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프롤로그.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던 11월.
세상이 멸망했다.
그것도 아주 괴상한 녀석들에 의해서.
“끼에에엑!!”
“저, 저리가! 끄아악!!!”
그 녀석들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었다.
징그러운 외모와 흉측하게 뻗어 있는 이빨과 발톱.
어떤 녀석은 10m가 넘어가는 덩치를 지녔고, 또 어떤 녀석은 날개가 달려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 괴물들의 침공에 인간은 너무나 무력했고, 나 또한 그 무기력함을 느낀 인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다행히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신의 가호인지 인간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눈앞에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태창이 떠올랐고,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상대할 수 있었다.
어떤 영웅의 선택을 받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등급.
그런데 아쉽게도 모두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90퍼센트가 넘는 인간들은 영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평범한 직업을 얻었다.
누군가는 병사라는 직업을, 누군가는 마법사라는 직업을.
그리고 나처럼 ‘꽝’이라 불리는 최하위 직업을 받은 자도.
내 직업은 서기관.
능력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통해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남기는 것.
생존에는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쓰레기 직업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직업을 가지고도 인류의 마지막까지 생존했다.
“....이렇게 죽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 포기했겠지만.”
콧김으로 뜨거운 숨결을 뿜어내는 괴물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직업을 극복하기 위한 10년간의 피나는 고생은 쓸데없는 노력에 불과했던 거다.
-키아아아아악!!!
“이, 이런 미친!!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해!!”
“최대한 사방으로 도망.... 끄아아악!!”
최상위 영웅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괴물의 가벼운 손짓에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살기 위한 우리의 발버둥은 고작 이 정도였던 거다.
나는 그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수히 죽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능력이 반짝이며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띠링! [영웅 백과사전을 완성하셨습니다]
-책에 기록된 영웅의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영웅 백과사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토록 원하던 영웅의 능력.
오늘이 있기 전까지 항상 간절히 원하며 상상하던 순간.
만약 내가 영웅의 선택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저 무능력한 사람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혹은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하지만 이제 와서 좋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왜냐면.
-크르르르...!! 캬하아아악!!
“....그래, 죽일 거면 한 번에 죽여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지.”
저 괴물의 앞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렇게 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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