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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cha
작품등록일 :
2016.10.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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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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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4)

DUMMY

@


이산은 샤워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왔다.


홀 구석에 이미 자리를 잡고 황홀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장호가 보였다.


석장호. 나이는 서른일곱. 키는 이산보다 약간 작은 175Cm에 턱이 굵은 호남형의 인상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팔뚝만 봐도 저 인간이 보통과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굵직한 통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근육이지만 자세히 보면 잔 근육이 도드라져 말근육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조차 세세하게 갈려져 있었다.


특전사 출신에 707 특임대 교관까지 지낸 데다 과거 파티원이었던 솔개 형님의 말에 따르면 미군 델타포스에서 교관으로 초빙하려던 인물이었다고 까지 하니, 좀 뻥이 들어갔다고 쳐도 인간병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실제로도 그가 보여주는 전투력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넘쳤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나사가 몇 개, 아니 한 스무 개쯤 빠져 있어서 탈이지.'


이산이 다가가자 장호가 손을 흔들었다.


"어, 때 좀 밀었냐?"


"나 참, 맥주 마실 때 그딴 표정 좀 짓지 마요. 무슨 대딸 받는 것도 아니고."


자리에 앉으며 장호를 나무랐다.


"야 인마. 넌 아직 어려서 술맛을 몰라서 그래. 너 나중 가면 떡보다 이게 더 좋다? 몰랐지?"


"저 스물여섯 이거든여."


"나이 들었다고 어른이냐? 숫총각 주제에."


이산은 기가 막혀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무슨 소리예요? 저번 무주 요새에서 밤꽃들 싹 딴 거 몰라요?"


"지랄한다. 예린이한테 울며불며 매달리고 꼴깝 떤 게 누군데 무슨...."


"아 진짜, 갑자기 예린이가 왜 나와요?"


장호는 맥주를 다시 마시려다 생각하니 웃겼는지 킥킥거렸다.


"크크큭. 진짜 그때 웃겼지."


"고만해요. 별로 웃기지도 않는 얘기 가지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안주가 나왔다.


멧돼지 볶음, 큼지막한 수제 소시지 구이, 샐러드에다가 감자튀김까지 갑자기 쏟아지는 안주에 이산이 기겁했다.


"헐.... 이게 다 뭐예요?"


"뭐긴 아직 밥 못 먹었잖아?"


"아니 그래도 이게 다 얼만데...."


어처구니없어하는 이산에게 변명하듯 장호가 말했다.


"야야, 먹어 먹어. 너 오늘 힘들었잖아? 다 이 형이 생각해서 하는 일이야."


"어휴..., 이래서 언제 클랜 하나 번듯하게 세워요? 리더님 이러면 곤란합니다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쉴 땐 쉬어 줘야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장호에게 졌다는 듯 이산은 한숨을 쉬었다.


둘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점심도 간단히 때웠기에 배가 정말 고프긴 했다. 한동안 그렇게 집고, 씹고, 넘기고, 마시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안주는 거의 없어졌다.


"끄윽-, 살 거 같네."


등받이에 기대며 장호가 말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먹어보는지 모르겠네."


"그러니 앞으로 이 형님을 잘 모시도록 해. 나 아니면 누가 이런 거 사주냐?"


그 말에 이산은 반색했다.


"어, 이거 형님이 쏘는 거? 공금 아니고?"


"아니 공금이지."


"아놔, 장난해요?"


"공금에 대한 결정권은 오로지 이 리더의 권한 아니냐."


이산은 뻔뻔한 장호의 말에 더 대꾸할 힘도 사라지는 기분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쩔 거예요? 요새 벌이가 안 되잖아요. 근방은 싹 털린 거 같고, 좀 깊이 들어가 볼까요?"


"그래 봤자 일걸. 여긴 원래 인구가 적었어. 5만? 6만? 그 정도 되나. 좀비든 뮤턴트든 7,8은 정리되었다고 봐야지."


"그럼 여기는 이만 접는 게 어때요?"


장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후--, 지금 상황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는 텃세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거다. 차라리 논산이 가까우니 그쪽으로 가볼까 하는데 어떠냐?"


