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사기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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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작품등록일 :
2020.05.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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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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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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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씨발.”


기동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술병을 땄다.

넘칠락 말락 하는 선까지 잔을 채운 후 단숨에 들이켰다.


오지겸.

그 빌어먹을 새끼를 떠올리면 분통이 치밀었다.

하지만 가장 열 받는 건 그 새끼 기분을 맞추려 알랑거리는 자신이었다.


10년 전, 기동은 돈 오천만 원 때문에 지겸에게 끌려왔다.

물론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으로 탈출을 시도한 날, 지겸은 아직 어린 기동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피떡이 된 기동에게 그는 속삭였다.


“난 너 뒈져도 별 상관없어. 이거 꺼내서 팔면 되거든.”


툭툭.

배를 토닥이는 거친 손에 기동은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두려움도 갈망을 이기지는 못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오로지 여기서 벗어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바둥거리던 기동에게 지겸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야, 이번이 마지막이다.”


기동의 피로 얼룩진 주먹을 옷에 대충 문질러 닦은 지겸이 씩 웃었다.

빈말이 아니다.

기동은 진심 어린 살기에 몸을 움츠렸다.


그 후로 살기 위해 기동은 같잖은 정의감, 도덕심, 고집 같은 건 버렸다.

소매치기, 성매매 알선, 빈집털이, 사기.

지겸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기인 분야는 사기였다.


“이거 아주 물건이야?”


처음으로 상납금을 내던 날.

지겸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기동을 칭찬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잔머리는 잘 돌아갔다.

얼굴은 말간데 혀는 잘 놀렸다.

그러니 상대가 방심하게 해 돈을 뜯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면 쓸모있는 노예가 되자.

기동은 그렇게 판단하고 지겸의 발밑을 기었다.

그런데.


“야, 너 몇 년째냐? 일 이따위로 할래?”


삼류 양아치의 세계에서 가오는 꽤 중요하다.

절대 후배 앞에서 선배가 기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얕보이는 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동안 기동은 단 한 번도 상납금을 밀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그것도 버스가 고장 나 늦었을 뿐인데 후배들 앞에서 굴욕적인 처사를 당했다.


“개새끼가.”


누구는 지가 무서워서 절절 기는 줄 아나.

기동은 들이킨 잔을 탁, 소리 나게 놓았다.


몸을 낮춘다고 해서 마음까지 굴복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오지겸을, 그리고 자신을 이런 처지에 몰아넣은 모든 원수에게 복수하겠다.

그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였다.


“언젠가 그 새끼, 내 아래에서 벌벌 기게 만든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야, 개똥아. 힘이 별거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이 주먹만이 힘이 아니야. 돈. 돈이 힘이야, 이 새끼야.”


드물게도 이 부분에서 기동과 지겸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했다.

집안이 망한 것도, 자유를 빼앗긴 것도 모두 돈 때문이었다.

돈, 돈, 돈, 돈, 돈.


기동은 돈이 필요했다.


“씨발. 신이란 놈들이 놀기만 하고 하는 게 뭐야.”


2030년.

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벗어나 보겠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미 더러워진 손을 보며 기동은 쓰게 웃었다.


“처놀지만 말고 일을 해야지, 일을. 아니면 나 같은 놈한테도 기회를 좀 주던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기동은 간절히 기도했다.

이 지옥보다 못한 현실을 바꿀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신들은 언제나 그렇듯 기동을 돕지 않았다.

그저 비웃고 지켜볼 뿐.


“이대로 삼류 양아치로 계속 살라는 거냐···,”


술병은 어느새 비어있었다.

기동은 혀를 차고 손을 들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추가.

그 말은 기동의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눈앞에 나타난 괴이한 생명체 때문에.


“···으아악?!”


의자 채로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기동은 그대로 넘어졌다.

눈앞의 작은 생명체는 그를 보고 깔깔 웃어젖혔다.


