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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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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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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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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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Act 35. 마녀의 남자 - (2)

DUMMY

“괜찮습니까? 손은 또 어쩌다 이렇게···”

“예,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기를 펼치던 남자 배우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후우.”


남자 배우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애써 미소를 그리며 지켜보던 백인화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작가 백인화.

그동안 숱한 작품의 보조 작가로서 전전긍긍하던 그녀에게 이번 기회는 그야말로 천금 같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보조 작가로서 힘든 나날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적던 자신의 작품이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

덕분에 세트장에 작은 소품 하나부터 캐스팅되는 배우까지 모두 최고의 상태로 입봉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상황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아니, 감독님 이거 캐스팅 진짜 아니에요.”

“백 작가 마음도 충분히 알겠지만 캐스팅은 이대로 가자.”

“아니 그래도 그렇지, 민강윤 역에 하진우라뇨! 방금 저 연기를 보고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백인화의 목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감독인 백수일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불쾌하게 변한 눈빛에 백인화의 몸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아무리 자신의 시놉시스를 마음에 들어 해주고 입봉까지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감독님도 아시잖아요. 연기는 둘째치고서도 하진우 이미지가 어떤지!”

“······”


이번에는 백수일이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배우 하진우.

올해로 5년 차 배우인 그는 높은 몰입을 기초로 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주가가 한층 올라간 만큼 인지도도 괜찮고 연기력도 괜찮았지만, 딱 한 가지가 문제였다.


“모태솔로 역할에 열애설이 3번이나 터진 배우를 넣는 건 아니잖아요!”


하진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문제였다.

잘생긴 외모와 함께 친화력이 높은 밝은 성격 때문일까?

5년여간 그가 보인 행보에는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언론에 공개된 열애설만 무려 3번이 넘어갔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3명에 관한 기사도 겨우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대중들의 시선에도 연기력은 괜찮을지언정 이미지부터 카사노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박수일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차마 단호하게 그녀를 물리지 못한 것이다.


“민강윤은 역할도 그렇고 그 감정선이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인데, 하필 그 역할에 카사노바 이미지의 배우라뇨. 특히 마지막에 대사랑 손짓 보셨죠? 자연스럽게 터치하고 대사 치는데 모쏠은커녕 무슨 카사노바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감독님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건 아니에요.”

“박 작가 마음은 나도 잘 알겠는데, 이번엔 그냥 가자.”

“선배!”

“일할 때는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불만 가득한 백인화의 외침에 박수일은 황급히 그녀를 다그치고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오디션장에 그들 말고 다른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에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아무튼! 내가 평소에 많이 아끼긴 하지만 근무시간에는 공과 사 좀 나누자.”

“아니, 감독님! 이번에 나 입봉 한다고 같이 가자면서요. 우리 대박 한번 치자면서, 모태솔로 역할에 저런 카사노바를 데리고 어떻게 대박을 쳐요.”

“그렇다고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예산 때문에요?”

“그래.”


예산이 문제였다.

아무리 박수일이 경력이 많은 노련한 감독이라 하더라도, 입봉작에 많은 예산을 받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서로가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기에는 이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이미지는 다소 어울리지 않더라도 연기력이라도 괜찮은 하진우가 후보에 오른 것이고.

백인화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감독님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

“감독님도 직접 시놉시스 읽어보셔서 아시잖아요. 이번 민강윤 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한 역할에 카사노바 이미지의 배우는 아니에요.”

“알아도 어쩔 수 없어. 이건 백 작가가 양보하자.”

“감독님!”

“아니면!”


커지는 언성에 맞춰 끝내 박수일의 언성도 커졌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백인화를 바라보며 박수일은 눈을 치켜떴다.


“백 작가가 적당한 배우 찾아와봐. 하진우의 몸값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 연기도 괜찮고 이미지도 퓨어한 배우 찾아오면 다시 생각해볼 테니까.”

“그런 배우가 어디 있어요.”

“자기는 그런 말을 하면서 나보고 하진우가 아니라고만 하는 건 욕심이고 땡깡이야. 알지?”

“······”


결국 백인화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대안도 없이 우기기만 해서야 난처해지는 것은 그뿐이었다.


끼익.


끝내 앉아있던 의자를 밀쳐내고 백인화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밑에서 커피 한잔 사 올게요.”

