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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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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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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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DUMMY

난 1980년생이다.

이름은 전희택, 기쁠 희(喜), 집 택(宅),

화목한 집이라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지으실 때 허구한 날 술과 여자에 빠져서 할머니와의 불화로 집안이 조용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뭐가 급했는지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왔고 아버지는 시골 부모님께 나의 탄생을 알리려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아 든 할머니는 하필 그때 거나하게 낮술에 취해 들어오신 할아버지와 한바탕 다투고 계셨다.



"영감! 둘째 아들 손자 나왔답니다. 둘째가 손주 이름 우짜냐고 물어보네예"


"뭐시라?"


"둘째 아들래미~ 손주 이름 갈카 달라네요~!!!"


"아니 이 여편네가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 이노무 집안은 조용할 날이 음네, 그냥 희택이라 하라 케라!"



그렇게 내 이름은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집안이 만들어낸 이름이었다.

6.25 전쟁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던 시기,

1955년생 그리고 1958년생의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난 두 남녀가 만난 건 군부독재 속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한 남자는 건설현장에서 한 여자는 제조현장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박정희라는 전대미문의 장군이 왕이 된 지 근 20년이 흘렀고 기나긴 독재의 억압 속에 서서히 민주화의 움직임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 시기와 맞물려 두 남녀의 사랑도 불붙기 시작했고 왕이 죽고 혼란한 정국을 틈타 또 다른 장군이 나라를 휘어잡고 민주화의 불길을 진화하며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1980년, 나는 또 다른 군부 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

80년대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종대왕보다 더 크고 위엄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대머리 장군이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자 이번에는 머리 숱이 많은 장군이 왕이 되었다.

장군의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 장래희망 뭐라 적으꼬?”


“장군 적어라. 장군이 최고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나의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은 장군이었다.

군부 독재가 싫다며 그 난리를 치던 부모들도 자식이 군인이 되어 출세하기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



다만 매년 어버이 날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부르던 [어머님의 은혜] 노래 속 가사 말과 같이 높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냥 어머니의 희망을 받아 적었다.


베이붐 세대들이 낳은 아이들은 또 다른 베이비 붐을 일으켰고 교실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들어찼음에도 반이 모자랄 정도로 북적거렸고 동네 곳곳은 아이 패거리들의 시끌벅적한 놀이터가 되었다.

그들이 맞이할 미래는 부모의 살아온 세상과 다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늘어난 친구들은 성공을 향한 경쟁자가 되었고 못 먹고 못 입은 부모세대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한 질주가 시작되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중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자주 나가곤 했었다.

하나님이나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주일마다 부모님에게 붙잡혀 교회로 끌려가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매주 교회 예배가 끝나면 예쁘장한 대학생 누나가 나와 친구들을 교회의 작은 골방에 데려다 놓고 맛있는 과자를 먹이며 성경공부를 하곤 했다.



“누나는 희택이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오늘 읽은 성경 속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위대한 사람이 될 꺼라 믿어”



만약 그 말을 목사나 혹은 꿈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이나 예수가 나에게 했다면 그냥 잊어버리고 기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마지막 승부] 드라마 속 심은하를 꼭 닮은 교회 누나가 나의 손을 꼭 잡고 알려준 그 성경 말씀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덕에 성경을 쥐뿔도 모르는 나의 인생 좌우명이 성경 속에 한 문장이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속 염원과 해마다 어머니가 적어주신 희망과 심은하를 꼭 닮은 누나의 믿음을 이루는 그 날을 고대하며 학창시절을 지나왔다.


내가 성공이라는 많은이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 세계 조선업의 활황 속에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2007년의 여름의 시작과 함께였다.

대학교 졸업 후 학생과 사회인의 가운데 놓인 어정쩡한 취준생이라는 명찰은 차라리 백수보단 남들에게 말하기가 덜 부끄러웠다.

백수 생활 6개월이 흘렀고 고대하던 취업에 성공했다.

대기업까진 아니었지만 당시 도시 전역을 누비는 회사 통근 버스 덕에 부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 있는 회사였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개미들과 증권사에서 주목하는 잘 나가는 중견 조선 업체였다.

주변에선 다들 좋은 곳에 취업했다며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면접 때 자신감 있고 당당했던 나의 모습이 합격의 영광을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 보세요."


"万事俱备只欠东风 (완쓰쥐뻬이 즈치엔똥펑)"


"???... 무슨 말인가요?"



세 명 중 가운데 앉아 있던 한 중년의 남자 면접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오나라 대도독 주유가 위나라와의 적벽대전을 앞두고 했던 말입니다. 화공 법으로 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적을 향해 불어줄 동풍을 기다리며 했던 말입니다. 동풍만 만나면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 또한 오랜 기간 학업과 해외에서 쌓은 경험으로 실전에 나아갈 만반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귀사가 저의 동풍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


"짝~짝~짝~"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이윽고 면접관 3명 중 가운데 앉은 그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검은색 뿔테 안경에 그리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한참을 쳐다보다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쓰리 콤보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닌가?



