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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laa
그림/삽화
리건
작품등록일 :
2020.11.1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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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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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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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음모와 위기 (3)

판타지 소설로 송나라 역사를 배우다!




DUMMY

유내관의 관아는 궁궐 안쪽에 있었다. 유내관은 중서문하의 산하 기구였으므로 당연히 정사당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강은 가장을 내고 난 후 매일 유내관에 와서 소식을 탐문했기 때문에 그곳 지리에 익숙했다. 먼저 우액문에서 신분을 확인받고 난 후 궁궐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문덕문이 있고 그 문덕문을 지나면 매월 삭망 대조회가 거행되는 문덕전이 나온다. 유내관은 문덕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서 가야 했다. 그러면 그곳에 대송의 정치와 군사의 중추(中樞:사물의 중심)가 나온다. 헌데 정사당의 중서문하와 추밀원을 합친 별칭도 공교롭게도 중추(中樞)였으니 이래저래 대송의 중추가 맞았다!


유내관의 관아 문 앞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이름이 ‘궐정(闕亭)’이었는데 궁궐의 궐이 아니라 관궐(벼슬자리)의 궐자였다. 그러니 그 정자는 사람이 들어가 쉬는 곳이 아니라 방을 붙여 놓는 용도였다. 궐정 안으로 빙 돌아가며 십여 개의 공고판을 세워놓았다. 거기에는 근래 유내관에 등록된 내용이나 아직 관궐에 배정되지 않은 벼슬아치 후보자를 주의(注擬:관원을 임명할 때 후보자 몇 사람을 정해 황제에게 올렸던 것)한 명단이 빼곡했다. 말하자면 공정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표시였다.


뒷거래가 없이 공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자리는 적었고 사람이 많은 탓이었다. 저급 무관을 주관하고 있는 삼반원 안에도 삼사백 명 정도가 보직이 없었고,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유내관에도 삼사백 명이 보직이 없었다. 천하에 있는 모든 관궐을 합쳐봐야 일만 개가 조금 넘었는데 문무관원을 모두 합치면 이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관원들은 좋은 관궐을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관원 신분을 얻기는 했으나 직책이 없는 사람들은 참고 기다리기가 무척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강은 관궐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직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전선을 치러야 한다면 규정에 따라 시험장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어제 여기 와서 전선 통지서를 내밀고 한강이 왜 전선을 봐야 하는지 연유를 물었을 때 서리 하나가 나와 시험 전에는 시험 주관자인 유석을 만날 수 없다는 얘기만 해 주었다. 한강은 신중한 성격인데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평소 행동 준칙대로 정보를 찾는 사람이었다. 어제 정호와 장전에게 갔을 때 전선에 관해 자세히 물었고 대강의 내용은 알고 오는 길이었다.


무관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문관 전선도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개관(改官), 즉 지방 막료로 근무하던 사람이 경관(경성 안에서 근무하는 관원)이 되고 싶었을 때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신진 관원 후보자를 주의하기 위한 입관(入官) 시험이 있었다.


개관 시험은 응시자들의 정무 처리 능력을 보기 위한 것으로 네 단계를 거치며 이루어졌고 합격자는 경관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후보자가 경관으로 바뀌게 되면 지현, 통판, 지군, 지주 같은 친민관(親民官)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 행정, 민정, 사법 그리고 군사까지 아우르는 이런 친민관이 모여 국가 정권의 기둥을 이루었다. 그러니 조정은 당연히 그들의 공사 처리 능력이 그런 중차대한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만 했다.


그에 비해 입관 전선은 난이도가 훨씬 낮았다. 만일 진사과나 제거(制舉) 급제자 출신이라면 전선 시험을 거치지 않고 직접 관직이 하사되었다. 전선을 거쳐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음보를 받고 관신을 얻은 이들이었다. 음보자들의 수준이 낮기도 했지만 음보자들 뒤에는 최소한 한 명 이상의 고관 친인척들이 버티고 있어서 응시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면 시험 감독관들도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정호와 장전은 한강에게 그 정도만 얘기해 주었고 구체적인 시험 과목은 얘기해 주지 않았다. 단지 명경 과거 시험에 나온 내용을 복습하면 될 것이라고만 했다. 그들은 며칠간 한강을 겪으면서 한강이 시부를 잘 짓지 못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유내전 문간 방에 있던 한관들의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한강은 한 서리를 따라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서리는 한강을 본청 안으로 데려가지 않고 회랑을 돌고 돌더니 어느 편청 앞으로 갔다.


