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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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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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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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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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의 유령 1

DUMMY

군대는 근본적으로 움직임이 힘겨운 집단이다. 군대가 명령에 따라 착착 착착 금방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부대 어떤 주특기든 군대를 졸병부터 경험하지 못하면, 물리적으로 움직이기 무겁고 복잡한 집단이라는 걸 이해 못한다. 출동은 금방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대가 찢어지며 지도에 추상화가 그려지고 항공 화력 보급 정보지원 그때부터 복잡해진다. 지도의 추상화를 잘못 이해하면 제대를 몰살시킬 수도 있다.


명령하달에 신속하게 전투준비가 되어 기동이 빠른 군대/부대는 일정하게 훈련을 소화한 곳이다. 신속한 준비와 이동만으로도 전투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 전투경험 전쟁경험 없다고 저평가하는 사람들 말이 굳이 틀린 것은 아니나, 모든 전쟁에서 장병 대부분은 이전에 전투경험이 없었다. 반대로, 이동이 무겁고 힘겨운 군대는 전투에서 형편없어질 확률이 높다. 멋진 군복과 최신 군장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군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보는 다른 나라 복장 무장 따위에 믿음이 없다.


비상-기동에 장병은 극도로 피곤하며 챙기고 점검할 것이 엄청 많다. 훈련이 덜 된 부대는 전투 전에 소란의 혼돈으로 빠져들어 잘못된 전술적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거 챙기면 저게 펑크 나고의 반복. 출동하면 무-수면 중단 없는 작전을 수반한다. 식량과 실탄이 떨어지는데 제대가 보유한 것이 트럭으로 안 오면 사람이 죽는 거다.


모르는 사람은 왜 가진 것을 못 쓰냐고 이해가 안 된다. 도로 상에서 헤매는 트럭 운전병도 수면부족 초행길에 지도는 헛갈리고 무전은 먹통이다. 말로만 떠드는 보급전도 훈련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 ‘이 사단을 여기로 기동해서 막으면 되잖아!’ 말은 좋다. 그런 비전문가의 의견대로 이뤄지려면 모든 장병이 기계적 로봇이어야 한다. 그래서 되기는 될까?


명령이 떨어졌을 때 작전-정보-화력-탄약-급식-지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군대는 강한 군대다. 다만 이 ‘유기적’이란 상태가 되려면 장병들이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현대의 군대는 1개 중대가 총원으로 형성되었다가 동시에 제대하지 않는다. 총원의 1/3은 항상 미숙한 상태이며, 이 1/3 미숙자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 수준이 나온다. 겉보기에 눈이 부리부리한 것과 효율적인 군대는 꼭 같은 것이 아니다.


군 경험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군사 퍼레이드를 보더라도 전투력까지 안 믿는다. 퍼레이드만 엄청 연습하는 군대는 모자란 것이 있는 군대이며, 선진국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없다.


완벽하게 배치 방열에 이르게 될 때까지의 능력은 그 부대가 최악의 상황에서 ‘버틸 한도’를 의미한다. 그 ‘버티는’ 것이 전투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양쪽이 같아 보여도, 붙기 전에 누가 강하다 말하는 건 속단이다. 최소 2~3일을 보면 엑스레이가 나온다. 준비된 군대는 2~3일이 지나도 기능이 시작 때와 비슷하게 계속 돌아간다. 전장에서 정확히 쏘고 용감하게 돌격하는 건 어느 군대나 순간 잘 할 수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모르는 사람 말만 들었다가 전술착오와 ‘혹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장담 못한다. 군대를 스타크래프트 버그 떼처럼 간단히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지휘관은 프로 게이머 시키면 된다. 하루 8시간이나 자야 피로가 풀리는 인간이 빠진 기계식 대리전이 오기 전까지 이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거지로 전쟁을 이끌어가려고 할 때다. 정말 잘 싸우는 군대도 전략적인 실수 때문에 큰 피해를 입는다. 군대는 밑에서도 붕괴되고 위에서도 붕괴될 수 있다.


화약 냄새 맡은 군인은 묻는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걸 누가 알까.

