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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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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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이 있으면 갖는 거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맨해튼 펜트하우스 신혼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레오나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집이다! 마이 스위트 홈!”


드디어 결혼식과 일본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보름간의 강행군이었다.

나름 체력에 자신 있던 류지호다.

그럼에도 제법 부담이 왔다.

거실로 들어선 류지호의 입에서 한숨을 튀어나왔다.


“후우~”


먼저 와있던 레오나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윌튼 집사가 다녀갔나 봐.”

“그러게.”


류지호가 성큼성큼 거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 중앙에 다양한 크기의 선물상자가 산처럼 쌓여있다.

레오나가 선물 상자에 꽂혀있는 카드를 하나 빼서 펼쳤다.


“기쁘고 행복한 자리에 동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두 분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폴 베숑.”


레오나가 카드를 제자리에 꽂아놓고, 다른 카드를 꺼내 읽었다.


“두 분 앞날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디에고 산타나.”


선물 대신 자선재단에 기부금을 기탁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미처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이 보내 온 선물들이다.


“내일 할까?”


당장 쉬고 싶은 류지호를 향해 레오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적어도 오일 전에 도착했을 거야.”

“제기랄!”

“이쁜 말 써. 달링.”


류지호가 짜증을 부리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선물을 보낸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해야 한다.

똑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하는 것에 벌써부터 질려버렸다.


“피곤해. 내일 내가 출근해서 전화할게.”

“NO!"


레오나가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를 흔들어보였다.


팔랑팔랑.


“미국의 집사는 다 FM인 거야.....?”


류지호가 발걸음을 옮기자 레오나가 얼른 제지했다.


“어디 가?”

“전투태세로 변신해야지. 같이 씻을까?”

“......”


결국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사가 정리해 놓은 리스트를 일일이 확인해 가며 온갖 군데 전화를 돌렸다.

선물상자들은 무려 한 달 동안 뜯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선물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레오나는 결혼식으로 보름 동안 수업을 빼먹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각종 리포트와 과제에 매달렸다.

류지호는 <Frank Castle> 프리프로덕션에 박차를 가했다.

1989년 제작된 영화와 선을 긋기 위해 <The Punisher> 타이틀을 버리자는 의견이 있었다.

극장 개봉 때 부제가 붙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슈퍼히어로무비를 유지하면서 액션스릴러 장르로 홍보하기로 했다.

어차피 최종편 <Hell's Kitchen>으로 시리즈가 합일될 예정이다.

따라서 류지호는 타이틀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Timely Comics 세계관에서 지옥의 부뚜막이라 불리는 지역은 도시재생계획으로 인해 재개발에 얽힌 이권을 노린 레드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 흑인 갱단 같은 폭력조직들과, 부패 공무원까지 얽히고설키면서 지옥 그 자체로 묘사된다.

부녀자는 물론이고 아동까지 납치하고, 마약제조와 거래, 강도·살인 같은 온갖 강력 범죄가 예사로 일어나는 동네다.

지역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 윌슨 피스크다.

그는 헬스키친의 왕을 넘어 뉴욕시장이 되려고 한다.

그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세 명의 히어로가 힘을 합치게 된다.

인간이기에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공포 속에서 살육으로 자신의 고통을 다스리는 한 인물... 프랭크 캐슬.

모든 것을 잃은 군인이자 한 가정의 아빠가 악당 처벌자로 다시 태어나는.

복수에 대한 강한 집착 못지않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고뇌가 없기에 동정도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한 불우한 영웅.

다크히어로 퍼니셔가 아니라 인간 프랭크 캐슬을 강조할 계획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요?”


류지호 영화마다 캐스팅 디렉터를 맡고 있는 수잔 베일리가 한껏 얼굴을 찡그린 류지호의 눈치를 살피다 배우 프로필을 몇 장 디밀었다.

호주와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오디션 잡아 봐요.”

“예.”


현 시점의 최고 액션특화 배우들이 알게 모르게 수잔 베일리에게 청탁을 하고 있다.

특히 반담, 스테이섬, 반데라스 같은 배우들이 꽤나 적극적으로 출연의사를 타진했다.

류지호는 모두를 거절했다.

선선한 마스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주인공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던 어느 날.


- 레오나와 함께 롱아일랜드로 오거라.


윌리엄 파커가 류지호 부부를 파커저택으로 호출했다.