“삐쳤냐?”

“삐치긴 누가요!”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목소리는 커서. 어차피 오디션도 끝났겠다. 여기 짱박혀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


박수일은 조금 지친 모습으로 휘적휘적 오른손을 내저었다.

한껏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백인화는 미간을 좁히며 밖으로 나섰다.


“같이 작품하자고 꼬실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하여간 이놈의 방송국도 문제야 입봉작이 뭐 어떻다고 예산을 그것밖에······”

“백인화 작가님?”


한참 툴툴거리며 복도를 걷던 사이.

낯선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혹시 백인화 작가님 맞으실까요?”

“···설마 정지혁 배우님?”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여명의 후예에서 북한군 리태홍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바닥 최고의 블루칩 중 한 명.

배우 정지혁.

예상밖의 인물의 등장에 당황하는 사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안녕하세요, 배우 정지혁입니다. 이번에 받은 시놉시스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순간 눈부시다고 착각할 만큼 굉장히 반가운 미소가.


***


“호록.”


MBT 방송국 1층.

구내 카페에 내려온 우리는 일단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괜히 자기까지 올 필욘 없을 것 같다며 차에 남은 박아영을 빼고 김수아와 나 백인화까지 총 3명.

주문한 커피 한 모금 홀짝이고 나서야, 나는 입에 본론을 담았다.


“백인화 작가님.”

“네, 네.”

“보내주신 시놉시스는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참신하면서도 흥미로운 내용이더군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그래요?”


잇따른 칭찬에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는 싶은데, 입꼬리가 계속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박아영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데 실은 배우로서 욕심이 나서요.”

“욕심이요?”

“네, 작가님의 마녀의 남자에 꼭 출연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살짝 내밀자 백인화가 움찔하면서도 그녀의 눈꼬리가 길게 휘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인화의 눈동자에 의문이 스친다.


“전에 감독님께서 AND에 정지혁 씨 출연 제의를 드린 걸로 아는데, 혹시 말씀 못 들으신 건가요?”

“아뇨, 그 이야기는 전달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욕심나는 역할은 다른 배역인 터라······”

“작가님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혁 씨의 배역 변경을 건의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말꼬리를 흐리는 것과 더불어 옆에 있던 김수아가 내 의견을 보충한다.

대답을 들은 백인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에 잠겼다.


“일단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지 들어봐도 될까요?”

“민강윤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민강윤이요?”


대답과 동시에 백인화의 미간이 좁혀진다.

칭찬으로 좋아졌던 기분이 대번에 풀어진 듯한 모습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녀의 기분이 상할세라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네, 저랑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보다 캐릭터에 몰입하여 연기할 수 있기도 하고, 배우로서 개인적으로 연기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일치하는 부분이라···”


백인화는 말꼬리를 흐리며 꼼꼼히 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간이 테스트를 받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몸이 굳는다.

요모조모 나를 뜯어보던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제가 생각한 민강윤과 많이 닮으셨네요. 얼굴도 잘생기셨고 키도 크고, 전에 여명의 후예에서 액션 연기도 펼치신 걸 보면 운동도 잘하실 것 같고요. 민강윤이 대기업 대표이사인 여주인공의 비서 역할이라 꼼꼼하고 세심하면서 자상한 이미지도 필요한데, 카네이션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셔서 이미지도 잘 어울리고요.”

“지혁 씨만 한 배우도 찾기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칭찬과 동시에 김수아는 세일즈맨처럼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김수아의 보조에도 불구하고 백인화의 고심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어때요? 지혁 씨 민강윤 역에 딱이지 않아요?”

“화, 확실히 비주얼도 좋고, 이미지도 딱 맞는 데다 민강윤 역에 찰떡이긴 하지만······”

“뭔가 걸리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사실 입봉작이라 저희 예산이 좀······”


의자에 몸을 기댄 백인화가 은근슬쩍 말꼬리를 흐린다.

예산이 부족하니 많은 출연료를 제시할 수 없다는 내용인가 본데.

이를 눈치챈 김수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표님과 말씀 나누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선만 지켜주시면 회사에서는 지혁 씨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자 합니다.”


김수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윽고 스마트폰의 내용을 확인하던 백인화가 고심에 잠겼다.

