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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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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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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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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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지막 가을비 5

DUMMY

천천히 걷다 보니 피? 아? 두 명이 보인다. 셋 앞에 등을 지고 저 앞을 향해 단발로 총을 쏘고 있다. 모자 총 행동, 셋은 자신들 쪽이 아님을 금방 알아본다. 중위가 수기로 자기와 윤중사를 지시하며 바로 대검을 뽑았고 윤중사는 총검 달린 총구를 수평으로 들었다. 이하사는 곧바로 엄호사격 자세.


비.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잎사귀에 떨어지는 소리. 가끔씩 내리치는 천둥. 그리고 헉 하는 상대의 소리. 허파에 공기 들어가는 소리. 푸주간의 호흡 풀리는 소리. 팔로 목을 당겨 조이면서 다시 재차 들어가는 공격에 절규. 또 재차 공격. 상대는 다리가 풀어지고 밑으로 흐른다.


"개 새꺄......"


옆에서는 다른 몸을 관통해 앞까지 나간 총검.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또 했다는 자책감도 잠시. 그들은 당한 병사가 총을 쏘던 방향 저 멀리를 본다. 누군가 교전하고 있다. 교전 맞다. 오른편은 적어도 열 명 왼편은 한 명. 그렇다면 그 왼쪽 하나가 셋의 아군으로 보인다.


쓰러진 자들은 전율하며 비를 맞고 공격자들은 탄창을 회수한다. 대검으로 공격한 직후 사방이 너무 고요할 때 마음은 더욱 산란한다. 그러나 이를 느끼기도 전에 저 앞의 교전이 눈에 들어온다. 왼편 한 명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진 않으나 거의 99.9999% 지역대원 같다. 그 한 명은 쏘고 기동하고 있다. 상대하는 열 명은 계속 쏘며 조금씩 다가선다. 이 컴컴하고 축축한 밤, 오른쪽 놈들은 그 거리에서 무식하게 자동으로 마구 갈린다. 정확히 쏘는 게 아니라 빨리 저리 가라고, 귀신아 사라져라 절규하는 듯하다. 탄창을 회수한 세 명은 곧바로 오른쪽 무리 측면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조용히 다가선다. 발을 땅에 스치지 않고 조금씩 들어 가볍게 놓으며 간다. 거리가 가까워져 오자 중위가 두 명에게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눈을 지시한 다음 양손 검지를 십자가로 만들어 오른쪽 눈에 놓으며 강조했다.


‘정확히 조준사격으로 쏴.’


적은 조금씩 이동했고 셋은 그들 무리의 측후방에 위치했다. 숨을 정리하고 거총. 보총은 수평 가늠판에 파인 홈이 사격에 편하다, 앞쪽의 원형 가늠자 울이 뒤쪽 수평 가늠판에 정확히 반, 딱 맞게 걸리면 조준은 어렵지 않다. K2를 쏴봤으면 아주 다르지 않다. 거리에 따라 레버를 앞뒤로 밀면서 거리를 조절한다. 남조선 소총에 비해 묵직하고 안정성도 있다. 다만, 대체 이 보총이 언제 만들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니미. 사격 존나게 해서 총열이 걸레가 아니라고 믿을 뿐이다. 지방에서 RPD도 여전히 쓰는 판이니.


산에 두고 온 남조선식, 그렇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그랬다. 남한이라 안 부르기 시작했다. 남조선이다. 일부러도 아닌데 북한식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현지화는 분명 아니었다. 북한용어 시험 보던 걸 떠오르는 대로 사용한다. 여기서는 남한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남조선이다.


김중위는 조끼에서 수류탄을 뽑아 이하사 손에 쥐어준다. 사격이 시작되면 저 무리를 향해 던지란 소리.


둘은 적을 향해 횡대로 서서쏴, 이하사는 안전핀 뽑고 투척 준비. 둘은 가늠판 위로 앞에 보이는 섬광들을 얹는다. 말하지 않아도 중위는 좌측 중사는 우측을 맡는다. 신호는 중위의 발포. 이하사는 수류탄을 던지고 사격한다. 아무리 편하게 적을 쏘면서 왔다고 해도, 민감한 상태로 총을 조준해 쏘고 있는 상대는 조심해야 한다. 총구를 돌리면 금방 나에게 근접탄이 날아온다. 중위가 가늠판에 섬광을 얹어 홈을 보면서 숨을 조정했다.


‘섬광은 총구. 몸에 맞추려면 섬광을 홈의 왼쪽에 걸면 총알이 몸통으로 향한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이 안정되고 숨이 ‘멈추자’ 손가락은 반응해 첫 발이 나간다. 탕! 윤중사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탕 타타당. 탕 탕 탕. 순간 비명소리가 들리고 섬광들이 중단된다. 이하사가 고함친다.


“수류탄!!!”


셋은 구부린다. 이어 하느님 손바닥이 땅을 내려치면서 쾅! 들썩.

폭발이 끝나자 김중위는 일어나 계속 조준 단발, 이하사와 윤중사도 일어났다. 앞으로 천천히 나간다. 걸어쏴로 적을 향해 나가면서 윤중사가 왼쪽에서 외롭게 싸우던 단독 섬광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번개! 번개 셋~~~!!!”


셋은 대테러사격처럼 조준간을 보며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걸어간다. 섬광이 보이면 단발로 사격, 어느 순간 그들을 향해 뿜는 원형 섬광이 사라진다. 이제 무언가 부스럭 꿈틀하면 당긴다. 윤중사는 다시 소리쳤다.


“쏘지 마! 번개! 번개 셋!!!”

