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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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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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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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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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블랙홀 속으로 10

DUMMY

우리도 며칠 간 경험이 쌓였지만, 놈들도 이제 연구하고 작정하고 들어온다. 정말 돌격 하나는 잘한다. 앞 건물에 비해 담으로 3면이 싸여 우리 시야도 좁아졌고, 옥상 저격수가 못 보는 틈이 생겼다. 그들이 수령과 수도 평양을 지키는 것이 주 목적인, 남포시에서 올라온 북한군 3군단 235부대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로를 통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 평양을 둘러싼 동그란 원이 북한 전 지역 중에 가장 북한군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것.


우리의 종심 공중강습은 전술적으로 옳았다. 가장 빽빽한 북한군의 강력한 원형 고리를 뚫어야 평양에 도달한다. 평양 자체 내부에는 사실상 군부대가 없다. 따악 평양 시가지만 부대와 진지가 없다. 물론 개전으로 배치가 달라졌겠지만 피양 공중강습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다만 소수라는 한계...


새벽 3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건물 옆구리가 뚫리고, 아수라장. 너무 바빠 무전기들은 침묵했고, 무전 대신 고함과 비명, 죽음의 숨소리.


폭발이 일어날 때 난 앞 건물 감시하고 있었다. 건물을 뒤흔드는 그 폭발 충격은 정확히 말해 두 번이었다. 처음에는 북쪽 담을 뚫었고, 이어 건물 외벽을 뚫었다. 폭발 충격으로 난 창가에서 뒤로 밀려나 쓰러졌고, 거의 동시에 건너편 건물 위쪽 층에서 엄청난 발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들마다 서너 개 동그랗고 빛나는 총구섬광이 우릴 향해 빛난다. 두 건물이 가까워 총소리는 빠져나가지 않고 우리 귀는 한동안 먹통이 된다. 폭발은 감으로 봤을 때 20-30파운드는 넘었다. 포로 조진 게 아니었다.


1층에 9명, 2층에 나 포함 4명, 3층에 지역대장 포함 4명, 옥상에 두 명.


창으로 총알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가운데 우린 포복으로 2층 중앙계단을 향해 기었다. 중간에 내 방에 둔 여분의 실탄과 수류탄이 떠올랐으나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중앙계단으로 올 게 당연했고, 기어가니 이미 두 명 와 있다. 2층 끝 북쪽에 있던 하사는 그 폭발로 어찌 되었는지 안 보였고, 잠시 후 3층에 있던 지역대장과 3명이 급히 뛰어내려와 엎드렸다. 1층에서 총성과 수류탄이 터졌고, 1층이 버텨야 얼마를 버티겠는가. 곧 중앙계단으로 올 게 분명했다. 그런데 2층 중앙계단 자리 중앙에 건너편 건물로 향해 나 있는 대형 창문이 문제였다. 총알이 튀기며 들어와 꼼짝을 못한다.


먼지를 뒤집어 쓴 우린 엎드려 서로의 눈을 본다. 아직도 폭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먼지와 땀과 피 국물 범벅 된 얼굴, 입이 부풀었다 꺼지는 버프. 감정 드러내는데 수동적이 된 눈들. 어둠 속에 차갑게 빛나는 눈! 고함만 쳐도 창을 통해 총알이 더 쏟아질 것 같다. 지역대장이 먼저 수류탄을 꺼내 쥐고 우리에게 보란 듯이 흔들었고, 우린 모두 수류탄을 하나씩 꺼냈다. 올라오면 뽑아 굴린다!


창 옆의 벽으로 등을 대고 붙어 총 탄창과 자물쇠 확인해 무릎에 놓고 수류탄을 준비했다. 지역대장이 3층에서 내려온 두 명에게 수기했다. 창문에서 안전한 계단 반 층으로 올라가 수직 아래로 거총하라고. 그러자 둘이 눈을 맞추고 건너편 총소리 듣다가 공백에 동시에 뛰어 올라간다. 그 둘 행동을 보고 생각했다.


‘정말 숙달됐다 진짜.’


창을 중간에 두고, 거친 숨소리 누군가 내 왼쪽 벽에 붙었다. 돌아보니 어쩔 수 없이 금방 알아보는 내 동기다.


죽음을 각오한다? 그런 거 언제 생각해. 다가오는 거나 하는 거지. 무슨 생각이 필요해. 죽음이 그렇게 길어? 길긴 좆이나 순간이지.


밑에서 고함과 비명. 욕. 자동으로 갈기는 소리. 수류탄 펑~! 소리들이 북쪽 폭발음 난 곳에서 시작해 점차 중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저 아래서 전우들이 죽어가며 분투하고 있다. 내려가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라질 게 없고, 2층 중앙계단 자리가 훨씬 올바르다 생각했다. 어려서 비슷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예방주사 맞을 때, 어차피 아플 것이지만 다 차례가 있는 것이고, 난 그걸 피할 수 없다. 다가오는 주삿바늘이 무섭지만 앞 친구도 맞았으니 어차피 내 차례 오면 나도 맞아야 한다... 두려워 마라. 누구나 주삿바늘을 맞고 나도 차례가 온다. 기분 비슷하다. 이 콘크리트가 진동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컴컴한 곳.


