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2,123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12 00:40
조회
31
추천
4
글자
9쪽

오월동주

DUMMY

지원은 불갈대 사이에 끼워져 있던 철제 작살 조각을 집어들었다.


작살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이곳에 오래 있었다면 불갈대의 불과 하염강의 물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시뻘겋게 녹슬었을 텐데, 이렇게 멀쩡한 걸 보니 이 작살은 며칠도 채 되지 않은 물건임이 분명했다.


또한 크기를 보아하니 웬만한 어업에 쓰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하염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이 작살에 맞았다간 고기로 쓸 부분이 남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큰 작살의 사용처는 고래나 나이든 상어, 그리고 무괴 정도로 한정된다.


즉 이 작살은 며칠 전 옥토끼 추적대가 폭발의 여파로 분실한 물건이었다.


추리 끝에 지원은, 자신이 격전지였던 그 장소에 다다랐으며 잠시 전진을 멈출 시간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뭘 할지 생각했다. 물론 기르불과 찬호를 찾아야 하겠지만, 그녀가 그들을 찾는 것보다는 그들이 (특히 기르불이) 지원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이쪽에서 신호를 보내야겠지. 불을 지를까? 불갈대 군락은 그럭저럭 성숙해졌다. 인위적으로 불을 놓으면 잘 탈 것이다. 그러면 어딘가에 있을 기르불은 그 속으로 뛰어들 것이며, 온 사방으로 몸을 부풀리다가 지원을 발견할 것이다.


간편하지만 문제가 있는데, 일단 위험했다. 불을 놓은 뒤 명죽림 쪽으로 대피하자니 추방자와 맞딱뜨렸을 때 물러설 곳이 없다. 그렇다고 하염 강에 몸을 담근다면 보따리 속의 금속 기계가 지원을 가라앉힐 것이다.


보따리를 몸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 더 조심스러운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봉화처럼 연기를 피워올릴까?

금속 기계를 분해해서 악기처럼 소리를 낼까?

아니면 무식하게 이 근처를 싹 다 걸어서 수색해볼까?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지원은 결국 자신의 사고를 확장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강에서는 타카슬이 자기 등을 드러내며 물살을 유유히 가르고 있었다. 지원은 발로 수면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가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연과 행운을 마다하지 않고 잡아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연히 츠카와 타카슬과 엮이게 된 이상, 그들과 최선을 다해 놀아나줄 수밖에 없다.


“큰 변수가 없다면 아마 옥토끼는 찬호와 기르불 근처에 있겠지. 그놈은 우리를 놓치려 하지 않을 거야. 주브만칼리에 몇 없는 반 카추샤 세력이니까.”


지원은 타카슬을 불러놓고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녀는 만칼리 어와 손짓발짓몸짓을 합쳐서 타카슬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욱여넣으려고 했다.


“츠카를 찾을 수 있지?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


손가락으로 귀 모양을 만들어 머리 위에 세워 츠카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답받았는지, 타카슬은 가만히 지원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물 속으로 사라졌다.


무괴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그녀는 사회적 상식 이상으로는 모른다. 이 넓은 하염 강에서 츠카를 찾는데 사용하는 능력이 무엇인지도 짐작가지 않았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저 무괴가 자신을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이유없이 따라붙었을 리 없고, 그렇다면 분명 옥토끼와 어떤 작당을 했을 것이며, 옥토끼가 믿는 구석도 없이 무작정 감시를 붙였을 리도 없었다.


지원은 불갈대들을 죄다 꺾어눕혀 방석을 만든 다음 거기에 앉았다.


-------------------------------------------------------------------------------


눈을 감고 갈대와 바람과 물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연으로 가득찬 소리에 익숙하고 툭 튀는 목소리가 섞였다. 지원은 눈을 떴다.


“지원!! 저희 여기 있어요!”


찬호의 목소리였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괴는 지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그녀의 뜻을 어림짐작해 찬호와 기르불을 등에 태우고 돌아왔다. 함께 있었던 츠카도 딸려왔다.


지원은 당혹스러웠지만, 곧 이해가 갔다. 정해진 계획과 임무가 다 틀어진 상황에서 같은 입장을 어느정도 공유하는 츠카와 찬호, 기르불이 임시 동맹을 맺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지원은 사고가 정지했다.


