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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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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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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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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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내추럴 본 : 종결 2

DUMMY

단테의 신곡 지옥편?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꿈결 같았다. 안 들어가겠다고 할 수 없었다. 탄창을 갈아끼고, 본이 정하사와 수기를 주고받은 뒤에, 본이 조용히 손잡이를 열었고, 둘은 들어가면서 문 양 옆으로 서서 K-7을 쏘기 시작했다. 총 두 정이 열 발 이상씩 쐈을 때 그 중간으로 이중사와 고하사가 들어갔다. 쏘고 찌르고 확인으로 찌르고... 아비규환. 소리 못 낸다. 들어가기 전에 내추럴 본이 정하사에게 수기로 하는 걸 봤다. 검지로 관자놀이 톡톡.


‘머리 쏴! 머리!’


그 안의 군관은 적어도 좌관급들로 내 기억으로 열 명이 안 될 수도 있다. 가장 기억나는 건 하나.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는지, 본이 나에게 수기했다. '너 들어오면서 문을 닫아.' 난 그 안에서 아무 것도 안 했다. 그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자와 버둥 치는 자... 생각보다 비명과 소음이 많이 났지만 우린 상관 안 했다. 그 모든 게 끝나고 실내에 다시 고요가 왔을 때, 우린 바닥에 떨어진 걸 주어 그 안에서 단체로 담배를 피웠다. 난 아니었지만 나머지는 쓸 만한 권총들을 챙겼다.


사실 우린 죽은 자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안에서 변했다. 탐나는 물건이 아니라 끝까지 우리 투쟁을 위해 사용할 무기를 노획한 것일 뿐. 권총보다 더 중요한 것. 좌관급 군관 군복. 담배를 피우며 세 벌을 벗기고, 마지막으로 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거길 나왔다.


건물을 나와서 철조망으로 향할 때, 비로써 내 마음에 나에게 토로했다.


‘이런 게 특수부대야? 이런 거야? 특수전 좋~아하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로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우린 우리가 들어온 구멍 근처로 가면서, 아예 가까운 쪽 보초를 K-7으로 사살하고 철조망 자른 자리를 벌린 다음 옷에 흙 안 묻히고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수풀로 들어갔고, 내추럴 본을 제외한 모두는 먼저 오줌을 한 바가지 땅에 갈겼다. 나도 엄청난 물이 몸에서 나왔다. 미들급이 플라이급 된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경계조가 다가와 우리를 이끌어 10분 정도 올랐고, 거기서 지역대가 합류했다.


지역대장은 우리에게 딱 한 마디 물었다.

“잘 됐어?”

그러자 다시는 물어보지 않아도 될 대답을 이중사가 했다.

“네, 아주 심하게...”


지역대장은 내추럴 본에게 다가섰다. 수고했다 어깨를 쳤다. 그러자 내추럴 본이, 지역대장에게 두부 만한 놈을 건넸다. 가죽으로 둘둘 말린 것. 벨트와 권총집까지 있는 백두산권총. 그 뒤로 지역대장은 특전조끼 안에 그걸 차고 다녔다. 게릴라 대장답게... 수염 덥수룩한 지역대장이 저 백두산권총을 뽑아 공중에 들면...?


본. 내추럴 본. 인간 오형묵이. 상사 같은 중사. 내 고참.


그 뒤로 나는 일부러 (뭐 건드릴까 소심하게)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고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은 처음으로 자기 얘기를 했다. 난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여기 옮겨보려고 한다.


[남들과 차이 몰라. 내가 그렇다는 걸 안다는 게 이상해? 하지만 난 내가 문제라는 걸 이해 못 해. 우리 모친이 전형적인 소시오.... 뭐 그래. 감정이 존재하지 않아. 먹고 싸고 자기에게 이득 되는 거 외에. 황당한 말이 뭔지 아나? 니 부모 맘 모른다. 그래도 부모는 엄마는 니 사랑한다. 니가 불만 때문에 왜곡하는 거다...


그런 사람이 부러워. 당해봐야지. (여기서 웃었다) 대신, 당하면 그때부터 인생 기울어져. 다시 수평으로 안 돌아와. (또 웃었다.) 같이 살았던 외할머니도 똑같았어. 자기 외에는 진짜 관심 없는 불만 가득한 초등학생으로 평생 살다 죽었어. 슬픔 못 느껴. 나도 못 느껴. 나와 관계되지 않은 것에선 종종 감정이 오긴 해. 나 자체는 말렀어. 인간극장 같은 거 보면 어쩌다 눈물도 나. 하지만 나에 관해서는 없어. 비었어.


모친은 매일 비명처럼 소리 지르고 극도로 신경질적이었고, 아들을 그냥 하나의 또 다른 개체로 생각했어. 핏줄은 그냥 단어야, 서로 객체야. 빨래를 하건 밥을 하건 항상 사람 비난하는 혼잣말을 끝도 없이 주절거렸지. 혼자 존나게 떠들어. 그런 사람이 기력 떨어져 불쌍해지는 게 짜증나지. 난 부모와 애가 손 잡고 포옹하고 다소곳이 대화하는 게 좀 불가능한 사건으로 보여. 난 악수한 기억도 없어. 집을 개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천부적이었지.