"짝짝짝"


"짝짝짝"



이윽고 양옆에 앉은 나이가 이미 중년과 노년의 불분명한 지점을 지나는 듯한 두 양반께서 가운데 그를 잠시 가로본 뒤 덩달아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면접은 끝이 났고 며칠 뒤 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찝찝한 사실이지만 나의 합격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한국 K협회의 무역아카데미에서 교육 중인 교육생이었고 K협회 회원사인 그 회사에 추천서를 넣어준 것이다.

당시 청년취업을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부산시와 K협회가 손을 잡고 야심 차게 준비한 청년 취업 교육과정이었다.

교육비용도 부산시에서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전 교육생 100% 취업 달성이라는 목표 때문에 교육과정에 참여하려는 교육생의 지원 경쟁률 또한 치열했다.

다행히 합격자 중 한명이 교육 참가를 포기한 덕분에 대기자에서 합격자로 바뀔 수 있었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듯 정부기관이 시행하는 프로젝트의 첫 기수 교육생 취업률은 지방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어렵다는 취업의 관문을 단 번에 통과할 수 있었다.

시작은 꼴찌였지만 취업은 교육생 중 일등이었다.

당시 조선업 활황이라는 순풍을 맞은 회사는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는 시기였고 마침 중국 사업 확장으로 중국어 가능 인력이 필요했던 시기라 협회에서 교육생 중 중국어 고급 자격증 보유자인 나와 또 다른 여학생 한 명을 추천해 준 것이었다.

당시 면접을 보러 온 수많은 스펙 쟁쟁한 면접 응시자들은 그것도 모른 채 면접 대기실에서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하던지...

지방 사립대에 학점도 그저 그런 내가 단번에 취업에 성공한 건 공공기관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것도 정경유착의 한 종류인가?

역시 한국은 뭐든지 백이 있어야 되는 법이라는 것을 사회에 입문도 하기 전에 깨달았다.

그게 남일이면 분노할 일이지만 나라면 당연하고 기분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DB중공업의 해외영업부로 입사한 지 3개월간의 수습기간이 지나고 느닷없이 본사 전략 기획실 정직원으로 보직 발령이 났다.



"희택 씨! 본사에 무슨 백 있어?"


"전략 기획실 발령? 너 혹시 우리 몰래 본사에 보직변경 신청서라도 날린 거냐?"


"우~아~ 희택씨 이제 사장님 라인이네? 잘 좀 봐줘!"


"이제 우리랑 볼 일도 별로 없겠는걸... 아쉽구만 이제 일 좀 빡세게 시켜볼라켓드만, 노대리만 3개월 동안 개고생 했네 떠날지도 모를 부사수 교육시키느라... 쯧쯧쯧"



해외영업부에 있는 대리부터 부장까지 다들 모니터 속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인사 공고를 보고 일제히 한 마디씩 투척한다. 노대리만 굳은 표정으로 서류더미만 뒤적이고 있다.

나 또한 한동안 어리둥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해외영업의 꿈을 안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비즈니스 하는 모습을 꿈꾸며 입사했건만 생뚱맞게 전략 기획실 발령이라니.

잠시 뒤 해외영업본부장인 박상무의 호출이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게"



호리하게 야윈 체형에 알이 커다란 사각 금테 안경을 통과한 그의 시선이 소파 앞 탁자 위에 놓은 신문에서 내 쪽으로 옮겨온다.

앉아있는 그의 머리 정수리에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속살을 가리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나마 있는 주변머리는 하얗게 샌머리가 반이상이다.

얼핏 보면 호스피스 병동에 환자 같기도 하다.

그는 과거 회사의 초창기 멤버로 회장(사장의 아버지)과 해외사업을 키워온 장본인이다.

그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일어서며 소파에 앉으라며 손짓한다.



"사장님께서 전략 기획실에 해외 계열사 관리 업무를 지시하셨네, 중국어도 할 줄 알고 평소 인사성도 밝은 자네가 눈에 띄었나 봐"


" 예..."


"아쉽지만 난들 어쩌겠나, 사장님 지시사항인걸... 거기서도 많이 배울 수 있을 테니 딴 생각은 말고 가서 잘 적응하길 바라네"


".... 예 알겠습니다."



그는 혹여 내가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빛으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인지 축하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본사 기획실로 짐을 옮겨야 했다.


삶이 그렇듯 회사생활도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시작은 라인과 백으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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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제2외국어의 장점 +2 22.05.12 1,097 71 11쪽
» 1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2 22.05.12 1,500 9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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