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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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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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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보화전의 은둔자

DUMMY

묘시(아침 5시-7시) 초에 기상하여, 몸을 정갈히 하고 의복을 단장한다. 묘시 끝날 즈음 진고가 울기 전까지 치장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행여나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보화전주의 불호령이 기다리고 있다.

보화전(保和殿)!

지식의 중심이요, 지혜의 성소라!

절강 곡초현의 시골에서 자란 나는 급제(及第)하여 학사로서 보화전에 소속 된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백만 성현의 말씀으로 보다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성현이 말했던가.

고몽(高夢)하나, 취현(臭現)이라!

쉽게 말해, 꿈은 높아도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뜻이다.

과연 성현의 말씀은 옳았다. 내가 보화전에 배속되고 나서 한 일이라고는, 비봉각(飛鳳閣)에 머물며 스스로 무림(武林)이라 부르는 왈패들의 비급들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양이 많은지, 올해로 배속 일 년째, 아직 반도 끝내지 못했다. 하루하루 할당량도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아서, 진시부터 시작하여 해시(저녁 9시-11시) 말이나 되어야 끝난다. 성현의 말씀 한 구절 읽을 틈도 없는 게 당연했다.

덕분에 청정하고 청명해야 할 내 머릿속에 깃든 것은, 저 왈패 무리의 같잖은 개똥철학··· 아니. 위학(僞學)과 거친 언변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학사로서의 존재 의의조차 잃어버리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도를 찾아야 한다.


***


강원도 거진의 한 산골.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바다가 전부인 시골 중의 시골 마을 속 두 여인이 만났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 예. 선생님.”

선생님과 학부형이었다.

“이번에 또 수한이가 모의고사 만점이던데요! 정말 대단하네요.”

“하하, 그런가요?”

자식이 모의고사 만점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어머니는 조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선생님은 계속해서 즐겁게 떠들었다.

“이게 벌써 여섯 번째죠? 오빠가 이렇게 똑똑하니, 여동생도···.”

“선생님.”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

“버스 시간이 되어서···.”

“아, 예! 바쁘신데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아무튼, 수한이는 정말 기대가 커요! 담임으로서 정말 행복합니다.”

“예···.”

어머니는 그대로 선생님을 일별하고 돌아섰다. 그녀의 표정은 흉측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선생님은 가만히 고개만 갸우뚱하며 돌아섰다.

‘이상하네···. 하긴, 어릴 때부터 아주 성적이 좋았으니 이제 이런 걸로는 별로 기쁘지도 않으신가?’

주수한.

이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남학생으로, 평균적인 신장, 평균적인 체중, 평균적인 외모를 지닌 평범한 고고생이다. 그러나 그를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의 출중한 머리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험 평균 99.96점. 전국 모의고사 만점 6회.

누가 뭐라 해도 확실한 전국 수석이다.

기계와 같은 기억 능력과 더불어, 무엇이든 한번에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은 이미 초고교급이라는 평판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었으니.

“너 또 만점 받았다며?”

“예.”

“하, 좋겠구나. 네 애미도 공부는 잘했었다지. 그래봐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요절했지만 말이야.”

그는 천애고아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친부도 사고로 잃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계모와 의매뿐.

“그렇게 공부를 잘하면 우리 수아나 똑바로 가르쳐. 어떻게 된 게 매해 성적이 더 떨어지는 거야?! 밥값을 하란 말이야!”

계모의 외침에 수한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나 다름없는 얼굴이다. 여기에 대고 화를 내는 것은 지치는 일이어서, 계모는 씩씩거리며 문을 닫았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일곱 번 들리는 것과 함께 수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아줌마 딸이니까 그렇지.”

최선을 다해 가르쳐 보았지만, 의매는 공부를 해선 안 되는 아이였다. 애초에 공부를 할 의지도 없었다. 책상 앞에 앉혀 놓는다고 지식이 자동으로 들어갈 리가 없잖은가?

그러나 넘치도록 공부를 잘하는 수한과 대비되는 것이 싫었던 계모는, 자기 딸도 어떻게든 공부를 잘하게 만들고 싶었다.

‘뭐, 똑같은 씨를 받았는데, 결과물이 다르다는 게 견딜 수 없는 거겠지.’

수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의매 수아가 공부는 못할지언정, 재능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집에서 한가로이 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를 때마다, 꽤나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 춤도 상당히 잘 춰, 학교 축제 때마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딸의 재능을 무시하고, 그저 공부를 잘하기만을 닦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식을 망치는 건 부모의 헛된 기대인가?’

수한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빼꼼 문을 열고 이쪽의 동태를 살피는 눈동자가 보였다.

“가셨다.”

수한의 말에 여동생, 수아가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왔다.

“···진짜지? 휴, 갔네.”

아직 중학교 2학년이면서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몸매다. 수한과는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이 명백했다.

“나는 진짜 인문계 가기 싫은데···. 공부를 잘할 자신도 없고, 어중간하게 공부하느니 차라리···.”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학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지역 고등학교를 선택한 수한과는 달리, 기숙사가 있는 조금 먼 인문계 사립고교를 목표하고 있었다. 스파르타 식 교육으로 아주 유명하여 심지어 서울에서 전학 오는 학생도 있을 정도인 학교다.

과연 그런 분위기를 이 여동생이 견딜 수 있을까. 수한이 보기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말씀드리는 게 나을 거야. 도망만 가서는 결코 답이 나오지 않아.”

수아는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말씀드렸어! 몇 번이고 말했어! 그런데 공부를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잖아! 오히려 엄마가 나보다 세상을 모르는 거 같아. 공부 같은 거 아무 상관없는데!”

