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사냥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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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서울오렌지
작품등록일 :
2012.09.09 23:13
최근연재일 :
2012.09.0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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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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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사냥꾼들 (30) :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DUMMY

감찰과장은 김상식과 전화 통화를 끊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죄책감은 가지지 말라고 했지만, 글쎄.. 이번 엘리스 체포 작전 때도 적지 않은 인원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김상식으로서는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마리아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는 변명이 될 수 없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둘의 선택으로 적지 않은 희생이 생긴 것이다.


"아는 사람은 나하고 현 정보원장 뿐인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도 모르는 일이다.


"전화가..."


감찰과장은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에 다시 몸을 뒤척였다.


"예, 감찰과장입니다."


스튜어트는 묵묵히 걸려오는 전화를 계속 받을 뿐이었다.


"결국 제가 정보원장이 되는 겁니까?"


하지만 스튜어트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근심이 가득했다. 나폴라 원장 이후 무려 두 명이나 불미스러운 일로 해임되고 말았다. 그것도 둘 다 똑같이 습격 사건이라는 이유로. 최고의 보안을 자랑해야 할 종합정보원이, 테러 집단에게 두 번이나 공격당했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국회가, 시민단체들이, 그리고 언론과 여론이 들끓었다. 독재 정권 때부터 이어져 온 안 좋은 이미지는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바로 그 상황에서 종합정보원장이 되는 것이다.


"저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소식 한 가지만이 전달된 것이 아니었다.


"예? 김상식 요원을 비밀정보국으로 배속시키겠다구요?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상식 요원은 이번 작전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요원입니다. 그런데 이제 막 창설하려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니,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글쎄.. 그런 유능한 인재가 있어야지 비밀정보국도 안정되게 출발할 수 있지 않겠나? 우린 자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게 아닐세. 그저 자네가 김상식의 상관이기 때문에 통보하는 것 뿐이야."


"그런..."


"그나저나 정말 수고했네. 자네가 김상식 군이 정신 초능력 무효화 능력자란 걸 밝히지 않았던들 어떻게 해낼 수 있었겠나? 엘리스도 체포되었으니 이제 여론의 반응도 조금 수그러들 거야. 그럼, 이만 끊겠네."


"잠깐만요! 그럼 초대 비밀정보국장은 누가 되는 겁니까?"


"뭐, 종합정보원이나 비밀정보국장 모두 민간에게는 공개되도록 할 거니까 미리 알 필요는 없네만... 그래, 뭐.. 알려주지. 나폴라 전 종합정보원장이 초대 정보국장이 될 것이네. 아 물론... 명칭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장관급의 처우로 대접할 생각이네. 그럼, 진짜 끊겠네."


상대방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스튜어트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김상식에게 다시 전화를 할까.. 생각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결정권도 없다.


"나폴라 전 원장... "


자신이 감찰과장으로 복귀하기 전 해에 갑자기 사직한 인물. 독재정권에 대항하던 자치 정부의 정보 총 책임자이기도 했다. 스튜어트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랬군! 그랬어.... 잠시 정보원장으로 취임했다가 사직했던 건 미리 정보원의 실태를 파악하고 비밀정보국을 창설하기 위해서였군... 그래... 그런 것이었나?"


애국지사로 알려진 인물. 그러나 스튜어트는 혼란스러웠다. 비밀정보국장으로 취임하는 것이, 뭔가 흑심이 있기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비밀정보국장이 되는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군. 아무 것도..."


한편, 김상식은 감찰과 사무실로 짐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초능력 처리과는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 엘리스 체포작전의 후속조치 때문에 거의 텅 비어 있어서 특별한 송별식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종합정보원 내에서 그런 게 있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아, 선배님!"


맥스가 썩 나타나 김상식을 맞이했다. 김상식은 피식 웃었다.


"어, 맥스 직접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리고... 정말 수고했다. 너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하하.. 이전 정권에서 숨겨 둔 것까지 찾느라고 확실히 고생은 좀 했습니다. 하지만 뭐.. 나만 했나요? 방첩과도 했고.. 감찰과 다른 직원들도 발바닥에 불나도록 달렸고.. 사실 선배님이 제일 고생했잖아요."


"아니 나야 뭐...후우.."


"그나저나 엘리스가 빼내 간 자료, 어떻게 됐어요?"


