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세자에게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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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마리
작품등록일 :
2024.09.22 20:13
최근연재일 :
2024.09.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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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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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뭘 하든 누가 뭐래?

DUMMY

‘삐이걱~ 쾅!’


목욕간 문이 열리고 닫혔다.


창으로 비껴든 달빛에 봄기운이 완연했다.


‘룰루랄라~’


자희는 흥얼거리며 치마저고리를 벗어 던졌다.


하얀 속살이 부유하는 안개처럼 아련히 드러났다.


노출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나만의 공간이잖아. 랄라라~’


면경(거울)을 보며 몸을 씻어냈다.


“아, 시원해.”


목욕간을 나와 방으로 들어섰다.


솟곳을 입으려다 귀찮다는 생각에 아랫목으로 파고들었다.


속속곳조차 외면한 채 눈꺼풀을 밀어 내렸다.


‘내가 뭘 하든 누가 뭐래? 풋~’


구석에 돌돌 말린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어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아귀에 힘을 모아······ 하나, 둘, 셋!


힘차게 잡아챘지만, 정작 끌려간 건 자희의 몸.


그리고······.


‘쾅!’


끌려간 탄력으로 벽에 부딪힌 이마가 쑤시고, 바닥에 찧은 가슴이 알싸했다.


남자의 급소는 앞섶, 여자는 앞가슴이라는데······ 납작하게 찌그러진 가슴팍이 아팠다.


조물주는 왜 여자 급소를 그곳에 남겼을까?


살면서 겪는 슬픔을 가슴에 새기라고 선택한 걸까?


‘으으, 아파.’


그때였다.


이불 속에서 삐져나온 손이 발목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종아리를 거쳐 살금살금 올라오는 손놀림이 지나치게 은밀했다.


근데 요상도 하지?


그 손길이 싫지 않았고, 무릎을 훑을 때는 감미롭기까지 했다.


야릇한 살가움에 찌그러진 이맛살이 펴지는 순간!


팔뚝에 돋아난 털이 눈알을 후벼팠다.


까만 털?


······남자?!


“헉!”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 누구······?”


강도? 치한?


두려운 공포에 이빨이 달달 떨렸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무기로 쓸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호신술을 배워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무슨 짓이야!’


······라고 소리쳐야 했지만, 무릎을 움켜잡은 손아귀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벌어져선 안 될 일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긴박한 불안에 온몸이 요동쳤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공포의 시간이 재깍재깍 흘러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괴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달달 떨리는 두려움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뇌리를 헤집는 거였다.


바로 그때.


시트가 폴락거리더니 부스스한 머리칼을 시작으로 넓은 이마, 수려한 눈썹, 오뚝한 콧날, 그리고 붉은 입술이 차례차례 드러났다.


반짝이는 눈빛, 그윽한 눈망울, 아련한 속눈썹, 해사한 눈매가 매혹적이라······ 살짝 미소 짓는다면 웃음꽃이 만발할 것 같았다.


아스라이 스며든 달빛이 괴한을 비추는 순간!


그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도둑괭이처럼 숨어든 뻔뻔함과 다른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슬픔?


헐.


‘농락당한 내가 슬프거든!’


졸지에 들이닥쳐 저를 희롱한 저질 악동.


도망쳐야 한다.


알몸이 온 세상에 노출되겠지만, 여체의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다.


“아아악!!”


자희는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쾅!!’


“으악!”


또다시 벽에 찧은 이마가 엄청 아렸다.


“우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구석에 처박힌 제 몸이 시야에 확 들어왔다.


저를 희롱한 남자는 보이지 않고, 자신만 덩그러니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순간, 자희의 뇌리로 스며든 생각은······.


‘헐! 꿈이었어?’


말도 안 돼.


자희는 혀를 끌끌 차며 동창을 열었다.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욌다.


눈앞에 펼쳐진 들녘.


선연한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 자태에 눈이 부셨다.


‘달빛이 그려낸 것이려나? 이토록 아리따운 화원이라니.’


그동안 세상살이에 치어 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형형색색의 꽃들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 아름다움을 수놓고 있었다.


자희의 볼에 미소가 아롱졌다.


그래, 아무리 고달픈 삶이라 해도······.


달빛 화원은 늘 내 곁에 있었어.


찾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 언제나 화사하게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어.


어서 오라고.


***


가월달(3월) 초닷새.


아지랑이 아른아른 파란 봄빛 맑은 날.


햇살을 사려 입은 궁에 봄이 내려앉았다.


예쁜 속잎이 돋아나자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르르, 펑~’


동궁전을 나선 훈은 경복궁 서편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르는 궁인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잠시 후, 용이 새겨진 경회루 위로 그가 올라섰다.


연못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망울에 슬픔이 가득했다.


왜?


무슨 사연이기에 저토록 침울한 걸까?


처연한 표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저하.”


훈이 돌아서자, 도총관인 현용이 말을 이었다.


“훈련원으로 드실 시각이옵니다.”


“검술이오?”


“궁술이옵니다.”


훈은 슬픔을 밀어낸 얼굴로 희미하게 웃었다.