“냐햐햐햐! 바보다냥! 혼자서 왜 넘어지고 난리냥!”

“···냐?”


기동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웃느라 테이블 위를 데굴거리고 있는 이 생명체는 어디서 어떻게 봐도···.


“쥐···?”

“그렇다냥! 정확히는 멧밭쥐다냥!”

“근데 왜 냥냥 거리냐···요?”

“이 말꼬리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냥. 듣고 싶냥?”

“아니.”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기동은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의자를 바로 세워 앉았다.


주위 테이블은 모조리 얼어붙어 있었다.

포장마차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쥐 한 마리에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적막을 깨뜨린 것은 주인아주머니였다.


“이런 미친놈! 누가 사람들 밥 먹고 술 먹는데 쥐새끼를 데리고 들어와? 너 당장 안 나가냐, 이놈아!”


등을 퍽퍽 치며 치대는 통에 기동은 결국 포장마차에서 떠밀려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데,

좀 전의 그 쥐가 기동의 앞을 날아다녔다.


“내가 미쳤나?”


아니면 누군가의 사기에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뺨을 세게 꼬집었다.


“윽.”

“꺄햐햐햐햐! 완전 진부하다냥! 바보같다냥!”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니었다.

어린아이처럼 높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기동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야, 쥐새끼.”

“쥐새끼 아니다냥! 이 몸은 고귀하신···.”

“됐고. 너 뭔데?”

“냐냥? 너 되게 무식하구냥?”


기동은 대꾸하지 않았다.

감정에 휘둘려서야 사기꾼으로서 살아가기 힘들다.

그는 조용히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흠흠. 무지한 너를 위해 이 위대하신 신의 사자가 알려주겠다냥! 기뻐하거라, 인간! 너는 선택되었다!”


선택?

순간적으로 기동의 머릿속에 판테온이 떠올랐다.

아니, 하지만 설마···.


“엥? 안 기쁘냥? 싫으면 나 그냥 갈까냥?”

“선택이라니?”

“이 시기에 선택이라면 뻔한 거 아니냥! 판테온이다냥! 신의 제전이다냥!”


기동의 눈이 반짝 빛났다.

판테온.

하지만 이내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내 존재 자체가 증거다냥! 모든 참가자에게는 신의 전령이 하나씩 붙는다냥! 그래도 의심이 간다면 머릿속으로 염원해라냥! 상태창을!”


기동은 잠시 망설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외쳤다.


“상태창!”


눈을 뜨자 진짜 상태창이 허공에 떠 있었다.


“꺄햐햐햐햐햐햐햐! 바보냥! 왜 입으로 외치냥!”


자칭 신의 사자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기동은 마치 핥는 듯한 시선으로 상태창을 읽어내렸다.


<인물 스탯>

이름 : 김기동

나이 : 27세

레벨 : 1

체력 : D

정신력 : B

근력 : D

민첩 : C


특출난 것 하나 없는 스탯이었다.

하지만 레벨업과 함께 향상되는 스탯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동은 파르르 떨리는 입으로 외쳤다.


“스킬창!”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SS까지 풀 상승 가능한 스탯과 달리,

스킬은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어떤 스킬을 받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샤샥, 하고 상태창이 지워지고 스킬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면 더 높은 수준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스킬의 속성이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거면 좋겠는데.

기동은 이를 꽉 깨물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김기동, 스킬···.”


기동의 입이 멈췄다.

진갈색 눈동자가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얼어붙었다.


“냐냥! 내가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 정도의 스킬은 오랜만에 본다냥!”


술에 취해서 그런가?

아니면 열이 올라서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걸까?

기동은 눈을 부빈 후 다시 스킬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스킬 속성은 그가 처음 본 그대로였다.


<스킬 목록>

이름 : 김기동

스킬 속성 : 사기


“씨발, 장난치냐?!”


사기.

사기라니.

기동은 허탈한 듯 웃었다.


사기꾼으로 살아야 하는 이 빌어먹을 현생이 싫어서 판테온을 갈구했다.