그 여자는 통념적인 엄마를 흉내냈고, 그에 따라 난 아들을 흉내냈어. 본 지도 오래 돼서 남 얘기 하는 거 같다. 내그튼 사람 구역엔 말야... 아래위가 없쓰. 아버지 몰라. 인정 사랑이란 추상적이야. 구체적인 느낌 없어. 포옹하는 건가 그래. 부모 고향 그리워하는 것도 이상하고 애완동물은 살아 있다는 게 낯설고 불쾌해. 나라는 세상의 맹수가 있고 그 나머진 의미가 없어. 우린 동종을 금방 알아봐.


밤길 가다 어떤 놈을 봐. 직감. 저 놈 사람 죽일 놈. 피식 웃어주지. 화답으로 미소를 안 보이면 바로 담가뿐다. 기분 나쁘거든. 니는 내가 잘 싸운다 생각하나? 싸움이란, 같은 팔 길이 안에서 이겨도 나 역시 존나게 맞는 거다. 대신 난 패죽이는 거고. 난 여기가 좋아. 법이 없어. 훈장? 후후. 내가 무서운 건 따로 있어. 죽는 거 별로야. 그냥 사건일 뿐야. 난 정드는 걸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이야. 특히 너 같은 자식. 그게 피부로 올까봐 그게 더 겁난다. 내가 무너질까봐. 사람이 방식을 어찌 바꾸냐. 넌 날 닮아선 안 돼.]



그리고 하나 더.


[내는 사람 자알 안다. 므리가 똑똑한 게 아이라, 다 눈으로 본 거야. 변하는 가짜, 밟히거나 내 빼빼로 맞았던 사람들... 어려서부터 마~이 봤지. 마! 쉐끼야. 있는 그대로 해. 만들지 마. 생각 나는 대로 꼴리는 대로 해. 그게 죽음일지언정. 난 그걸 감출 수 없는 사람이야. 넌 그냥 마음 가는 걸 하고, 그게 니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 하는 게 바로 너야. 안 하고 싶으면 원래 인간이 교묘히 안 해. 칼? 칼 꺼내서 니 꺼 배때지와 허벅지에 대 봐. 거기 찔리고 싶나? 찌르고 싶음 찔러봐. 싫지? 그럼 적을 찔러. 적이 아냐. 니 아님 내가 골로 가는 현실이다. 마, 귀에 좆 뺐재?]


우리 작전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말야. 그 다음 작전에서 난 뒤졌어. 내가 그렇게 뒤지는 게 비극적이진 않더라고. 내추럴 본의 눈을 볼 때 그랬지. 아마도 출혈이 계속 되면서 그런 거 같은데, 정신은 멀쩡한데 앞이 점차 흐려져. 하지만 난 봤어. 날 존나 열심히 지혈하는 내추럴 본. 흔들림 없이 초연하게 진심으로 날 바라보는 내추럴 본의 눈. 난 그걸로 인생 만족했어.


사실 앞에 기술한, 좀 있어 보이는 나는 다 구라거든. 내추럴 본과 날 구분하며 썼지만, 난 짧은 인생 동안 외로움이 사람 죽이는 것보다 힘든 놈이었거든. 내 눈을 그렇게 진심으로 바라봐준 건 인생에 딱 한 번. 내가 뒤질 때야. 전혀 변함없이 날 보는 눈동자. 숨긴 게 전혀 없는 투명한 눈동자. Born.


그 양반이 측은한 눈으로 눈물 흘리고 그랬을 거 같애? 하하하. 본은 본이야. 그랬다면 난 이런 거 말하지도 않아. 내가 초면인 당신에게 왜 구라를 까겠어. 나 같은 놈을 귀신이라고 하지. 귀신이 왜 안 떠나냐고? 미련 때문이야. 본, 그 양반이, 내게 없었던 미련을 죽을 때 만들어줬단 말이거든. 나 원래 본보다 사람 안 믿는 놈이야. 평생 연기하며 살았어. 속았지? 내가 더 더러운 놈이야. 있는 것처럼 전혀 없는 놈. 사회적으로 포장된 놈. 인생에 긍정적인 것도 없고 사람 안 믿는 사람. 나야.


난 본의 눈을 보았지. 그 투명하고 북극 호수 같은 뭐 그런. 북극에 호수가 있건 말건 니미 그렇고. 난 완전히 먼지로 사라지기 전에 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잠시 돌아왔을 뿐이야. 그게 내가 지금까지 떠든 이유야. 이 고통의 장에 미련 없어. 당신들은 운동하고 보약 먹으면서 존나게 90에서 100까지 졸라 고통 받으며 살아. 인생에 의미가 있대매? 믿고 싶은 걸 평생 믿으며 살아 보시구랴.


