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Wal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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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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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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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시작(6)

DUMMY

전기가 안 통하는 곳의 밤은 어둑어둑했다. 곳곳에 밝혀진 호롱불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자연의 불빛 외엔 조명이라곤 없었다. 먼 곳에서 반딧불이처럼 아른거리는 빛의 조각들이 보였지만, 그 광채가 어둠을 밝히기엔 너무나 미약했다.

그러나 인공적인 불빛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어둠을 살라먹는 환한 불빛이다.


타닥타닥


장작을 살라먹으며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대단히 크진 않았다. 그것은 그 용도 때문이었다.

고기를 구울 때 큰 불꽃은 필요하지 않다. 고기를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 꼬치에 꿰여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기를 보던 진호는 피식 웃었다.


‘장작으로 밥을 먹다니.’


숯불구이를 먹는다고 해도 근대화된 사회에서 장작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의 용도는 장작 이외의 것으로 거의 한정되어 있고, 보통 사람들은 아마 라이터가 있어도 나무에 불을 못 붙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아까 전까지의 조용한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상당히 왁자지껄했다. 음악 같은 것은 없었지만, 술을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불꽃은 사람을 몽환적인 심상에 빠져들게 한다. 격정적으로 타오르는 불의 환무(幻舞)를 보고 있자면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꽉 찬다. 불꽃 속에서는 자신의 지나갔던 과거, 변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방향,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현대인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마주할 일은 많지 않다. 한참 동안이나 불꽃을 바라보며 진호는 말없이 나뭇가지로 장작을 뒤척였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불 속에서 원하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가 아주 쉰소리는 아닐 거야. 그 얘기 지은 사람은 천잰데.’


안데르센의 문학적 소양을 찬양하며 불꽃을 감상하던 중, 누군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늙수그레한 사람이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은 가뭄이 든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손바닥은 고되게 살아왔다는 것을 반증하듯 거칠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심모원려라는 것이 깃들어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그가 누구인지 진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촌장님?”

“허허, 옆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아, 예. 얼마든지.”


꿈 속 주민이라도 노인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호는 옆으로 살짝 비켰다.

촌장은 살짝 취한 듯 술냄새를 풍기며 털썩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오?”

“그냥 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허허허.”


불의 화력이 조금 약해진다. 촌장은 부지깽이 역할을 할 만한 나뭇가지를 주워 불꽃을 몇 번 들쑤셨다.


“이렇게 보고 있자면 불이란 참 재미있는 물건이 아닙니까. 불은 사람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있소이다. 불만 바라보고 있으면 잡념부터 생각해서 소중한 것, 욕망, 소망에 이르기까지 별별 생각이 다 나게 되지요. 희로애락과 삼라만상이 모두 이 불꽃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 같잖소.


불꽃에 빠져 유심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노망 난 영감의 헛소리로 치부할 것 같은 말이었다. 입시 지옥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진중한 생각을 할 줄 모르니까. 아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청소년들 대부분은 진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스트레스가 과포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문제였다.

진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비록 꿈속이라지만, 깨끗한 자연 속에서 따뜻한 불꽃을 쬐고 있는 건 꽤 좋은 경험이다. 진호는 곰고기 꼬치를 베어 물었다. 불꽃을 머금은 고기는 프라이팬에 굽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잡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맛있었다.

촌장이 병을 건넸다.


“한 잔 하시겠습니까, 용사님?”


평소라면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술을 마신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꿈이지.’


멀뚱히 술병을 바라보던 진호는 병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술을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다. 기분이 좋아지고, 달달한 맛에 몸이 후끈해진다는 것.

진호는 지금껏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이 시기의 고등학생이 술을 마시는 경우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부모 옆에서 받아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호의 부모님은 집에서 술을 마시는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진호는 지금껏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 본 적이 없었다.


‘맛있을까? 맛있겠지? 광고 같은 데에서 보면 무지 맛있게 보이던데.’


결론만 말하자면 술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쿨럭, 쿨럭!”


매캐하면서도 후각을 정신없이 자극하는 주정(酒精)의 냄새는 진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약간 달착지근한 맛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혼란스러운 맛이 더 강했다.