현용의 미간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 세자를 들뜨게 하는 꿍꿍이가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세자의 입에서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금일은 실전으로 할까, 하오.”


“실전이라니요?”


“수렵.”


“윤허하지 않은 수렵은 있을 수 없사옵니다.”


“인과 동행할 터이니, 그리 아시오.”


“산을 타는 일입니다. 소신이 따르겠나이다.”


“도총관의 임무는 궁의 호위임을 모르오?”


“전하께서 허여(허락)하지 않으심을 모르십니까?”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지요.”


“무어라 하셨는지요?”


“안 되면 되게 하라.”


바로 그때.


“안 된다!”


돌아선 현용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납시었사옵니까?”


고개를 끄덕인 연종의 시선이 훈을 향해 날아갔다.


“수렵이라 하였느냐?”


의문의 기색이 역력한 연종과 달리 훈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네, 아바마마.”


거리낌없는 대답에 연종은 헛웃음을 지었다.


궁의 법도와 절차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닐 터, 나름 속내가 있을 거라고 연종은 생각했다.


“수렵의 위험을 몰라서 하는 말이냐?”


“선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벗과의 교류에서 기쁨이 온다.’ 하셨습니다. 벗과 만나 수렵을 즐기고자 함이니, 허여하여 주옵소서.”


“벗?”


“네, 아바마마.”


“궁외의 벗?”


“그러하옵니다.”


“궁외라?”


훈을 찬찬히 훑는 연종의 시선에 진한 의구심이 들어찼다.


“혹시······.”


연종은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렸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왕께서 진실로 묻고 싶은 말을 입에 올렸다.


“······여인?”


헉!


기상천외한 물음에 훈은 펄쩍 뛰었다.


“아, 아니옵니다.”


연종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리워졌다.


“암. 그럴 리가 없지. 여인을 돌같이 보는 목석에게 여인이라니?”


연종은 어불성설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시선으로 훈을 바라보았다.


세자의 나이 열여덟.


진즉 국혼을 치렀어야 했건만 혼례 얘기만 나오면 기겁하는 바람에 연종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함부로 다그칠 수 없어 밀어붙일 기회만 엿보던 중이었다.


그래서 수렵을 미끼로 은근슬쩍 틀어봤는데, 오늘도 ‘혹시’는 ‘역시’로 끝났다.


‘내 너의 고집을 꺾어 기어이 세자빈을 맞을 터!’


비장한 표정으로 세자를 보는 연종의 시선에 노기가 서렸다.


“괘씸한 것.”


훈은 왕의 노여움에 고개를 떨궜다.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의 모습에 연종은 긴 한숨으로 상한 마음을 추슬렀다.


“세자야.”


“네, 아바마마.”


“만약 너라면, 장가갈 생각이 조금도 없는 놈팡이와 어울릴 수 있겠느냐?”


“소자가 왜 그런 자들과와 어울리나이까?”


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만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만약!”


“아무리 만약이라 해도 그건······.”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하지?”


훈은 놈팡이들과 어울린 자신을 그려보았다.


그들만큼이나 지질하고 궁상맞은 꼴이 떠오르자,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소자를 꾸짖어 주옵소서.”


잘못을 인정하는 아들의 모습에 연종은 속볼을 깨물었다.


“안다. 아비의 심정이 이럴진대 여인을 돌같이 보는 목석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


“외기러기만 봐도 마음 짠한 세자거늘, 혼례의 시름이야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세자야, 아비는 지금의 세자도 좋으나 짝과 어울려 활짝 웃는 세자가 더 좋을 듯싶구나.


“세자빈에 환장한 아비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연종은 속내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못내 아쉬워 입맛을 쩝쩝 다셨다.


부자의 눈빛 사이로 침묵이 끼어들었다.


바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뒤.


흠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연종이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뱉어냈다.


“곰보다 여우가 좋으리니.”


“네?”


“사냥해 오너라.”


“무슨 말씀이온지요?”


“보쌈을 해서라도 여우 같은 처자를 대령시키란 말이다!”


“아바마마.”


“그러지 못할 바에는······.”


“······.”


“궁에 돌아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왕의 음색에 질책이 담겨 있었다.


“시간을 주옵소서.”


차차 생각해 보겠다는 아들의 언질에 연종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잊지 마라.”


“······.”


“여우다.”


훈은 고개를 돌려 시립해 있는 궁녀들을 바라보았다.


한결같이 예쁘지만 눈에 들어오는 얼굴은 없었다.


고만고만한 외모에 무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들과 비슷한 여인을 보쌈하는 저를 상상해 보았다.


순간, 다리가 휘청 꺾였다.


마음에도 없는 여인과 한 이불 덮고 자느니, 차라리······ 독수공방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소자, 아바마마의 간절함을 아옵니다.”


“흐음.”


“하오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음을 간과하지 마옵소서.”


“그것이 무엇인고?”


“······.”


훈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진실로 하고픈 말이 훈의 목소리에 담겼다.


“······얼굴요.”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좋은 시간 되시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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