동기가 내게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본다. 내가 그걸 느끼고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본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단련대 치듯이 나에게 내민다. 휴......


휴...... 잠시 침묵하며 바라보다, 내 왼손 주먹을 쥐고 내밀어 동기 정권에 댔다. 힙합이냐 새끼야... 겸손은 힘들어 리쌍이냐? 야구 광팬인 녀석이 정권을 떼고... 외야수가 플라이 볼을 잡고 나서 감사해하는 동료선수에게 하는 손동작을 보여준다. 정권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만 수평으로 편 것. 그 상태로 잠시 멈췄다. 뭐 좋은 뜻인 거 같다. 난 그런 거 모르니까. 검은 얼굴에 눈도 잘 안 보이지만, 난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녀석 치아가 잠시 보였다. 역전 끝내기 홈런이라도 나오겠냐? 야구장에서나 가능한 거지. 진 쪽 선수 다 교수형으로 게임하면 어때, 기적이 일어날까?


우린 다시 앞쪽 중앙계단으로 시선을 돌리며 수류탄 안전손잡이를 꽉 잡고 안전핀을 뽑았다. 후....


밑에서 소음이 사라지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고요가 찾아왔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북한 말도 들린다. 공기는 말하고 있다. 우리도 너희가 거기 있는 거 알고, 너희도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안다. 우리도 기다리고 너희도 준비한다. 우린 서로 사상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래서 적이다 니미 뽕. 충돌은 불가피하다. 내가 진압하는 쪽이라고 해도 뭐 어쩌겠나. 일부러 서로가 소리를 죽이고 있는 상황. 고민은 그 쪽이 더하겠지.


누가 앞장 설 거야? 무조건 죽는데 누가 앞에 설 거야? 여긴 포로 없다. 콘크리트가 우릴 감싸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오겠지. 너희들은 기본전술이 돌격이잖아. 장군님의 도시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총폭탄이 되겠지? 하지만 너희들과 우리가 아주 같지는 않을 거야. 너희... 앞에 설 놈들. 진짜 총폭탄이야? 진짜 그런 거야? 77명의 미녀가 보지 쫙쫙 벌리고 혀 낼름거리며 천국에서 기다려? 우린 죽을 준비 됐어.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우린 원래 때리고 튀는 게 전술인데 여기서 못하니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도 우릴 느껴. 좋지 뭐. 어쨌거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이쁜 자식 소리 듣고, 먹고 학교 다니고 성장하고 다 그렇지. 회심가 가사처럼 사는 거 아니겠니? 그리고 우린 이렇게 만난 거야. 똑같은 처지인데 우울하거나 바보 같은 감상에 젖지 말자.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제 우린 서로가 영원히 복수하는 거야. 내가 죽인 놈이 니 동료고, 우리도 똑같다.


정적이 깨진다. 순간 전술을 눈치 챘다. 세게 나온다. 중앙계단으로 서서히 첨병처럼 올라오는 게 아니라, 다수의 전력질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역대장을 본다. 지역대장이 손바닥을 하늘로 들어 폈다. 안전손잡이가 위로 튄다. 나도 놓았고 동기도 놓았고 다른 사람도 놓았다. 퍼버버벅 두두두두 뛰는 소리. 지역대장이 먼저 수류탄을 계단 아래로 던진다. 우리 모두 거기로 던지고 팔로 얼굴을 감싼다. 수십 명이 달리는 소리. 이 새끼들도 약한 놈들은 아니다. 말 하는 놈이 없다. 그리고...


꽝! 꽈릉! 꽝! 꽝꽝꽝!


건물이 흔들리고 파편이 뒤고 우린 눈을 감고 머리를 감싼 채 충격을 참는다. 내 몸이 옆으로 훅 밀렸다. 눈을 뜨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총! 총! 총을 잡는다. 먼지 파편...


“으아아아악.... 으악...”


비명. 그리고 다시 발소리. 중앙계단에서 피와 개 같은 냄새 풍기고, 어느 틈에 보니 내 몸에 살 조각 같은 게 묻어 있다. 이런 니미 지옥도 풍년이다.

다시 달려오는 발소리들. 밑에서 올라오면서 위로 꺾인다. 출렁이는 먹구름이 위로 몰려온다. 드디어 방아쇠를 당긴다.


‘죽어~~~~!!!’


반복되는 충격 전율. 막힌 곳의 귀청 찢는 엄청난 총소리. 탄피가 튀고 다가오던 먹구름이 찢기고 쓰러진다. 조준 필요 없다. 앞에서도 동그란 섬광이 열리고 총알이 내 벽을 치고, 내 헬멧 때리고, 내 총에서도 길다란 섬광이 나가고, 어느 순간 탄창이 끝난다. 곧바로 재결합. 우리 중 누군가 소리친다.


