······.’


“역시 기술이 최고인가 봐요.”


이해강은 민망한 변명 한마디를 뱉고 도망치듯 문으로 향했다.

피아노는 지식의 영역이라기보단 지능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라 ‘천재’라는 말로 어찌어찌 설명이 가능했지만, 조율은 지능보단 지식에 가까운 영역이라 천재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해서였다.


“잠깐!”


그런데 원장이 도망치는 그를 붙잡았다.


“왜 아깐 가만히 있었지?”

“원장님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후원자 자존심은 건드리는 거 아니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걸 물은 게 아니다.”

“네?”

“왜 손을 들지 않았니? 왜 피아노를 쳐보겠다고 손을 들지 않았지?”


피아노 방에 있던 모든 아이가 피아노를 쳐보고 싶어 손을 들었다. 피아노를 기증하러 온 온누리악기 직원을 눈뜬장님 취급하던 이경민조차 그랬다.

하지만 이해강은 그러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후원자 자존심은 건드리는 거 아니니까요.”

“아까 그 아가씨보다 네가 더 잘 친다?”

“네.”


‘진짤까?’


원장은 하농의 벽은 물론, 체르니의 벽도 넘었던 사람으로서 그의 실력이 궁금했다.


‘평생 피아노 밖에서 살다 이제 막 학교에서 피아노를 접한 놈이 악보도 없이 쇼팽의 녹턴 2번을 연주할 수 있는 성인보다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한번 쳐봐.”


‘천재라는 걸까?’


그는 이해강의 연주가 기대되면서 걱정됐다.


‘만약 천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피아노 천재 이해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네.”


반면 이해강은 이번에야말로 보육원에서도 마음껏 피아노를 치기 위해 각을 잡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안 그래도 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꿈을 꺾은 것이 아니라 꿈을 미뤘다가 꿈을 잃은 한 남자가 마침내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절대음감인 걸까?’


원장은 이해강이 악보 없이 피아노 건반으로 손을 뻗자, 마른침을 삼키며 쇼팽의 녹턴 2번이 연주되길 기다렸다.


‘잠깐, 이 곡은······.’


하지만 그를 반긴 건 쇼팽의 녹턴이 아닌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었다.


‘이 몸의 손가락도 굳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니었네요.’


여덟 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였지만, 피아니스트를 꿈꾸기엔 너무 늦은 나이인 것도 사실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떠나 네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해야 될 수 있는 게 피아니스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역시 원장님은 제 은인인가 봅니다.’


그럼에도 그가 네 살부터 피아노를 친 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는 건, 피아노만큼이나 섬세한 손가락이 필요한 그림이 이해강의 특기라서였다.


‘원장님이 왼손잡이인 절, 오른손잡이로 만들려고 애써주신 덕분에 제 손가락이 이렇게 말랑말랑하네요.’


그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연필은 오른손으로 쥐었다. 원장의 강요 때문이었다. 하지만 밥은 왼손으로 먹었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덕분에 그는 양손잡이가 되었고. 조기교육의 부재에 발목잡혀 꿈을 잃을 일은 없었다.


* * *


‘어느 정도인 걸까?’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갖고 음대에 진학했지만, 여러 이유로 악기회사에서 홍보와 영업을 담당하며 살게 된 박소라가 보육원장의 진짜 피아노 실력을 궁금해했다.


‘맛만 본 수준은 아닌 것 같던데······.’


조금 전 들은 하농 연습곡만으로는 그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그의 손은 왠지 대단한 피아니스트의 손 같아 보였다.

고생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피아노를 많이 쳐서, 잘 쳐서 못생겨진 손 같았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음대생 시절에도 들어본 적 없던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그녀의 귀를 때렸다.


“어!”


이 곡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보육원에 도착하자마자 피아노를 등진 아이들마저 다시 피아노 방으로 끌어들일 마성의 힘이 있었다.


“더 잘 친다!”


이는 곧 연주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누구지?’


온누리악기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해강이다!”


이해강의 단짝이자 이해강에게 직접 ‘내가 더 잘 쳐’라는 얘기를 들은 이경민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해강의 이름을 불렀다.


‘지, 진짜 보육원에 피아노 천재가 살고 있었다고?’


온누리악기의 진짜 노림수는 고아들도 피아노를 치는데 내 자식도 피아노를 쳐야지 따위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던 온누리악기 직원 모두가 피아노 방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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