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계 미인계
24계 미인계
부여인인 고율을 이용해서 총 제작 기술과 화약 제조 기술을 빼 오기 전에 간략한 정보라도 알아낼 생각으로 유주의 첩보망을 조금 확대했다. 그러자 남부여를 건국한 자의 이름이 쉽게 선우명의 귀에 들어왔다.
방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는 첩자의 보고를 들었다.
“남부여를 건국한 거서간 그러니깐 왕은 이진성이란 남자입니다.”
“이진성이라고?”
“예.”
이진성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우명은 중얼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이진성은 아는 이름이라서 설마 하고 생각하던 선우명은 물었다.
“이진성이 원래 이름이냐? 아니면 개명한 이름이냐?”
“거서간이 되면서 개명한 것입니다.”
“이런 제길!”
개명한 것이라면 설마가 사실이란 뜻이라서 선우명은 벌떡 일어나서 지필묵을 가져왔다. 그러더니 딱 한 글자를 적었다.
-야
아직 한글이 창제되기 전이라서 이걸 알아본다면 이진성이 자기가 아는 바로 그 사람이란 뜻이라서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선우명은 곱게 접고서 첩자에게 주며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걸 이진성이란 자에게 전해라. 그리고서 이걸 누가 썼는지 찾는다면 유정혜가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전하고서 나한테 보고 해고 아니어도 나한테 보고해라. 알아들었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서둘러 가 봐라.”
“존명.”
첩자를 보낸 선우명은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이진성은 선우명이 환생하기 전에 가장 절친했던 친구이고 유정혜는 여자 같은 이름이 싫어해서 이름 불리길 꺼려했던 선우명의 환생 전의 이름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제는 가물가물한 환생 전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선우명 아니 유정혜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이진성, 박영웅과 함께 20대 마지막을 기념하며 여행을 가게 됐는데 가는 장소가 성도의 무후사였다.
여행사를 이용해서 삼국지 테마 상품으로 가는 거라서 가는 사람이 서른 명이 넘었다. 이 서른 명이 붉은 벽이 둘러쳐진 소로를 따라서 유비의 무덤인 혜릉으로 가는데 노인과 늙은이가 손에 비취와 붉은 실로 만든 곡옥 목걸이를 들고 팔고 있었다.
다들 그냥 지나칠 때 박영웅이 불쑥 말했다.
“우리 기념으로 저거 하나씩 사서 목에 걸고 다니자.”
“됐어. 저거 가짜야.”
이런 곳에서 파는 기념품 중에서 제대로 된 것이 없기에 이진성이 퉁명하게 말했다.
“내가 살게. 기다려 봐.”
말은 안 돼도 한자로 대화가 되는 유정혜를 끌고 간 박영웅은 그의 도움을 받아서 곡옥 목걸이 세 개를 사왔다.
“싼 게 어째 가짜 같긴 해도 기념이니까 늘 목에 걸고 다니자. 나이가 있어서 앞으로 우리가 이런 여행을 할 기회가 없을 테니까. 응?”
“하나 줘 봐.”
박영웅의 말대로 나이가 있어서 이제 이렇게 셋이서 여행 다닐 일은 없을 것이기에 이진성은 마지 못해 목에 걸었고, 유정혜도 목에 걸었다.
가만히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보던 선우명은 곡옥 목걸이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그거 말고는 없어.”
삼국지의 시대와 친구인 이진성 그리고 자기와 연관된 사건은 성도의 무후사로 놀러 갔다가 산 곡옥 목걸이가 진짜여서 셋 다 계속 목에 걸고 다녔던 일 그거 하나뿐이었다.
선우명이 이진성을 자기가 아는 그 이진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정적인 증거가 그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총이었다.
이진성은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직업인 총 제작자로 영어로는 건스미스라 불리는 직업을 가졌다.
총을 만드는 것이 직업이라서 직접 총을 만들 뿐 아니라 불법이긴 해도 화약까지 직접 배합해서 수제 탄알까지 만드는데다가 총기 제약이 심한 한국에서 먹고 살려면 총만으로는 부족해서 한국 전통 방식으로 칼까지 만들었다.
이 시대에 총은 뜬금없는 걸 넘어서는 사건이나 여기에 이진성이 개입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선우명도 총을 만들려다가 화약을 만들 방법을 몰라서 포기했을 정도라서 이진성이 안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럼 박영웅도 있단 말일 텐데 이놈은 어디서 뭐 하려나.”
이진성이 있다면 같이 여행 갔고 곡옥 목걸이를 하고 다녔던 박영웅도 있어야 했다.
산다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어서 생각나지 않던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연락이 간다면 알 수 있겠지.”
이 시대의 연락은 오래 걸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이미 할 것을 다한 선우명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부여 정복을 끝낸 이진성은 총병과 포병을 전부 이끌고서 오환의 본거지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오환 선비 연합은 이진성을 막으려고 원소와의 전투를 포기하고서 부랴부랴 군대를 회군했다.
군대의 중앙에서 말을 타고 가던 이진성은 점점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러는 거지?”
아프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그냥 무거웠다.
안 되겠다 싶은 이진성은 투구를 벗으려는데 머리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숨을 거뒀다.
이진성에게 서찰을 전하러 갔던 첩자는 두 달만에 돌아와서 보고했다.
“이진성이 사망해서 서찰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누가 죽이기라도 한 거냐?”
“그게 아니라 유주를 치려고 요동 지방을 지나다가 급사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급사라니?”
“자세한 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냥 죽었다? 그게 말이 돼?”
“…….”
“됐다.”
이미 이진성은 죽었기에 첩자에게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라서 손짓으로 나가라고 할 때 첩자가 길쭉한 뭔가를 싼 보자기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걸 봐주십시오.”
“그게 뭔데?”
보자기를 풀어서 안에든 것을 꺼낸 첩자는 선우명에게 넘겨줬다.
“뭐야 이 썩은 건?”
녹이 잔뜩 쓴 길쭉한 철 막대기는 선우명이 썩었다고 말할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그게 그겁니다.”
“그거라니?”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겁니다.”
“이름이 생각 안 나니 천천히 생각해 봐라.”
시간을 조금 준 선우명은 자세히 철 막대기를 살펴봤다. 그리고는 이게 뭔지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이게 총이냐?”
“총! 맞습니다. 그건 총입니다.”
“이게 총이라고?”
아무리 봐도 그냥 막대기여서 자세히 살피던 선우명은 총구가 막힌 것을 봤다.
“이게 언제부터 녹슬었지?”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처음부터라니?”
“사람들 말에 따르면 요동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그 모양이 됐다고 합니다.”
“한순간에 이렇게 됐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다른 총들도 이런가?”
“똑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큰 그것도 녹이 슬어서 철 덩이가 됐습니다.”
큰 거면 대포?“
“예.”
이진성이 갑자기 죽었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총과 대포가 모두 원형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슬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선우명은 뭔가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답답해졌다.
“화약은 구했나?”
“화약이라니 그게 뭡니까?”
“분명히 내가 전…….”
뭔가 이상해서 말을 멈춘 선우명은 잠시 생각하다가 총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뭐라고?”
“그게……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선우명은 소름이 돋았다.
마치 몰라야 한다는 것처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만 가봐.”
“예.”
첩자를 내보낸 선우명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몸을 움츠렸다.
- 작가의말
등장과 동시에 퇴갤엽! -0-
총 나오면 이상한 거 저도 압니다. 고로 안나옵니다. -0-
덧. 이제 엄령이 누군지 아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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