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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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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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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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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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DUMMY

하늘을 날고 있는 루니는 아주 조그만 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뒤, 수 십개의 불갈대 폭탄들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루니는 그것들을 차례차례 떨어뜨렸다. 명죽림이 제대로 타오르기 시작하자 폭탄에 불조차 붙이지 않고 날것을 던졌다. 굉음이 주변을 휩쓸었다. 줄곧 바닥에 늘어져 있던 찬호도 일어서선 긴장하기 시작했다.


“시원시원하네요. 제가 지금 배만 안 고팠어도 미안해하는 건데. 저쪽도 저희한테 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죠 뭐.”

“긴장 유지하십시오.”


타카슬은 진동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츠카는 그를 진정시켰다. 기르불은 최대한 몸을 줄이고 지원의 겉옷에 매달려 있었다.


대나무들이 불타면서 환청을 가득 내뿜었다. 지원은 타카슬이 다시 도망치지 않도록 재빨리 피리를 불어 환청을 덮었다.


루니가 준비해둔 모든 폭탄을 전부 사용하자, 화재는 크게 번져 지원의 위치에서도 열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적이 다 정리되었겠군요. 일어납시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다리에 체중이 실리자마자 도로 주저앉았다.


그때 루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는 주저앉은 지원의 머리를 밟고 섰다.


<기다려, 당장은 무리하지 마. 타카슬? 네가 힘좀 써줘야겠다. 얘네들을 등에 태워줘.>

“아저씨, 무거워요. 내려와요.”


기르불과 츠카는 느닷없이 부드러워진 지원의 말투에 놀랐다. 찬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갑자기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느껴지는 지원의 목소리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다음순간 그녀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타카슬? 당신 몸에 두르고 있던 밧줄은 어디갔습니까? 당신 피부는 미끄러워서 그게 없으면 저와 찬호가 당신에게 매달려있을 수 없습니다.”

“나랑 싸우던 놈이 끊어버렸어!”


타카슬은 갑자기 울분에 찬 반응을 내비쳤다. 지원은 놀랐다. 하지만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게 아님을 알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군요. 츠카와 루니가 저희를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타카슬에 비하면 느리긴 하겠지만, 바닷물에 띄워놓으면 무게 부담이 줄어들어 속도를 더 낼 수 있을 겁니다.”

<귀찮은데, 어쩔 수 없지.>

<빨리 하는게 좋겠어. 난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아.>


루니와 츠카는 각각 지원과 찬호를 맡아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원은 바닷물에 젖고 모래가 잔뜩 들어가 회생 가능성이 없어진 감시 장비를 집어들었다. 이제 이것은 고철덩어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챙겨두어야 했다.


몸을 일으키자 혈액이 하반신으로 몰리면서 다리에 혈색이 돌았고, 반대급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원은 눈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루니의 지지 덕에 넘어지진 않았다.

찬호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그들은 각각 손에 든 감시 장비와 기르불을 놓치는 않았다.


기르불은 자신의 시각을 명죽림을 향해 집중시켰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명죽림을 보고는 저기에 뛰어들어 열기를 만끽하고 싶은 열망을 느꼈지만, 기립성 저혈압증에 신음하는 찬호와 지원을 보고는 억제했다.


그래도 바라보는 건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그는 불이 휘청이면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형상을 지켜보았다. 대나무가 타들어가며 펑펑 터지는 소리가 났고, 그때 터져나온 공기가 불의 모습을 빚는 또다른 재료가 되기도 했다.


그는 화재의 한가운데에서 이질적인 움직임을 보았다.


시야가 가려진 지원과 찬호, 그리고 그들에게 정신이 팔린 루니와 츠카는 알아채지 못했다. 눈이 나쁜 타카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르불은 알아보았다.


불 속에서 인간의 형상이 걸어나왔다. 온몸에 불꽃을 두르고, 살이 타들어가 오그라들어서 움직임이 부드럽지 못한 인간의 형상이었다. 손에는 뜨겁게 달궈진 기다란 소총을 들고 있었다. 기르불은 소리질렀다.


“아직 살아있다! 엎드려!”


옥토끼들은 지원과 찬호를 자빠뜨렸다. 그들은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기르불은 재빨리 튀어가 불타는 그 인간을 감쌌다.

기르불은 그의 몸에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미미한 석유의 잔향을 느꼈다. 화재에 다 연소되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 인간은 넘어졌다. 기르불은 그를 태우면서 좀더 세심하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추적대의 다른 인간들도, 모두 살아있었다.

