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모두 무기 버리고 꼼짝 마!
017.
알파 쉘터에서 남쪽으로 1,200km.
우린 꼼짝 못 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 중이다. 그 덕에 아열대 기후의 강렬한 태양 아래. 늘씬한 아리스가 수영복만 입고 태양광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던 피부가 이젠 검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내리며 외쳤다.
“으아아! 지겨워! 레오! 뭐해? 놀아줘!”
“바쁘거든?”
“초코!!”
“넵!”
“나 더워. 덥단 말이야. 시원하게!”
“아······. 알겠습니다.”
초코가 주문을 발동한다. 그러자 그 작은 손에서 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 시원해! 완전 좋아.”
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름 묻은 손을 닦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초코 힘들게 정말 이럴 거야? 냉풍기 출력해줘?”
“정말! 이 눈부신 마법, 아날로그 감성을 모르는구나?”
“아날로그? 이건 그냥 노예에게 하는 갑질 감성이지.”
“피잇!”
그녀가 볼을 부풀리더니 랩톱으로 뭔가를 조작한다.
그러자 금방 어디서 뽑아왔는지 바나나 잎처럼 커다란 나뭇잎을 들고 안드로이드가 나타났다. 그녀가 돌아눕자 안드로이드가 마치 여왕을 모시듯 부채질을 시작했다.
아. 잠깐! 피잇?
난 초코에게 ‘피잇’이란 단어의 뜻을 물었다.
“피잇은 우리 말로 ‘바보’입니다.”
큽!
그렇단 말이지?
난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으액! 왜? 뭐야?”
“준비됐어?”
“뭘?”
난 그녀를 그대로 물속으로 집어 던졌다.
***
노는 것도 잠시.
난 완성된 호버크래프트의 엔진을 시험 중이다.
부아아아아아앙.
양력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모터음.
“괜찮지?”
“좋아.”
1주간의 작업. 호버크래프트로 변신한 트럭이 굉음을 내며 공기를 아래로 뿜어내자 폴리머 수지로 만든 스커트가 부풀어 오르며 트럭과 트레일러를 지면에서 띄웠다. 요 며칠 지루해 죽겠다던 아리스가 머릴 휘날리며 선박처럼 뽑아놓은 조종석의 조타를 잡았다. 굳이 저 디자인이어야 한다나?
“중심은 잘 잡히네.”
“그럼 바로 출발하자.”
간단히 말하면 공기부양정이지만 형태는 웃기게도 열차, 길게 달린 트레일러마다 두 개의 후향 프로펠러가 힘차게 바람을 뿜자 거대한 호버크래프트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푹푹 빠지는 펄 때문에 자원 수급에 고생한 안드로이드를 생각하면 어서 이 지역을 빠져나가야 맞지만, 이 지역은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맹그로브 과의 식목 때문에 길을 찾기가 모호했다.
“강을 따라 올라가!”
“알았어.”
그녀가 조타를 신나게 돌린다. 난 우선 화살촉새 드론을 사방으로 뿌렸다. 혹시 모를 몬스터의 출현이나 길 찾기 용도. 그리고 늪지에서도 타기 편하게 제작한 바닥이 넓은 수상 바이크에 안드로이드 몇을 태워 주위를 경계했다.
현재 안드로이드는 3,284대. 거기에 백여 대의 소형 수리 로봇과 3m 크기의 짐버, 12족의 그리마까지, 40대의 화석 엔진의 지프는 이미 호버크래프트 개조에 부품으로 쓰였다. 바지선과 돛도 벌써 분해해 호버크레프트의 스커트를 만드는 자원행.
거기에 바다 갯벌, 즉 펄이란 것이 생각보다 자원화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AI(알루미늄)8.89%, Si(규소) 31.52%, K(칼륨) 3.61%, Ti(티타늄) 0.54%, Fe(철) 4.46%.(*주1) 난 이 펄을 분리해 최대한 많은 수의 개인용 자동화기를 만들었다.
선택한 것은 M416.
간단한 화약류의 5.56mm 총탄을 쏘아내는 5백 년 전의 유물이지만 원시의 생명을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급하지만 1백 대의 안드로이드가 이 총으로 무장하고 호버크래프트 위에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다.
[항해사님]
“왜? 가우시아. 무슨 일이지?”
[우리가 목표하고 있는 컨테이너에 누군가의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음?”
[인간형. 대략 20명 내외로 파악됩니다.]
“현재 컨테이너까지의 거리와 도착 예정 시간은?”
[대략 231km, 지금 속도라면 도착까지 4시간 10분입니다.]
