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Wal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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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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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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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2)

DUMMY

기본적으로 의식을 차렸다는 것은 꿈의 몽롱함을 떨쳐버렸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즉, 꿈의 몽롱함을 떨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의식을 차린 것이 아니다.

벌떡 일어난 한일은 자신이 의식을 차렸는지 아는지 긴가민가했다.


“······여긴 어디야?”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살아있다면 집, 병원 혹은 떨어졌던 그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게 맞다.

눈앞의 경관은 그런 한일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한일은 이런 경치 따윈 현실에서 본 적도 없었다.


하늘은 구름의 뒤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될 만큼 맑고,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는 자연의 향기가 듬뿍 묻어있다. 근처 숲에는 부드러운 나뭇잎이 살랑거리며 다람쥐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절묘한 화음으로 마음을 씻어낸다. 근처에 있는 광활한 에메랄드빛 호수에선 시원하고 잔잔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시점에서 한일은 여기가 꿈인 것을 알아차렸다.


“헤에. 그래도 엄청 리얼한 꿈이네.”


앉아 있는 풀밭의 까끌거리는 감촉은 생동감이 넘쳤다. 손바닥에 묻어나오는 이슬의 흔적까지 느껴졌다. 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해. 꿈인데 이렇게 생생하다니.”


복장은 낙하했을 때 입었던 그대로였다. 등에는 가방이 메여 있고, 더럽혀진 교복에는 두들겨맞을 때 생긴 발자국도 찍혀 있다. 주머니에서 껌을 꺼낸 그는 그것이 세 개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껌을 씹으며 한일은 근처에 있는 나무로 다가갔다.


“꿈이라면 안 아프겠지?”


사실 생생한 자각몽이라면 고통도 느낄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이 그 정도까지 알 리는 없다.

한일은 힘차게 주먹을 뻗었다.


콰지직


울창한 나무와 주먹이 충돌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그 소리는 한일의 주먹이 아닌 나무에서 들렸다.


“······어?”


멍한 표정을 채 거두기도 전에, 중심을 잃어버린 나무는 반대편으로 풀썩 쓰러졌다. 요란한 굉음과 먼지가 나며 숲 속 동물들이 이리저리 도망쳤다.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 한일은 자신의 주먹과 나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시 한 번 다른 나무에 주먹을 날렸다.

결과는 동일했다.


쿠우우웅


톤 단위의 물체가 낼 수 있는 굉음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나무가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한일은 이 묘한 상황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떨까?”


한일은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뻗었다. 웃기는 상황처럼 보였지만, 한일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쿠구구구


쓰러뜨렸던 나무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처럼······.

한일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진 그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쥐어 비트는 동작을 취했다.


우지직


나무가 톱밥을 흩날리며 부러져나갔다.


“우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다스 베이더도 질투하겠네!”


청소년기에 누구나 해볼 법한 망상이 현실로 구체화되는 감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상식선에서 이해가 될 현상은 아니지만, 오타쿠는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그럼 이런 것도?”


한일은 힘껏 땅을 박찼다.


파앗


힘껏 점프한 한일은 세차게 부딪치는 공기를 느끼며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차창을 연 것 같은 느낌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덤블링을 이용한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높이 뛰는 건 불가능하다.

착지한 한일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다시 한 번 도약했다.

또다시, 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멀어져갔다.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일은 신나서 몸을 떨었으나, 곧 의기소침해졌다.


“이럼 뭐 해. 깨어나면 어차피······.”


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의 인생이 쉽게 풀릴 리는 없다. 그 지옥같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생각나자, 한일은 주저앉아 몸을 떨었다.


“개새끼들. 내가 지들한테 뭘 했다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마이너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짓밟는 대상으로밖에 삼지 않았다.

자연계에선 적자생존의 법칙이 당연시된다. 약한 종은 먹이가 되어 사라지고, 강한 종만이 남아 우수한 유전자를 남긴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지성을 가진 인간이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 약자도 약자 나름대로의 살 가치가 있다.

한참을 우울함에 빠져 있던 한일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리얼한 꿈이면······.”


주머니를 뒤지자 스마트폰의 감촉이 느껴졌다. 예상대로였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티커로 도배된 스마트폰을 꺼낸 한일은 잠시 몸이 굳었다.


“······.”


이상하다. 이건······.


“······전파가 안 터져.”


스마트폰의 성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그저 ‘신호 없음’이란 말만 내뱉고 있었다.

꿈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 아니다. 어플은 제대로 켜졌지만, 통신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본 한일은 전파가 전혀 안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이상해.”


아무리 꿈이라 해도 이렇게 디테일할 리는 없다. 이래서야 꿈이 아니라 전파가 안 터지는 장소로 이동한 것 같지 않은가.