부부는 윌리엄의 신상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열일을 마다하고 파커 대저택으로 향했다.


철렁!


류지호는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택 주차장에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평소와 달리 몸가짐을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윌리엄 파커의 신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부부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으며 황급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은 파커 가문 사람들로 북적였다.

윌리엄 파커의 직계 자손들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참석했던 방계 가족들도 보였다.


“Hi. Jay!"

"어서 와라.“

“왜 이리 늦었어?”

“조카 얼굴이 꽃처럼 활짝 폈네. 호호호.”


표정들이 매우 밝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같았다.


“결혼식에서 제대로 배웅을 못했습니다.”


부부는 파커 가문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류지호는 슬그머니 장인 제임스 파커에게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냥 금요일.”

“....예?”

“우리도 몰라. 아버지가 모이라고 해서 모인 것 뿐.”

“무슨 중대 발표라도 하실까요?”

“삼촌들까지 모두 모이라고 한 것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모르지 유언이라도 남길지.”


제임스 파커는 대수롭지 않아했다.


“.....!”


모두가 그랬다.

파커 가문의 행사를 자주 접해보지 못한 류지호만 홀로 끙끙거릴 뿐.

다들 근심걱정 하나 없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때 2층에서 집사 브래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서재로 드시랍니다.”


집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문 사람들이 차림새를 점검했다.

고령자부터 하나둘 2층으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까, 사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레오나의 귓속말에 류지호는 참석자들을 다시 확인했다.

40대 이하 연령대에서는 유일하게 류지호 부부만 참석한 것 같았다.

서재에 들어선 부부는 비워져 있는 자리로 가서 자리 잡고 앉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윌리엄 파커 주변으로 가문의 노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노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새삼 파커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이 회동에 모인 파커사람들 하나하나가 미국 정치, 경제, 학계, 의료계, 체육계, 국방부, 사회사업, 문인, 언론인 그 외 UN 같은 국제기구 등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과 혼맥으로 이어진 집안들도 하나같이 으리으리했고.

새삼 대단한 가문의 사위가 된 것이 피부에 와 닿는 동시에.

서른 중반에 가문 회의에 초대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슬쩍 차오르기도 했다.


“한 달 만이지?”


윌리엄 파커가 입을 떼자, 다소 산만했던 서재가 조용해졌다.


“서론을 길게 늘어놔 봐야 뭐할까.... 본론으로 들어가마.”

“.....?”

“지호 파커 류!”

“네! 할아버지!”


류지호가 대답과 함께 일어서려고 했다.

레오나가 그런 남편의 옷자락을 재빨리 잡았다.

칭찬이나 꾸중 들으려고 온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일어설 필요가 없다.


“파커를 미들네임으로 쓰기로 했다고?”

“한국의 주민등록법상.... 미국에서만 사용할 것 같습니다. 태어날 아이들에게 파커 성을 미들네임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결혼 할 때 성을 어떻게 할지 부부가 함께 결정한다.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전통이 여전히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아내의 성을 따르든, 두 사람의 성을 합치든, 아예 새로운 성을 만들든 모든 선택권이 열려 있다.

여성권리 운동의 성과다.

여성이 자신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전까지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법적 의무였던 시절도 있다.

부부는 Parker-Ryu 두 성을 모두 쓰려고 했다.

이민국에서 하이픈이 들어간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로 성으로 부르는데, 하이픈이 들어가서 성이 길어지게 되면 부르기에 어려워진다는 단점도 있고.

나중에 자녀들이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성과 배우자의 성을 합치려고 한다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아내의 미들네임이자 존경하는 윌리엄 파커의 가르침을 이어간다는 생각에서 미국에서 ‘Parker‘를 미들네임으로 쓰기로 했고, 아내인 레오나 역시 성을 남편의 성 Ryu로 바꿨다.


“레오나 루시 류. 내 아가.”


풀 네임을 부른 것은 가문의 공식석상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 할아버지.”

“졸업하고 LA로 이주하는 것이냐?”

“Jay가 영화 촬영하는 동안만 맨해튼에서 지낼 계획이에요.”


윌리엄 파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내가 증손자손녀의 이름을 지어주어도 되겠느냐?”

“기대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레오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여준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이든 파커 류, 딸아이라면 시아 파커 류.”


어진 혹은 착하다는 의미의 ‘이든‘은 순우리말이다.

사실 순우리말임을 증명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순우리말 이름으로 사용되곤 한다.