"논산이면 20킬로나 되잖아요? 당일치기로는 빡셀 텐데. 게다가 그쪽은 호수를 끼고 있다고요.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산이 호수를 지적한 것은 호수 근처는 보통 뮤턴트들의 집단 서식지가 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물가에는 많은 동물이 모여드니만큼 놈들은 그런 입지를 찾아 집단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단독으로 돌아다니는 뮤턴트보다 다수로 이루어진 뮤턴트들과 조우할 확률도 높았다.


"도로 사정은 얼핏 들으니 아랑클랜 애들이 치워뒀다는 것 같더라. 예전에 토벌한답시고 설칠 때 말이야. 그리고 당장 가자는 게 아니야. 지금 우리 상황에는 이런 안전한 사냥터가 좋다. 차차 사람을 모아 봐야지."


"믿을만한 놈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렇죠. 뭐, 뒤통수는 그만두고 어리바리 안 까는 놈만 받아도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잡놈들만 설치니 원. 내일 인력사무소 한 번 더 가보자고."


둘은 한숨을 쉬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힘든 일이었다.



@


새벽녘, 동트기에도 이른 시각 이산은 깨어났다. 어젯밤 너무 마셨는지 약간의 숙취와 함께 갈증이 밀려왔다.


"으음......"


옆에서 누군가 뒤척였다. 밤꽃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난다.


사실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통은 일을 치르고 보내는데 어제는 그렇지 못했다. 전투 후의 긴장해소를 하기 위해 성욕을 푸는 건 흔한 일이지만 긴 밤까지 보내다니, 뒤늦게 돈이 아까워졌다.


간단히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뒤뜰로 나갔다. 기분은 좋지 못했다. 그녀를 깨우고 내보내면서 실랑이를 했기 때문이다.


제 딴에는 기둥서방이라도 하나 잡고 싶었나 본데, 이산은 그럴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닳고 닳은 년 뒤치다꺼리를 하는 건 이 바닥 초짜라도 안 할 미친 짓이다. 하기야 이런 세상에서 창녀든 처녀든 뭔 상관이랴 만은 그래도 나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청춘인 이산이었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M9대검(Combat knife)을 들었다. 이제는 두 손만큼이나 익숙해진 대검이다. 찌르고 후리고 베고 젖히는 동작에 간결함과 힘이 묻어나왔다.


헌터들의 철칙중 하나가 육박전은 무조건 피하라는 것이었지만, 리더인 석장호는 달랐다. 어지간한 뮤턴트 한 마리를 근접전으로 찢어발기는 그 무력에 동경과 경외가 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레 가르침을 청하게 되었다.


몸에 열기가 피어오를 즈음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쯧. 칼 가지고 춤추냐?"


배를 벅벅 긁으며 석장호가 핀잔을 줬다.


"한판 할래요?"


도발하듯 말했지만, 이산은 진정 한 수 더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묻는 것이었다.


"맨입으로?"


"아침내기."


"점심까지."


"쳇, 수강료 참 비싸네."


동이 터오는 아침, 둘은 자세를 잡았다.


"1분. 넘기면 점심은 면제다."


이산은 미소 지으며 말하는 장호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호흡을 고르며 신중한 이산과 달리 장호는 대충 서서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게다가 대검도 한 손뿐이다.


쉭-


장호의 고개가 왼쪽으로 조금 치우치는 순간, 이산은 지면을 스치듯 낮게 쇄도했다.


역수로 쥔 오른손의 대검이 장호의 왼팔을 노려 사선으로 올려 쳐졌다.


손을 피하면 무게 중심은 여전히 뒤에 있기 때문에 한 스탭 빠질 것이고, 장호가 칼을 들어 막는다면 왼손의 대검이 상대의 칼을 쥔 손을 물어뜯을 것이다.


카강-


연속으로 교차된 베기와 찌르기 모두를 어이없이 쉽게 털어내듯 막아낸 장호가 말했다.


"야, 이거 솔개 스타일 아니냐? 하여간, 이딴 걸 배우니 니 실력이 아직도 이런 거야."


"집중하시죠."


챠창- 채챙-


이산은 왼손으로는 잽, 오른손으로는 한 방을 노리며 몰아붙였다. 리드미컬하게 칼과 칼이 엮인다.


힘과 기교 모두 부족한지라 왼손 잽은 장호의 칼과 엮일 때마다 순식간에 열세로 몰렸다.


