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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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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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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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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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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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파주NFC, 그리고 U20 월드컵

DUMMY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프리미엄아울렛? 임진각? 헤이리마을? 한번도 가본적 없는 파주로 떠나는 차 안은 조금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5km, 3km 점점 도착지가 가까워지고, 따스한 햇볕이 점점 뜨거워질수록 여행가는 기분보다는 시험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목적지는 파주NFC였기 때문이었다. 대표팀 유명 스타들의 입소 패션 기사에서나 엿보던 파주NFC를 직접 들어가다니! 연령별 국가대표팀의 전용 훈련, 숙식 공간으로 사용되는 트레이닝 센터에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먼 내가 들어가고 있었다.


“호종아.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다 왔네.”

“야! 난 진짜 기분 좋아 지금. 맨날 파주 끌려오는 기분이었거든? 훈련도 빡세고, 하라는 것도 많고. 그런데 너랑 같이 오니깐 여행가는 기분이다.”

“근데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유니폼은 가면 주는 거야? 사이즈는 다 있을까? 훈련은 몇탕하는 거야? 포페스쿠 감독님이랑은 이야기 해봤어? 영어로 해야해?”

“들어가면 다 알아서 하면 되니깐 긴장 좀 하지마! 웃으라고 좀!”

“잘할 수..있겠지?”

“야. 내가 계속 말했지. 요즘 부쩍 잘하는 게 아니라 원래 넌 잘했다니깐. 다른 애들 프로에서 뛴다고 쫄 거 없어. 어차피 다 우리 나인데 뭘 쪼냐”


에이전트 회사에서 보내준 차를 얻어 타고 가는 내내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본의 아니게 내 20년 축구 인생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1명. 골키퍼 3명을 제외하면 단 18명이 선발되는 U20 월드컵 선수명단 발표 이후 가장 주목을 끈 선수는 2명이었다.


U17 월드컵 대표팀에서 월반한 천재 미드필더, 레알마드리드 B팀 에이스 강준.

이호종과 유일한 대학생이자 연령별 대표팀 출전경험 0회의 무명 권정혁.


“포페스쿠 감독님.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인만큼 대중의 관심의 엄청난데요. 목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 준우승보다 나은 성적이 가능할까요?”

“물론. 우승.”

“U20 대표팀 에이스 이호종과 U17 대표팀 에이스 강준의 시너지를 어떻게 만들어낼 생각인가요?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 공존이 가능할까요?”

“그럼요. 믿습니다.”

“권정혁의 깜짝 발탁은 정말 의외인데요. 가뜩이나 빠듯한 스쿼드에 너무 위험 부담이 큰 발탁 아닌가요? 예비명단 선수들과 곧 교체 예정이죠?”

“아니요.”

“연령별 대표 경험도 전혀 없는 선수가 과연 국가대항전에서 긴장하지 않고 뛸 수 있을까요? 조별리그 상대 스쿼드를 보면 이미 A매치를 뛴 선수들도 있는데요?”


언론과의 인터뷰를 귀찮음을 넘어 극도로 질색하는 포페스쿠 감독의 짧은 대답이 이어졌다. 기자들 역시 심드렁한 포페스쿠의 인터뷰에 슬슬 짜증이 밀려왔는지 권정혁의 대표팀 명단 발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물론 외국인 감독 물어뜯기를 위한 억지가 아닌 어느정도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다들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며 졸업 후 곧바로 K리그, J리그에 진출했고, 이미 자리를 잡은 선수들도 많았다. 그 중 대학생은 모두가 인정하는 이호종,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권정혁 단 두명이었다.


“아 기자회견은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감독님께 박수 부탁드리며, 추가 질문은 홍보팀쪽으로 말해주시면, 최대한..”

“잠시만요.”


선글라스를 끼고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은 티를 풀풀 풍기던 포페스쿠 감독이 단호하게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권정훈은 제가 직접 보고 뽑았습니다. 충분히 경쟁력있는 선수고, 팀의 중심이 되어줄 선수입니다. 멀티 플레이어 능력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집중력이 특출나요.”

“인맥축구다. 학연, 지연 논란도 있는데요. 현제대 이호종이야 당연한 발탁이지만, 아무리 그래도그렇지 처음 보는 권정훈은..”

“인맥이요? 저 루마니아 사람인데요. 아무튼 제가 뽑은 선수, 제가 고른 팀은 제가 책임집니다.”


짧은 기자회견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고, 포페스쿠 감독은 살짝 웃으며 21명의 선수들이 기다리는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수원, 서울, 포항, 울산. 같은 유스팀 출신 선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라곤 호종이 하나였다. 옆에 서서 손목 발목을 풀면서 루틴대로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야 발목 괜찮냐 요즘? 난 왜이리 안 아픈 곳이 없냐.”

“당연하지. 클럽하우스에서 마사지도 매일 받고, 병원이나 케어도 차원이 다르지. 넌 언제 프로 올라고? 솔직히 말해봐. 너 해외로 나가는 거야?”