윌리엄 파커가 그것까지 고려서해서 이름을 지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서구권에서 Ethan은 의지가 곧은 또는 강인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자아이는 이탈리어로 광채를 의미하는 Lucia(루시아)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유추했다.


“앞으로 이 저택은 지호 파커 류의 것이다.”


벌떡!


레오나가 일어섰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반면에 류지호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다.

침착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 부부가 거부할 권리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말씀을 거둬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저와 레오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레오나의 부모 세대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주가 뉴욕의 대저택을 손녀사위에게 물려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에 반해 노인들은 모두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윌리엄 직계 4형제 역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그렉 파커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할아버지! Jay의 말이 옳아요. 우리 부부는 파커 저택을 소유할 자격이 없어요.”


윌리엄 파커가 더는 듯기 싫다는 듯 부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큰아들을 호명했다.


“그렉 헨리 파커.”

“왜 요?”


어느 틈엔가 그렉 파커의 발치에 위스키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혼자 태연하게 잔에 위스키를 부었다.


“네가 파커 가문의 리더다.”

“싫다면요?”

“네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아. 네가 아이오와를 떠날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 파커가문의 심장은 디모인이 되겠지.”


윌리엄 파커 주변에 포진한 노인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의미다.


“브랫 제프리 파커.”

“예. 아버지.”


차남을 건너뛰고 다음은 삼남이다.


“네가 파커필드를 이끌어라.”

“네.”


글로벌 3대 복합농업기업 파커필드.

그 거대한 기업집단의 다음 회장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물론 지금까지 윌리엄 파커 대신 삼남이 기업을 잘 운영하고 있었다.

오늘의 선언은 윌리엄 파커가 가지고 있던 경영권을 정식으로 이양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윌리엄 파커는 파커필드의 명예회장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전(前) 회장이란 타이틀이 붙이게 된다.

그때 건너뛰었던 차남 노아 토마스 파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난 아무것도 안 맡아. 그냥 지금처럼 살게 내버려둬요. 돈도 필요 없어. 쓸데없이 나에 대해 구구절절한 유언이라도 담긴다면 그 유언장 찢어버릴 거야.”

“넌 그냥 그렇게 살아.”


진지한 서재 안에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

호호호.


한 치의 망설임이 없는 윌리엄 파커의 대답이 차남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가문 사람들의 웃음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흐흐흐.

노아 토마스 파커가 만족한 웃음을 흘렸다.


쯧.


반면에 원로들이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둘째 아들 노아 파커가 헐렁해 보이고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미국 중북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엄청난 부자다.

가문의 재산을 지키고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장남과 달리 노아 파커는 따로 미국 중북부에 땅과 목장을 소유하고 있다.

카리브해에 개인 섬도 소유하고 있으며, 자가용 비행기는 물론 사설 공항도 있다.

아이스하키팀 아이오와 스타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전 세계 유명 브랜드 바이크 수집광으로 수백 대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항간에는 아이오와 최대 폭력조직의 스폰서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터프가이다.


“제임스 타우너 파커.”


류지호의 장인이 된 제임스 파커는 슬슬 은퇴를 준비하려고 했다.


“아버지 나는....”

“네가 G&P 그룹을 책임져. 금융부분을 파커의 사업에서 완전히 분리한다.”


제임스 파커가 반항했다.


“반대합니다!”

“시끄럽다.”

“지난 30년 간 파커를 위해 봉사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대니얼과 네 사촌들도 모두 동의한 사항이다. G&P는 너와 캐서린이 책임져. 나중에 지분을 더 주마. 금융그룹을 지금 규모로 키운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야. 파커재단 역시 그대로 너희부부가 이사장을 맡도록 해.”

“그만 놔주시죠. 저희 부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은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이제 제 삶을 살아야죠. 캐서린과 함께 손자 재롱도 보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중늙은이인 줄 알겠다. 금융그룹은 지금까지처럼 네가 맡아.”

“세계 최고 부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위를 얻었어요. G&P는 파커나 그레이엄으로 귀속되는 것이 맞습니다.”

“네게 반론권은 없다. 가문의 뜻이자 명령이다.”


류지호는 내심 놀랐다.

윌리엄 파커에게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완고한 독재자의 모습이었으니까.

가문의 주요 어른들도 이상했다.

그런 윌리엄 파커의 일방적인 행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고 있다.

