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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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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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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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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5)

DUMMY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혁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눈으로 보이는 화면을 스크린을 보듯 쭈그리고 앉아 상황을 바라봤다.


소리 없는 영상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멀리서 쓰러져있는 소원도 보였고, 울며 뛰어가는 미혜도 보였다.


석이 퀸비에게서 벌집을 빼내 부수는 모습도, 그런 석을 공격하려는 벌을 막다가 침에 찔려 검게 물들어가는 왼쪽 팔을 부여잡고 있는 로운도 보였다.


그러나 어떠한 감정도, 생각도 지혁 안에서 피어나지 않았다.


「기쁘지 않으냐. 이제 약하지 않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지혁의 옆에는 또 다른 형체가 있었다. 그림자 같기도 하고, 피어나는 검은 연기 같기도 한 형체가 지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그래. 아직은 어색하겠지.」


형체는 제법 다정함이 담긴 목소리로 지혁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물론이거니와 시선 한 번 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로 보이는 부분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인간들은 참으로 재미있다. 상대가 아무런 잘못을 하고 있지 않아도 욕심에 의해, 질투에 의해, 열등함에 의해 서로를 해하고는 하지.」


나란히 앉은 형체가 지혁을 따라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깊고 깊은 어둠의 공간에서 홀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스크린이 지혁이 보는 것들을 비추고 있었다. 거기서 흘러나온 빛이 지혁과 형체를 비췄다.


「그 녀석이 왜 너를 선택했는지. 나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구나.」


방금 전의 다정함은 꿈이었다는 듯이 메마른 목소리였다.


「너는 어떤 인간이지?」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질문이 지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그저 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형체는 그 모습을 제법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화면 속에서는 한 남자가 보였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체구가 조금 작은 남자. 스쳐 지나가는 사이였다면 전혀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 평범한 외모와 평범한 차림새의 남자.


그러나 지혁은 그를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왼쪽 눈에 피어나는 푸른빛의 마법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 눈의 주변으로 나타나고 있는 푸른색의 마법진이 하나, 둘 겹겹이 쌓여나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지혁은 아까와 같은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


몇 개나 겹쳐진 것인지 짙어진 마법진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타오르듯 빛나고 있는 마법진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듯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문이 활짝 열린 탑. 그 안에 누워있는 누군가의 발.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던 검은 마법진 위로 피어나는 검은색 불꽃, 포탈이었다.


“아...”


지혁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조금 벌렸지만 언어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힘이 없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지? 녀석의 도움을 받아도 잠깐일 뿐. 능력을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하는 네가 뭘 할 수 있지.」


비웃음이 깃든 목소리가 지혁에게 내리꽂혔다.


「너는...」


「그만해!」


그때 형체의 목소리를 짓누르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나지 않지만 지혁은 그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었다. 소년. 자신에게 힘을 줬다는 신의 목소리였다.


「당장 여기서 나가!!」


소년의 외침이 강한 바람이 되어 형체를 향해 불어왔다. 그러자 형체는 바람 앞에 불길이 꺼지듯이 사그라졌다.


「형. 제대로 봐!」


지혁은 멍한 시선으로 걸어가 스크린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따스한 열기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이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지혁의 등을 밀었다. 작고 부드러운 손길에 지혁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스크린 안으로 넘어졌다.


+++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 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몽롱함 속에 황혼의 보스가 보였다.


이 녀석이 왜 여기 있지? 눈을 저렇게 뜨고 뭘 하고 있는 거야.


“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남자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앞에 선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자 무언가가 잡혔다. 내려다보니 피가 흐르고 있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흘러내린 피가 굳어 손과 검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래... 나는 이걸로 사람을 베고 있었어...


손을 피자 끈적거리는 감각과 함께 검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멍하니 검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녀석이 뭔가 불안한 짓을 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주먹을 쥐고 놈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은 그의 부하에 의해 저지되었다. 나를 따라 온 것인지 원래 그곳에 있었는지 모를 거구의 남자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를 향해 뛰어와 온몸을 던져 나를 튕겨냈다.


육중한 압력이 팔을 통해 통증이 되어 파고들었다.


힘을 이기지 못한 몸이 살짝 붕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힘이 참 무식합니다.”


덕분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몽롱함에서 벗어난 덕분인지 때문인지 온몸에서 통증이 밀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맞은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고통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꼬맹이는 나처럼 놈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검은 양복의 남자들에 둘러싸여 싸우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팔이 검은 색이 되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로운이 한 손으로 퀸비 주변의 벌들을 얼리고 있었다.


첸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표정으로 남자들의 머리를 밟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잠깐... 누군가 없는데?


누구지...?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색 옷을 덮고 누워있는 소원이 보였다.


왜 ... 왜 저기 누워있는...


그리고 소원의 뒤로 검은색의 포탈이 보였다. 탑 안으로 굴러들어간 작은 돌멩이들이 하나 둘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생성된 포탈, 빨려 들어가는 돌멩이, 이상하게 눈을 뜨고 뭔가를 하고 있는 진 쉬에, 탑 안에 의식을 잃고 있는 소원.


사고가 어떤 절차를 걸쳐 이어지지 않았다. 모든 그림이 한순간에 맞춰지며 의식하지도 못한 채 다리가 움직였다.


이대로... 이대로 가면!


꿈에서 달리기를 하면 유난히 느리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차라리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탑을 향해 뛰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느렸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본래의 시간으로 흘렀다.


소원을 덮고 있던 검은색 재킷이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원의 머리카락이 포탈을 향해 휘날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탑까지 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탑이 닿았다.


