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괴담 사냥꾼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새글

연진(連進)
작품등록일 :
2024.09.17 07:51
최근연재일 :
2024.09.19 20:0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95
추천수 :
8
글자수 :
33,599

작성
24.09.19 20:05
조회
9
추천
2
글자
12쪽

6화 마지막 훈련

DUMMY

6화



다음날 아침.


“으으. 삭신이야.”


유진은 쑤셔오는 허리를 주물대며 일어났다. 그슨대에게 직접적으로 맞은 적은 없었지만, 그와 대치하는 모든 과정이 근육을 과하게 자극했다. 특히 스트레칭도 하지 않은 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니 작은 움직임에도 무리가 갔다.


그 결과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온몸의 근육과 뺘들이 쑤셨다.


“여기는···숙소인가 보네.”


주변을 끔벅 바라본 유진은 길거리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평소 한울 성격상 길거리에 버리고 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잠시 침대에 미역처럼 퍼져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마치 꿈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살던 나였다. 비록 부모님이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곤 하지만, 민속 요괴와 싸우는 것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크립티드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


“지하에 있던 그 노인보다는 확실히 무섭지 않았어. 내 담력이 는 걸까? 아니면 크립티드의 수준이 낮아저서 그런 걸까.”


크립티드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공포는 공포 영화를 보고 느끼는 공포와 차원이 다르다.


천적을 만난 느낌.

죽음이 발끝부터 집어 삼키며 심장을 움켜쥔다.

고양이 앞 생쥐가 된 것처럼 머리가 새하얘지고 본능이 도망치라 얘기한다.


특히 처음 노인을 봤을 때 느꼈던 공포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비록 짧은 대면이었음에도 아직까지 그날의 공포가 생생했다.


반면 이번에 본 그슨대는 노인에 비해 그 공포감이 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포보다는 무력감이 더욱 인상 깊었다.


“언제까지 잘 거지?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만?”


문을 열고 들어온 한울이 커튼을 걷으며 중얼거렸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진의 볼을 때렸다.


슬쩍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1시 31분.

기상 시간을 훌쩍 넘겼다는 걸 안 유진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시간 개념을 중시하는 한울이었다. 여태 늦잠을 자는 날에는 더욱 빨리 잠들 수 있게 추가 훈련을 진행했다.


“죄, 죄송합니다!”

“오늘은 봐주도록 하지. 어서 씻고 나와라. 가볼 곳이 있으니.”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에 늦게 깨운 것도 조금 이상한데, 아침부터 가볼 곳이 있다니. 설마 그슨데랑 관련된 곳인가?


아침의 유산소와 식사를 강조하던 한울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자 유진은 그 행동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대충 씻고 밖으로 나갔다.

1층에서 담배를 태우던 한울을 뒤따랐다.


그가 멈춘 곳은 인근 산골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도시가 펼쳐졌다. 꽤나 장관이었다.


한울이 이런걸 보여주려고 오라고 했을 리는 없으니.


“지금부터 각오 단단히 하고 들어와라.”


거대한 바위 뒤쪽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왔다.


“여기에 웬 구멍이 있는 겁니까?”

“그슨데가 파놓은 구멍이다.”


유진은 갑자기 스산해지는 분위기에 긴장하며 그를 따라갔다.

그 끝엔 알 수 없는 구덩이 여러 개가 나왔다.


이게 뭐냐고 눈짓했지만, 돌아오는 건 땅을 파보라는 명령 뿐.


아까부터 자꾸만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것에 불만을 가진 채로 땅을 팠다.


슥. 슥. 슥.

한울이 건낸 삽으로 한참 동안 팠다. 그 끝에 둔탁한 뭔가가 걸렸다.


흙 표면 위로 튀어나온 새하얀 무언가.


이게 뭐지? 돌인가?


처음엔 아무 생각 팠다. 하지만 곧 그 정체에 대해 알았을 때 유진은 더리가 풀려 주저 앉았다.


당연히 돌이라 생각했던 하얀색의 정체는 이미 살점이 썩어 사라진, 백골이었다.