중세시대 영주와 가신회의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제임스 파커가 계속해서 반대를 표하자, 형제들이 나서서 제지했다.


“제임스! 버텨 봐야 소용없다.”


원로들의 준엄한 꾸지람에 결국 제임스 파커가 승복하고 말았다.

화가 난 제임스 파커는 서재를 나가버렸다.


“드디어 은퇴할 수 있다고 좋아하셨는데.... 아빠 어떻게 해.”


레오나가 떠난 제임스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남편이 서재를 떠났음에도 캐서린은 그대로 남았다.

가문 내 역할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이후부터는 방계 가족들에게 여러 사업이 분배되었다.

기존 지위를 유지한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사업을 맡게 된 일족도 있다.

비즈니스 세계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삶을 사는 일족에게는 일정 부분의 재산을 보장 받거나 약간의 재산을 새롭게 분배받았다.

오늘의 자리는 윌리엄 사후를 대비한 대략적인 교통정리 성격이 짙었다.

언급되지 않는 부분은 윌리엄 파커 사후 유언장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떠난 서재에 류지호만 남겨졌다.


“레오나를 잘 부탁한다.”

“제 몸보다 더 아끼고 사랑할게요.”

“넌 언제나 윌리엄 파커의 가족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힘이라든가 영향력이라든가 금력만 가지고는 안 된단다.”

“예.”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만, 그렇게 부리는 이들은 언제든지 배신할 수가 있지.”

“.....”

“결국 믿을 수 있는 이가 가족 말고 있겠느냐?”

“예.”

“만에 하나.... 가족끼리 분쟁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세 번만. 네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 번만. 양보를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예.”

“호되게 꾸짖어야 할 때가 온다면 가문의 이름만은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윌리엄 파커가 손을 들었다.

쉽게 쓰다듬을 수 있게 류지호가 머리를 디밀었다.


쓰담쓰담.


“이 저택을 준다고 해서 부담 가질 것 없다. 이곳은 그저 내 아버지와 내가 머물렀던 장소였을 뿐. 상징성도,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야. 영국을 떠난 내 선조들은 서부를 개척했고, 후에는 아이오와가 고향이 되었단다. 내 다음 대 파커 가문은 본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제 터전은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요.”

“그럼 이 집은 별장으로 사용하려무나. 내가 세금까지도 다 해결해 두었다. 너희 부부는 그냥 들어와서 살면 돼.”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던가.”

“할아버지!“


2代에 걸쳐 파커가문의 심장이었던 롱아일랜드 대저택을 어찌 팔아치울 수 있을까.


“오늘 왜 착한 내 아이들이 십대 소년처럼 구는 것이냐. 가문의 재산을 모두 나눠주었다고 날 무시하는 것이냐?”

“.....”


윌리엄 파커가 짐짓 화가 났다는 듯 손짓으로 류지호를 서재에서 쫒아냈다.


“아참. 셋째 증손자의 이름은 노아(Noah)다 노아 파커 류.”


셋째까지 낳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넷째 이름이 나오기 전에 류지호가 얼른 서재를 빠져나왔다.


❉ ❉ ❉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미국 대학의 졸업 시즌이 돌아왔다.

졸업생들의 마지막 수업은 초청 연사로부터 듣는 졸업연설(Graduation Speech)이다.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 삶의 영감을 주기도 하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작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스테픈 잡스가 한 졸업연설이 화제가 됐다.

미국 대학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명망 있는 졸업생을 초청해 연설을 맡긴다.

음악가나 영화배우 등 예술인들을 향한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해줄 유명인이라면 혹은 상징적인 인물이 언제나 졸업연사 일 순위로 꼽힌다.

20~30대 청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류지호다.

WaW 재팬의 이봉호 사장 표현에 따르면 판타지에서 튀어나온 스타다.

전부터 졸업연설 제의가 폭주했다.

UCLA는 졸업생들을 동원해 꾸준히 류지호를 설득했다.

특히 UCLA 출신 영화인들의 대표격인 모리스 메타보이가 성화를 부렸다.


“미안하지만, 난 40세 전에는 졸업연설을 하지 않을 겁니다.”

“왜 하필 마흔인데?”

“그 전에 망할지도 모르잖아요.”


당장 졸업연설 해도 된다.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 졸업생들에게 ‘실패‘나 ’헌신‘ ’사랑‘을 설파하는 것이 왠지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연설에서 주로 화제가 됐던 핵심 키워드는 성공이 아닌 실패다.