이 말만 기억해. 당신의 이름과 과거 기억은 결코 당신 자신이 아니야. 우연히 태어났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해도 그 존재 자체로 당신이 귀중한 거야. 쓰린 과거와 상처 준 인간들에게 시간 낭비하지 마. 그 놈들도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워해. 다 자기만 당했다고 구라를 까지. 다 버리고. 뭘 찾으려 하지도 말고, 그냥 조용히 자신을 느껴. 그 시간을 계속 늘여. 그게 당신 안에 습관이 들고 당신을 차분하게 채워봐, 그럼 당신의 새로운 미래가 보일 거야. 정말로 새로운 게 열릴 거야. 그리고 보일 거야. 난 본 때문에 열렸으나 그걸 겪지 못하고 죽었어. 그게 아까워 죽겠어. 죽었지만.


내가 푼 구라에 존경의 의미로 담배 하나 찔러봐 간나새끼들아. 영혼도 니코틴은 못 끊는다.


내 마지막 작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분명히 작전 중간에 어떤 놈이 뭘로 한 방 줬어, 적 보급기지 때린 건 생각나는데, 기억은 사라졌어. 열차역. 보급기지 조졌지. 그때도 본과 같은 조로 거기 갔다. 난 앞서 상대를 과다출혈로 죽였잖아. 인생 돌고 돌더라. 다음 작전에서 나 역시 과다출혈로 뒤졌을 걸 아마.


그렇게 난 세상을 떴다. 본은 나에게 모든 예의를 다 갖춰 주었어. 고하사와 ‘갑자기 만나서 속에 있는 말을 나누지 않아’ 잘 모르는 두 명에게도 감사해. 무슨 조랑말이라 그런 거 같기고 하고. 죽기 전에 몽상인가봐. 북한 땅에서 어떻게 씨바 7여단을 만나냐고. 음마 금마. 하여간 그 다음 날까지 내가 죽었다는 아쉬움에 좀 머물다가, 누가 내 몸에 총검을 찌르고 군복 벗기는 걸 보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 빠트렸네. 이날 작전이 끝나고 밤새 산 타고 올라와 눈을 붙였어. 정오에 일어났지. 그때 말야... 이런 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각자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각자 떠오르는 생각이 맞건 다르건 말을 하긴 해야겠다. 그날 정오에 눈을 떠서 난 알았어. 난 내가 되었어. 말이 이상한가? 정말 내가 되었어. 자기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어. 바로 그게 함정이지.


무식하면 용감한 거야. 예전에 파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에서 작가가, 대학생 시절 바닷가에서 3일 동안 자기 이름만 불렀고,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그리고 난 내가 되었다.’


폼잡네 했었는데... 나도 그걸 깨달았어. 생각과 몸과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내가 완전한 실감체로 뭉쳐졌어. 그렇다고 그게 하드코어로 존나 단단하고 그런 건 아냐. 하지만 이제 그 어떤 것도 내 중심을 흐트러트리지 못 하게 된 거야.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난 내 인생에 만족했어. 허허. 그냥 듣고 잊으시오. 인생 최고의 행복은 거울에 있는 '나'가 진짜 나에게 들어오는 거라고. 하하하.


내 얘기가 좀 무섭고 잔인하게 보이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말요. 우리에겐 (미안하지만) 감동이라오. 적진, 사령부, 기도비닉, 무성무기, 조국과 전쟁, 전쟁에 이바지하는 것. 너무나 감동적이고 황홀해서 했던 거라오. 남 보기 미친지 몰라도 우린 짜릿한 감동이지. 우리가 누구요.


최후전선 180리,

고립무원,


나의 칼이 적에게 전율을 주고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어 손을 들도록 하는 것. 독립운동가 6.25 월남전 군인. 용감한 놈은 그게 멋있어서 하는 거라오. 이런 군인의 세뇌를 마냥 욕할 건 아니오. 지금 밥술이나 뜨는 것도 이런 피의 가면 때문이지. 지금은 사바세계 다 부질없지만.


합천으로 가서 가족 좀 보고 싶으나,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이 이야기를 끝으로 가야할 곳으로 갈 생각이야.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싶어. 받아들이는 건 당신들 자유다.


전쟁은 하지 말거나, 할 거면 빨리 끝내.

그리고, 매일 하루를 축제처럼 사시오.


지금 가지고 있는 걸 소중하게 여겨 이 사람들아.

난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고 뒤졌어. 헤헤.

당신이 좆같다는 게 나에겐 귀중할 수 있어.


어차피 인생 그렇지만,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 박기수요. 이제 우주의 먼지로 흩어집니다.

꿈은 딱 하나 있었지요.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죽어서나 보게 된,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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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해파리 three (2) 20.10.24 411 18 11쪽
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41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51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97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3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6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62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506 22 15쪽
106 블랙홀 속으로 10 +4 20.10.13 497 25 13쪽
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3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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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내추럴 본 : 이성규 중령 20.10.07 555 22 12쪽
101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2 20.10.06 54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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