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천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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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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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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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천괴공 3화

DUMMY

‘거의 다 됐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화련이 나를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눈을 떠 안심시키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이미 운공이 시작된 마당이라 중간에 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내 목숨을 포기하면 비참한 말로는 불을 보듯 뻔하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련이 기다려 주길 바랄 수밖에.


“죄인은 당장 문을 열어라!”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난 범법자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죄목을 뒤집어썼는지 알 수 없지만.


고작 알고 있는 거라곤 아무도 죽인 일이 없다는 것.


게다가 밖에서 소리를 지르는 인물은 안면이 있다.


자경단의 당주 이각.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할 이각 당주까지 온 걸 보면 큰일인 듯한데. 자경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변고를 당한 인물은 없는데.’


과거의 행적을 살펴봐도 떠오르는 이가 없다.


대응 못 하는 내 심정과 달리 밖은 아까보다 더 소란스럽다.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주변으로 몰려드는 기척.


도주를 우려해 신병을 구속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되었다.


도대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은 없다.


“시녀들은 무엇 하느냐! 문을 열어라! 만일 범인이 도주하면 너희도 문책을 면치 못한다.”


억울한 누명을 덮어씌우겠다는 명백한 발언.


아무래도 내 휘하에 있는 전부를 잡으려는 모양새다.


너무 불합리했다.


사전 통보도 없이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려 하다니.


내 사람이 아닌 이가 근처에 있었다면 겁에 질려 투항했으리라.


‘문이 열리는 순간 나도 사망이었겠지. 제길.’


뾰족한 수가 없다.


당장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깥은 시끄러워졌다.


설마 부수고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련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흠칫하며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화련도 숨이 멎을 정도로 끔찍한 순간이리라.


마음을 굳게 먹거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다오.


‘오오. 드디어···.’


다행스럽게도 나의 단전은 더디지만 확실하게 완성되어 갔다.


내력을 쌓은 경험이 없어 생각보다 오래 걸린 거다.


게다가 술과 연초를 많이 한 몸이라 노폐물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손해가 막심했지만 일주천 한 내공이 기반을 다졌다.


손톱만 한 크기의 내공임에도 용솟음치는 기운도 상당했고.


“괜찮으세요?”


나와 눈이 마주친 화련의 첫마디다.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눈물도 글썽인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해명하고 싶은 표정.


하지만 내 안위만을 생각한 화련의 배려가 둘을 살렸다.


잘 견뎌내고 참아낸 거다.


“애썼다. 네가 있어 참 다행이야.”


나의 한마디에 화련의 표정도 펴졌다.


살포시 지어지는 미소.


하지만 아직 일단락된 게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인지 조금 씁쓸한 웃음이었지만.


그거면 되었다.


“문을 열까요?”


화련의 손등이 떨린다.


모함이라는 걸 알지만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건 분명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고.


유약한 과거의 자경이었다면 화련보다도 더 멘탈이 갈려나갔을 거다.


지금의 나라서 케어가 가능한 부분이지만.


“손님이 왔는데 맞아줘야지. 걱정말고 문을 열어다오.”

“네.”

화련도 내 말에 안심이 된 듯했다.


그래 아까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해서 아쉽지만 어쨌든 당사자에게 해주었기에 후련했다.


문을 여는 화련을 뒤로하고 나는 곧바로 금희를 벽쪽에 숨겼다.


혈을 눌러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면서.


“왜 이렇게 늦는 것이냐!”


들어선 이는 예상했던 대로 이각 당주였다.


땅딸막한 키에 사나운 눈매.


당장이라도 화련을 잡아먹을 듯 위협적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버지 곁을 지키지 않는 것부터 수상했지만 더욱 수상한 게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왜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분홍색이지? 화산의 무공을 전수 받은 걸까? 무슨 인연으로?’


이류의 경지였지만 분명했다.


화산에서 배우는 소청기공(小淸氣功).


내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을 때.


