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Wal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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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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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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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1)

DUMMY

퍼억 퍼억


한적한 뒷골목.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제멋대로 널려 있는 그곳에선 묵직한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샌드백을 걷어차는 소리와도 유사했으나, 그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소음의 주연은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적어도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그들 무리 중, 서너 명 정도가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발에 걸리는 ‘살덩어리’를 계속 두들기고 있었다.


“찌질이 같은 새끼.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맞으니까 좋지? 그래, 넌 좀 맞아 봐야 돼.”


맞고 있는 것은 샌드백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통통함과 뚱뚱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체형을 가진 학생으로, 그의 교복은 발길질에 먼지가 묻고 찢어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뚱보가 소리쳤다.


“하지 마! 그만 하라니까······.”


그의 표정에는 처절함이 묻어나왔다. 뚱뚱한데다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에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은 퍽 징그러워 보였지만, 그 얼굴에 날아든 건 발자국뿐이었다.


“얼굴 들지 마. 더러운 오타쿠 새끼.”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생겨난 괴롭힘. 거기엔 이유는 없었다. 하다못해 돈을 빼앗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이유밖엔 없었다.

대항하려 들면 평소에 맞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맞게 된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엎드려서 최대한 덜 아프게 맞는 방법밖에 없었다. 맞다 보면 때리는 놈들이 지쳐서 그만둘 때가 반드시 오게 되니까.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뚱보의 복부에 발꿈치를 꽂아 넣던 양아치는 당황했다.


“어, 이 새끼가?”


양아치의 다리를 잡아든 뚱보는 이를 악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울분에 찬 마음을 주먹에 담으며 소리쳤다.


“내가 뭘 했는데, 이 씨발새끼들아!”


그 자신이 생각해도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은 몸이니, 애초에 체력 자체도 좋을 일이 없다.

따라서 그가 몇 초 되지 않아 바닥에 눕게 되는 건 필연이었다.


“깝치네, 이 새끼?”

“너 많이 컸다?”


일방적인 폭력은 수십 분이나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양아치들은 곧 이 일에 흥미를 잃었다.


“야, 그만하고 딴 데 놀러가자.”

“그럴까? 야, 병신아. 앞으론 깝치지 마라?”


뚱보의 얼굴을 가볍게 짓이긴 일당은 낄낄거리며 뒷골목을 나갔다. 남은 건 쓰레기더미와 담배꽁초, 그리고 그 속에 처절하게 누워 있는 한 사람뿐이었다.


“끄응······.”


양아치들이 사라지자, 한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다 아팠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개새끼들······.’


한일은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곧 축 쳐진 그는 힘을 풀었다. 화를 내 봐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만화 주인공들은 막 수련해서 강해지고 그러던데.’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공상이기에 판타지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일은 다 찢어진 교복을 툭툭 털더니 힘없이 집으로 향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쟨 왜 저러고 다니냐? 누구한테 맞은 거 아냐?”

“재수 없게 생겼네. 왕따당하는 오타쿠 같아.”


깔깔거리는 비웃음은 한일의 심장을 예리하게 저몄다. 정곡을 찔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중얼거리며 한일은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하찮은 닝겐들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오늘 재수가 없었다.

양아치처럼 생긴 남자가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깜짝 놀란 한일은 자신이 두 남자한테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방금 그를 비웃은 여자들의 남자친구로 보였다.


“뭐랬냐고, 이 돼지 새끼야.”


남자는 힘이 얼마나 셌던지, 80킬로는 가볍게 넘는 한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한일은 발버둥을 쳐 보았으나, 그건 소용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죽고 싶나 보다. 영철아, 이 새끼 좀 끌고 가자.”


사람은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에겐 한없이 약하지만,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하는 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잔인해진다. 두 남자들이 한일에게 짓는 교만한 미소는 그들이 어떤 심리상태로 불쌍한 고등학생을 괴롭히는지 보여주었다.

이 경우 피식자가 포식자 앞에서 취할 행동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도망치던가, 무릎을 꿇는가이다. 이외의 행동은 자연계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다만 오늘 먹잇감은 두들겨 맞았던 탓인지 상당히 심기가 안 좋은 상태였다. 먹이는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선택을 했다.