칼날이 마주하는 순간 교묘히 꺾어 자신의 칼날의 사각으로 빠져나가 손가락이나 손목 등을 노려 오는데, 오른손으로 보조하는 것으로 간신히 평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평수를 이룬다 하였지만 실상 평수가 아니었다. 장호는 아직까지 허리와 어깨 전체를 쓰고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산은 양손도 모자라 온몸을 쓰고 있었다.


차앙-!


이산은 크게 휘둘러 장호의 찌르기를 사선으로 비켜 낸 뒤에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왜? 포기냐?"


"무슨 섭한 말씀을. 제대로 갑니다아-핫-"


이산은 대답하며 자세를 잡더니 돌격했다. 대검을 양손 모두 역수로 쥐고 왼손을 살짝 앞으로 뻗은 사마귀 같은 자세다.


"헛-"


장호는 급히 오른손을 안쪽으로 접었다가 돌격해 오는 이산의 눈을 향해 역수 찌르기를 넣었다.


쉬익!


장호의 동작이 매우 컸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공격은 돌격을 막기 위한 위협용이다.


하지만 위협이 통할 만큼 이산의 수준이 낮진 않았다.


챙-


아니나 다를까, 이산은 쉽게 찌르기를 쳐냈다. 그리고 장호의 칼날이 날아올랐다.


“엥?”


이에 이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쉽게 장호를 무장해제 시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덥석


장호의 무쇠 같은 손이 칼날을 쳐낸 이산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이산의 칼이 장호의 칼을 쳐낸 순간 자연스럽게 이산의 손목이 장호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더니 장호는 바로 손목을 잡아끌며 뒤로 크게 몸을 뺐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데다 장호의 칼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느라 살짝 방심한 이산은 어이없게 끌려나갔다. 그리고는 장호의 팔에서 시작된 채찍 같은 힘의 흐름에 공중에서 한번 물결치더니 바닥에 가슴부터 꽂혔다.


쿠웅-!


크헉-


숨이 턱 막히는 충격에 이산은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장호는 이산의 왼손에 있던 대검을 강탈해서는 엎어져 있는 이산의 목에 들이댔다.


"이건 뭐, 발전이 없네. 그 어설픈 팔자돌격세(八字突擊勢)는 어디서 얻어 배운 거야? 솔개는 아니고, 광필이냐?"


"네.... 광필이형요. 으윽."


"짜샤, 이제 기초 뗀 놈이 뭔 잡기(雜技)가 이리 많아. 그런 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야. 하여간 겉멋만 들어가지고."


장호의 잔소리에 이산은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아이고 아파라. 갈빗대 나간 거 같은데."


"겨우 자빠진 거 가지고 엄살은."


"아니, 이게 왜 겨우 자빠진 겁니까? 업어치기보다 더 아프구만."


"여튼, 어설프게 다른 사람 흉내 내지 말고 니 스타일을 만들어. 기초부터 다지란 말이야. 광필이 같은 녀석한테 배우니 손목 따윌 잡히는 거야."


“쳇, 나 정도면 기초는 진작 뗐죠. 형이 보기에나 그렇지, 솔개형이랑 광필이형도 인정했는데.”


“말이나 못 하면..... 쯧, 씻고 내려와.”


퉁명스레 답하는 이산을 보다 혀를 한 번 찬 장호는 대검을 돌려주더니,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걷다 말고 문득 멈춰 섰다.


"아참, 아침은 멧돼지구이 정식, 점심은 뭐 간단히 대성로얄 런치셋트로 하는 걸로~."


그렇게 말하고는 장호는 휘파람을 불며 다시 휘적휘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정말 얄미웠다.


작가의말

연재는 낮 11:50~12:10분 사이 정도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연참대전을 한다고 쪽지가 왔네요.


내 내공으론 광탈할 것 같은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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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6) +3 16.10.27 3,219 97 9쪽
6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5) +4 16.10.26 3,445 98 14쪽
»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4) +2 16.10.25 3,648 103 12쪽
4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3) +4 16.10.24 3,790 106 12쪽
3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2) +3 16.10.23 4,347 112 11쪽
2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10 16.10.22 5,457 118 11쪽
1 프롤로그 +5 16.10.22 6,619 1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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