미지의 공포가 한일을 조여왔다. 한참 동안이나 스마트폰의 ‘신호 없음’을 바라보던 한일은 문득 자신의 주변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일은 현재 완전한 자연 상태의 공간에 놓여 있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주변의 경관은 사람이 손을 댄 적도 없는 듯 자연의 뜻대로 이리저리 얽혀 있다. 잘 정리된 정원과는 딴판인 모습이다.

그런 자연스러움 속에 한 가지의 이질감이 침투해 있다. 한일은 그닥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로(小路)를 발견했다.


“이런 곳에 웬 길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흙길이지만, 잘 손질되고 반듯한 그 모습은 자연 상태에서 나올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일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꿈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꿈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고, 한일은 그 한정된 상황의 루트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흙길은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일은 망설임 없이 저벅저벅 걸었다.


바스락


무언가가 그림자를 남기며 빠르게 숲 속으로 사라졌다. 한일은 그것이 위험하지 않은 짐승인지 아닌지 판단이 들지 않았다. 엄청난 덩치를 가진 무언가였다는 느낌은 들지만, 한일은 자신이 주인공인 이 꿈에서 공포감 따윈 전혀 느끼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아름답지만, 숲은 굉장히 울창하고 음침하여 햇빛조차 찰 들어오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그곳에서 밤이라도 된다면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위험에 처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과 한일이 처한 입장은 딴판이었다.


“이상하게 밝은데.”


시력이 좋아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늘상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그가 시력이 대단히 좋을 리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남들보다 딱히 나쁜 편도 아니었다. 안경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시력은 항상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어둠 속이 속속들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라면 그렇다.


“꿈이라 뭐든 다 되는구나.”


어둠 속에 파묻힌, 15미터 앞에 있는 다람쥐가 먹고 있는 잣의 생김새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일은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더 울어라아-젊은 인생아아아······.”


말이 흥얼거리는 것이지, 실상은 고성방가에 가까웠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은 외부에 들리는 음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한일의 노래는 숲 속 친구들을 당분간 괴로움에 빠트렸다.

한참 동안이나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심취해 있던 한일은 길의 끝을 발견했다.


“재미있네.”


길은 숲의 다른 통로 같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저 흙길의 끝에는 하얀 색의 집 한 채가 척하니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집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물체였다. 문과 창문이 달려 있어 그런 추측이 가능한 것이지, 외관상으로 본 그것은 컨테이너 박스 두어 개를 합친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간 한일은 문고리를 잡으려다, 손을 거두고 대신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계십니까?”


별반 기대는 하지 않고 낸 말이었다. 대답이 없으면 그냥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하얀 집 안에서는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한일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굉장한 미성이었다. 단지 목소리가 좋다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심금을 울리는 듯한 음성······마치 머릿속에 대고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을 문고리에 가져간 한일은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


찰칵


지나치게 깔끔하다 싶을 정도로 문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경첩의 신음소리는 없었다. 얼마나 잘 관리된 문인지를 소리로 들려주는 것 같았다. 사실 한일은 문이 아니라 문고리 달린 구름을 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단향과 유사한 향기가 감도는 내부엔 외부에서 본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탁자 하나와 두 개의 의자가 있을 뿐, 대단한 것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한 사람은 그 모든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굉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옆으로 곱게 땋은 새하얀 은발을 가진,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단아하고 청초하며,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요염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에선 잡티 하나 발견할 수 없었고, 새하얀 얼굴에 박힌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이란 개념을 현실로 끌어오면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될 법한 사람이었다.


여성과 눈이 마주친 한일은 몸이 굳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당시 한일의 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석상과의 불타는 경쟁이었다.

여성이 살짝 웃었다.


“왜 그렇게 서 계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그 말과 함께 석화는 풀렸다. 그러나 한일은 아직도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다. 얼떨떨하고 아리송한 느낌이 그의 뇌리를 잠식한 채 놓아주질 않았다.

여성이 말했다.


“커피가 좋으세요, 아니면 홍차? 녹차나 우롱차도 있어요.”


얼굴에 피가 쏠릴 대로 쏠린 한일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아무거나······괜찮아요.”

“후후. 그럼 커피로 좋으시죠?”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차를 타는 모양이었으나, 뻣뻣하게 굳은 한일은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가 커피가 가득 부어진 찻잔을 가져왔음에도, 한일은 현실감 없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을 뜨고 지금까지 겪은 모든 걸 다 포함하더라도 눈앞의 여성 한 명의 비현실성을 이기지 못했다.

그녀는 그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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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꿈의 시작(5) 21.03.10 20 0 12쪽
5 꿈의 시작(4) 21.03.08 28 0 15쪽
4 꿈의 시작(3) 21.03.06 23 0 14쪽
3 꿈의 시작(2) 21.03.05 31 0 11쪽
2 꿈의 시작(1) 21.03.04 30 0 11쪽
1 누군가의 속삭임 21.03.04 46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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