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단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3.03.31 19:26
최근연재일 :
2014.11.12 15:5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0,215
추천수 :
105
글자수 :
161,631

작성
13.11.01 18:28
조회
590
추천
11
글자
9쪽

협행?(전)

DUMMY

“그 소년을 만난 것은 죽기 위해 고향을 찾았을 때 였소.“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허술한 땅굴 속에서 그를 쳐다봤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죽기 일보직전의 상태 같아 보였다.

그는 가을 공기의 으슬으슬함을 느끼는 듯 손을 비비며 재차 입을 열었다.

“왜 죽기 위해 고향을 찾았을까? 왜 그때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소년을 만났을까? 그건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소.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인생사지.”

나는 손바닥 위에 펼쳐든 종이 위로 세필 붓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말은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

<중원 명인록>의 완성에 있어 그의 이야기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손으로 붓을 놀리며 눈을 들어 그를 쳐다봤다.

“호~ 그 소년이 ‘협아 도정철’이었겠군요?”

“그렇소. 그 소년이 도정철이었지.”

그는 손에 입 바람을 불어 넣으며 대답했다.

나는 종이 위에 ‘협도 황유상. 협아와 조우.’ 라는 글귀를 적어 기록했다.

“그럼 그때 ‘토룡도’를 건네받으신 겁니까?”

내 질문에 황유상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이 세상에 대화 없이 시작 되는 일도 있소? 아무리 그때 도정철이 죽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는 해도 생면부지에게 무턱대고 도를 넘겨주지는 않겠지.”

나는 황유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그 사실을 적었다.

그 사이 황유상은 내 질문이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도정철이었소. 인적이 드문 길가의 한켠에 누워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

나는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움직였다.

“그때 보았던 도정철의 눈빛... 그건 나름 오래된 강호 인생에서도 생전 처음 보는 눈빛이었소. 삶에 대한 의지는 넘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는...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정의 할 수 없는 열망이 그 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

나는 붓을 멈추고 황유상을 쳐다봤다.

감회에 젖은 것처럼 그는 말을 멈춘 채 토굴의 한 쪽 벽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에 따라 굳이 이야기를 재촉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이 더 양질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다경 정도 흘렀을까.

황유상은 벽에서 눈을 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정철은 치명상을 입었었소. 치료를 해도 살기 어려운 상태였지.”

“그랬습니까?”

“그렇소. 그럼에도 도정철은 칼을 짚고 일어서서 나를 노려보았소. 서있기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오.”

“그게 3년 전의 이야기지요?”

“맞소.”

“그렇다면 도정철의 나이는 당시 13살이었겠군요. 호오...”

나는 무심결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13살... 생각해보니 그렇군. 13살이었어.”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칼에 맞았습니까?”

황유상은 무릎 위에 올려둔 토룡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의기가 충만한들 없는 기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오. 도정철은 그저 칼을 짚고 서있기만 했지. 아마도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오.”

“그 말씀대로라면 그때 쌍환신기 라가환의 제자들이 들이 닥쳤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황유상은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그랬겠지.”

“말을 건건 도정철이 먼저였다고 하셨지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지.”

“뭐라고 했습니까? 살려달라고? 아니면 못 본 척 해달라고?”

황유상은 내 질문에 피식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었소. 도정철은...”

대답을 기대하며 귀를 바짝 가져다 대었을 때,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지면을 울리는 진동이 한차례 토굴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와 황유상은 그 진동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간 것 같군.”

황유상의 말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황유상은 킬킬 거리며 웃었다.

“이게 우스운 일입니까?”

내 타박에 황유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억지로 웃음을 멈췄다.

“아니 우습지 않소? 겁이 이렇게 많으신 분이 위험한 곳은 사서 찾아다니니 말이오. 내 일필 선생이 괴짜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새삼 이리 보니 웃겨서 말이오.”

황유상의 대답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호기심이 가장 무섭다 하지 않소. 이야기나 계속 합시다.”

황유상은 내 말에 은근한 미소를 매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정철의 첫 말까지 했지요?”

“그렇소.”

“도정철은 그러니까... 이리 말했지요. ‘살고 싶소. 죽고 싶소.’ 라고.”