“칠 테면 쳐봐. 콩밥 먹일 테니까. 합의 같은 건 안 봐준다. 하찮은 닝겐.”


대답은 주먹으로 돌아왔다.


뻐억


“억.”


명치를 얻어맞은 한일은 숨을 못 쉬어 컥컥댔다. 남자는 그를 걷어차 땅바닥에 쓰러트리며 말했다.


“여긴 CCTV가 없는 곳이거든. 어디 한 번 까불어봐.”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끌려왔는지 그는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빠져나갈 방법도 없었다.

분노로 잃어버렸던 공포가 다시 각인되었다. 한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야, 이 돼지 새끼 진동하는 거 봐라.”

“매너모드야?”


퍼억


숨쉬기 어려운 고통이 다시 한 번 엄습했다. 한일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렸다.


‘시발, 왜 나야? 왜 나야······.’


어릴 적엔 단순한 따돌림에 불과하던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폭력이라는 굴레에서 움직인다. 맞고, 맞고, 또 맞았다. 세는 게 귀찮아질 정도로 얻어맞았다.

이대로 당할 순 없다고 생각해 교사에게도 의존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 정도였다. 실적의 저하와 귀찮은 일의 담당을 우려하는 교사의 말은 가관이었다.


“그래도 같은 반 친구잖아. 친구끼린 사이좋게 지내야지.”


울분이 뻗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친구는 누가 친구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다. 자신의 교육받은 환경 이상도 이하도 상상하지 못하는 멍청한 꼰대들은 그런 걸 전혀 모른다. 하다못해 경찰에게 말해 봤지만, 상황은 더욱 꼬였다.

소환된 폭력의 주범들이 하는 말은 교사보다 더 가관이었다.


“저흰 그냥 같이 논다고 한 건데, 한일이가 그렇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어요.”

“엉엉. 죄송해요. 한일아, 앞으론 안 그럴게.”


악어의 눈물일까. 한일은 그들의 이중잣대에 공포까지 느꼈다.

일이 끝나자, 한일은 당연하다는 듯이 양아치들에게 불려나왔다.


“이 새끼야. 별 지랄을 하네.”

“담탱이한테도 지랄, 경찰한테도 지랄.”

“그냥 뒈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이 그를 뒤덮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한일은 등교거부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부모님은 그저 울기만 했다.

하다못해 다른 학교로 전학까지 가게 됐지만, 거기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철원고에 있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저 새끼 왕따였대.”

“그래?”


갈취, 협박, 폭력.

자살까지도 생각해 봤지만, 죽는 건 두려웠다. 결국 이렇게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살아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피식자란 어느 세계에서나 그런 법이다.


“재미없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그럴까? 얘들아, 빨리 가자. 오늘 영철이가 산대.”

“내가 언제?!”


낄낄거리며 담화를 나누는 그들은 방금 전까지의 폭력성을 숨긴 채 보통 사람으로 의태(擬態)하여 사회로 돌아갔다. 누구도 그들이 힘없는 고등학생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바닥을 기던 한일은 후들거리는 무릎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살기 싫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가 된 것도 바깥 세상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였다. 무시와 냉대를 받는 사람이 사회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서는 음지를 노릴 수밖에 없다. 적어도 만화나 게임 캐릭터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고, 인터넷에선 자신을 놀리던 양아치들보다 더 우월해질 수 있다.

현실에 맞서 싸울 힘이 없으면 현실을 도피해버리면 된다. 한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지쳤다.


‘집에 돌아가면······.’


상처투성이인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울고,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를 피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오빠에 대한 혐오증이라도 생겼는지, 말조차 하는 일이 없다. 결국 그가 몸담을 공간은 이 나라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언가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 운동, 예술, 문학, 사교 등 어느 쪽으로도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을 참고 사회에 나가 봤자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사회는 냉혹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사회의 밑바닥에서 포식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역할 이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한일은 터덜터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살 이유가 있을까?’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먹잇감의 심정을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 노력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그 근본이 백조였기 때문에 멋지게 부활했다. 재능이라는 나무에 시간이라는 비료를 쏟아 부어, 비로소 아름다운 날개를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아니야.’


한일은 백조가 아니었다. 오리들의 먹잇감인 지렁이에 불과했다.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더럽혀지고 곪은 사상의 상처는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치유할 수 없었다.