공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골이고 하지만,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이, 이게 왜 여기에 있습니까?”

“오면서 내가 말했었지. 총 11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희생자들이다.”

“미친.”


유진이 놀라든 말든 한울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곧 지원부에서 시신을 수습해 갈 거다. 그전까지 충분히 보고 적응해라. 크립티드랑 싸우면 사람 시체는 지겹도록 봐야 하니.”


한울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자리를 비켜줬다.

사람의 죽음은 제아무리 정신력 강한 사람이라도 사람의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법이다.


특히 유진처럼 어리고 경험 적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버텨내겠지.”


한울은 그리 중얼거렸다.

유진을 단련시키며 누구보다 그의 진면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니까 보일 수 있는 믿음이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돛대를 피려 하는데 뒤에서 사람 인기척이 나타났다.


“거 적당히 좀 피십쑈. 몸도 안 좋은 양반이.”

“오늘은 빨리 오는군.”

“저희는 원래 빨리 다녔습니다. 당신이 유독 깐깐해서 그렇지.”


평범한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남성 뒤에 모였다.

그들은 모두 원탁 한국 지부의 지원팀의 일원이었다.


한울 앞에 선 중절모 쓴 노인은 한울에게 뺏은 담배를 본인의 입에 가져다 넣었다.


“이제부터 수거하면 되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라.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들어가 있는 사람이요? 유가족입니까?”

“아니, 어쩌다 생긴 제자. 이번 그슨데도 사실 그놈 혼자서 쓰러뜨렸지.”


한울의 말에 중절모 쓴 남성이 감탄했다.


이번에 임무에 투입된 사람은 한울 뿐이었으니 제자라는 놈은 아직 훈련소도 입소하지 못한 애송이일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그슨데가 5등급이라 해도 위험도가 있어 격리 분류된 녀석인데, 그놈을 훈련소도 입소하지 못한 병아리가 해치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다른 사람이 했다면 믿지 않았을 만한 일이다.


“그럼 저 안에 있다는 건···아아, 그렇군요. 이겨내실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사람의 시체를 본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정신에 큰 충격을 준다.

한울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였다.


저벅 저벅 저벅.

어둠으로 물든 곳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조금은 어두워진 유진이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괜찮나?”

“예. 고작 유골이지 않습니까.”


한울은 무심히 유진의 상태를 확인하곤 눈을 깜빡였다. 신호를 알아차린 지원팀장은 팀원을 이끌고 곳곳으로 퍼졌다.


“우리는 슬슬 돌아가지.”

“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복귀했다.

차안은 고요했다.

한울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거다. 기본적으로 격리 등급 이상의 개체들이 발견되는 이유는 모두 민간인들의 희생 덕분이거든.”

“···.”

“백골은 양호한 편이지, 토막난 시체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훼손돼 신분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묻고 싶은게 뭡니까.”

“내 말은 그럼에도 이 일을 하고 싶냐는 거다.”


원탁의 요원으로 살아가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직무도 아니기에 명성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그나마 돈은 잘 벌 수 있지만, 때로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특히 이런 목숨을 거는 일을 고작 돈 따위로 제단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원들은 정신과 상담을 꾸준히 받고, 은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미건조한 한울의 말에는 유진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걸 읽은 유진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그슨데를 직접 마주하고 알았어. 크립티드에게 살해당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는 걸 말이야.’


천적 앞에 놓인 듯한 공포.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괴물에 먹혀가는 고통은 단순히 죽음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필시 부모님도 그렇게 처절하게 죽어갔겠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유진은 숨으로 감정을 몰아냈다.


“하겠습니다.”


고동색 눈동자에선 어떤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울은 그 당찬 대답에 피식 웃었다.


“좋다. 그럼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대한 굴려주지.”

“···그, 그건.”

“싫나? 싫으면 관두고.”

“하아. 알겠습니다. 하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다부진 각오가 강도 높은 훈련의 고통을 줄여주진 않았다.


* * *

남은 시간 동안 유진은 정말 죽기 직전까지 훈련했다.