“살고 싶소. 죽고 싶소 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나는 죽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던 사람이 그 말에 어떻게 대답했을지 궁금했다.

황유상은 내 손에 들린 붓에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아무 대답도 못했소.”

“죽으러 가던 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죽고 싶다 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나도 의외였소. 아내가 죽고 자식이 죽고... 처가마저 몰살당했을 때는 그냥 죽고만 싶었었지. 상대가 상대니 복수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무능한 가장의 죽음만이 가족들의 혼을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했었소.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그 길을 걸을 때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을 터 인데... 그 말에는 대답을 못하겠더란 말이오. 이상한 일이지.”

황유상은 그리 대답하고 말을 멈췄다. 나는 황유상의 말이 흩어질까 급히 붓을 움직여 종이 위에 글을 적어나갔다.

기록을 끝낸 후 나는 황유상에게 물었다.

“도정철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황유상은 내 질문에 토룡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제 자리에 다시 앉았소.”

“아무 말 없이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황유상을 보며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죽고 싶소 살고 싶소 라는 살벌한 말을 내뱉던 사람이 대답이 없으니 그냥 제 자리에 다시 앉아 버렸다?

기이한 상황에 붓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에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황유상이 입을 열었다.

“이치를 고민 할 필요는 없소. 도정철은 그때 자리에 눕다시피 앉아서는 내게 말했었소. ‘이왕 죽을 생각이면 의미 있게 죽지 않겠냐.’ 라고 말이지.”

뭔가 많은 게 생략된 문답에 나는 생각 없이 붓을 움직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짤막한 기록을 마치며 나는 문답 사이의 공백에 대해 물었다.

“그게 협도의 시작이었구려. 그런데 도정철은 황대협의 사정을 어떻게 알았던 겁니까? 죽으러 가고 있다는 사정을 말이죠.”

황유상은 토룡도를 어깨에 기대어 놓으며 대답했다.

“그게 참 13살짜리답지 않은 부분이지. 도정철이 말하길 어린 꼬마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경우는 두가지밖에 없다고 했소. 정신연령이 낮거나 아이의 질문이 정곡을 찔렀거나. 다행히 도정철에게 내가 그리 정신연령이 낮은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나 보오. 그래서 내 사정을 짐작 했다더군.”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대답이었다.

“협아의 무기는 넘치는 협기가 아니라 세치 혀 였군요.”

황유상은 작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바로 맞췄소. 입심 하나는 정말 죽여주는 녀석이었지.”

황유상의 대답을 놓치지 않고 종이에 적었다.

‘황유상에게 협아는 입심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짤막한 문장을 살핀 후 나는 고개를 들어 황유상을 바라봤다.

이제부터가 본론으로 들어가는 질문이다.

“도정철의 목을 벤 것도 그때였습니까?”

황유상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아니 황유상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면담을 수락 했을 때부터 이미 각오를 해두고 있었을 테니.

짐작대로 순간 굳어졌던 표정이 풀어지며 황유상은 내 질문에 대답했다.

“일필 선생의 짐작이....."


작가의말

 먹고 사느라 한 동안 글을 못 썼습니다.

 이제 다시 부지런히 글을 써나 갈 테니 많이들 봐주시기 바랍니다.

 살귀록 외전의 경우는 본래 장편이 아닌 단권으로 생각했던 글이라

 1권 분량으로 연재를 끝낼 생각입니다.

 끝난 후에는 생각해둔 다음 글로 넘어 갈 예정입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덧- 협행? 은 간장 막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협 단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수능이 온다. +2 14.11.12 342 2 7쪽
7 무사 14.09.19 368 4 4쪽
6 살귀록 1권 +2 14.08.04 669 13 271쪽
» 협행?(전) 13.11.01 591 11 9쪽
4 매우 좋지 않다 2 +2 13.08.10 1,970 17 11쪽
3 오크 스무 마리 째 +1 13.08.02 1,039 11 20쪽
2 매우 좋지 않다. +2 13.06.27 1,777 24 11쪽
1 환공오자(桓公惡紫) +1 13.03.31 3,460 23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