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2,129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04 01:11
조회
23
추천
5
글자
10쪽

임무 실패

DUMMY

지원은 찬호의 비명과 신음, 타카슬의 위압감에 안색이 시퍼레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찬호를 잡고 한 손으로 타카슬을 밀어내려 했다.

타카슬이 몸을 뒤집거나 꼬리를 휘두르기만 해도 지원과 찬호는 오체분시다. 그가 낙하의 충격에 빠져 있는 동안 도망쳐야 했는데, 타카슬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원은 둘둘 만 기르불을 풀어내 아파하고 있는 타카슬의 옆구리를 지졌다.

그러자 타카슬은 깜짝 놀라 몸을 찬호의 반대편으로 조금 움직였다. 지원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아래에서 찬호를 빼냈다. 다행스럽게도 물컹한 진흙 덕분에 다리가 완전히 분질러지지는 않았다.


“찬호, 일어서요. 한쪽 다리로 걸어봅시다. 제가 부축할 테니까, 어서!”

“망할, 너 걸을 수 있겠냐?”


기르불이 지사리 욕설을 뭐라 내뱉으면서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찬호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몰라요······아, 다부님, 다부님······.”


찬호는 지원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비교적 성한 오른쪽 다리로 콩콩 뛰었다. 일행은 타카슬을 자꾸만 뒤돌아보며 도망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때 또다시 지긋지긋하고 날카로운 고음이 뇌를 관통했다.


“악! 또 뭐야!”

<내······머리에······잘도······.>

“저놈은 아까부터 자꾸 저 혼자만 아는 얘기를 나불대던데, 나잇값 못하는 놈일세.”


기르불이 빈정댔다.


<헤로인을······.>

“헤로인이라는데? 그게 뭐냐?”

“인간들의 마약입니다. 당신으로 치면 석유랑 비슷한데 갑자기 왜······.”


그때 찬호가 지원의 목덜미를 툭툭 쳤다.


“지원,”


그는 식은땀 줄줄 흘리는 고통스러운 눈으로 강변을 가리켰다. 옥토끼가 강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지원이 혀를 찼다. 찬호는 총을 그녀에게 건넸다.


“당신이 좀 쏴요. 제 주머니에 총알 있으니까. 총 쓸 줄 아시죠?”


지원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찬호를 갈대 사이에 눕히고 몸을 낮췄다. 불갈대 틈으로 옥토끼가 언뜻언뜻 보였다. 츠카는 몸을 기괴하게 뒤틀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다······죽여······죽여······. 어어억······.>


츠카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한편 타카슬은 육지에서 몸을 뒹굴려 빠져나가 강물로 돌아갔다.


지원은 찬호의 허리춤에서 총알을 꺼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 옥토끼.”

“장전이나 빨리 좀 하시죠?”


찬호가 쥐어짜듯 대답했다. 그는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어서 피도 흘리고 있었다.


반면 기르불은 지원의 손을 들어 주었다.


“방금 그 무괴보다도 못하군. 느낌이 너무 탁해.”

“아······, 그러신가요······. 그럼 그렇겠죠. 하······씹.”


찬호는 대충 동의하고는 다시 다리를 붙잡고 아파하는 데 집중했다.

일일이 약실에 총알을 밀어 넣는 과정은 번거로웠다. 지원은 총에 익숙하지 않았고 더욱이 찬호가 불똥을 막느라 덕지덕지 묻혀놓은 진흙이 미끄러웠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다.


찬호는 바닥에 누운 채 허리춤을 더듬어 주머니에서 작고 투명한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한 움큼 들어있었다.


기르불은 그것이 설탕이나 소금인 줄 알고 끼어들었다.


“뭔가 먹으려고?”

“이건 구워먹는 거 아니에요.”


찬호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는 쫓기듯 서둘러 하얀 가루를 손에 덜었다. 그리고 그걸 다리에 덕지덕지 발랐다.


기르불이 기겁해서 낮게 소리쳤다.


“거기로도?”

“먹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 좀 낫다······.”


찬호의 얼굴이 점차 느슨해졌다. 하늘을 향해 움츠린 몸이 땅으로 풀어졌다.


“마약입니까?”


지원이 장전을 다 끝내고 총을 두 손으로 거머쥐며 물었다. 그 말에 기르불은 더 놀란 것 같았다.


“마약?”

“네, 코카인이요.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요. 아, 혹시 물어볼까 봐 말하는 건데, 아파 죽을 것 같아서 쓴 거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지원은 좀 서둘러요. 저놈이 저흴 찾아내기 전에 먼저 쳐야 한다고요.”


지원은 찬호를 한번 슬쩍 보고는 다시 츠카를 주시했다. 찬호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츠카는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여전히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다시 지원을 보자, 그녀는 전혀 손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기르불이 물었다.


“안 쏘냐?”

“못 죽입니다.”

“당연하지, 옥토끼니까.”


지원은 몸을 낮추어 갈대 속에 다시 숨었다. 그녀는 공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은 다음 찬호에게 돌려주었다.