그런 내 모든 행위를 비웃듯 손끝에 소원의 발이 스침과 동시에 살짝 떠올랐던 소원의 몸이 포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돼!!!”


가까이 다가가니 꽤나 강한 바람이 불어들고 있었다. 입구에 서 있다가 바람에 휩쓸렸다. 무의식중에 벽을 잡고 섰다. 떠오른 몸이 포탈을 향했다. 다리가 땅을 딛고 서지도 못했다.


그래 차라리 나도 포탈 속으로 들어가자. 저게 어떤 포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들어간다면 소원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식조차 없던 소원이다. 어디로 가든 위험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벽을 잡고 있던 왼쪽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놓으려고 하자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뭐하는 거예요!”


로운이었다.


로운의 뒤로 그답지 않은 위협적인 얼음 기둥이 솟아 있었다.


“소원이.. 소원이 빨려 들어갔어. 구해야 해. 가야 해.”

“지금 가면 지혁 씨도 위험해요.”

“하지만 소원이 의식도 없이 쓰러져 있었어. 어디로 가도 죽고 말거라고! 이 손 놔!”

“안 돼요. 놓을 수 없어요.”


더욱 거세진 바람에 의해 로운의 얼음이 부서져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목으로 검은색의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독침에 쏘였던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독이 점점 전신으로 퍼지고 있는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나 때문에 여기까지 뛰어 온 건가...


로운의 뒤편에서는 홀로 퀸비를 상대하고 있는 석이 보였다. 주변의 자잘한 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놓을 바에는 차라리 당신하고 같이 가겠어!”


그런 로운의 말이 진심이라는 듯이 얼음이 녹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확실히 알아둬. 당신이나 내가 없는 이 팀이 과연 어떨지. 미혜가 어떨지!”


녹아내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포탈로 빨려 들어가는 얼음의 크기도 커졌다.


로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가장 큰 얼음 덩어리가 내 옆을 지나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저 떠오르는 로운의 몸이 보였다. 허리까지 젖어 있는 그의 옷이 그가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 쪽 팔을 쓸 수 없으니까 자신의 몸통과 탑의 벽을 통째로 얼려버린 것이다.


로운의 몸이 떠오름과 동시에 우리는 포탈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로운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중앙의 석판을 잡았다.


방금 전과 반대되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내가 손을 놓으면 우리 둘 다 포탈로 들어가고 만다.


있는 힘을 다해 석판을 잡았지만 아까 칼을 쥐고 있던 오른손은 피 범벅이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베여있던 피가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땀에 녹아 더욱 미끄럽게 변해갔다.


그 순간 바람이 멈추고 허공에 떠있던 우리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게... 아무튼 일어나요. 여기서 나가요.”


로운은 갑자기 닫힌 포탈에 의문을 갖는가 싶더니 그대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한 쪽 팔을 쓸 수 없음에도 나를 끌고 나갔다. 나는 힘없이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 나가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 쉬에와 그를 노려보는 첸이 보였다.


지금껏 본 적 없던 분노가 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진 쉬에의 코에서 짙은 핏줄기가 두 가락 흘러내렸다.


쌍코피였다.


서늘한 표정의 첸이 진 쉬에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목을 짓밟았다.


중국어로 뭐라 말하고 있는 모습이 내용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 안에 담긴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아...”


탑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로운이 깊은 한숨을 쉬더니 급격히 무거워졌다. 채 잡기도 전에 쓰러진 로운의 미간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나는 그를 싸움과 거리가 먼 나무의 옆에 앉혀두고는 돌아와서 떨어트린 칼을 쥐었다.


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이런 상황에서 망설일 거면 꺼져요. 당신은 로운과 탑에 올라갈 자격이 없어.


아까는 잠이 덜 깨서 나도 모르게 큰 실수를 할 뻔했지만 난 꺼질 생각은 없다. 절대 이 미련한 남자와 탑도 오를 거다.


내 망설임이, 죄책감이 친구들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다 버릴 거다.


칼을 쥐자 눈앞에 이전까지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보였다.


찻집에서 챙겨온 찻잎과 우유, 물이 담긴 보따리. 그리고 아주 오래된 양피지 한 장이었다.


이런 물건이 갑자기 여기 있을 리가 없다. 누가 해 놓은 짓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맞다면 이 양피지는 레시피가 적혀야 하는 양피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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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각자의 목표(7) 21.12.31 90 0 11쪽
60 각자의 목표(6) 21.12.30 93 0 12쪽
59 각자의 목표(5) 21.12.29 91 0 12쪽
58 각자의 목표(4) 21.12.28 92 0 13쪽
57 각자의 목표(3) 21.12.27 91 0 13쪽
56 각자의 목표(2) 21.12.26 96 0 14쪽
55 각자의 목표(1) 21.12.25 103 0 11쪽
54 각자의 일상 21.12.24 105 0 13쪽
53 워밍업(2) 21.12.23 113 0 13쪽
52 워밍업(1) 21.12.22 119 0 12쪽
51 Restart 21.12.21 1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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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7) 21.12.19 120 1 13쪽
48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6) 21.12.18 133 1 12쪽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5) 21.12.17 1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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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3) 21.12.15 122 0 13쪽
44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2) 21.12.14 125 0 11쪽
43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1) 21.12.13 125 0 12쪽
42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10) 21.12.12 130 0 13쪽
4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9) 21.12.11 134 1 14쪽
40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8) 21.12.10 132 1 12쪽
3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7) 21.12.09 13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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