"나도 오며가며 들은 이야기인데.. 90퍼센트는 회수한 모양이야. 헌데... 아직 회수하지 못한 자료들이, 아무래도 이미 해외로 나간 것 같아."


"맙소사... 그거 개인 정보도 다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엘리스가 확실히 해변에 자리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다 건너서 유출시킨 거지 뭐. 계속 추적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거기에.. 과거 정신 초능력자들 데이터 다 들어있는데.. 여러모로 악용될 소지가 커. 정말 문제다 문제."


김상식은 그렇게 주섬주섬 짐을 정리한 뒤 감찰과 사무실을 삥 둘러보고 다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어디 가세요?"


"아, 나 오늘 조기 퇴근 허락 받았어. 너무 지쳐서."


"뭐, 그렇긴 하겠네요. 나중에 한 턱 쏠 거죠?"


"그래 뭐.. 까짓 거! 그럼 내일 보자!"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김상식은 그렇게 퇴근한 뒤 차에 올라탔다. 어느새 낮이 되었다. 김상식은 바로 몇시간 전까지도 자신이 치열하게 테러리스트와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엘리스를 체포한 장본인이 바로 여기 있는데.. 정작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보원의 운명이지.. 운명.'


어느새 12월 31일 오후 3시.. 땅바닥에는 몇시간 전까지 내린 눈이 하얗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곧 녹을 터였다. 몇시간 전부터 계절에 맞지 않게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간상 햇빛이 좀 약해지긴 했지만.. 스튜어트 말대로 마리아와 위니, 그리고 초능력 처리과 사람들과 만나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만 두었다. 어쩌면 마리아는 오래도록 못 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영원히 못 볼지도.


'이제와서 뭔 상관이냐. 원래 있어도 없어야 하는 게 내 일인데..'


그런데 문득 핸즈프리해 두고 있는 휴대폰이 울렸다. 김상식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상식 씨?"


"마리아?"


"네.. 나예요. 마리아."


김상식은 이상하게 마리아의 전화가 반갑지 않았다.


"웬일로 전화요?"


"방금 위니와 같이 왔어요. 초능력 처리과로."


"그래요? 그래서?"


"아뇨, 상식 씨를 찾고 있었는데 보이지를 않아서."


마리아의 말 끝에 약간 어색한 웃음이 섞였다. 하지만 김상식은 즐겁지 않았다.


"당신도 초능력을 제거당했소?"


"아뇨, 전 지금 보류 중이라고 하는데.."


"엘리스가 정신 초능력자 명단을 훔쳐간 이유를 아시오?"


"예.. 엘리스가 오늘 말고.. 지난 번에 붙잡힐 때, 자신을 상대한 사람들 중에서도 초능력자가 있었다고 해서 위협을 느꼈다고 했어요. 그것도, 엘리스의 정신 초능력을 그대로 되돌려보내는 무서운 초능력을.."


"나도 그레이스에게서 들었지. 하지만 엘리스의 초능력은 너무나도 강력한 것이라, 일부 되돌려서 엘리스를 멈추게 하는데는 성공해서 플램이 그 틈을 타 잡을 수 있었던 거요..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해당 요원은 죽고 말았소. 아무튼, 그런 요원들이 더 양성될 것을 두려워 한 엘리스는 스텝과 연계해 탈출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료 탈취를 시도했지."


"그게.. 바로 나와 스컬이었군요."


"아니, 사실 그때 나와 방첩과 요원만 없었어도 당신이 정보원에 침투할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해. 왜냐하면 작년 엘리스 탈출 사건 때 따로 자료 탈취를 시도한 요원들이 있었거든. 그 놈들을 나와 방첩과 요원이 막았지."


김상식은 그 때를 생각했다. 기록보관실에서 단추를 흘려 꼬리를 김상식에게 잡힌 조셉과, 역시 기록보관실에서 자료를 찾으려다가 에리카에게 죽은 이에르. 아마 그 둘이 자료 탈취에 성공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마리아가 굳이 정보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정보원에 침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해서 김상식은 생각했다. 정말 마리아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안드레아의 자살부터 이에르와 조셉, 그리고 스텝을 거쳐서 결국에는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고 그 필연은 결코 밝지 않았다. 차라리 비극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김상식은 더이상 전화받기가 괴로웠다.