세 명이 저항할 자들을 물색하는 동안 저 쪽에서 고함이 왔다.

“번개! 번개! 넷~~~!!”


숨이 턱 막힌다. 누구냐. 며칠 만이냐. 넌 은거지 내습 당시 어디로 도피탈출한 거야? 누구냐고 이 자식아! 마음이 급해진다.


셋은 전장을 정리/노획했다. 상대는 전술 없이 뭉쳐 있었고 무기력하게 당했다. 게다가 보병의 기본전술 오류 - 측후방을 완전히 노출했다. 언제부터인가 셋은 완전히 쓰러진 자는 확인사살로 쏘지 않는다. 더 쏴봤자 의미도 없을 뿐. 적이 이들을 후송시켜 부상자를 늘린다는 그런 개념도 아니다. 그냥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쓰러진 자 가슴에 총구를 댄 다음 눈을 보고 탄창과 수류탄을 회수한다. 만약 반항하면 쏘지만, 아니면 그것만 회수하고 총은 노획하거나 노리쇠뭉치를 빼 멀리 던져버리고 땅에 총열을 때려 휘게 한다.


쓰러진 자도 서 있는 자도 흠뻑 젖었다. 비는 더욱 줄기차게 내리고 몸에서 한기가 오기 시작한다. 짙고 무거운 공기 속에 진한 흑색화약 냄새만....


윤중사가 소리쳤다.

“번개! 이리로!!”

그러자 상대가 거부했다.

“아니야 번개! 이리로!!”


생각해보니 적이 더 나타날 수도 있고, 저쪽이 안전해 보인다. 고함치는 목소리로는 누군지 알 수 없다. 중위와 하사는 재빨리 실탄과 수류탄을 노획했고, 탄창이 아닌 실탄은 수풀에 멀리 던져버렸다. 어느 틈에 삽탄하나. 빠르게 일어난 회수. 끝나자 중위가 “저리로!” 셋은 그 쪽으로 뛰었다. 질퍽이는 바닥, 미끄러운 수풀, 군화에 묻어나는 떡이 된 진흙. 뛴다. 소리가 가까워 온다.


“여기! 여기!”


셋이 가까워져 오자 상대 목소리는 점차 속삭임으로 바뀐다. 그 목소리 쓰는 방식을 보고 셋은 안심했다. 같은 계열이다. 그 버릇은 자신들에게도 습관. 그리고... 드디어 도달했다.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어두운 수목 속에 서 있는 넌 누구냐.


숲속에서 작은 흐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수풀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제 넷이 된 그들은 다시 열차역으로 향한다. 종착역에서 더 이상 갈 철도는 없다. 도망칠 수 없다. 저리로 가야 한다. 다른 지역대원이 싸우고 있다. 동참한다. 가서 총구 하나라도 더해야 한다. 그곳이 죽음의 입구일지라도 배신행위는 권총을 입에 물고 당길 만큼 쪽팔리다. 싸우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전우. 먼저 간 전우들이 자신을 대신해 죽었고, 남은 사람들 또한 전우들을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을 유일한 존재. 이 쓸쓸한 오지에서 의탁할 유일한 존재들. 부채와 상환은 누가 먼저랄 것이 없다.


넘어와서 진심으로 깨달았다. 기본적인 욕망을 이기는 엄청난 흡입력의 그것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서로 믿고 과감하게 달린다. 물론 100%란 인간사회 어디서나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그렇게 행동했다. 그렇게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끈끈한 그것이 죽음의 관문에서 망설이지 않는 진정한 힘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 그것은 지휘관인 장교부터로 시작되어 흘러야 더욱 완벽해진다. 장교를 거쳐 부사관을 거쳐 병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중간에 막히면 언젠가 부러진다. 부러지면 위나 아래나 공통 뒈진다. 그것이 이어지면 막강한 소대 막강한 중대 막강한 연대와 사단이 된다. 그 흐름을 위해서는 권위와 힘이 있더라도 중요한 시점에 진실해야 한다. 진짜 자신을 내보여야 부하들도 숨김없이 반응한다. 장교가 항상 자기 속을 내보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말한다. 부대가 포위당하고 죽을 것이 뻔한 공격을 앞두고, 그럴 때의 진실함과 솔직함을 말한다. 귄위로 서로를 속이면 안 된다. 권위를 즐기는 놈은 전시에 먼저 죽는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 '진실'하게 시작한 지역대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지휘관이지만 물론 어쩔 수 없이 총을 들고 적을 쏴야하는 소부대 지휘관, 소령이었다. 강함은 진실함에서 나온다. 같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부하들을 진심으로 움직이게 했다.


비 내리는 북쪽의 어느 땅. 아무도 그들이 그렇게 싸우는 걸 몰랐지만, 서러워하지도 외로워하지도 않는다. 김중위는 자신이 고귀하게 간직하던 지휘관의 명예와 가치를 냉정하게 찾았고, 윤중사는 자신의 욕망을 이겨냈으며, 이하사는 동등한 전사로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갔다. 그들에게는 현재가 중요했지 과거나 미래나 구차한 니미 씹이다. 적을 죽이고 살아남아야 과거나 미래도 존재한다. 어쩌면 현실도 벅차다. 현재를 넘어서는 먼 앞을 바라보기에 삶은 부단히도 정신이 없다. 미래를 높게 계획한다고 뭐가 얼마나 이뤄져? 그 높은 곳을 향해 가려는 맛으로 살 뿐. 모두 적정선에서 만족하고 산다. 그래서 삶을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셋은 넷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넷 중에 셋이 몰랐다. 본인이 말하지 않았으나, 이하사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연분홍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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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79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4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3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5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6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3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3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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