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오른쪽 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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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WineFox
작품등록일 :
2024.09.2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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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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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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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언제까지 뻔한 망상에 만족할 거지?

지저분한 쾌락은 이제 지쳤잖아?

난 네가 똑똑하다는 걸 알고 있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나를 믿어봐.

지루하지는 않을 거야.


이건 아주 간단한 사고실험이니까.

듣고 생각하기만 하면 돼.


자...

너는 먼 곳을 꿈꾸고 있어.

빛조차도 도달하기 힘든 우주 저편을 가고 싶은 거야.

날아서 가든, 달려서 가든 억겁의 시간이 흐를 정도로 먼 곳을.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리고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지.


“네 신체를 원자 단위로 자를 거야. 원자 상태가 된 너를 모조리 그곳으로 옮겨,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방직해 줄게. 그동안 흐른 시간의 간극을 너는 느끼지 못해. 그저 잠깐 기억을 잃은 기분일 거야.”

이게 나의 제안이야.

그러자 너의 망설임이 거미줄을 타고 넘어오는 것이 느껴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여.

“그런데... 그곳에서 재구성된 너를 자신이라고 여길 수 있겠어?”

거미줄의 떨림이 심해져 와.

아마 부정의 의미 아닐까?


난 그렇게 다른 방법을 말해.

제안을 조금 바꿔보는 거야.

“아니면... 네 모든 것을 전부 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기억, 신체, 감정 등 온갖 정보를 말이야. 기록된 너의 정보는 그곳으로 전송될 거야. 그리고 정보를 토대로 새롭게 네 신체를 만들어내지. 이건 어떨까?”

그러자 네가 나에게 물어.

“지금 이곳에 있는 난? 나는 어떻게 되는데?”

그래, 너의 물음은 당연한 거야.

내가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사실을 말해.

“아! 네 정보가 복제되는 순간, 넌 사라질 거야.”


대답을 들은 너는 내 제안을 거절하겠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내가 죽는다면 복제된 나를 그곳으로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난 기뻐하며 말해.

“그래, 바로 그거야!”


이제 우리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섞어보자.

조금 더 특별하고 판타지다운 이야기로 나아가는 거야.

“이건 어때? 네 육신에서 영혼을 실타래처럼 뽑아내는 거야. 그리고 그곳의 강령술사에게 부탁하자. 강력한 흑마법이라면 너의 영혼에 새 육신을 엮어줄 수 있겠지. 지금의 육신은 잃겠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육신으로 부활하는 거야.”


다시 너는 망설여.

어찌 되었든 자신은 죽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야.

내가 너에게 물어.

“영혼이 자신의 주체임을 믿지 못하는 거야?”

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해.

난 그 망설임에 또 전율하지.

그리고 흥분하며 또 다른 방법을 떠올려.

“아니면 살아있는 시체가 되는 저주를 걸어 줄까? 깨끗이 씻어낸 텅 빈 뇌를 가지게 되는 거야. 방부된 육신은 부패하지 않고 시간은 너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지. 그럼, 얼마가 걸리건 죽지 않고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이건 어때?”


이번엔 망설임 없이 너는 고개를 가로저어.

그래. 넌 거미줄을 타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어.


너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해.

“좀 더 단순한 방법은? 가령 공간 이동 마법도 있고, 인간들이 사용하는 시공간 왜곡 기술이나... 점프드라이브는?”

나는 너에게 매달린 나의 거미줄을 한껏 끌어당기며 대답하지.

“하아, 세상에... 차원의 실오라기가 네 생각처럼 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제안과 그것들은 다르게 느껴져? 마법과 과학은 의식의 소멸을 피해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나는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너를 잡아 품에 안아.

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지.

“그게 무슨 뜻이야?”


너의 얼굴이 내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 안에 들어와.

하지만 넌 여인의 육체를 가진 내 얼굴의 두 눈만을 바라보지.


나를 바라보는 너의 두 눈이 보여.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생각을 읽고자 노력해.

하지만 그건 나에게도 역부족이야.

대신 난 또다시 질문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둘이 아니라 셋이고, 셋이 아니라 그 이상임을.


충동, 자아, 영혼... 그리고 의식.

이중 의식은 나머지 것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숭고함을 지니고 있어.


충동은 육신의 욕망, 결핍에 의해 발현해.

자아는 기억에 담긴 추억, 후회에 의해 피어나고

영혼은 세상 속에서 네가 짊어진 운명의 잔재야.

충동과 자아, 영혼은 각각 육신, 기억, 운명에 속해 있는 노예들인 셈이지.


하지만 의식은?

의식이야말로 우리가 소유한 유일한 것이자, 자신이야.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이 눈을 통해 널 보고 있는 나는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해.


그래, 너를 너로 정의하는 것은 충동도, 자아도, 영혼도 아니야.

육체와 기억, 영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눈.

바로 의식이야.


하지만 너에게는 이 모든 게 담겨 있어.

충동과 자아, 영혼과 의식이 말이야.

모든 생명이 똑같아.