회복 앰플과 근압축 앰플 덕에 아무리 운동을 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특히 유진의 신체는 폭발적인 근성장을 보여주고 있어 매 훈련마다 강도가 올라갔다.


마지막 훈련에는 첫 훈련의 세배 정도의 강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 오늘 좀 잘생긴 듯.”


유진은 웃통을 벗은 채로 거울 앞에 섰다.


넓게 뻗어진 어깨와 선명히 보이는 식스펙. 근압축제 덕분에 보디 빌더처럼 우락부락하지 않고, 딱 적당히 보기 좋은 몸이 됐다.


그가 힘을 줄 때마다 각 근육에서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운동을 하기 전과 비교했을 때 대략 4배 이상 강해진 것 같다. 당시에도 꾸준히 헬스를 했다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치다.


모르긴 몰라도 현존하는 민간인 중 가장 쎈 스트롱맨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거다. 어쩌면 뛰어넘을 수도 있지.


댕댕.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유진은 서둘러 옷을 입고 파블로스의 개마냥 달려갔다.


저 종이 울리고 5분 내로 집합하지 않으면 그날은···죽는다.

죽을 정도로 훈련하는 게 아니라 진짜 죽는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던 걸 생각하면 진짜···아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려왔다.


그렇게 마당으로 나가니 한울이 명상을 하고 있었다.


“왔냐?”

“예. 스승님.”

“그래. 내일이 훈련소 입소 날인 건 기억하고 있겠지?”

“그럼요.”


이 지옥 같은 훈련에서 벗어나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동안 눈치도 조금 키웠던 유진이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가면 많은 일들이 있을 거다. 시험 내용이 다 달라져 말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대신 이걸 가져가라.”


한울은 나무함 하나를 건넸다.

유진은 양손으로 받아들고 공손히 함을 열었다.


그 안엔 은색의 너클 한 쌍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건···.”

“여태 여러 네가 배운 무기는 총 세 가지다. 검과 총, 너클. 그 중에 가장 어올린다고 생각하는 무기를 선물로 준 거다.”


유진은 선천적으로 저항력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특유의 저항력을 믿고 싸울 수 있다.


이때 본신의 저항력을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게 바로 너클을 이용한 근접 전투다.


실제로 그슨데를 쓰러뜨렸을 당시에도 유진은 본신의 저항력을 이용해 놈의 코어를 공격하지 않았나.


그날 이후 한울은 그에게 근접 전투 위주로 훈련을 이어갔다.


밋밋한 무늬. 그곳에 써진 유진이라는 이름.


“크윽. 스승님.”

“울지 마라.”

“울진 않습니다.”

“···.”


그냥 예의상 지은 표정이었다.

한울은 유진을 흘낏 째려봤지만, 이미 저 눈초리를 수백 번도 더 본 유진은 자연스레 회피했다.


“마음 같아선 크립티드 실전 훈련을 더 시키고 싶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벌써 세 번째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슨데 이후 한울은 최소한 한 번 정도 실전 훈련을 시켜주고자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과 이런저런 환경이 합쳐져 결국 더 이상의 실전을 거치지 못했다.


그 대신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훈련을 하긴 했지만, 실전을 겪는 것과 겪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저 아래에서 정장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유진을 훈련소로 데리고 갈 교관이다.


“슬슬 갈 때가 됐군. 이만 가봐라.”

“···.”

“다치지 말고. 우리의 인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부디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기 바란다.”


무뚝뚝한 한울이 건낸 최대의 인사였다.

순간 울컥한 유진의 머릿속으로 그간 한달 동안의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진심 반 장난 반 섞인 심정으로 무릎 꿇은 채 절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괴담 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6화 마지막 훈련 NEW +1 11시간 전 10 2 12쪽
5 5화 그슨대(2) 24.09.18 13 1 12쪽
4 4화 그슨대(1) +1 24.09.17 14 2 12쪽
3 3화 나 좀 죽여줘 24.09.17 17 1 14쪽
2 2화 한울 24.09.17 17 1 11쪽
1 1화 망태 24.09.17 25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