타카슬이 충분히 얕은 강가까지 접근했을 때, 찬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멍하니 굳어있는 지원에게 첨벙거리며 걸어가서 쓰러지듯 기댔다.

지원은 그를 잡았다.


“다리가······.”


자세히 보니 다쳤던 다리 주위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찬호는 그쪽 다리를 앞뒤로만 움직일 뿐 땅을 딛고 있지는 않았다.


“츠카가 고쳐줬어요! 아직 뼈가 다 붙지는 않았지만요.”

“츠카? 옥토끼를 말하는 겁니까?”

“응. 대신 공짜는 아니었고.”


기르불이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지원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간을 소모하는 복합적인 대화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녀는 산발적인 말들을 죄다 끊었다.


“일단 어디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지원은 자신이 만든 불갈대 방석 위에 찬호를 앉히려다, 그의 손에 들린 기르불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들은 다시 타카슬의 등 뒤에 올라타 찬호와 기르불과 옥토끼가 만든 은신처로 돌아갔다.


그동안 일행은 지원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설명했다. 찬호, 기르불, 츠카가 각자 하고 싶어하는 말들이 다 달랐고 그들 모두가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원은 자주 그들의 말을 끊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마침내 2시간 뒤에 지원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거군요. '찬호의 다리는 아직 다 낫지 않았고,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옥토끼 당신이 필요하니 저희는 계속 추적대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제가 잘 이해했습니까?”

<그래. 미안하지만, 잘 부탁해.>


기르불이 안심하면서 말했다.


“의외로 순순히 수락하네? 난 네가 함부로 몸에 손대게 했다고 화낼 줄 알았는데.”


지원이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만칼리에서 저희를 죽이려 군대를 파견할 테니 대략적인 이해만 일치한다면 갈등의 소지는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나혈구를 한두 개 만들어뒀을리도 없고, 살려보낸 추적대가 저희 정보를 다 불었을 테니 석유도 들고올 겁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기르불이 몸서리쳤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입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포위되어서 죽을 겁니다. 츠카는 빼고요.”


그 말에 츠카가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살리지 말았어야 했어.>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고, 당신과 저희의 선택에도 물론 그런 대가가 따라올 겁니다. 다만 그 대가를 지불하고 뭘 얻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츠카는 그 말을 책망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말을 삼키고 있을 때, 기르불이 비꼬았다.


“글쎄다, 30명의 생명? 참 숭고하지.”

“그게 저희의 안전만큼 큰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좋은 거래를 한 겁니다.”

<으음······.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찬호와 기르불은 지원이 그녀의 기준으로 매우 따듯한 덕담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츠카는 계속 위축의 파장만 내보냈다. 찬호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웃으면서 말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죠. 사실 당신이 피아식별 하나 못하고 타카슬한테 제 다리를 분질러 버리도록 시켜서 일이 이렇게 된 거지만요. 하하.”

“그런 식의 원인 추정도 하지 말도록 합시다. 이제 저희는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니,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행은 최대한 자제하시고, 가나 대륙에 돌아가면 그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청산합시다.”


지원의 파장은 너무 평평해서 말에 숨은 속뜻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츠카는 대답할 때마다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난 인간 소년의 다리에 집중할 테니, 너희는 서둘러 가나로 탈출하는 거에 집중해 줘. 그럼 되는 거지?>

“예.”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서로간에 이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없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아직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츠카가 협상 결의를 선언하기 직전에 추가 조항을 제시했다.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츠카.”

<확실히 해두고 싶다고?>

“저희는 주브만칼리 추적대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과 타카슬은 저희의 동료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사시에 여전히 찬호와 기르불을 더 우선시할 겁니다. 당신도 그러십시오.”


기르불은 그게 별로 현명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런 말이 필요할까 지원아?”

“본질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 팀으로 움직인다 한들 저희가 온전히 하나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츠카는 그 말뜻을 해석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곧 아주 짧은 대답만을 요구하는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돛대 없는 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입국 22.07.02 22 2 10쪽
36 윈스반 22.07.01 21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9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8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4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20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9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8 2 10쪽
28 평화 22.06.21 27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3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6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6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 오월동주 22.06.12 32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2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7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3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1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30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