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사기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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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작품등록일 :
2020.05.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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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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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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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UMMY

“흐아아암.”


기동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 눈 밑에는 거뭇거뭇한 다크서클이 엿보였다.

무언가에 열중해서 밤을 새워 본 것이 얼마 만인지.

그래도 나름의 수확이 있었다.


“오늘은 뭐 할 거냥?”

“좀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

“실험?”

“힘을 얻었으면 써봐야지.”


신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던 기동이 문득 멈춰섰다.

먼발치에 삼인방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빙 둘러 가거나 되돌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의 기동은 달랐다.


“오, 철호랑 똘마니들 아니야?”


리더인 철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네에서는 지겸의 기세를 등에 업고 적수가 없는 철호였다.

그러니 평소에 이런 시비가 걸릴 일도 거의 없었다.


“어떤 미친 새끼가···.”


무게 잡느라 관심 없는 척하는 철호 대신 오른팔인 규림이 대신 나섰다.

하지만 상대를 발견한 그의 표정이 꽤 기세등등해졌다.


“히익.”


그 흉흉한 분위기에 신사는 재빨리 도망쳤다.

기동은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신사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사라졌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어쩐지 입맛이 썼다.


“뭐야, 개똥이 아냐?”


규림의 말에 철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스며있었다.


“개똥이라고?”


정말로 기동이 시비를 건 것임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마치 불길이 타오르듯 기세가 흉흉해졌다.


“너 이 새끼, 미쳤냐?”


1대 3.

평소의 기동이라면 이런 무모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 구석이 있다.


기동은 머릿속으로 스킬창을 떠올렸다.

예상한 것보다 생각만으로 스킬창이나 상태창을 불러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 외쳐서야 상대에게 경계해달라는 꼴밖에 안 된다.


그래서 기동은 신사의 조언을 떠올려 생각만으로 스킬창을 불러올 수 있도록 연습했다.

물론, 밤을 새운 건 따로 이유가 있어서였지만.


“퓨전 레벨1, 도발 레벨1과 사기계약 레벨1을 동시 사용.”


삼인방과 다소 거리를 둔 이유는 스킬의 발동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보람이 있었는지, 삼인방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릿속에서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움직이는 감각이 들었다.

기동은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종이를 손에 꽉 쥔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미쳐 보이냐? 눈깔도 맛이 갔나 보다?”


무언가를 말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도발’ 스킬의 영향인 듯했다.


“눈깔···?”


가장 덩치가 큰 재범이 나섰다.

삼인방 안에서는 행동대장 같은 역할을 하는 남자였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사기의 기본은 상대를 파악하고 조사하는 것.

그래서 기동은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 기억하는 편이었다.


삼인방을 고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관찰해서 행동 패턴도, 생각도 얼추 읽을 수 있는 상대.

그러면서도 기동보다는 강한.

힘을 시험하기에는 최적의 상대였다.


“이 새끼가 돌았나···.”

“같은 삼류끼리 뭘 새끼새끼 거려, 이 새끼야.”


기동이 비웃음을 날리며 입을 놀렸다.

여전히 입은 제멋대로 나불거리고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단순한 재범은 그동안 얕보고 있던 상대에게 욕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꽤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자신에게로 성큼 다가오는 재범을 보며 기동은 타이밍을 살폈다.

어느 타이밍에 이야기를 꺼내야 재범이 내기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불과 몇 걸음 앞까지 재범이 다가왔을 때 기동은 입을 열었다.


“왜? 무시하던 놈한테 욕먹으니까 꼽냐? 꼬우면 덤비던가. 먼저 덤비는 놈이 이기는 거 어때? 내가 지면 오늘 하루 네가 말하는 거 다 들어 줄게.”


기이잉.

손에 쥐고 있는 종이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동은 화끈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웃었다.


“그래, 좋다. 실성했는지 뭔지는 모르지만···, 윽!”


수락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기동은 재범에게 주먹을 날렸다.

불의의 기습에 당황하긴 했으나 행동대장이라는 이름은 헛되지 않았다.

재범은 그 둔중한 몸에서 예상하기 힘든 날렵함으로 주먹을 피하고, 도리어 기동을 가볍게 밀어 날려버렸다.


“뭐, 뭐야.”


답지 않게 도발을 걸길래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가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나가떨어진 기동에게 도리어 재범이 당황했다.


“···큭, 크크크큭···.”


정말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기동은 웃었다.

유쾌하기까지 한 그 웃음소리에 당황한 것은 삼인방 쪽이었다.


“···저 새끼, 어제 뭔 일 있었냐?”

“없었는데요. 아, 지겸 형님께 한소리 들었다던데 그거 때문일까요?”

“형님이 대체 뭘 하셨길래 애가 저 지경이 나냐.”


둘이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기동은 한참을 더 웃었다.

재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철호 쪽을 돌아보았다.


“너, 개똥이 이 새끼···. 오늘은 내가 한 번 봐준···.”

“닥쳐.”


재범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리고 무언가를 외치려 했다.


“···?!”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벙긋벙긋하던 재범은 답답한지 제 가슴을 치다가 기동에게 덤벼들었다.


“앉아,”


그러나 그 주먹도, 다리도 기동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는 기동의 명령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 하냐, 재범아! 놀아주지 말고 이쪽으로 와라.”