"마리아, 두 가지만 묻죠.. 당신, 당신 말이야.."


김상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위니를... 죽은 당신의 아이에게 투영한 것 아니오?"


어렵고 괴로운 질문. 하지만 마리아가 마지막에 가서 엘리스를 배반한 결정적 계기가 아마 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요원으로서 생긴 의무감 때문에라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리아는 더욱 괴로울 것이다.


"....네. 위니를 보면서... 내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김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앤 아주머니가 죽은 것도 죽은 것이지만, 위니를 생각하니까... 사실 엘리스를 말려야겠다는 예전부터 해 왔어요. 그래서 추적 장치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던 거구."


간신히 터져나오는 슬픔을 억누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마지막 질문.. 대체 나한테 왜 전화했소?"


"네?"


어느새 김상식이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왜 전화했느냐 이 말이오. 아닌 말로, 내가 안드레아의 딸을 살렸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 불행해질리는 없었을 텐데. 그런 내게 마지막까지 전화한 이유가 대체 뭐지?"


"고맙다는 말을 전하구 싶어서요."


김상식은 갑자기 인도 옆에 차를 세웠다. 뭐라고? 무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무슨 소리지? 오히려 내게 화를 내야 하지 않나?"


"난.. 내가 당신보다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도 너무 힘들게 살아왔는걸.. 얼마나 원통했으면.. 얼마나 울분에 차 있었으면..."


"동정하는 거야?"


"아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걸 견뎌냈어요.. 더 이상 복수심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았죠. 그리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잖아요?"


"두 번?"


"바로 오늘... 날 살려줬어요. 난 분명 내 아이가 죽은 날 죽었는데.. 날 살렸어요."


"그건 위니 덕분이오."


김상식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어요. 그리고.."


김상식은 무의식적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햇살이 내려와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내가 맞았을 총을... 레이든이 쏜 총을 대신 맞고, 날 구해줬잖아요? 비록 레이든이 스텝 패거리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는 당신이 무서웠지만... 그리고, 내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챘을 때도... 날 구해줬어... 당신과 위니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잊지 못할 행복이 될 거예요."


"이만 끊을게요."


"상식 씨..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끊겠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는데.. 다시 강도 높은 취조가 이어질 것이오. 당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자들의 취조가..."


김상식은 전화를 끊었다. 손으로 이마를 싸쥐었다. 거의 움켜쥐듯이. 가쁜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운전을 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 김상식에게 접근했다.


"저..혹시 김상식 씨?"


"누구시죠?"


김상식은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 당신은.."


"역시 김상식 씨 맞구만!"


약간 험상궂게 생긴 그 사내는 덥썩 김상식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악수였어도 김상식 역시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김상식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이게 얼마만이에요? 여기 사셨어요?"


김상식은 그 남자에게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그 사내는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아아, 뭐 이사온 지는 얼마 안됐고! 아니 그럼, 김씨도 여기서 산단 말이네?"


"그렇죠! 아..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글쎄.. 현 정권 들어서고 한 8년만인가? 하하하하!"


"그...다리는 괜찮으세요?"


김상식이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더 호탕하게 웃었다.


"아.. 흉터야 남았지만! 이 흉터는 내가 민주화 투쟁에 선봉에 섰다는 자랑스러운 훈장 아닙니까! 하하하하하! 내가 말이오! 그 안드레아 부하놈들이 아무리 고문을 해도 까딱도 안 한 사람이오!"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고생이야 나만 했나? 아닌 말로다가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디있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김씨만해도 목숨 걸고 도망치기를 몇 번이나 했소?"


김상식이 고개를 떨궜다.


"저야.. 뭐 한 일이 있나요."


"에이 겸손하긴.. 근데, 벌써 퇴근허우?"


"아..예. 회사가 좀 일찍 끝나서.."


"그렇구만! 하하.. 스읍.. 근데. 김씨도 우리 모임 있을 때 좀 오고 그래! 없으니까 허전해 죽겠어! 어떻게 한 번도 안 올 수가 있소, 섭섭하게.."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 언제 한 번 꼭 들를게요."


"그래요, 좀 와줘요! 토마스도 없는데 상식 씨라도 와야지 않겠소?"


"토마스라.."