사회 진출을 앞둔 졸업생들이 갖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공감한 연설이야말로 큰 호응을 얻는다.

이제 서른 중반밖에 안 된 류지호가 ‘실패와 성공‘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는 류지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무대 울렁증이라도 있어?”

“전혀!”


대학 졸업연사로 초청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헌데 수많은 졸업연설 러브콜을 마다하다니.

심지어 사관학교 졸업식 연사까지 거절한 류지호다.


“몸값 올리려는 거야?”

“연설하는 것만으로 영광인데 무슨 몸값을 올려?”

“근데 왜 안 하는데?”

“지금 졸업연설 연단에 서는 건 쇼일 뿐이야. 아무리 내가 명연설을 한다고 해도 그들로서는 감동할 수 없을 거야. 그저 성공한 사람의 서툰 충고에 머물게 될 걸.”

“뭔가 복잡하게 들리는 걸.”

“만약 예일 로스쿨 졸업연사로 이병구씨가 나선다면 허니는 어떨 것 같아?”

“그게 누군데?”

“한국의 전 국무총리.”


레오나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을 언급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UCLA의 졸업생들은 내가 실패를 이야기하고 용기를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거야. 내 삶은 온통 성공만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알고 있으니까.”


레오나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실패가 진짜 없었어?”

“왜 없어. 내가 그린라이트를 켠 모든 영화가 성공한 것도 아니고, 벤처캐피털 투자는 손해와 이익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정신없이 번갈아 반복되고 있는데.”

“...음.”

“난 성공한 사람도 아니잖아.”

“말도 안 돼!”

“성공이 꼭 부자라거나 영화업계에서 최고가 되는 것으로 증명되는 거야? 진짜 성공한 사람은 삶을 잘 살아왔던 사람 아닐까? 나는 잘 사는 과정에 있는 것뿐이고. 고로 UCLA 졸업생들과 나는 별 차이가 없기에 연설로 구라를 칠 이유가 없다는 거지.”


솔직한 속내는.... 귀찮음 때문이다.

졸업연설문을 쓰려면 얼마나 머리를 싸매야 하는데.

남에게 연설문 작성을 맡길 수도 없고.

류지호의 졸업연설은 두고두고 박제되어 떠돌 수도 있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야 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덜 바쁘고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때나 고려해 볼 수 있다.

류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도 얻을 생각이야?”

“응.”

“합격률이 최악인 것으로 아는데. UCLA 졸업생 중에도 합격한 녀석이 별로 없더라.”


미국은 주마다 변호사 자격을 따로 취득해야 한다.

가장 많은 로스쿨 졸업생이 응시하는 주는 뉴욕주다.

시험도 어렵고, 합격률도 가장 낮은 주는 워싱턴 주와 캘리포니아 주가 꼽힌다.


“달링의 주요 활동 지역이 캘리포니아잖아. 당연히 아내인 내가 변호사 라이선스를 갖고 있어야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캐서린&윌슨 로펌에는 중량급 변호사가 널리고 널렸다.

게다가 JHO Company Group과 의장 비서실에 유능한 법률전문가들도 많다.

굳이 레오나까지 그 어렵다는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시험을 볼 필요까지는 없었다.


“뉴욕주 시험에 올인하고 나중에 유능한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를 부하직원으로 고용하는 방법도 있어.”

“싫어. 앞으로 Jay와 관련한 소송은 내가 담당할 거야.”


어림도 없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당장 큰 업무를 맡을 수는 없다.

로펌에 입사해 허드레 업무부터 배울 터.

캐서린이 자신의 딸이라고 특별대우를 해줄 것 같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일도 많고... 우왕~”


레오나가 울상을 지으며 류지호에게 안겨왔다.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레오나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사회생활의 시작이다.

비록 남들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해도.


작가의말

한 주 잘 마무리하십시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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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3.11.24 15:28
    No. 1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은 당연히 어렵기도 하지만 그 주는 시험 응시 자격이 다른 주와 달라서 다른 주에서는 응시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캘리포니아에선 시험을 볼 수 있기에 그런 면도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1.25 20:44
    No. 2

    특별대우는 그사람이 원치 않아도 받는 겁니다.
    가지고 있는 배경에 그 정도 대운는 별거 아닙니다
    한국에서 한국 로스쿨 졸업생들 차별 받는걸 보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11.27 11:11
    No. 3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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