내가 희생할 때 의미는 있는 거지?

설마 나만 이러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외로운 건 당연한 것이겠지?


전형추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스파크처럼 튄다.

숨을 이빨로 악문 전영배는 그 눈을 본다.


하향 길에서 조우한 군부대. 곧바로 받은 사격. 길은 두 갈레였다. 높은 곳으로 뛰느냐 낮은 곳으로 뛰느냐. 낮은 쪽은 아무래도 백지시험에서 기억하는 도로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이 상향으로 뛰는데, 이미 높은 능선에서 플래시들이 보인다.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죽는구나. 진짜 죽는 구나, 내가...’


그때였다.

갑자기 저 아래 계곡에서 꽈릉!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크기나 강도로 볼 때 저건 수류탄. 전형추는 폭발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 전중사를 사로잡는다. 아래서 쫓아오며 쏜다. 딱! 타다닥. 하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딱. 퍽... 생각은 특정한 주제에 걸려 멈춰있다. 아는데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나? 영배의 눈이 묻고 있다.


‘전중사임, 여긴 우리 밖에 없어요!’


갑자기 도망자의 비애가 몰려온다. 배신자라는 기분이 군장을 진 몸을 초라하게 한다. 저건 누군가. 혹시 침투조? 인생 더러워질 것 같다. 창피, 창피함으로...



너, 최상사. 너무 쉽게 생각했어. 해군 말고도 해안 경계부대가 몰려 있다는 상식을 까먹은 거야. 여길 빠져나가 5대대까지 가려면 군부대 밀집지역을 통과하는 거야. 잠수함기지 근처에 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짱구였어. 그나저나 다리에 뭣이 때렸다. 각도는 틀어진 것 같진 않은데, 뜨겁다. 몸이 비 맞은 초등학생 같이 오들거린다.


무기력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이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뭐 이런 개 같은 것이 날 건드려 나락으로 떨어트리나. 그렇다면 나만 죽을 수 없다. 그럼! 세상은 내 것이야. 내가 죽으면 다 죽어야 돼. 다 죽이고 죽고 싶다. 내가 죽는데 니들도 죽어야 돼. TNT C4 천 파운드를 점화하고 싶다. 모두 공중으로 뜨고 죄다 조각나는 거지. 서로 고통 없이 가는 방법 아니겠어? 고통과 공포 1초나 걸려? 아, 자폭하고 싶다. 내가 가는 황천길에 니들을 즐비하게 깔아놓고 싶다. 즈려 밟고 가고 싶다. 하, 돌산에서 핀수영 해나온 것이 며칠은 지난 것 같다.


지겹다... 몇 번 째냐. 폴 이글이냐? 그냥 자동으로 갈겨!


날 인지했다. 군화를 본 것 같다. 한 놈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대항할 무기가 없다. 대검. 팔이 고무팔처럼 늘어져 힘 못 쓴다.


놈. 이놈만이 아니다. 내가 힘이 남아 대검으로 어쩐다 해도, 사방에 놈들이 넘친다. 이 상태로 잡히나? 빨리 끝내주길 바란다 이 개새꺄, 그냥 저벅저벅 걸어와. 아무도 없어. 여기 병신 하나 누워 있다고. 넌 계급이 뭐냐. 날 봐라.


할 만큼 했다.


대한민국 육군 상사. 무릎 연골 반 밖에 안 남았고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한다. 다리 팔 한 번씩 부러졌고 햄스트링 세 번, 특공무술 시범하다 머리 찢어지고, 자잘한 근육과 인대 신경 부상, 고질적인 허리통증. 겉으론 멀쩡하지만 한두 군데 아니다. 전입 와서 지역대 공인 분노조절장애 사수 만나서 중사 1호봉까지 아침에 조우하자마자 싸대기로 시작해 수동발전기 고문에 정말 원 없이 맞았다.