김상식도 남자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상식과 함께 독재 정권에 대항한 남자. 그러니 토마스를 모를리 없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동지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 토마스의 납골당에도 들르고 회식도 한다고 한다. 다만, 김상식은 단 한 번도 그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또 만납시다. 내 한 번 연락할게."


"예, 예. 살펴 들어가세요."












남자와 헤어지고 바로 아파트에 들어갔다. 오후 4시 반. 작전이 개시된지 14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작전은 종료되었다.


"초능력자 엘리스를... 내가 잡았다. 역시 초능력자나 다름 없는 내가.하...아까 그 아저씨, 내가 종합정보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김상식은 헛웃음이 나왔다. 작년만 해도 자진해서 초능력을 제거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던 김상식이었다. 또한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합정보원에 요원으로 들어간 김상식이었다.


"초능력자 잡는 초능력자... 초능력 사냥꾼. 아니, 인간 사냥꾼. 하.. 참."


계속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김상식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와보니 아내가 서 있었다.


"여보.."


"어, 당신도 집에 와 있었어?"


"응.."


아내는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김상식은 새삼 자신의 뿔테 안경을 만지작 거렸다.


"당신이 안경도 썼던가?"


"아니.. 시력이 좀 나빠져서. 아 뭐 별 거 아니야. 신경쓰지 말아요."


"아내가 시력이 나빠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나도 참 한심하군."


"아이 참, 바빴던 거 알아요.. 오늘, 속보 봤어. 엘리스가 체포되었다구. 당신...도 관련있지?"


아내는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김상식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목덜미까지만 머리를 길렀던 아내가, 지금은 어깨 아래까지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머리...길렀네?"


"아..응. 그냥.."


순간 김상식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마리아와 위니를 데리고 편의점 앞에서 군것질을 하던 그 때를. 분명 마리아는 머리가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미인이었다.


"당신 설마... 아 진짜.."


김상식은 약간 짜증이 났다.


"그 여자는 업무 상 어쩔 수 없이 만난 거라니까. 설명해 줄 수도 없고..."


"아, 아냐, 여보. 그런 거 아냐. 난 그냥..."


"후... 그래. 바빠서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내 잘못이지."


김상식은 옷도 안 갈아입고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 급하게 돌리느라 미처 아내 얼굴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방문을 닫았다.












"왜 그런 소릴했지..."


김상식은 서재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그래도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니까 저런 것일 텐데.. 사실이 그랬다. 아내는 늘 김상식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만두면 안되겠냐고 울면서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 문득, 김상식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대체 난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처음, 종합정보원으로 야심차게 발걸음을 옮겼을 때 포부가 기억났다.


'독재와 탄압의 상징인 종합정보원을, 이제 정말 정의를 위한 기관으로 바꾸자!'


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포부.


'그러나 그 포부가 진심이었을까?'


김상식은 책상에 몸을 기댔다.


'난 왜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을까?'


그것도 기억났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일생일대의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결정이 진심이었을까?'


가족의 복수를 위해 국가에 반역하고, 자신의 연인의 인생을 망치고, 끝내 자신의 자식까지 죽인 스텝. 그리고 그에게 복수한 마리아. 그리고,


"그 스텝을 죽인 진짜 범인인 나, 안드레아 딸의 죽음을 방치한 나... 그리고, 그걸 감추고.. 마치 사람들 앞에서는 정의의 편인양 설쳐댔던 나."


김상식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냐, 스텝은 나보다 더 나쁜 놈이야... 놈은, 놈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룬 것 뿐이야!"


그렇다면, 마리아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그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을까? 무슨 죄로. 바로 그 스텝을 사랑했던 죄 하나만으로? 그리고, 스텝의 여동생은 대체 무슨 죄가 있어 자신의 아버지의 죄로 그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그건 죄가 아니지.."


김상식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마리아에게서, 자신을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으로 내 죄도 다 씻겨진 건가?"


김상식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김상식은 책상 위에 올라온 한 장의 액자 사진을 바라보았다. 독재 정권에 대항해 용감히 싸우던 동료들과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토마스도 보였다.


'그래 맞아.'


코 끝이 찡하게 아파왔다.


"난 그런 정의로운 포부를 가진 게 아니었어. 위대한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었어... 난 그저."