지익 지익


힘없이 끌려가는 신발은 바닥을 긁었다. 콘크리트와 신발 밑창은 서로 부딪치며 비명을 질렀지만, 신발의 주인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

이 골목길엔 폐건물들 투성이었다. 먼 옛날 부동산 붐이 일었을 때 앞다투어 땅 투기를 하다, 결국 효과를 얻지 못하자 눈 녹듯 사그라든 난개발의 흔적이다. 한때는 꿈으로 가득했던 신천지였지만, 지금은 기대에 어긋난 대가로 모두에게 버림받고 아무도 쓰지 않는 곳.


“딱 좋네.”


건물 하나를 고른 한일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기둥과 계단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지나칠 정도로 휑했다. 곳곳에 남겨진 건축 폐자재와 담배꽁초, 그리고 소주병 몇 개가 이곳의 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계단을 발견한 한일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폐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리 없었다. 한일은 힘겹게 계단을 한 층 한 층 올랐다. 평소 체력도 저질인데다, 두들겨 맞은 몸에 힘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악에 가까운 근성으로 한일은 다리를 움직였다.


“허억, 허억.”


폐는 터질 듯 부풀고 심장은 쿵쾅거린다. 다리는 후들대며, 땀이 비오듯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은 정상에 올랐다.


“후우.”


옥상은 꽤 넓었다. 기본공사는 튼튼하게 했는지, 지반에 문제는 없었다. 한일은 옥상의 가장자리로 다가섰다.




난간은 없었다. 한 발을 더 내디디면 허공이다.

밖은 저녁이 되려는 듯 어둑해지고 있었다. 도심, 건물의 숲에선 노을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7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 그 아래에서 보이는 정경은 딱히 멋지진 않았다.

여느 때와 똑같이 사람들은 거리를 걷는다. 퇴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집에 돌아가는 고등학생도 있다. 지친 하루를 술 한 잔에 씻어내려는 사람들도 보인다. 모두가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은 곧 살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갖는 것.

멋모르는 사람들은 자살할 용기로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한다.


‘헛소리.’


자살은 용기로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더 이상 내버릴 것도 없을 때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자살이다. 더 이상 살 용기가 없을 때, 그럴 때······.


‘유서라도 남길까?’


자살자들은 흔히 ‘미안해’라는 말로 끝을 맺는 유서를 남긴다. 자살을 택하는 자신이라도 여태껏 사랑해준 누군가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다.

한일은 눈을 감았다. 부모님과 동생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기고 싶은 말······.’


정말 많았다. A4용지 앞뒷면에 빼곡하게 채워 넣어도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잉크가 떨어지고 손이 부르틀 때까지 쓰고 쓰고 또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의미가 없다. 못난 아들을 둬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남길까 했지만, 한일은 이내 그만두었다.


‘이미 죽은 사람 말을 들어서 뭘 어쩌겠다고.’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일은 눈을 떴다.

그리고 허공으로 힘차게 발을 디뎠다.


슈우우욱


땅으로 떨어지는 데에 공포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건물의 정경이 재미있을 정도였다.


‘시원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구속감에서 해방됐다는 느낌이 전신을 휘감는다.

인생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됐다는 기분이 넘치도록 충만했다. 차가운 환희가 한일의 몸을 짜릿하게 감싸왔다.

땅이 가까워져왔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한일은 웃었다. 마음껏 웃었다.


“아하하하.”


쿠웅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그게 어디서 난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이후, 한일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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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타쿠(4) 21.03.15 18 0 10쪽
10 오타쿠(3) 21.03.12 21 0 10쪽
9 오타쿠(2) 21.03.11 22 0 12쪽
» 오타쿠(1) 21.03.10 27 0 14쪽
7 꿈의 시작(6) 21.03.10 22 0 10쪽
6 꿈의 시작(5) 21.03.10 20 0 12쪽
5 꿈의 시작(4) 21.03.08 28 0 15쪽
4 꿈의 시작(3) 21.03.06 23 0 14쪽
3 꿈의 시작(2) 21.03.05 31 0 11쪽
2 꿈의 시작(1) 21.03.04 30 0 11쪽
1 누군가의 속삭임 21.03.04 46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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