뭔가 불길한 기분에 철호가 재범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재범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일어나질 못했다.


“어이, 김개똥. 너 뭐했냐?”


묵직한 바위 같던 철호가 움직였다.

오른팔이라고 해도 무력으로는 동네 건달도 이기지 못하는 규림은 이번에도 나서지 않았다.

대신 물끄러미 기동을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찰한들 기동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후.”


기동은 심호흡한 뒤 오른손을 흘끔 쳐다보았다.

불타는 것처럼 뜨겁던 종잇조각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가 사용한 ‘계약사기’ 스킬은 거짓된 내용을 알려주고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이란 무엇인가였다.


“내기 같은 건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멍청한 새끼야.”


철학적인 해석도, 법적인 해석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계약은 여러 사람 사이의 약속을 뜻한다,

기동이 제안한 내기 역시 계약으로 볼 수 있었다.


계약사기 스킬 발동을 위한 조건은 하나.

같은 단어로 다른 문장을 만들어 사용할 것.

기동은 사전에 계약서를 미리 작성해 놓았다.

내용은 ‘네가 지면 오늘 하루 내가 말하는 거 다 들어 줘’.

즉, 기동은 주어를 바꿔 넣어 사기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형님, 저놈 말을 조심하세요.”


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모르지만, 재범의 상태가 심상찮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원인은 기동의 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조심할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말은 막으려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이미 계약서는 효력을 잃었다.

그런데도 기동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일부러 숨기려는 듯 계약서를 쥔 손을 슬쩍 뺐다.


“형님, 저 종이!”


역시나.

눈썰미 좋은 규림이 이걸 놓칠 리 없었다.

철호의 시선이 오른손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기동이 미소지었다.


“이 종이쪼가리가 그렇게 무서워? 야, 최철호 완전히 맛 갔네. 그치?”

“뭐가 맛이 갔다는 거야? 너, 판테온 참가자가 된 거지?”


어차피 판테온 경기는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미친놈. 능력 하나 얻었다고 니가 뭐라도 된 것 같냐?”

“된 것 같은데?”

“씨발, 멍청한 새끼야. 네깟 게 얻어봤자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얻었겠냐. 철호 형님 피지컬이면 너 따위는 순삭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기동이 가진 스킬 중, 전투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스킬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패배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얘도 순삭해보지 그러냐? 야, 재범아.”


두려움과 망연자실이 뒤섞인 얼굴로 앉아있던 재범이 고개를 들었다.

기동은 잔혹하리만치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철호한테서 날 지켜. 그리고 최철호를 때려눕혀라.”


재범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기동의 능력은 신이 내려 준 것.

즉, 계약의 보증인은 기동에게 힘을 준 신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신의 이름 아래 체결된 계약은 차질없이 수행되었다.


“재범아···.”


철호의 눈동자에 일순간 망설임이 서렸다.

그것이 철호의 패착이었다.


“···!”


재범은 제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절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형님의 얼굴에 자신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그 생생한 감각에 재범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큭!”


인정사정없이 휘둘러진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철호는 비틀거렸다.

철호를 존경한 나머지 그의 밑에 있기는 했으나 무력으로 따지면 재범이 한 수 위였다.

계급장 떼고 붙으면 재범이 질 리가 없었다.


“···!”


피하라고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기동이 명령이 아직도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기동은 슬쩍 스킬창을 보았다.

조금 전에 사용한 스킬인 계약사기와 입 털기의 숙련도가 약간 올라있었다.

아무래도 숙련도를 올리려면 스킬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듯했다.


“1/10 정도인가.”


앞으로 9번.

그 정도면 숙련도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욱!”


기동이 스킬창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재범은 원치 않는 폭력을 휘둘러야만 했다.

존경하는 형님이 피떡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동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기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 가득한 사람일수록, 단순한 사람일수록 걸려들기 쉽다.

나는 절대로 사기에 걸릴 리 없다며 방심하는 사람 역시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런 항목을 신들은 ‘정신력’으로 분류해 놓았다.


즉, 정신력이 약한 사람일수록 기동의 스킬에 걸리기 쉬웠다.

피지컬은 좋지만 유약한 성정인 재범은 딱 좋은 말이었다.


“이제 그만 해, 이 미친 새끼야!”


생각에 잠긴 틈을 타 뒤로 물러나 있던 규림이 거리를 좁혀왔다.

하지만 바보 같은 짓이었다.


사기를 친다는 건 여차할 때 도망가거나 시간을 벌 수 있을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

싸움은 철호나 재범에게 맡긴 채 입만 놀리던 규림이 기동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휘두르는 주먹을 맞고도 기동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기동의 허세를 이길 정도로 아픈 것 또한 아니었다.


“멍청한 새끼.”


기동이 주먹을 휘둘렀다.

제 딴엔 피한다고 피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얼굴을 노렸던 기동의 주먹은 규림의 명치를 가격했다.


“크헉!”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규림을 잠식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릎 꿇었다.

아니,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


재범은 이제 울면서 철호를 때리고 있었다.

본래의 얼굴 형태를 알기 힘들 정도가 된 걸 보고 기동은 입을 열었다.


“그만해.”


조금 너무 했나.

그런 생각을 하던 기동의 귀에 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미친··· 새끼. 돈, 오천에···, 팔려온··· 노예 새끼가···.”

“뭐?”


기동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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