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의 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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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성빛날욱
그림/삽화
별성빛날욱
작품등록일 :
2024.09.20 02:25
최근연재일 :
2024.09.20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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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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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등장

DUMMY

여기는 홍대. 우리는 이곳의 개들이다.


사람들은 나를 덩치라고 부른다, 올해로 스무 살. 나는 이곳에서 이름을 날리고 홍대의 왕이 되려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왔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아마추어 레슬링을 배웠다. 한때는 유망한 선수로 주목받았지만,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말쯤이었다. 그때부터 운동 대신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니까.


부천에서 주먹 좀 쓴다던 애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싸움에 빠져들었다. 그놈들 앞에서 나의 피지컬을 자랑하면 대부분 눈도 못 마주치고 먼저 고개를 숙였다. 싸움판에서 두려울 건 없었다. 한 놈만 패도 두세 명은 도망가거나 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때의 나는 싸움 그 자체를 즐겼다. 나보다 강한 놈을 보면, 그놈에게 ‘위에는 위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홍대라는 동네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고등학교 때 주먹 좀 썼던 놈들이 모여드는 곳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진짜 막다른 골목까지 간 놈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다. 무술을 연마한 놈들, 격투기를 몸에 새긴 놈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싸움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주먹이 통했다. 그게 내겐 익숙한 환경이었다.


홍대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왕이 되고 싶었다. 그곳에서의 첫걸음은 이곳의 파벌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홍대에는 크게 세 가지 파벌이 있었다. 각 파벌은 성격과 색깔이 뚜렷하게 나뉘었고,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홍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음악하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겉보기엔 자유롭고 여유롭게 보였지만, 술이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졌다. 악기를 메고 노래를 부르며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던 놈들은, 술기운에 시비가 붙기만 하면 금방 이성을 잃고 주먹을 날렸다. 그들의 싸움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었다. 한 번 덤벼들면 물불 안 가리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놈들이었다. 싸움도 리듬을 타는 듯했다. 그들과 엮이면 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두 번째 그룹은 보드 타는 놈들 과 자전거 타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몸부터 달랐다. 보드를 타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길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자유를 갈망하는 야수 같았다. 대부분이 집안이 좀 사는 놈들이었고, 돈과 권력을 믿고 거침없이 날뛰었다. 이들은 싸움에서 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에 겁이 없었다. 그들에겐 물러설 이유도 없고, 뒷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주먹질도 그저 새로운 ‘스릴’을 느끼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예술하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한 마디로 ‘이상한 놈들’이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행위 예술을 한다는 놈들은 늘 몽롱해 보였고, 눈빛은 이미 세상을 초월한 듯했다. 겁도 없고, 두려움도 몰랐다. 마치 좀비 같았다. 싸움에선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이놈들과 싸우면, 때려도 반응이 없어서 기분이 나빴다.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고, 싸움조차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처럼 여겼다. 감정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싸움은 처음이었다.


이 세 그룹은 홍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싸움을 통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되어, 홍대의 왕좌를 차지하고 싶었다.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모두를 이기고, 정점에 서는 것.


일단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나를 알리는 것이었다. 악명이든 명성이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여기서 이름을 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클럽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홍대에서 ‘바운서’라는 직업이 있었다. 클럽 입구에서 티켓을 팔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맡는 놈들. 흔히 말하는 ‘문지기’ 역할이었다.


나는 홍대의 유명한 큰 클럽은 이미 거물급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입구에 서 있는 놈들은 마치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 같았다. 덩치도 어마어마하고, 타투로 온몸을 뒤덮은 놈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전과를 갖고 있거나, 엘리트 체육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들과 맞서기 전에 작은 클럽에서 내 자리를 먼저 잡기로 했다.


홍대에서 작은 힙합 클럽 하나를 찾아냈다. 그 클럽은 소규모지만 분위기가 거칠었고, 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트는 곳이었다. 몇 번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매니저가 바운서를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클럽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생긴 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입장료를 내고 지하로 향했다. 클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습하고 어두웠다. 문을 열자마자 쿵쾅거리는 힙합 비트가 내 가슴을 때렸다. 그곳엔 스모그가 자욱했고, 반나체의 여자들이 미러볼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중앙엔 반짝이는 미러볼이, 마치 무언가를 비추듯 강렬한 빛을 뿜고 있었다.