그들은 타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기르불은 즉시 명죽림 속으로 뛰어들어 화력을 올렸다.


하지만 기르불이 그 인간들을 저지하기도 전에, 그 인간들은 앞으로 질주했다. 심지어 총까지 내버렸다. 총알 안에 든 화약이 전부 연소되어 불발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신, 아직 화약이 남아있을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돌진했다.


“자살 폭탄이야!”


기르불이 소리쳤다. 그들은 그가 본 어떤 인간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려서 기르불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다행히, 그때 찬호의 머리에 혈액이 돌면서 시력이 회복되었다.


찬호는 츠카에게 신호해 자신을 감싸던 염력을 풀고는, 총을 꺼내 달려드는 인간들을 쏘아 거꾸러뜨렸다.


지원은 폭발을 예감하곤 루니와 츠카를 잡고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쓰러진 추적대의 시체에서 수류탄이 터졌다. 그 여파에 달려들던 다른 추적대들도 넘어졌다. 폭발의 충격은 루니와 츠카의 염력이나 모래 장벽으로 막을 수 없었다.


파편이 튀는 것은 간신히 막았고, 폭발 지점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폭발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찬호는 굉음에 뇌가 흔들리는 아찔함을 참아내고 정신을 붙들고 계속 총을 쏴 달려드는 추적대원들을 맞췄다.


곧 서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기르불은 상황이 일단락되자 다시 일행에게 돌아왔다. 아직 명죽림은 활활 타고 있었지만, 그 열기를 누릴 기분이 아니었다.


“너희 살아있어?”


찬호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는 다시 주저앉았다. 지원은 두 옥토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꽤 안정적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기르불에게 대답하기보다, 앞으로 걸어가는 걸 택했다.


기르불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원은 터덜터덜 걸어서, 바닥에 쓰러져 갈기갈기 찢어진 한 추적대원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이 자는 사정이 나았다. 쥐고 있던 수류탄이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던 대원들은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는 혼란에 빠져선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반석을 밟고 있길래······.”


하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찬호가 명죽림에서 추방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체를 수습하고 예우를 차려줄 시간도 없었다. 지원의 뒤에는 책임져야 할 동료들과 의뢰인이 있었다. 지원은 뒤로 돌아서 일행에게 말했다.


“갑시다. 저도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군요.”


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 고프고요. 목도 말라요. 피부도 따갑고요.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

“그나저나 넌 왜 다 벗고 있냐?”


속옷 한 장만 걸치고 바닷가의 햇살에 노출되어 온 찬호의 피부는 새빨게져 있었다. 지원도 옷으로 가리지 않은 얼굴과 손발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인간들에게는 휴식이 절실했다.

루니는 지원에게 말했다.


<타카슬한테 내 배를 가져오라고 해 줘. 기르불도 같이 보내, 쟤 혼자 가면 배를 부숴먹을 것 같거든.>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렇게 했다.

기르불이 직접 부탁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주브만칼리 영해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일행의 대장으로의 지원의 권한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기르불과 타카슬은 망설임이나 불평 없이 루니의 배를 가지러 떠났다. 지원과 찬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루니와 츠카의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들은 커다란 귀로 모래가 밟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지원과 찬호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 둘은 경악에 빠져 있는 루니와 츠카를 알아채지 못하고 몇 걸음 더 앞으로 걷다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츠카, 안 와요? 어······.”

“저게······대체······.”


그들이 목도한 건 기르불에 의해 탄화되버린 추적대의 시체가, 꼿꼿이 일어나 있는 모습이었다. 지원은 기가 질렸다. 찬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총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움직이지 마!”


애초에 움직일 수 있는 몸 같지도 않았다. 근육도 관절도 다 타버렸을 텐데, 일어선 게 기적이었다. 찬호는 끔직한 광경에 참담함을 느꼈다.


“생각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지원이 옥토끼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루니와 츠카는 여전히 얼굴을 구긴 채 추적대에게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츠카가 간신히 엷은 생각의 가닥을 흘렸다.


<분명히 죽었었는데?>

“예?”

<죽었었다고, 아무 감정도 생각도 없었어. 방금까지는 그랬는데······. 또 강렬한 파장이······.>


츠카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루니가 조용히 그를 대신해 상황을 한 마디로 결론지어주었다.


<부활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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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윈스반 22.07.01 21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9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8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3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20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9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8 2 10쪽
28 평화 22.06.21 27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3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6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6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1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1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7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3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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