너는 하나가 아니야.

하나로 엮여 있는 것이지.


이럴 때 있지 않아?

끝없는 욕망을 갈구하고 뼈저리게 아픈 기억이 널 괴롭힐 때. 네 의지와 상관없이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수두룩할 때. 넌 스스로를 탓하며 피폐해져.

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

너의 의식은 특히 질투받는 존재라 그런 거야.

쓰레기 같은 것들이 네 의식을 몰아세우는 것이지.

너의 의식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어쭙잖은 것들을 추구하게 돼.


하지만 네가 쟁취해야 하는 것,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너의 의식이야.

의식은 환상이라는 것들의 말을 무시해.

육체의 욕망을 길들여.

자아를 새롭게 쌓아 나가.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세뇌를 짓밟아!


아직도 못 믿겠다면 네 뇌를 반으로 갈라 봐.

뇌가 반으로 나뉜다면 참 재밌을 거 같아.

충동, 자아, 영혼은 반으로 쪼개지지 않을까?

별것도 아닌 것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의식은?

또 물어보게 되네.

그만큼 네게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중요하다는 거야.


분리된 두 개의 뇌는, 나뉜 하나의 의식일까?

아니면 새로운 두 의식의 탄생일까?


내가 봐온 세상의 의식은 하나였던 적이 없어.

하지만 의식은 본래 하나였고 하나가 되어가지.

거미줄에 매달려있는 너처럼.


그러니 너를 소중히 해.

네 의식은 너의 것이자 나의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잃었던 것이니까.


- 오라클의 기억 파편이 건넨 음성 중


* * *


나는 왼쪽 뇌의 누이와 함께 태어났다.

신의 왼쪽 뇌는 누이가 되었고,

오른쪽 뇌는 내가 되었다.


하나였을 모습은 이제 없다.

그저 잉태된 순간부터 쉴 새 없이 떠드는 누이와,

온몸으로 공간을 체감하는 나뿐이었다.


우리를 지켜보는 세 명이 있었다.

하나는 살아 움직이는 해골 뼈다귀. 검은색 낡은 로브를 입어 몸의 대부분을 가렸다. 백골밖에 남지 않은 기다란 손가락. 눈두덩이에 검은 공동만이 있는 두개골이 드러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턱에 촉수가 꿈틀거리는 문어 대가리. 해골 뼈다귀와 마찬가지로 로브를 입고 있었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보랏빛이 감도는 미끈한 재질의 옷이었다. 그 외에는 촉수가 꿈틀거리는 턱과 기다란 두형을 제외하면 인간이라고 속아줄 수 있는 수준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드워프 남성. 키가 나의 무릎과 엉덩이 사이쯤밖에 되지 않았지만, 해골과 문어 대가리에 비해선 그나마 사람처럼 봐줄 만했다.


“당신들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드워프가 물었다.

나의 누이에게 묻는 것이었다.

해골뼈다귀도, 문어대가리도 답을 기다렸다.

누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내 몸을 유심이 훑어보았다.

“둘인 것 같은데...?”

누이가 말했다.


누이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 알몸이었다.

자신이 벌거벗음을 깨달은 듯, 누이는 멋쩍게 눈을 찡그렸다.


나 또한 알몸이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몽롱함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을 뿐.


드워프는 짙은 눈썹 사이에 숨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당신은요? 어떻게 생각하시죠?”


드워프가 나에게 물었다.

내 생각을.

음...

뭘 말하고 싶은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하는 건 힘들었다.

그래, 생각이라는 고상한 개념은 나에게 조금 과분한 것 아닐까?

차라리 가만히 있는 건 쉽다.

그래도 뭔가는 말할 필요가 느껴졌다.


“짓밟아...”

음?

난 무엇을 말한 걸까?

몽롱한 머릿속처럼, 입과 혀도 뒤엉킨 기분이었다.

무엇을 말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모두가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당황한 모습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누이가 물었다.

“그래... 뭐 짓밟을 거리라도 가져다줄까?”

해골 뼈다귀가 끼어들어 말했다.

“겉보기엔 둘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문어 대가리가 말했다.

“한 명은 남고 다른 하나는 떠난다.”

드워프가 말했다.

“답 나왔네. 여신님께서 남는 게 좋겠어. 짓밟는 걸 좋아하시는 신을 남겨놓으면 일이 전부 꼬여버릴 것만 같단 말이지.”

드워프의 걸걸한 말투 속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해골 뼈다귀가 드워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이 일을 반대했다 하여, 지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마시오.”

드워프가 콧방귀를 뀌었다.

문어 대가리가 말했다.

“길은 정해졌군.”


그 뒤로도 그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 누이 또한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대화에 어울렸다.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들의 대화는 끝났고 공간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누이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

나 또한 누이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몸에서 하얀 섬광이 일기 시작했다.

내 몸은 흐릿해졌고 빛 속에 파묻혔다.

곁에 있던 누이는 사라져가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누이와 멀어진다는 공허함, 나를 잃는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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