“기르불, 찬호, 저는 지금의 교전이 의미 없다고 판단합니다.”

“무슨 생각이에요?”

“지금 저희가 하는 모든 발악은 단순히 도망칠 시간을 버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옥토끼는커녕 무괴도 죽이기 힘듭니다. 그런데 원한을 산 이상 옥토끼도, 무괴도, 짧은 시간 내에 상처를 회복하고 저희를 쫓아올 테죠. 그때마다 이런 식의 소모전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찬호와 기르불은 지원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다. 그들은 임무를 시작하기 전, 지원이 지시를 내리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지원은 동료들이 이유를 묻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육지로 이동하면요? 무괴라고 해도 우리타 산맥까지 따라올 수는 없을 것 아니에요. 옥토끼 하나 정도는 기르불이 간단하게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나한테 놈은 볏짚이지. 지금처럼 불갈대에 둘러싸지는 상황만 아니면.”

“찬호, 다리가 부러진 사람을 데리고 산을 오를 수는 없습니다. 명죽림도 마찬가지이고요. 임무는 실패입니다. 저희는 가나 대륙에 귀환합니다.”


지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찬호는 자기 청력을 부정하고 싶은 표정이 되었다. 기르불의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다. 애초 지사리한테 표정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찬호는 입을 들썩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알겠어요. 죄송해요.”

“아니요, 제 탓입니다. 옥토끼와 무괴가 여기서 튀어나올 줄 예상 못 했습니다.”


기르불이 물었다.


“그래서, 퇴각 계획은? 저놈들은 어떻게 할 건데.”


지원이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탈출로를 사용해야 합니다.”


처음에 계획했던 탈출로는, 우리타 산맥의 대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하염강을 따라 북상하는 것이었다. 1500km 거리였지만 흐름을 타고 꾸준히 노를 저으면 며칠 이내에 해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강을 따라가면 무괴가 문제일 텐데.”


지원은 다시금 곰곰이 생각했다.

기르불은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츠카는 여전히 경련에 시달리는 중이었고, 타카슬은 츠카의 밑에서 지느러미를 물 위로 드러내고 헤엄치고 있었다. 찬호는 가만히 누워 호흡에 집중하며 통증을 제어했다. 10분 전의 전투가 의심스러운, 완벽한 진영의 분극이었다.

생각할 시간은 있었다.


지원이 반론했다.


“줄곧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 뭘?”

“옥토끼······츠카라고 하는 저놈, 너무 약하고 멍청하지 않습니까?”


기르불에게서 갈대 하나가 타닥 터지는 소리가 났다.


“세상에, 네가 그런 말도 하냐? 머리 뚫릴 뻔하니까 곱게 안 보이나 봐?”

“예. 맞습니다. 그때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지원은 흘러내린 앞머리를 들춰 이마에 생긴 작은 상처를 드러내 보였다. 그녀는 상처를 쓰다듬었다.


“저 옥토끼는 저를 완전히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머리를 뚫어버리는 게 옥토끼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놈은 저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야, 내가 주의를 끌었고, 찬호가 네 머리보다 먼저 놈의 머리를 부숴버렸으니까.”

“아니요, 고작 그 정도 방해로 인간 여자의 뼈를 못 뚫지는 않습니다.”


기르불은 자신과 찬호의 행위가 ‘고작’으로 폄하된 게 불만이었지만, 넘어갔다.


“음, 그래서, 뭔가 있을 거다?”

“예. 헤로인 중독입니다.”


복식 호흡에 열중하던 찬호는 그 끔찍한 이름을 듣자 기침을 했다.


“헤로인이요?”

“방금 저놈이 말한 마약 말하는 거냐?”

“예. 찬호, 헤로인의 부작용을 알고 있습니까?”


그가 신음하다가 암기한 것을 늘어놓듯 대답했다.


“헤로인······. 이완제이고, 모르핀의 강화판이고, 복용을 중단하면 신경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져 발열, 오한, 구토, 설사, 환상통 같은 신체적 반향과······. 정신적 부작용은 불안, 불면, 침울······이었죠, 아마?”

“이완작용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졌을 겁니다. 그래서 텔레파시가 탁하고 염력이 약한 것이죠. 기르불을 납치해서 강바닥에 박아놓은 이유는 오한 때문에 몸을 데우기 위해서였을 것 같습니다. 저와 찬호가 한눈팔고 있을 때 옥토끼가 우연히 기르불을 발견했던 겁니다. 또한, 환상통과 신경 쇠약은 경련의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지나친 감정적 격류도 같은 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원은 당당하고 확신해 차 있었지만, 찬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작가의말

오타 수정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돛대 없는 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입국 22.07.02 22 2 10쪽
36 윈스반 22.07.01 21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20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8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4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20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40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8 2 10쪽
28 평화 22.06.21 27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3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6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7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2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2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7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7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3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1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30 5 10쪽
» 임무 실패 22.06.04 24 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