편청 안에는 청포를 입은 문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한강은 그 두 명 중 한 사람이 자기에게 시험을 보러 오라고 전했다는 유 령승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두 사람 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품급이 같은 관원들 같았고, 또 오늘의 시험 감독관 같았다.


한강은 편청 안으로 들어가면서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장전에게 들었던 바로는 초임 입관 선발 시험 감독관은 한림학사나 중서사인 중 한 곳에서 나왔고 그들의 관직도 사마광이나 왕규 정도 급수가 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붉은 옷에 금어대를 늘어뜨리지 않은 사람이 감독관으로 나올 리가 없었고, 더구나 혼자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치러야 맞을 것 같았다.


“유 령승, 정 령승, 진주에서 온 전선 후보자 한강이 도착했습니다.”


서리는 그 두 사람에게 한강을 인계한 후 물러갔다.


두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자 한강은 한층 더 의아했다. 유내전을 주관하는 사람은 ‘판유내전사’라고 어제 장전이 말했었다. 판유내전의 비각교리(祕閣校理)인 진양(陳襄)이 시험의 주관자이고 그 외에 다른 사람이 대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진 교리는 없고 두 명의 령승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어찌 되었거나 한강은 앞으로 나가 절을 한 후 뒤로 한발 물러서서 두 사람의 유내전 령승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강이 고개를 숙이려는 그 찰나 그 두 령승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도 뭔가 근심하는 듯 보였다.


“자네가 한강인가?”


유석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제가 한강입니다.”


“어디 출신인가?”


“본관은 밀주 교서(密州膠西) 지방이고 진주 성기현에서 왔습니다.”


신분 확인을 위한 대화는 몇 마디로 금방 끝났다. 의례적인 질문일 뿐이었다. 가장을 내려놓은 유석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한 형은 경성에 와 있는 동안 아마도 기다리기 답답했을 것이오.”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그렇게 아니라고 감출 것 없소! 밖에 있는 저 관원들도 매일 유내전 욕을 하지만 그들에게 어디 별일이 일어나던가?”


유석은 몇 마디 하고는 하하 웃었다. 왜 갑자기 웃음이 터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한 형은 천자의 특지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전선은 그냥 의례적인 것일 뿐이오. 조정 규정에 따르면 비 과거 출신자는 모두 시험을 한 차례 치르게 되어 있으니 우리라고 그것을 위배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한 형은 세 사람의 추천을 받았을 정도라 왕 대삼께서도 눈여겨보신 것이고 그래서 천자께서도 특지를 내리신 거겠고, 당연히 재능이 아주 출중할 것이라 믿소. 이름값 못하는 고관의 자제들도 통과하는 시험인데 한 형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소?”


“령승께서 과찬하시니 한강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한 형은 아주 겸손하오!”


유석은 또 하하 웃었다.


한강은 그를 따라 가볍게 웃었다. 한강이 보기에 이 전선은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유 령승을 보니 관료 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늙은 너구리 같아서 그의 심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강은 유석이 웃고 있는 얼굴에서 무언가 걱정과 우려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지만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곧 한강은 추측을 포기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추측하기보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는 게 나았다.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목적과 입장을 판단하는 게 표정과 말을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했다.


“정형, 어떻게 생각해요?”


유석이 다 웃고 난 다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시작합시다!”