한참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그녀는 이윽고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혁 씨. 민강윤 역 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우리 감독님 설득해야 할 거예요. 저야 물론 지혁 씨 마음에 드는데, 감독님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지혁 씨가 설득해야 하는데, 자신 있으세요?”

“네, 자신 있습니다.”


짐짓 굳은 표정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 재능 : 공감(共感) -

설명 : 특정 상황이나 배역에 몰입하고 있을 경우,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감정을 내 감정에 공감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사용자가 얼마나 몰입하고 있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얼마 전.

새로운 업적을 해결함과 동시에 새로 얻게 된 재능.

드디어 이 능력의 진가를 확인할 때가 왔다.


***


“감독님!”

“커피 사 온다더니 뭐가 이렇게 오래······”


어깨를 들썩이는 백인화의 모습에 박수일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곧바로 질문을 건넨다.


“무슨 일이야?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감독님, 찾았어요!”

“찾아? 뭐를?”

“민강윤 역에 가장 잘 맞는 배우요.”

“민강윤 역의 배우?”


백수일의 눈동자가 백인화 뒤에 있던 내게로 향한다.

그녀의 뒤에 있던 나는 옆으로 나와 그에게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박수일 감독님. 배우 정지혁이라고 합니다.”

“맞아, 정지혁 씨. 요새 리태홍 역으로 한창 유명하잖아요. 이번에 캐스팅 제의도 드렸는데?”

“네. 사실 그 캐스팅 제의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캐스팅 제의 때문에요?”


박수일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영문을 알지 못한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옆에 있던 백인화가 내 말을 보충했다.


“저희가 캐스팅 제의를 잘못 보냈어요. 여기 있잖아요. 민강윤 역에 딱 맞는 배우!”

“······설마 민강윤 역을 원하시는 건가요?”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출연료에 대한 부분은······”

“그에 대한 부분은 이야기 끝났어요.”


말꼬리를 흐리는 박수일의 귓가로 백인화가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귓속말로 몇 마디 속삭이고 나자 박수일의 눈동자가 호기심을 띈다.

그러나 호기심도 잠시 박수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렇게······”

“감독님!”


대뜸 소리를 높이는 백인화의 모습에 박수일의 몸이 흠칫 떨린다.


“또 왜?”

“일단 한번 보고 결정해요.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라도 연기라도 한번 보고 결정하자고요.”

“본 다음에는?”

“이번에도 아니면 저도 포기할게요. 만약에 감독님 마음에 안 들면 저도 깔끔하게 포기할 테니까. 지혁 씨 연기 한 번만 봐요.”


박수일의 미간이 좁혀졌다.

백인화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이나 이어진 고심 끝에 박수일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지혁 씨 연기 한번 볼 수 있어요?”


박수일의 한마디에 백인화 역시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올 것이 왔다.

오늘 오기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들고 있던 시놉시스를 김수아에게로 건넸다.


“잠시만 부탁할게요.”

“얼마든지요. 잘할 수 있죠?”

“배우인데요. 못해도 잘해야죠.”

“기대할게요.”


김수아가 진한 미소와 함께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다.

덕분에 공간이 넓어지며 간이 무대가 마련되었다.

간이 무대의 중앙에 서서 나는 앞에 있는 두 명의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어떤 부분을 연기하면 될까요?”

“시놉시스라 대본이 없었을 테니, 대신 표정과 감정연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민강윤이 주인공인 최소영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기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나는 시선을 들어 백인화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순간적으로 당황하던 백인화의 입가가 길게 늘어진다.


“대역이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 대사까진 괜찮습니다. 손을 조금 앞으로 내밀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요?”


백인화는 씨익 웃으며 테이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미소를 한번 건네고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와 민강윤은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제법 많이 닮아있다.

한 번도 연애를 하지 못한 것도, 비서라는 역할에 어울리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도, 철두철미하면서도 확실한 일 처리와 상관에 대한 충성심까지.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는 굉장히 쉬우면서도 굉장히 어려웠다.


나 스스로를 연기한다.

나와 닮은 민강윤을 연기한다.

민강윤이 최소영을 바라보던 느낌.

시놉시스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


나는 그의 감정을 나의 감정에 담았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눈꺼풀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들어섬과 동시에.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격동한다.

그리고.