“아리스?”
“왜?”
“누가 우리 아기들을 훔쳐 가려고 하나 봐.”
“음?”
“내가 먼저 가볼게. 넌 천천히 따라와.”
“알겠어.”
초코와 바쿠얀이 어느새 내 옆에 붙는다. 아리스와 함께 있는 것보단 내 옆에 있는 게 훨씬 즐거운 모양. 이번엔 바쿠얀만 부르자 초코가 입 모양으로만 피잇 소리를 낸다. 야, 나 그 뜻 알거든?
화살촉새 100대가 들어 있는 카트리지를 그리마에 실으며 말했다.
“아리스. 바로 오지 말고 컨테이너 앞 5km까지만 접근해서 대기해. 그리고 안드로이드로 링크해서 지원해줘.”
“오케이.”
바쿠얀과 그리마에 올라 달렸다. 얕은 수면을 부수며 12개의 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내 뒤로 M416을 어깨에 멘 안드로이드, 10대의 수상 바이크가 따르자 우리 뒤로 부서진 물방울이 무지개를 만들었다.
난 그리마 안에서 이번에 제작한 크로마토포레스 위장복을 꺼내 입었다. 심해용의 엑소슈트에서 좀 더 발전한 형태. CMYK의 색소로 활성화된 위장복은 주위의 색을 복사하여 완벽하게 날 카멜레온으로 만들었다.
***
컨테이너 앞 3km.
난 맹그로브 숲에 그리마를 숨기고 크로마토포레스 위장복을 위장 모드로 전환했다. 내 모습은 마치 잔디와 숲, 나무의 형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바람에 흔들리듯 영상을 자연스럽게 흔들었다.
“멋지오.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전혀 몰라보겠소.”
“넌 어쩔래?”
“나도 은신을 위한 마법은 몇 가지 알고 있소.”
그가 주문을 외우자 희한하게도 자신의 옷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금세 모양새가 나무처럼 변한다.
“그것도 멋지네.”
“숲에서만 쓸 수 있으니 한계가 있지요.”
고개를 끄덕이고 안드로이드에게 명령했다. 10대의 안드로이드들은 몸에 검은 머드를 바르고 풀을 뜯어 붙였다. 이렇게 완벽하게 은신을 한 후 우린 컨테이너가 잠자고 있는 숲을 향해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
난 헬멧의 카메라로 줌 기능을 시선의 오른쪽에 활성화시켰다.
컨테이너는 총 2개. 그리고 그 컨테이너 주위에 20여 명 남짓 사람의 형상을 한 생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얼굴은 악어와 벨로키랍토르의 중간쯤? 긴 주둥이와 이빨, 그보다 노랗고 길게 찢어진 동공을 한 커다란 눈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몸에든 단단한 갑주, 긴 꼬리와 튼튼한 다리, 손에는 3m 남짓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갈라진 창을 들었다. 그들을 보며 바쿠얀이 말했다.
“나가 족이군요.”
“나가 족?”
“저들은 위험합니다. 모든 종족을 잡아먹죠.”
아마도 ‘나가’라는 표현은 가우시아의 번역 프로그램이 임의로 붙인 나에게 친숙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나가’라는 단어가 함축한 기호의 의미로 난 그들이 식인을 즐기는 파충류 족속으로 이해했다. 바쿠얀의 대뇌에서 상상한 이미지가 표현한 소리를 함축한 단어가 그것이라면 믿고 싶지 않아도 정확한 전달.
“어?”
문제는 저기 있었다.
나가 족의 사이에.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안드로이드 한대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
기관장이자 플라즈마 엔진 관리사, 네오 이데아의 3급 시민인 이반은 이동 요새를 만들어 최대한 빠르게 안드로이드들을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새를 만드는 시간 자체가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들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안드로이드들을 링크로 활용해 컨테이너에 접근하면 어떨까?
문제는 통신.
안드로이드를 직접 링크하는 것은 막대한 데이터 전송이 필요한 상황.
기껏 열심히 만든 드론은 보내는 족족 터져나갔다.
‘빌어먹을 괴새들!’
뭐만 날렸다 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괴수들이 날아와 드론을 부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통신이 문제라면···.’
안드로이드로 안드로이드를 연결하는 것.
안드로이드 간의 통신 반경은 50km.
자신이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12방위 사방으로 100대씩 안드로이드를 보낸다.
그리고 통신 최대 가능 거리마다 안드로이드를 한 마리씩 떨군다.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연결 방법.