저체온증으로 자꾸 뒤집어 까져서 돌(아온 스)쿠바 될 거 목숨 걸고 수료했다. 수영하다 저체온증으로 잠이 들어 교관 조교 싸다구로 깨길 세 번. 내 페어가 날 지켜보지 않았으면 나 용왕님 접견했다. 끝도 없는 훈련과 끝도 없이 마신 술 술버릇. 6천리마를 타고 정찰대 왔지만 여전히 보름마다 발바닥 군살을 도루코칼로 한 근씩 깎아낸다.


그러면서 - 어쩌면 두려워서 - 야전전환 꿈도 안 꾸고 기회를 흘려보냈다. 정신 차리게 한 아내와 날 인간으로 만든 딸. 정찰대 내려와서 대테러 대기 때문에 핸드폰 트라우마. 흘러 흘러 1차 침투 기계획팀도 아닌데 할로로 들어와 여기에 이르렀다. 스펙터클했다. 질질 짜고 싶지 않다.


그래 무섭다. 검은 그림자. 북한 전투모. 내 배때지를 겨눈 카라시니코프 우뚝 솟은 가늠쇠 울, 그 앞에 나를 향해 선 총검. 봐라. 구경에 돈 드냐. 남조선 게릴라다. 살면서 이런 거 얼마나 보겠냐.


어, 얼굴이 이상하다. 언제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에게 있어. 너에게 전조가 있어. 무엇이건데 내 눈앞에 전조가 보이는 거지? 여기 뭔가 있다. 난 그것을 볼 것이다. 내가 죽는 그것인가! 몸이 움츠러든다. 피할 수 없는 거야... 다시 시야가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다시, 나뉘어진 1초를 본다. 슬로우비디오를 본다. 내 일이 아니라 타인의 영화 같다. 난 아무런 감흥 없이 볼 뿐이다. 신기하게 관찰할 뿐...


꼬챙이처럼 끝을 날카롭게 연마한 철사. 그 철사가 돼지고기 덩어리를 사정없이 푹! 찌르고 반대편에서 침을 뱉듯이 검은 액체가 턱 떨어진다. 머리가 옆으로 까딱하면서 몽유병 환자처럼 다리가 풀리고 무너진다.


AK가 내 가슴을 치면서 몸이 나에게 넘어온다.


저 멀리서 몽둥이로 커다란 양은 쟁반을 내려진 소리.

그리고 이어 채찍의 여운 같은 산울림...

터~엉! 사아아아아악.... 메아리치며 사라진다.

입 다시고 밥상을 물리는 것처럼...


그림자. 외로운 그림자.


미치겠네...

이 새끼가...


날 위한 한 방.

2탄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수칙이니까.

수류탄 폭발을 들었나? 이게 정말... 두 번째야. 똑같은 게.


할로 TO가 떨어졌을 때 난 반대했다. 전권은 정찰대장이 쥔 것 같지만, 낙점하고 추천하는 건 행보관 주임원사. 은솔이는 정찰대에서 곧 방출될 거라고 믿었어. 귀하디 귀한 HALO TO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교육이 힘들다? 굴린다? 준다고만 하면 스쿠버팀 중사 고참도 달려들 TO다. 교육은 힘들어도 수당에다가 장기를 박기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교육자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장기 의사를 일단 묻고 입교시킨다.


어느 대대에서 군 생활 10년이 넘은 양반이 어거지로 고공기본 TO를 먹고 들어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퇴교까지 몇 번을 몰렸는데, 특교과 교관 조교들이 살려줘 수료시켰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힘든 짬밥. 할로는 거미줄처럼 퇴교 조건이 깔려 있다. 1/3은 나가는 셈 치고 받고, 그 정도는 퇴교된다.


'돌아온 HALO 되면 죽여버린다. 퇴교?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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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41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51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113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96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2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73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6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62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506 22 15쪽
106 블랙홀 속으로 10 +4 20.10.13 496 25 13쪽
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2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103 내추럴 본 : 서바이벌 나이프 20.10.08 530 24 16쪽
102 내추럴 본 : 이성규 중령 20.10.07 555 22 12쪽
101 내추럴 본 : 갈대숲에서 하늘을 본다 2 20.10.06 54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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