본래의 내 감정이 아닌 타인의 감정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나의 감정이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그녀의 감정이다.


최소영.

비서인 내가 모시는 나의 고용주이자.

내게 알 듯 모를듯한 이상한 감정을 싹트게 한 장본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4차원적인 행동에 매일 같이 신경이 쓰이고.

도도하면서도 고고한 모습으로 카리스마를 선보일 때면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감정을 뭘까?


가슴 한편을 간질이면서도 가끔 이성을 좀 먹는 이 감정.

그녀가 그놈과 있을 때마다 욱신거리고 반대로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는 심장이 요동친다.

그리고 겉으로는 또라이인 척, 센척하면서도 홀로 외로워하고 약해진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리다.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을 마주한 채로,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크기를 더한다.

조금 놀란 모습의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덧붙였다.


“손은 또 왜 그래요?”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친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떼었다.

괜스레 내 행동이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긴 싫었으니까.

대신 나는 그녀의 손을 향해 내 손을 내뻗었다.


“손 봐봐요.”

“······”

“자기 몸 좀 소중히 하라니까.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나는 재킷 안쪽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에 감았다.

같은 행동을 몇 번 반복하자 그녀의 손에 예쁜 매듭이 매어진다.


“자,”

“······”


그녀의 멍한 눈동자가 내 눈을 향한다.

뒤늦게 그녀의 손과 내 손이 맞닿아있다는 것을 눈치채고서 나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도, 도착할 때까지 풀지 마세요. 도착하는 대로 제대로 약이랑 발라줄 테니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묘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간다.

그녀의 눈은 계속 날 향하고 있었다.

때로는 정말 감정적이면서도 때로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다갈색의 눈동자.

커다란 눈망울의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내 시선이 옆으로 틀어진다.

나는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그녀를 향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가, 가요! 얼른.”

“······”

“아 좀.”


미세하게 떨리던 손이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그와 동시에 심장 박동이 더욱 그 세기를 더한다.

나는 왼손으로 애써 입을 가리고서 등을 돌렸다.

왼손 아래, 기분 좋게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숨긴 채로.


***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예요?”

“아직 몰라. 감독님도 작가님도 확답을 안 주셨거든.”

“아니, 그런 연기를 보고도 즉답을 안 주다니 둘 다 낮술이라도 한 거 아니에요?”

“아영아!”


다소 거친 언사에 옆에 있던 김수아가 눈을 째린다.

평소 같으면 조금 누그러졌겠지만, 조금 흥분한 것인지 박아영은 도리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친다.


“아니, 연기도 그렇게 잘하고 이미지도 딱 어울리는 데 대체 뭐가 맘에 안 드는 건지 그 사람들 인재를 이렇게 몰라보고!”

“그건 그렇지.”

“지혁 오빠 캐스팅 안 되면 차라리 우리 다른 작품 찾아요. 막말로 들어온 제의가 몇 갠데 그런 옹이구멍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 밑에 있을 필요 없어요.”


박아영은 씩씩거리며 박수일과 백인화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말리던 김수아도 은근히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듯하다.

계속 나를 챙겨주던 그들의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번진다.


“내가 잘······”


띠링!


“응?”


갑작스럽게 울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낯선 번호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전화예요? 설마 혹시 그 감독?”

“아영이 너 잠깐만 조용히 해봐. 지혁 씨 얼른 전화부터 받아 봐요!”

“아, 네.”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나는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밀었다.


“아, 지혁 씨 저 박수일 감독입니다.”

“네, 감독님!”


혹시나 했더니 역시 그쪽이었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감독의 말 사이로 두 여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박아영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김수아는 운전 중인데도 계속 이쪽을 힐끔거린다.


“아, 네 감사합니다.”


통화는 금세 끝났다.

마지막 인사를 끝마치자 한껏 굳어있던 근육이 풀리며 전신에 힘이 빠진다.


“뭐, 뭐래요?”


지켜보던 박아영이 불안한 기색으로 질문을 던진다.

김수아의 시선 역시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다.

잠시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그렸다.


“합격이랍니다, 민강윤 역 저한테 맡기신답니다.”

“꺄아!”


떠나갈 듯 우렁찬 함성 사이로 빛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작가의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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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39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6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49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39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3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79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49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6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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