화련을 밀치며 서늘한 안광을 내비치는 사내가 들어섰다.


한껏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는 이는 대경이었다.


“죄인이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까? 무릎을 꿇지 않고.”


조금 나른한 목소리.


다만 목소리에서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내 죄는 낱낱이 파헤쳐졌다고.


발뺌할 생각일랑 말라는 비웃음과 함께.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한 포즈를 취했다.


“나를 말하는 것이오?”

“너희 집에 너 말고 누가 또 있겠냐. 이제는 머리까지 돌아버린 것이냐.”


물을 걸 물으라는 표정.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내부에서 울렸다.


그러다 대경의 시선이 나아가 멈춘 곳.


옥갑이 덩그러니 놓아져 있었다.


미소는 더욱 진득해진다.


“내가 왜 죄인이지? 누가 죽기라도 했단 말이오?”


이 시점에 죽은 이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죽일 리도 없는 일.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해를 끼칠 일은 없다.


도대체 무슨 누명을 씌우려는 걸까.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네가 입을 열지 않는다 해도 있는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지. 그래 입을 다물어라. 그럴수록 나는 더 즐거우니까.”

“형이야말로 말 돌리지 말고 확답을 얘기해. 무슨 일로 나를 죄인으로 모는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내가 확인 시켜줘? 뭐 좋아. 네 죄는 횡령에 살인죄다. 이러면 이해가 빠르겠지?”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횡령은 뭐고.


살인은 왜 때문에 얽힌 건데.


그러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너무도 불안했다.


“내가 뭘 횡령했다는 거지? 집 밖을 나선 적도 없는데?”


일단은 잡념을 뒤로 미뤄뒀다.


아니 자경의 삶을 되돌아보며 외면했다.


지금은 보다 밝은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


늘상 병상에만 누워 있던 자경은 어둠이 자리한 신색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운신도 버거웠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양초와 같은 삶.


그런 내가 횡령에 살인이라.


억측도 이런 억측이 없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지만 이들도 머리가 있는 이들.


속이고자 한다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할 거다.


그걸 반박할 수 있는 카드는 내가 증명할 수 있냐 없냐 정도고.


“아버지께서 아끼시던 금고가 보이지 않는데.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


그런데 뭔가 허술했다.


고작 금고가 없어진 걸로 나를 몰아가다니.


아버지와 나는 당연히 위치를 공유해 알고 있지만.


이건 어디로 보나 아버지의 명령이 아니었다.


금고의 위치는 이곳이니까 말이다.


“금고가 없어졌다면 아버지께 여쭤보면 될 일이잖아. 무슨 문제야. 아. 아버지께서 요새 건망증이 심해지신 모양이네. 형 보고 찾아오라 하신 걸 보면.”


그럴 일은 없지만 대경을 비웃어 주었다.


확실히 믿는 쪽은 나였으니까.


그걸 아는 대경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끊는 주전자처럼 시뻘겋게.


“그래. 나에게 맡기셨었지.”


대경의 말에서 의문점을 가졌다.


맡겼다도 아니고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 아버지께 변고가 생긴 상황.


설마 살인죄가 아버지를 말함인가?


그것 또한 억측이라며 부정하던 와중 대경의 입이 열렸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네 방을 자주 드나드셨지.”


의심스러운 눈빛.


모함하려다 돌연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찾는 것은 금고.


아버지와 연관이 된 비밀 장치였다.


내가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했지만 생각처럼 될까.


“나를 더 사랑하셨으니까. 정 의심되면 아버지께 가자. 모든 게 모함······.”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사랑했던 네 손에. 증거품도 아버지의 손에서 발견되었고. 그 증거는 명백한 너를 가리키고 있었어. 무슨 말인지 알아? 답답한 놈아.”

“뭐? 돌아가셔?”


그래서 자신만만했구나.


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대겠다니.


하지만 나와 관련 있는 물품이 뭘까.


이각 당주가 바로 알아차릴 만한 건.


