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일등 무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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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나
작품등록일 :
2017.02.0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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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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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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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장 - 보화전의 은둔자 (4)

DUMMY

삼청검은 총 여섯 장, 육 초식으로 이루어진 짧은 검법이었다. 검법이라기엔 거의 절반을 좌선하여 운기조식하고, 기를 소주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흐음. 일단 적힌 대로 해보고 싶은데.’

문제는 기인(氣引)이다. 혈도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 없는 만큼, 비급을 이해하는 데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은 옆에서 누가 도와준다는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책이군. 아무런 설명이 없이, 일소천일(一宵千日)하니··· 로 시작하면 나로서는 방법이 없지.’

이렇게 되면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 그것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 것을 가정한 철저한 교습책이다.

[완전히 기초적인 무공 비급은 없나? 반드시 특정 문파의 것일 필요는 없네.]

수한의 요청에 진운소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찾아보겠습니다. 기초적인 것이 어떤 것 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답한 진운소가 막무가내로 비급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수한은 당황했다.

[아니, 그대는 분류가 아바마마에게 받은 분부라 하지 않았던가?]

[그, 그렇사옵니다만. 상중하로 급을 매기고, 어느 것이 정순한 것인지 또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임무라···.]

수한은 머리를 짚었다.

분류법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남자였다.

설령 무공의 질에 따라 상중하로 매기는 것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처음 분류할 때 한꺼번에 정리해두면 언제든 필요한 때가 생기는 법이다.

게다가 같은 상급 무공 중에서도 도가의 것은 얼마나 되는지, 불가는 어떤지, 군문은 어떤지 그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학사는 대단한 학식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경전이라면 아주 잘 알겠지만 이런 기초적인 방법론도 생각하지 않는다니.’

모르긴 해도, 학사가 아니라 동네 상인을 시켰으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아무튼, 말로는 십만 권이라지만 실제로는 대충 13,000권쯤 될 거 같은데. 이 정도 장서량이라면 콜론 분류법으로 갈 것도 없이 열거식 분류법으로 해도 충분하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머리가 필요하다기 보다,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달리 말하자면 분류 체계를 다시 잡게 되면 진운소가 다른 생각을 할 틈은 없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의심이 자라는 법. 지금으로서는 이 사람을 최대한 바쁘게 굴려야 해. 그리고 그 사이, 나는 필요한 무공을 전부 머릿속에 집어 넣는 거지.’

수한의 눈매가 사악해졌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분류 체계를 바로 잡도록 하지.]

[체계를 바로잡으시겠다고요? 하지만···.]

진운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그래도 일이 바쁜데, 삼 황자의 자식(으로 추정되는)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한의 의지는 강했다.

[일단 도가, 불가, 군문 등 공통적인 특징이 있을 만한 것은 모두 모아둬. 그리고 두 개 이상의 비급이 하나로 묶일 때마다, 무엇을 특징으로 묶었는지 기록해두게.]

반론 따윈 거부한다는 단호함이었다.

[예, 예에.]

열거식 분류법의 장점은 매우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즉, [도가의] [상급] [검술]을 찾을 때, 각각의 분류에 따라 접근하면 되니 파악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예를 들어 삼청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삼청검은 도가의 것이며, 검법이고, 좌선공이 주류고, 정순한 상승 무공입니다만.]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열거식 분류법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쩌긴. 모두 다 적어야지.]

하나의 비급을 몇 개가 넘는 분류표에 각각 써 넣어야 한다. 특히 주류가 되는 ‘검술’의 경우, 못해도 3000개 이상이 될 것이다.

[예에···.]

[일단 나올 수 있는 분류들은 모두 생각해두고, 미리미리 쭉 늘어놓는 게 편할 거야. 그리고 한 권 한 권 비급을 볼 때마다 이것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기록하고, 보관을 하는 거지. 보관소 역시 갑행(甲行)부터 해행(亥行) 분류를 하고, ‘갑행의 정유열이다’ 이런 식으로 기록을 해놓는 거야.]

[그, 그렇군요.]

진운소는 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하는 수 없이 수한은 거의 한 시진이 넘게 서고를 뒤집으며 기초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아! 이렇게 하니 확실히 편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트집인 줄 알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진운소는 마치 개안(開眼) 했다는 얼굴이다.

[그렇지? 그럼 이제부터 자네는 분류에 힘쓰게. 나는 도가 무공이 어떤지 봐야겠어.]

수한은 진운소를 가르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도가계열 중 기초적이라고 분류한 무공들을 간추렸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혈도와 호흡, 기인과 같은 기초에 대해 논한 책이 하나라도 있겠지.’

총 열한 권이다.

어떤 것은 무척이나 얇았고, 또 어떤 것은 거의 참고서 수준으로 두껍다. 수한은 우선 두꺼운 것들 위주로 살펴보았다.