당나라 때 규범에 따르면 첫 벼슬길에 나서는 신입 관료라면 네 가지 심사에 통과해야 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곧 생김새, 언변, 글씨, 판단력을 고루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송나라 때에 와서는 기본적인 원칙이 그렇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 당나라 때만큼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신에 해당하는 생김새에 관해서 보자면 당나라 때는 오관이 단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송나라 때가 되면 이목구비가 반듯한가로 판단하지 않았고 몸이 건강한지 큰 장애는 없는지 정도만 봤다. 만일 진사라면 눈이 멀었거나 목에 혹이 났어도 관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 다음 언변을 판단할 때면 전선관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컸으므로 언변이 뛰어나지 못하다며 응시자의 목을 조를 수는 없었다. 까딱 잘못 했다간 전선관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고소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 항목도 시험 성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서에 해당하는 글쓰기 항목은 관원의 기본 조건이다. 글도 제대로 못 쓰면서 관원 노릇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관이라면 좀 달랐다. 무관인 경우 친필로 써낸 가장에서 틀린 글자가 세 개를 초과하지 않고, 계산 문제 다섯 개 중 세 개만 맞히면, 서법과 계산에 합격이어서 병참 보급 업무를 맞는 무관이 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 위에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면 우수한 등급의 무관으로 판정받을 수 있다.


판(判)에 해당하는 판단력 시험은 당나라에서는 재판 사건과 그 판결문을 가지고 평가했다. 지방의 주와 현 등의 관원들은 사건을 심리하다가 판단이 어려운 것들은 중앙으로 올려보내 판결을 요청하곤 했다. 시험 감독관들은 그런 안건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응시자가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법률에는 정통한지,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지, 숨겨진 것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지’ 등을 평가했다. 이런 판단력 심사는 송대에서도 똑같이 실시했다. 그러나 송대에서는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시부를 한 수 지어서 평가받거나 혹은 경전에서 열 문제를 뽑아 풀게 해서 합격점을 얻거나 둘 중 하나의 시험이 추가되었다.


유석과 정우가 진주에서 온 이 평민이 얼마나 무능한지 들추어내면 천자는 군신들 앞에서 큰 체면을 잃게 될 것이다.


한강을 애먹인다고 한강에 대해 완전히 거짓된 평가서를 올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누가 봐도 오관이 단정하고 신체가 건강한 귀격인데 못생기고 천박한 용모에 팔이나 다리가 없어 관원이 되기에 부적합하다 평가할 수 없었다. 또 누가 봐도 말솜씨가 좋아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못지않다면 나쁜 부류의 인간이고 굉장한 재능도 없으면서 방탕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글자가 모두 반듯반듯하게 잘 써 놓았는데 일자무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단번에 진위가 드러날 것을 가지고 잘못 평가서를 냈다가는 골탕을 먹는 것은 자신들이 될 수도 있었다. 한강의 일은 이미 관료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나중에 한강이 억울하다고 상소라도 하면 대질 심문을 받게 되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한강을 기다리면서 한강의 단점을 최대한 부풀리고 장점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으며 같은 뜻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을 골라 판 부문의 평가서를 작성해 올리면 능히 한강을 떨어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을 딱 마주한 순간 유석과 정우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한강의 용모나 외모는 누구라도 결점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걸출한 재주를 가진 젊은이라는 게 그대로 드러났다.


정우와 유석은 한강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난 후 경서에 관한 것이든 역사에 관한 것이든 한강의 머릿속에는 모든 것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묻는 말에 빠짐없이 일목요연하게 대답했으며 말투는 온화했고 태도는 시종 여유 있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런 태도와 말투는 그의 외모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니 두 눈 버젓이 뜨고 있으면서 문자도 모르고 천박하다고 평가할 수가 없었다.


서도 항목을 채점하려고 한강이 써낸 가장을 보니 이 젊은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한 눈에 보였다. 글씨체는 뾰족한 철필로 새겨놓은 듯이 단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숭문원에서 글씨를 베껴 쓰다가 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만큼 한강의 ‘삼관해서(三館楷書)’ 글씨체는 기가 막힐 정도로 표준적이었다.


이 젊은이에게서는 말과 행동거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젊은이 자신이 써낸 가장대로 3대가 농민 출신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명문 대갓집의 품격이 느껴졌다. 유석은 순간 자기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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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와 위기 (3) +15 21.01.29 1,747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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