액자를 바라보았다. 용감한 친구 토마스. 혹독한 고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동료들의 이름과 행방을 비밀로 감춘 가장 용감한 친구.


"난 그저 겁쟁이었던 거야."


김상식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비틀거리며 책상 위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액자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난....나는 그저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거야..."


정말로 당당했더라면 왜 나는 마리아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지 않았을까?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마리아도 김상식에게 결코 당당할 수는 없을 테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이유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사람을 심판한단 말인가..."


정말로 당당했더라면, 왜 나는 토마스의 추모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단 말인가? 토마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목숨인데,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내 알량한 죄책감 때문에 토마스의 죽은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민주주의니, 정의니, 이것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었다.


"토...마스... 그리고, 다른 모두들...."


김상식은 무너지듯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었다. 토마스가 죽은 후, 10년 가까이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을까. 눈물이 쉴 새도 없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울음을 참지 못해서 속이 끊어질 듯한 울음 소리가 계속해서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당한 척하면서, 비겁했던 자신을 위해 흘리는 비겁한 눈물이었다.


"흐...흐흑....흐...내가...내가..."


정의로운 포부, 위대한 결정, 이것들은 그저 비겁한 회피에 지나지 않았다. 정작, 진실로 정의롭고 위대했던 동지들을 외면해왔으면서.


"내가 정말로 죄책감을 씻고자 했다면...."


그랬더라면, 마땅히 군대에 있을 때 했던 짓들도 용서받아야 했다. 물론,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한 짓이긴 하지만, 정말로 떳떳하려면, 김상식에게 짓밟힌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상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음지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람들과 접촉하기 힘든, 그리고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만한 사람들이 없을 종합정보원으로. 그것이 진짜 이유였다.


"스튜어트 과장님..."


그는 끝까지 날 변호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변호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 고마운 분의 신뢰마저도 깨버린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내 원한 때문에 스텝을 죽여 대업을 그르쳤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생긴 수많은 피해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오늘만해도 엘리스를 잡으려다가 요원들이 희생되지 않았는가!


"모두...죄송합니다...모두,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김상식은 그렇게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비겁한 눈물을 그렇게 쏟아내고 있었다. 이마를 땅바닥에 부딪치며, 입에서 괴로운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그렇게 발버둥치며 울기 시작했다. 액자를 가슴에 품고 그렇게 눈물을 쏟아 땅바닥을 적셨다.


"고맙다고? 두 번이나 살려줘서?"


김상식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 다른 걸 다 용서받는다고 해도, 스텝을 죽여 일을 엉망으로 만든 것... 정말로 민주주의나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고 했으면, 그런 원한을 잊고, 죄책감을 씻었어야 했다. 스텝을 죽인 것은 결국, 스텝을 보면 볼수록 정말 잊고 싶었던 죄책감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살아가겠지..흐흐..흐흐흐..."


울음 섞인 웃음이 비죽비죽 흘러나왔다. 결국 나는 비겁하니까.


"여보..?"


서재의 문이 열렸다. 김상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뒤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묶은 아내가 김상식을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자기...울어?"


"....나는..."


아내는 김상식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려 했다. 그러자 김상식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뒤로 뺐다.


"여보?"


"나는... 난 당신이 그렇게 걱정해줄만한... 그런 놈이 아냐!"


김상식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아랑곳않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지 마. 나는...나는 나쁜 놈이야! 당신...날 걱정했지? 그럼.. 정말 쓸데없는 짓한 거야. 나는... 그냥 죽어버렸어야 했어! 그게 당신한테 훨씬 나아! 지금 난 죽어 마땅한데 죽는 게 무서워 비겁하게 살고 있는 거야!"


아내는 그런 김상식을 피하지 않고 자신도 무릎을 꿇으며 와락 감싸안았다.


"여보..."


"나는...나는.. 나 때문에..."


"당신이 울면, 나도 울고 싶어져."


아내도 어느새 훌쩍이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내 남편인걸."


김상식은 자신을 안은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외로웠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지.. 당신은 정보원이니까.. 슬퍼도.. 안으로 삭여야했지. 내게도... 말할 수 없었지."


"제발 이러지마...난.."


"나도 당신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 얼마나 슬픈지도 몰랐어. 하지만 늘 걱정이 됐어. 그래서 방해되고 귀찮은 건 알았지만.. 계속 전화하고 만나고 싶었어."