바 옆에 매니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는 나를 흘긋 보더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래, 누구더라?”


내가 2미터에 가까운 키에 150킬로그램이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데도, 그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드물었다. 대부분 나를 보고 주춤거리거나 눈을 피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저 지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번에 왔을 때 뵀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내가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매니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시골놈?”


나는 속으로 울컥했지만, 참았다. 내가 여기서 바운서 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억지로 웃으며 다시 말했다.


“네, 맞아요. 저번에 데킬라도 같이 마셨잖아요!”


매니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뭐냐? 또 놀러 온 거냐?”


나는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웃음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형, 저번에 클럽 바운서 구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제가 하면 안 될까요?”


매니저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너? 덩치만 크고 말랑말랑한 놈이 뭘 한다고? 여기서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고, 사람들 일일이 다 신경 써야 하는데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


나는 매니저의 비웃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속이 뜨거워졌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형,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드릴게요. 하루만 주시면 됩니다. 괜히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


매니저는 나를 한 번 더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야, 여기서 일하는 게 쉬운 줄 알아? 네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든, 덩치가 크든 소용없어. 문제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야. 이 바닥은 어디까지 가면 안 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거든. 덩치만 큰 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그는 마치 나를 시험하듯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형, 전 덩치로 일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기가 홍대라는 걸 알고 이곳에 왔어요. 홍대에 맞는 룰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루만 시간 주십시오. 제가 그 이상으로 보여드릴 테니까요.”


매니저는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번 해보지 뭐. 대신, 오늘 밤에 무슨 문제 생기면 네가 처리해야 한다. 이따 큰 손님 몇 명 온다고 들었으니까, 그때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감사합니다, 형.”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승리를 느꼈다. 매니저는 내 말을 반쯤만 듣는 듯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클럽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나는 입구 쪽에서 바운서로서의 첫날을 시작했다. 한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이곳의 분위기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놈들이 나타났다.


큰 손님이라고 들었던 놈들. 그들은 보드 타는 놈들이었다. 클럽 입구에 떡하니 나타난 그들은 몸에 걸친 옷만 봐도 명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눈빛도 거칠고, 말투는 거만했다. 그들 뒤에는 자전거를 끌고 온 놈들이 따르고 있었고, 마치 자신들이 이 거리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태연하게 클럽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나는 재빨리 앞으로 나가며 길을 막았다.


“여기 들어가려면 티켓을 사셔야 합니다.”


그러자 제일 앞에 서 있던 놈이, 비웃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냐? 티켓? 우리가 티켓을 사야 한다고?”


놈은 나를 밀치려 하며 말을 이었다. “비켜라. 뒈지기 싫으면 돼지 새끼야 우리 들어간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바로 서서 그를 쳐다봤다. 홍대의 싸움꾼들은 한 눈으로도 그놈이 진짜인지, 그냥 허세인지 알아챈다. 그는 나를 밀칠 만큼 용기를 낸 듯 보였지만, 내가 물러나지 않자 어딘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규칙은 규칙입니다. 티켓을 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가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순간, 놈의 얼굴이 굳었다. 옆에 있던 다른 보드 타는 놈이 갑자기 나서며 나를 밀치려 했다.


“이 새끼가 우리한테 규칙을 말하네? 비켜라니까!”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그가 나를 밀쳤지만, 그 충돌에서 밀린 건 그쪽이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힘으로 안 될 것 같은데, 너희가 이 클럽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킬 거면··· 밖에서 얘기할래?”


내 말에 놈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뒤에서 보드 타는 놈들끼리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다시 한 번 말하며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티켓을 사고 들어오든가, 아니면 다른 클럽으로 가라.”


앞에 서 있던 놈은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한 번 노려봤지만, 결국 뒤돌아섰다. "아씨발 됐다.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그냥 가자"


놈들은 그렇게 물러났다. 나는 뒤에서 매니저가 지켜보고 있는 걸 느꼈다. 그 역시 내 첫날을 주시하고 있었다.


클럽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긴 느낌이었다. 내 앞에서 누구도 건들 수 없었다.

하늘에 해가 슬슬 떠오르며 클럽이 마감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밤새 입구에서 바운서 일을 했고, 큰 문제 없이 첫날을 마칠 수 있었다. 클럽 직원들은 다들 지쳐 보였지만, 난 이상하게도 더 힘이 났다. 그때 매니저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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