“수류탄!”


다시 쾅! 텅텅텅텅 웅웅웅웅 엥엥엥 이명...


이때 지역대장이 갑자기 내 쪽으로 오더니 창문을 통해 건너편 건물을 향해 자동으로 갈긴다. 뜨거운 탄피가 나에게 쏟아지고, 난 지역대장 군복과 군화만 본다. 그러자 건너편 건물에서 총구섬광이 다발적으로 파열하기 시작한다. 그 총알들은 창문을 통해 들어와 중앙계단으로 쏟아졌다. 그 총알들이 올라오는 먹구름을 향해 쏟아진다. 지역대장이 웃었다.


“건너편 놈 여기 상황 몰라!”


우리도 쏘면서 웃었다. 그 섬광 속에서 순간순간 지역대장 얼굴과 동료들 얼굴이 보인다. 내 옆에서 터지고. 건너편 건물에서 창으로 쏘는 총알들이 중앙계단을 때리고. 그리고 갑자기.... 다시.... 소리가 뜸해졌다. 지역대장이 가까운 사람들을 쳤다. 그만 쏘라고. 모두 사격을 중지하자 지역대장이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우리 숫자가 알려지면 안 돼!'


저 아래서 상황을 깨달은 거다. 귀가 먹어서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내 달팽이관이 막혀 대갈통이 앰프가 되었다. 생각보다 거칠지 않다. 잽싸게 탄창을 빼서 창가로 가져가 남은 탄을 본다.


“누구!”


지역대장 말은 명료했다. 먼저 위쪽 계단에서 두 명이 이상무! 했고, 아래 지역대장 빼고 남은 인원들이 이상무! 읊조렸다. 하나가 빈다. 지역대장이 포복해 엎어진 누군가를 흔든다. 누구지? 간 거 같다. 아, 조금 전에 한 명 떠났다. 지역대장은 쓰러진 대원 맥을 짚고 잠시 있더니, 손가락으로 실탄 수류탄 회수를 지시했다. 우린 시신을 복도 저 편으로 끌어낸다. 그게 누군지 모두 안다. 언급하지 않는다.


앞의 계단, 망가진 그림자들은 알 수가 없다. 그런 무기력한 대기상태를 도와라도 주는지, 1층에서 계단 중앙을 향해 렌턴 같은 게 비춘다. 오, 망자의 무덤. 많이 널부러져 넝가져 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족히 20명은 되는 듯한 넘어진 몸들이 계단 도끼다시를 덮고 있고 안 보이는 그 아래쪽에 수류탄으로 더 쓰러졌을 거 같다.


아우슈비츠 개스실 몸들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몸에서 올라오는 건지 총구에서 올라오는 건지 모르겠다. 랜턴이 주의를 끈다. 야간사격 감적하냐? 계속 여기저기 비춘다. 건너편 건물도 조용하다. 1층 저 끝에서는 고함소리와 함께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이 올라오면서 쏜 총알이 천장을 때려 계속 먼지와 부스러기가 낙하한다. 모든 감각.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우리도 곧 저 꼴이다. 바로 저게 잠시 후 우리의 미래다. 미안하다. 니들이 먼저 뒈져라.


우리 서로 눈빛을 찾는다. 암흑. 저 아래 렌턴. 콘크리트 벽. 먼지와 화약연기. 학살의 흔적. 과거도 미래도 없다. 현재만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정적. 그 고요를 틈타 저 멀리 대동강변과 북쪽에서 총성이 들린다. 잠시 후 또 시작하겠지? 투항권고 해? 이젠 우릴 알 텐데 그러겠어? 입 열어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옆 중대 담당관이 지역대장을 툭 치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지시하고, 지역대장은 모르겠다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옥상 저격관측 2명을 묻는 거 같다. 뭘 하건 하지 않건 살아 있으면 그들도 계속 싸울 거다. 여기나 위나 숨을 곳이 없다.


다시 저 멀리 폭발음 쾅! 이어 연달아 날아온다. 어디 포지? 아군 포야? 모르겠다. 도시가 개작살 나고 있다. 쏘던 말던 무슨 상관이야? 여긴 여기고. 우린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끝난다. 술이나 원 없이 마셨으면 좋겠다. 희노애락 그딴 거 없고. 그냥 지금 여기. 마지막 술 한 잔 간절하다. 건빵 한 알, 소주 한 잔, 삼겹살 한 조각. 코카콜라 한 모금. 이상도 고상함도 다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넘들을 죽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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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41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51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113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96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3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6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62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506 22 15쪽
» 블랙홀 속으로 10 +4 20.10.13 497 25 13쪽
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3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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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내추럴 본 : 이성규 중령 20.10.07 555 22 12쪽
101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2 20.10.06 54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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