“해외는 무슨. 기말고사가 제일 걱정이다. ‘C제로’ 룰이라고 들어봤냐? ”

“무슨 학점이고 과제냐. 호종아, 무조건 프로 빨리 올라 오라니깐. 감독이고, 코치고 다 너랑 이야기 잘 하고 오라고 난리를 아주. 귀아파 죽겠더라.”

“네가 무슨 캠퍼스의 낭만을 알겠냐? 프로고 나발이고 축제 시즌에 머나먼 파주 입소한 내가 레전드다.”


U20 월드컵 출전권이 달린 AFC U19 대회를 함께 뛴 호종이와 몇몇 선수들은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한 이들은 ‘황금세대’라는 별명이 손색없는 선수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웬만한 선수들과는 전부 고등학교 대회에서 마주친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프로 무대까지 진출한 선수라면 누구나 중고등학교에선 천재 소리를 듣거나, 팀을 먹여 살리는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그라운드에서나 버겁게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벤치에서나 주의 깊게 지켜본 게 전부였는데. 내가 그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있다니.


“반갑다. 다들 인사 나눴지? 감독님께 인사!”


코치님이 우렁찬 목소리에 단숨에 시선이 집중됐다. 선글라스를 낀 감독님은 설레는표정으로 21명의 선수들 한명 한명을 둘러봤다.


“기사는 보고 왔지? 조별리그 1위. 토너먼트 무패. U20 월드컵 우승. 이게 내 목표고, 우리 팀의 최종 결과가 될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하.”


감독님의 호탕한 웃음에도 어색한 분위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결국 11명의 선수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 동료이기전에 경쟁자였다. U15, U17, U19로 점점 올라갈수록 경쟁과 경쟁을 거쳐 거르고 걸러진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몸을 푸는데도 긴장한 탓인지 숨이 턱턱 막혔다. 처음 느껴보는 팽팽한 훈련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땀을 흘리는 건 나 혼자였다.


아니 다시 보니 한 명 더 있었다.


“Levántete, chico! (일어나, 꼬맹아!)”


느릿느릿 맨 뒤에서 운동장을 도는 강준에게 포페스쿠 감독은 장난스럽게 외쳤다. 2~3살 많은 형들 사이에서 긴장한 탓일까? 1,2살 차이도 엄청난 차이가 드러나는 나이대에서 무려 3살이나 어린 강준의 작은 체구가 유독 돋보였다. 170cm이 겨우 될까말까한 강준은 나보다 작았을 정도니 대표팀에서는 가장 왜소한 편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긴장되는 게 당연하지. 아무리 에이스라고해도 U17 대표팀에서 그런 거고.’


철썩!


“나이스 슛! 이야, 감독님 아이스크림 쏘시겠는데요?”

“아냐 나 한번 남았어. 한국은 삼세판이라매! 야 잠깐만!”

“Gracias a seleccionador. (감사해요 감독님!)”


짧고 굵은 오전 훈련이 끝나고, 그라운드에서 소소한 프리킥 내기가 벌어졌다. 선수 시절 루마니아, 나아가 유럽 최고의 왼발이라 불리던 감독님과 강준의 맞대결이었지만 의외로 승자는 꼬맹이 강준이었다. 뚝 떨어지는 왼발 인프런트 킥, 상하좌우 사정없이 흔들리는 무회전 킥,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오른발 감아차기. 백발백중의 프리킥은 여지없이 골문 구석으로 꽂혔다.


나의 섣부른 오해였고, 지나친 걱정이었다. 강준은 훈련이 버거운 게 아니라 그저 머나머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10시간밖에 되지 않아 시차 적응이 덜 되었을 뿐이었다. 레알마드리드C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레알마드리드B에서 데뷔한 신성.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하루 빨리 뛰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선수. 강준의 킥을 실제로 보는 건 실로 놀라울 뿐이었다.


‘나만 뒤처질 수 없지. 빨리 저녁이 되어서 레전드가 그때처럼 다가오기만 하면. 나도 분명 한 자리 할 수 있을 거야. 제발. 제발!’


그리고 다행히도 폭죽 소리와 함께 찬란한 불빛이 내 몸을 감쌌다. 누군가 밝게 웃으며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그런데 유난히도 더 반짝이는듯한 착각은 뭘까?


“아르헨 로벤(Arjen Robben). 네덜란드. 바이에른 뮌헨.”


갑자기 정수리의 얇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빠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한 웅큼 빠지며 내 눈앞을 꽃비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모발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 내게 찾아온 레전드의 이름 '아르헨 로벤'을 똑똑히 기억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U20 월드컵 D조 1차전 상대. 유럽 최강 스페인.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왜냐면 나는 그저그런 공격력의 반쪽짜리 선수 권정훈이 아닌, 상대 수비수에게 악몽을 선사할 폭발적인 윙어 크랙. 아르헨 로벤이니깐.


작가의말

로벤의 왼발은 닮고 싶지만, 모발은 닮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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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베르토 카를로스 (1) 21.05.20 922 27 9쪽
1 프롤로그 +2 21.05.19 1,075 4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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