"내가...내가 한 짓을 말하면 당신은 날 용서하지 못할 거야."


"용서할 거야."


"못 해!"


아내는 더욱 세게 김상식을 끌어 안았다.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니 그보다도, 지금 김상식을 놓으면 정말 영원히 그를 잃을 것 같아서였다.


"난 자기를 용서할 수밖에 없어.... 지금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그 일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지? 아니, 애초에 내게 용서를 구할 일이 아냐."


"당신이 날 이렇게 위로하면....위로하면, 난 또 언제 죄 지었냐는듯이 지낼 거야.."


"당신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괴로울 수밖에 없다면.. 그래도 같이 있을 거야."


"여보.."


"누가 뭐래도, 내 남편인 걸."


그러자, 김상식도 두 팔로 아내를 감싸 부둥켜 안았다. 그녀에게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더 이상 말없이, 그녀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김상식은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안겨 울듯 그렇게 몸을 떨며 울었다. 아내는 김상식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는 김상식도 아내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김상식은 아내의 품에 안겨 모든 울음을 토해냈다.













다음 날, 김상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종합정보원에 출근했다.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김상식을 마중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비밀정보국이 창설되었다. 김상식은 창설일을 기해 비밀정보국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창설식 날, 비밀정보국 건물 내 강당에서 나폴라 국장이 일장 연설을 했다.


"지난 초능력자 테러리스트 사건 때! 종합정보원의 능력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비밀정보국은, 그 아픔을 딛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협하는 그 어떤 세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과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종합정보원의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연설은 끝났다. 그리고, '국가를 수호하고, 정의를 수호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싸우는 기관, 비밀정보국'에, 김상식은 언제나 그랬듯이 출근했다. 정말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끝]


작가의말

본편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끝까지 제 글을 선택해 주신 열 여섯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신 임대협 님에게는 특히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따로 드립니다.

조만간 후기와 에필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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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 화이트진
    작성일
    12.09.09 18:38
    No. 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후속작도 기다리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서울오렌지
    작성일
    12.09.09 19:55
    No. 2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더 나은 후속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임대협
    작성일
    12.09.09 22:26
    No. 3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추천글 하나 쓰지 못했던 점 오히려 죄송하네요. 길지는 않았지만 대미를 멋지게 장식 하신 것에 존경을 표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끝마무리에 대한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대단히 만족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주인공의 내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명과 대화들을 보았을 때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이외의 다른 분들도 재미있는 글을 읽을 수 있게 후속작이 나오신다면 추천글을 써야겠네요.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후속작 기분좋게 기다리겠습니다.ㅎ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서울오렌지
    작성일
    12.09.09 23:13
    No. 4

    임대협 님에게는 정말 각별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부족한 글에도 늘 꾸준히 봐주시며 댓글도 써 주시고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을 보태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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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초능력 사냥꾼들 (24) +2 12.08.16 688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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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능력 사냥꾼들 (21) 12.07.26 612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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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초능력 사냥꾼들 (19) +2 12.07.07 823 11 13쪽
18 초능력 사냥꾼들 (18) 12.06.28 522 8 12쪽
17 초능력 사냥꾼들 (17) 12.06.23 594 7 20쪽
16 초능력 사냥꾼들 (16) 12.06.16 837 7 22쪽
15 초능력 사냥꾼들 (15) 12.06.08 631 11 14쪽
14 초능력 사냥꾼들 (14) 12.05.28 640 6 13쪽
13 초능력 사냥꾼들 (13) 12.05.20 649 6 16쪽
12 초능력 사냥꾼들 (12) 12.05.18 679 6 11쪽
11 초능력 사냥꾼들 (11) +1 12.05.15 645 9 22쪽
10 초능력 사냥꾼들 (10) +3 12.05.12 629 10 12쪽
9 초능력 사냥꾼들 (9) 12.05.10 680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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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초능력 사냥꾼들 (7) 12.05.04 760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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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능력 사냥꾼들 (5) 12.05.01 776 8 16쪽
4 초능력 사냥꾼들 (4) 12.05.01 1,067 9 24쪽
3 초능력 사냥꾼들 (3) +2 12.05.01 1,157 12 16쪽
2 초능력 사냥꾼들 (2) 12.04.30 1,412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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