삼류 양아치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데 그 판테온에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이런 걸로 어떻게 배틀을 하라고?”


스킬 속성 자체는 쓰임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판테온은 엄밀히 말하면 배틀 대회였다.


하나의 신은 매년 하나의 게임 말을 고를 수 있다.

그리고 그 게임 말끼리 싸움을 붙여 마지막에 살아남는 한 사람이 판테온의 우승자가 된다.

그 와중에 스킬 속성이 사기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스킬은 대회 우승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꺄햐햐! 내가 본 것 중에 역대급으로 쓸모없는 스킬이다냥!”


기동은 이를 으득 갈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남의 입으로 듣자니 괜히 열불이 났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손가락만 한 쥐새끼를 잡자니 자신이 없었다.

그는 빌어먹을 신의 사자는 무시하고 스킬 목록을 훑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최강의 스킬을 가진 참가자가 항상 우승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1회 판테온 우승자 역시 다소 묘한 스킬을 지녔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스킬 운용에 감탄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였다.


어차피 정해진 스킬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킬을 잘 조합하여 살아남을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킬 목록>

이름 : 김기동

스킬 속성 : 사기

보유 스킬

1. 변장술(숙련도 1) : 체형을 변형할 수 있다.

2. 입털기(숙련도 1) : 상대를 도발하여 상태 이상에 빠뜨릴 수 있다.

3. 짝퉁상(숙련도 1) : 가짜로 만든 일상용품을 진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4. 감정안(숙련도 1) : 물건의 진품 여부나 내력을 알 수 있다.

5. 인맥(숙련도 1) : 현재 활동 중인 연예인의 그림자를 소환할 수 있다.

6. 계약사기(숙련도 1) : 같은 단어로 만들어진 다른 문장을 알려주고 계약할 수 있다.

7. 퓨전(숙련도 1) : 숙련도 1 스킬을 2개 섞어서 사용할 수 있다,


“하, 씨발.”


제대로 목록을 살필수록 기동의 마음은 심란해졌다.

이걸로 사기를 치라고 하면 얼마든지 잘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는 이런 사기 스킬만 가지고···.


“···아니지.”


뭔가를 생각해낸 듯 기동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의 잔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루한 듯 허공을 유영하던 자칭 신의 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냥. 그런 쓰레기 스킬로 뭘 한다는 거냥. 그냥 기권이나 하지 그러냥.”

“시끄러워. 닥쳐, 쥐새끼.”

“쥐새끼라니! 신의 사자라고 하지 않았냥!”

“닥쳐, 신사.”

“신···, 신사? 어감이 좋은데냥?”


기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쥐새끼, 아니, 신사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신사는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고 있었다.


“인간치고는 센스가 괜찮다냥.”

“···그럼 좀 이제 닥쳐줄래, 신사야?”

“알았다냥. 좋은 이름을 붙여준 답례다냥.”


아주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잊은 채 신의 사자는 떠났다.

남은 기동은 집을 향해 걸어가며 머리를 굴렸다.

여러 가지 전투 방법이 생각났지만, 뜻대로 잘 굴러갈지는 자신이 없었다.


“···하. 뭐가 걱정이야.”


이제 기동에게는 힘이 있다.

실험할 대상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누구를 첫 대상으로 삼을까 고민하던 기동의 머리에 삼인방이 떠올랐다.

그동안 지겸의 기세에 편승해 괜히 기동에게 시비를 걸던 양아치 삼인방은 만만한 상대이자 좋은 샌드백이 되어줄 터였다.

기동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휘었다.


이토록 내일이 기대되는 것은 10년 만이었다.

기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세상에..ㅠㅠ

프롤이 이렇게 반응이 좋았던 것은 처음입니다..ㅠㅠ

너무 감사해서 원래 내일 풀려던 1화를 지금 올립니다.

부디 앞으로의 회차, 기동이의 여로가 독자님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기를..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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