계모는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예전이면 모를까 요즘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자격지심.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오빠!”

“그리고 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부탁하는 건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수한의 눈매가 날카롭다.

수아는 수한의 눈빛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아하하하··· 내가 뭘 하겠어.”

“그러냐.”

수한은 심드렁하게 말하면서도,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여동생을 쳐다보았다.

물론 한 번 경고한다고 해서 들을 여동생은 아니었다.

그것은 수한도 익히 아는 일이었다.

따라서 저녁. 자는 척 하던 수한은 끼익- 작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 곧바로 눈을 떴다.

‘가출인가. ···7시 23분. 준비해뒀던 가방도 그렇고, 근방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려는 속셈은 없을 거야. 며칠 전 어머니에게 졸라 옷을 산다며 10만원을 받기도 했지.’

그리고 수아의 옷은 늘어나지 않았다.

‘45분에 터미널 행 버스가 올 거고, 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 행 버스가 8시 35분에 있지. 결국 서울로 올라가는 게 목적일 테고.’

하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에 혼자 올라가서 무엇을 할까?

수한은 방금 전까지 여동생이 조작했던 컴퓨터의 검색 기록을 보았다.

“바보 같으니···.”

작게 한숨이 나왔다.

‘가출한 여자를 받아준다’는 팸의 공고가 있었다. 여자, 그것도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한다는 시점에서 이들이 맘씨 착한 천사일 가능성은 없었다.

‘뭐, 수아가 하는 생각이니까. 저들에게 대충 숙식만 지원 받고 성매매 같은 위험한 일엔 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거겠지.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 한 건 아니야.’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지금 시점에서 여동생을 잡아 묶어 놓는 것과, 몰래 따라가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해주는 것.

‘사실 선택지 따윈 없지만.’

지금 여동생을 붙잡는다면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예쁘고 영악하다’ 굳게 믿고 있는 여동생은, 혼자서도 잘해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또다시 가출 시도를 할 것이다. 그것도 수한이 집에 없는 시간을 노려서.

따라서 지금은 뭐가 됐든 무조건 여동생을 따라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한은 대강 옷을 챙겨 입은 뒤,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챙기고 곧바로 밖으로 나서 자전거를 몰았다.


***


“으, 으악! 오빠?!”

수한은 여동생이 냉큼 버스에 올라타려는 것을 뒷덜미를 잡아 막았다. 손님은 그들밖에 없었다.

“내꺼도 내줘.”

“뭐, 뭐라고?! 그보다 어떻게 알았어? 설마 요태까지 날 미행한고야?”

웃기려는 건지, 진지하게 화를 내려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여동생이다.

“물논.”

수한은 대강 맞춰줬다.

“그리고 네가 서울로 넘어가, 가출팸에 가입하려는 것도 알고 있지.”

여동생의 표정이 변했다.

“···어, 어떻게? 오빠는 역시 천재구나?!”

“이제 알았냐. 아무튼, 혼자는 안 돼. 같이 가.”

“가, 같이?! 여자만 가입 가능하다는데?”

“그건 네 알바 아니니까. 일단 내 표까지 사줘. 아니면 지금 당장 널 묶어서 집으로 끌고 갈 거니까.”

여동생은 잠시 갈등했다. 이대로 도주할 방법은 없다. 또 모든 수단은 오빠인 수한이 꿰고 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 알았어. 근데 왜? 오빠도 역시 가출하고 싶었어?”

명랑한 여동생의 물음에 수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퍽이나.”

“어? 그럼 왜? 역시 내가 귀여워서 걱정되는 거야?”

귀엽게 볼을 찌르며 얼굴을 들이대자, 수한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지랄을 한다.”

“마, 말이라도 해주면 덧나나?”

“넌 내게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여동생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소름 끼칠 거 같아.”

“그래. 아무튼 티켓 값 내놔라. 13,400원.”

“에휴, 알았어.”

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동서울 행 티켓을 구입했다. 버스기사가 잠시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둘을 보았으나, 제지하거나 보호자를 묻지는 않았다.

“하~음, 두 친구들 안전벨트 매라···. 요즘 안 매면 벌금인 거 알지?”

다소 피곤 해 보이는 기사였다.

수한은 여동생의 벨트를 매준 뒤, 자신의 벨트도 매고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실전 무술! 원숭이도 고수로 만들어줍니다!」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

수아는 그런 오빠를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보았다.

“왜? 너도 배워두게?”

“···아, 아니. 이런 거 본다고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여동생의 말에 수한이 피식 웃었다.

“넌 책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구나. 책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있지. 인간이 위대해진 이유는 바로 책과 같은 기록물이 있기 때문이거든.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가 시대를 어떻게 바꿨냐면···.”

“네. 잘못했습니다. 오빠가 맞습니다.”

수아가 귀를 막았다.

“···넌 그 버릇 좀 고쳐야 해.”

수한은 다소 마음이 상한 얼굴이었다.

차는 어느새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하늘에서 눈이 내려 도로 상황이 썩 좋지 않았는지 운전기사는 종종 상소리를 해가며 위험한 운전을 했다.

‘불안한데···.’

수한은 운전기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간파했다. 불찰이었다. 여동생을 신경 쓰느라, 세밀하게 주위를 보지 못한 것이다.

<불안한 예감은 어째서 항상 맞아떨어지는 걸까?>

수한은 전면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불빛이 번쩍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쾅-! 콰과과쾅!


격렬한 충돌음과 함께 수한은 정신을 잃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닷가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 교통사고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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