‘뭐야, 이거? 이런 걸 왜 돈을 주고 마셔?’


어른들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진호는 술병을 촌장에게 돌려주었다. 촌장은 껄껄 웃었다.


“용사님이라고 술을 잘 드시는 건 아니로군요.”

“아, 예. 뭐······.”


처음 마셔본 술은 상당히 맛없었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두 번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았다.


‘꿈이라면 내 이미지에 맞게 맛이 나야 하는 거 아니야?’


맛있다고 기대했던 곰고기는 실제로도 맛이 좋았다. 그러나 맛을 궁금해했던 술은 도통 맛과는 거리가 먼 맛이다. 무의식이란 꽤 심오했다.

밤은 조금씩 깊어간다. 내일을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잠자리로 돌아가고, 웃고 떠드는 인파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티에는 시작도 있지만 끝도 분명히 있는 법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진호는 꺼져가는 불이나 뒤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 꿈의 주인이었지만 주민은 아니다.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는 애매하다.

아셀과 앨리스도 집으로 돌아가고, 아직까지 그의 옆에 남아있는 사람은 늙은 촌장 한 사람뿐이었다. 노인은 잠도 없는지 멀쩡한 얼굴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


“용사님, 앞으로 어디로 가실 계획이십니까?”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어디로 가느냐고 말했다. 진호는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금방 눈치챘다.


‘마을에 계속 있는 게 싫은가 보다.’


사람은 이질적인 무언가를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멀지 않은 옛날 벌어졌던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도 근본을 따져보면 아인(亞人)의 배척이 사람들의 심리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글쎄요. 어디로든 가겠지요.”


꿈의 세계다. 어디를 가든 위험할 일은 없었다. 당분간 이 깨끗한 세상을 즐겨 보려는 마음 외에 진호가 가진 것은 없었다.


“혹시, 그렇다면 북쪽으로 가보실 생각은 없으신 겝니까?”

“북쪽이요?”

“그렇습니다. 최근 북쪽에서 몬스터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혹시나 그쪽에 가면······.”


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이 들통난 것에 당황해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북쪽에 괴물들이?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가서 사람들을 위해 싸우라는 얘기밖에 되진 않는다. 노인은 사람을 속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에게도 간파될 정도라면 그 한계는 명확했다.

진호는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대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북쪽이라고요? 혹시 지도는 있나요?”


촌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둥대며 집 쪽으로 뛰어가는 촌장의 뒤를 바라보던 진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의 꿈이라지만 너무나 단순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에 잡힐 듯 훤히 보였다.


‘북쪽으로 가면 몬스터들이 나온댔지. 그러면 용사이신 진호님은 멋진 솜씨로 몬스터들을 처치한다.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나올 테고, 나는 스타처럼 떠받들어 모셔진다. 여자들은 반하고 남자들한텐 부러움을 사겠지. 그럼 상황 끝.’


이래서야 현실 같은 꿈이라도 의미가 없다. 미래를 아는 사람이 어떻게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무의식이라 해도 결국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꿈일까?’


치기어린 아이의 소망밖에는 되지 않는다. 용사 놀이를 하기에 고등학생은 너무 많은 나이를 먹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눈을 뜨면 다시 사라져버릴 꿈, 그저 꿈일 뿐이다.

괜히 울적해졌다. 누구나 망상은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을 이렇게 구체적인 형태로 펼쳐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진호 자신이 대책 없는 망상범이라는 소리와도 일통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꿈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꿈이라면,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사라져서 없어질 꿈이라면.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켤 때마다 꿈을 꾸었다. 바꿔 말하자면 성냥이 꺼질 때 그녀의 꿈은 끝났다.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난 진호는 흙 묻은 바지를 탁탁 털었다. 저 멀리서 촌장이 둘둘 말린 종이를 든 채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 한 번 가볼까.’


꿈의 주인은 자신의 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 꿈의 시작 -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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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꿈의 시작(4) 21.03.08 29 0 15쪽
4 꿈의 시작(3) 21.03.06 23 0 14쪽
3 꿈의 시작(2) 21.03.05 31 0 11쪽
2 꿈의 시작(1) 21.03.04 30 0 11쪽
1 누군가의 속삭임 21.03.04 4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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