‘아니야···.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세권 째, 그가 원하는 기초적인 무공 서적은 나오지 않았다. 죄다 구결과 간추린 그림 몇 장이 들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걸 보고 무공을 익힌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차라리 내 가방에 들어 있던 원숭이도 익히는 실전 무술이 낫겠군.’

이러려고 무협 세계로 왔나, 자괴감에 빠진 수한이다. 그러나 자괴감도 잠시.

“아!”

수한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지. 특정 문파의 무공은 안 돼! 문파는 당연히 맨투맨으로 무공을 가르치지, 비급으로 가르치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중국 송나라는 무(武)에 있어서는 오랜 천대로 인해 암흑기를 걸었지만, 문(文)에 있어서는 찬란한 역사를 기록한 시대다. 특히 인쇄술이 발달하며 특권층 중에서도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었던 서책이 대중으로 가장 활발히 보급된 때이기도 하다.

‘그 틈을 타서 기초적인 무공 교본 정도 하나 쯤은 나왔을 법도 하잖아.’

수한은 황급히 서고를 뒤졌다. 개인이 직접 집필한 비급이 아니라, 활자로 인쇄된 서책이 목표였다.

결국 얼마나 뒤졌을까.

“찾았다!”

있었다.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책은 「기초 무공 교본 – 당신도 항우가 될 수 있다!」 라는 제목이 박혀 있었다.

슬쩍 열어보자, 안에는 기본적인 혈도 지식은 물론, 호흡을 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무림의 법도와 무제에 합격한 뒤 황궁에서 안전히 지내는 법 등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이거 하나면 기초는 확실하게 뗄 수 있는 셈이다.

수한은 제대로 보긴 하는지 의심스러운 속도로 종이를 휘휘 넘겼다. 옆에서 보기엔 무관심하게 훑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수한의 정독(精讀)이었다.

완전기억능력과 더불어, 인간을 초월한 이해력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속도였다.

덕분에 진운소가 고심하며 분류를 바로잡고 있는 사이, 78쪽이나 되는 두꺼운 교본을 완독하고 재독까지 했다.

‘좋아. 이제 혈도가 무엇이고, 어째서 호흡이 중요한지는 알았어. 운기행공을 통해 기라는 걸 모을 수 있다는 게 솔직히 믿겨지지 않지만···.’

이 세계는 분명 그런 세계다. 현대의 관점으로만 생각해서는 답이 없었다.

‘일단은 모든 것이 옳다고 가정하자고. 세계에는 어떤 기(氣)가 있고, 그걸 모을 수 있으며, 사람에게 단전이란 것이 만들어진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고한 수한은 머릿속에 박혀 있던 삼청검을 떠올렸다. 한 구절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어느새 허물을 벗듯 그 신비를 드러냈다.

‘음······.’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닌데.’

삼청검의 핵심은 모두 ‘구결(口訣)’로 이루어져 있었다. 혈도에 대해 알고, 호흡에 대해 알면 풀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구결은 일종의 암호문처럼 모든 것이 모호했다.

‘설마 생색만 낸 건가? 이걸로 무공을 익힌다고?’

지금으로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실제 무공을 비급만으로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을 알기에 문파들 역시 황궁의 권력이 매섭다곤 하나, 비교적 순순히 비급을 넘긴 것이다.

‘단 시간에 될 일은 아니겠군.’

수한은 삼청검의 권두를 떠올렸다.

‘대자연의 기를 느끼고, 그것을 통해 자신은 물론 삼재(三才)를 정화(靑)하는 것이 목표라.’

대자연의 기!

그가 오늘 살펴본 대부분의 도가 계열 무공에서 나온 표현이다.

‘애매모호해. 모든 것들이 은유이자 메타포야. 그건 아마 이 비급을 쓴 당사자도, 자신이 설명해야 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겠지.’

교과서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교과서다.

‘답안지 없는 문제집을 푸는 기분이군.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공부의 프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진 학사.”

발음을 주의하여 진운소를 불렀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책을 정리하던 진운소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신경 썼다 해도 발음이 정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의심을 품기도 전, 수한은 붓과 종이를 들어 빠르게 명령했다.

[삼청검과 같은 명문 거파의 도가 무공을 전부 가져오게. 전부!]

“예, 예. 알겠습니다. ···어라? 내가 어디까지 정리했더라. 어···라?”

겨우 정리를 해나가던 진운소는 새파랗게 질렸다. 처음부터 다시다. 잠시 새하얗게 불탄 듯 멍하니 서 있던 그는 털레털레 뒤돌아 수한이 요청한 무공 서적들을 찾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작가의말

집중하고 있을 때는 개도 건들이지 말아야 하는 법을..

모쪼록 재미있었다면 선작, 추천이라도 한 방 부탁드립니다!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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