그렇게 사방으로 진군을 시작한 1,200대의 안드로이드는 한 마리씩 자신의 꼬리를 떨어내며 대륙을 수색했다. 그리고 새롭게 흡수한 안드로이드는 다시 그 대열에 추가해나간다. 이 방법으로 그는 벌써 3만 대가 넘는 안드로이드의 명령권자가 되었다.
거미줄의 교차점마다 한 마리씩 안드로이드를 세우며 최대한 빠르고 넓게 안드로이드를 찾아내던 이반은 이 아열대의 습지에서 파충류의 족속을 만났다. 그리고 쉽게 제압했다. 왕국을 점령하고 지배계급을 인질로 잡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이동 요새에서 여기 아열대의 숲까지는 거의 8천km,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로 횡단한 것과 같은 긴 거리는 그에겐 상당한 제약이었다.
1,000km의 통신을 유지하는 데만 20대, 8천의 거리는 유지하는 데에만 160대의 안드로이드가 사용되고 있었다. 링크의 시간 오차율도 0.32초.
특히 북쪽으로 올라갔던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동료이자 의사인 알렉사의 안드로이드를 만나 대패했다. 수에서 밀렸다. 그래서 더는 이 통신을 유지하기보다 지금은 안드로이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3만이면 충분히 모았다. 수적으로는 자신이 가장 우월했다.
“여기 이놈들만 챙기고 이 짓도 그만해야겠어.”
지금 링크로 연결한 안드로이드의 눈에 비친 이 파충류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달랑 10대에 망가지는 부족이라면 특별한 위협도, 쓰임새도 생각나지 않았다. 쓴다면 또 쓰겠지만, 문제는 여기가 너무 멀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거기에 며칠 전부터 밀려오는 두통. 네오이데아의 나노 머신으로 진행한 오랜 기간의 링크 때문에 생긴 후유증. 거기에 긴 거리로 연결하는 링크의 시간 오차율은 중첩되며 나노 머신에 과부하를 만들었다. 그게 두통을 더욱더 심하게 한다. 이 지긋지긋한 두통 때문에라도 그는 어서 이 짓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
“쉬시잇!”
“쉬잇!”
파충류 인간들이 펄에 박힌 컨테이너의 문을 찾아 땅을 파내고 있지만, 파낸 곳은 금방 다시 펄이 무너져 내렸다. 반쯤 틀어박힌 컨테이너 속의 안드로이드를 꺼내려면 무엇보다도 문의 계기판부터 찾아야 했다.
[어서! 파! 어서 파내라!]
“쉭! 쉬잇!”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이 알아서 해준다면 좋았겠지만, 안드로이드의 보안프로그램 해킹은 네오아시아의 나노 머신이 직접 링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터질 것 같은 눈을 비비며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관자놀이를 누르며 다시 정신을 링크에 집중했다.
그때 링크한 안드로이드의 안테나에 전혀 다른 물체의 접근이 감지되었다.
그는 한쪽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상하게 아른거리는 물체에서 번쩍하는 섬광을 느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링크가 터지며 그가 의자로 튕겨 나갔다.
***
투캉 투캉 투캉!
티틱! 펑!
컨테어니 위에 서서 나가 족을 관리하던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폭발하듯 떨어져 나간다.
M416으로 단순히 사격을 한다고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터지진 않는다. 오히려 총알을 쉽게 튕겨낼 정도로 안드로이드의 외골격은 튼튼하다. 하지만, 그게 11개의 방향에서 동시에 떨어지는 사격이라면?
나와 10대의 안드로이드는 정확한 시점에 부채꼴로 벌린 위치에서 한 점, 안드로이드의 머리에 일점사를 가했다.
그 결과.
놈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능을 정지한 안드로이드가 쓰러져 펄에 처박힌다. 우리는 나가 족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바쿠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저놈들과 말은 통하나?”
“통역 마법을 쓰면 되오.”
“마법?”
내 놀란 반응에 바쿠얀은 뭘 놀라냐는 듯 자신의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도 충분히 하고 있잖소?”
“그거야 그렇지만······.”
“마력석을 가져왔다면 몰라도 내 마력이 생각보단 부족하오. 아마도 짧은 시간만 가능할 것이오.”
그가 자신과 나 그리고 나가들이 서 있는 공간 전체에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내 뇌의 정신이 텔레파시로 연결되는 것처럼, 상대와 생각이 그대로 오픈되는 느낌. 쓸데없는 생각보다 난 바로 그들을 향해 생각으로 외쳤다.
“모두 무기 버리고 꼼짝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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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갯벌 펄의 성분 내용은 보령 머드의 성분표를 기준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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