갈피가 잡힐 리 없는 와중 이각 당주가 내게 다가왔다.


“사실입니다. 자경 도련님. 그리고 대주님의 손에 들려 있던 건데 보시겠습니까?”


아버지의 호위를 맡는 당주.


언제나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는 대경에게 속은 걸까.


아니라면 동참하고 있는 걸까.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나는 놀라고 말았다.


‘언제 뜯어낸 거지. 분명 금희는 내공이······.’


이각이 손바닥을 내밀어 보인 물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색상이었다.


심지어 저 부위는 분명 카라 쪽이었다.


불현 듯 뒤에 숨어 있던 인기척을 떠올렸다.


저만한 기척이 다가오면 큰일이라 여겼던 존재.


내가 그를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밑작업이 끝나 돌아간 거다.


‘제길. 든든한 뒷배를 두고 있었군. 이러면 내가 불리한데.’


아무리 내가 무죄를 입증하려 해도 이만한 증거품이라면 발뺌하긴 쉽지 않다.


게다가 이각 당주가 의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여론을 내 쪽으로 바꾸는 게 시급했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아버지를 해할 만한 명분은 약했다.


‘차기 자경 상단주의 자리를 물려받는데 내가 그럴 여지가 없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각 당주가 적극적으로 나를 제압하지 않는 점.


같이 온 호위들이 관망하는 점을 볼 때.


분명 나를 범인으로 몰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대경의 여론몰이가 성공적이었다면 난 이미 제압되었을 거다.


“대주님께서 꼭 쥐고 계시던 겁니다. 게다가 지금 보니 자경 도련님의 카라 쪽이 비어 있네요,”


가만히 카라를 만져본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정말로 비어 있었다.


자르고 도망가면서 방심한 상대의 기척을 감지한 거였나.


수련의 성과 운운하던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 보였다.


건방 떨다 하루아침에 운명할 뻔했으니까.


“어라? 진짜네. 이러면 할 말 없지?”


대경도 증거품과 나를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저건 연기가 틀림없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하는 말은 결국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확신범이 되었다는 소리.


내가 만약 과거의 자경처럼 순진했다면 억울하다며 항변만으로 끝났을 터.


아니 성격상 심리전보다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겠지.


물론 역으로 제압되어 갖은 고문 끝에 이용당했을 테고.


“어디 숨겼어? 좋게 말할 때 바로 말하자. 동생아.”


입술을 비틀며 웃는 대경은 평소 쓰지 않던 동생까지 운운한다.


누가 보면 정말 의좋은 형제로 알 법한 부드러운 어조.


허나 속내를 아는 나는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둔 게 후회되었다.


아버지께서 대경을 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애초부터 자경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거지.’


그래. 조금 많이 서운하긴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지.


내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가장 신나할 건 대경.


그러면 과거처럼 자경 상단은 무너져 내리게 된다.



“아버지를 뵙게 해줘. 범인은 내가 알 것 같으니까.”

“무슨 소리야? 범인은 넌데? 그리고 누구를 만나. 뻔뻔하기 그지없네.”


대경이 이를 갈았다.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뻔했다.


내가 만일 증거를 수집해서 들통난다면 일이 틀어지니까.


그걸 모르는 이각 당주는 수상쩍은 시선으로 나를 대했다.


내가 범인인데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면서.


“자경 도련님께서는 피해자를 만나실 수 없습니다.”


이각 당주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만나려면 누명이든 아니든 살인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횡령은 어떻게 빼볼 수 있겠지만.


살인은 확신하는 증거품이 있으니 여러모로 불리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증인을 내세우는 건 가능하겠죠.”

“이제와서 증인이라니. 누가 네 뜻을 따라주는데.”


비웃어 보라지.


내가 제시할 증인은 너에게도 확실하게 어필 될 테니까.


나는 속으로 쿡쿡거리며 이각 당주의 허락을 구했다.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하고 만다.


누명을 풀고 당당히 아버지를 알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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