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너무나 어렸을 적의 희미한 기억.
난 시골의 한 농가에 사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아침엔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돕다가, 오후가 될 때쯤 아빠가 주는 용돈을 받아 친구들과 놀러나가며 기쁨을 느끼는… 저녁때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우리 가족은 웃으며 얘기했다. 너털웃음을 자주 지으시는 아빠와, 늘 상냥했던 엄마. 밤이 깊어지면, 따뜻한 촛불 아래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자장가 삼아 행복하게 잠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넉넉하진 않지만 언제나 웃음이 가득했던 어린시절.
언제까지나 이런 날이 계속 될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너무나 간단히 파괴해버린 어느 날.
그 날 세상은 온통 흑색의 먹으로 칠해진 듯 검었다. 평화롭던 일상의 고요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통에 휩싸인 비명과, 절규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늘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던 어른들도, 그리고 친구들도 다들 겁에 질려 달아날 뿐이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를 이끄는 거대한 손, 나는 그것에 이끌려갔다. 아픔에 그 손을 놓으려 하지만 평소엔 한 없이 부드러웠던 그 손이 나를 더 거세게 이끌 뿐이다. 그리고 이윽고 뒤에서 들려오던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점차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아빠…. 아파!”
아빠에게 투정부려보지만, 내 말에 반응조차 하지 않은 채 아빠는 더 나를 잡고 더 빠르게 달려갈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뒤에 그 무서운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기만 했다. 이윽고 그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린다고 생각했을 때쯤, 뒤돌아 봤을 때 나는 악마들을 보았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그들. 태양 밑으로 그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를 드리웠을 때, 아빠는 나를 감싸 안으며 주저앉았다.
따뜻하다…?
그렇게… 내 몸 위로 흐르는 따스한 무언가를 느꼈을 때,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흐르는 붉은 빛…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을 땐, 아까와 같은 소란스러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황량한 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날아온 까마귀 떼들만이 나무 위에 걸터앉아 기분 나쁘게 울어댈 뿐이었다.
“엄마…? 아빠…?”
일어선 내 밑으로 엄마, 아빠는 분명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붉게 물든 부모님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움직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 없이 두근거리는 두려운 마음에 엄마 아빠를 흔들어 보지만, 미동조차 않은 채 그저 내 손에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질퍽한 느낌에 손을 들어봤을 때, 내 손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 아빠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나는 더 급하게 아빠를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흔들어 보았다.
늘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시던 아빠… 그리고 늘 꾸중을 하지만 꾸중만큼이나 자주 안아주셨던 엄마. 아무리 흔들어도 아빠와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나 무섭고, 처음 겪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큰 소리로 우는 것 뿐이었다.
“엄마… 아빠… 으아아아앙!!!!”
하지만 아무리 큰소리로 울어도, 붉어져가는 하늘과 황량한 바람만이 내 곁에 남을 뿐이었다.
난 그 이후로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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