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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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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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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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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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세력

DUMMY

찬호가 다리를 다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원은 그럭저럭 쓸만한 뗏목과 찬호를 위한 부목 같은 것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주브만칼리 대륙을 탈출하기 위해 일행은 4일차 밤에 바로 배를 타기로 했다.


지원은 간이 썰매를 만들어 찬호와 보따리를 싣고 강변까지 운반하고 있었다.


“너무 답답해······.”


기르불이 찬호의 품 속, 가방 속에서 말했다. 지원은 그를 불갈대에 붙인 뒤 진흙에 적신 주머니 속에 넣고, 그 주머니를 작은 대나무통에 쑤셔넣고, 그 대나무통을 보따리로 둘둘 만 뒤 밧줄로 꽉 묶었다. 그리고 그걸 가방에 넣어 찬호에게 꽉 끌어안게 했다. 화재를 막기 위함이었다.


“지난번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잖아.”

“그때는 불갈대가 덜 자랐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을 겁니다.”

“배 띄울 때까지만 참아요. 그때 꺼내줄게요.”


불갈대밭에서는 썰매도 함부로 끌 수 없었다. 지원은 찬호를 부축해서 일어나게 했다. 찬호는 힘겹게 일어섰다.


“썰매 아깝네요.”

“예.”


썰매는 이제 필요 없었다. 50m 남짓한 거리를 움직인 10분이 그것의 수명이었다.


지원은 이미 뗏목을 만들어 강변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다. 그녀는 찬호를 데리고 그곳까지 걸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에게서 땀이 쏟아졌다.


찬호는 뗏목 위에 넘어지듯이 누웠고, 지원은 숨을 고른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어떤 장애물도 없이 청명한 하늘을 마음껏 누비고 있었다. 하늘의 어느 곳에도 구름이 없었다. 적어도 며칠간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찬호의 다친 다리만 강물에 젖지 않도록 주의하면 당분간의 여정은 쉬울 것이다.


뗏목을 강에 띄우기 위해 노를 지렛대처럼 아래에 끼워넣었다. 지원이 힘을 주고 배가 물 위에 둥실 띄워졌을 때, 찬호가 그녀를 불렀다.


“지원, 저거 뭐죠?”


지원은 뗏목을 밟고 찬호의 시선을 따라맞췄다. 그녀는 그가 뭘 가리켰는지 바로 알았다.

상류 쪽에서 불빛 몇 개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수면에 비친 별빛이나 반딫불이처럼 낭만적인 부류는 아니었다. 명백히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인위적인 불빛이었다.


지원은 바로 뗏목을 잡아끌어 땅 위에 도로 걸쳐놓았다. 그리곤 찬호를 일으켜세워 갈대밭 사이에 숨었다.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흔들림에 놀란 기르불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용히 하십시오”


지원은 갈대를 젖히고 상류를 힐끔힐끔 내다보았다. 얼마 되지 않아, 그 불빛들은 강을 따라 흘러내려왔고 지원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몇 척의 조각배였다. 지원이 급조한 뗏목과 비교가 안 되는 질 좋은 배에 사람들이 타고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저마다 전등을 들고 강의 이곳저곳을 비췄다. 그들은 만칼리 어로 말하고 있었다.


“숲이랑 이만큼 떨어져 있는데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집중해, 빨리 찾고 돌아가자고. 보이지? 피가 끓고 있어. 근처에 있다.”


지원은 배의 선두에 앉은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바로 알아보았다. 액체가 든 구슬과 그 액체에 들어 있는 더 작은 구슬.


“나혈구!”


그녀는 상황을 이해했다. 작게 읆조린 혼잣말이었지만 찬호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나혈구요? 그게 왜요? 설마 저 사람들······.”

“그 옥토끼를 쫒아온 인간들이겠네. 아니면 주브만칼리에 다른 옥토끼가 있든가. 근데 그러면 상황이 너무 복잡해지는데.”


지원은 머릿속이 고양이 실타래처럼 꼬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 해둬야 할 행동과 분명히 매듭져야 할 생각들은 있다.


“저들은 방금 ‘피가 들끓는다’고 했습니다. 들으셨습니까?”

“네, 그렇게 말했죠, 아마?”

“나혈구 안에 있는 게 누구 피든 간에, 그게 들끓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한다면 정말 가까이 있는 겁니다. 저자들이 옥토끼로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서로 마주쳤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날리 만무합니다. 그러니까······.”


기르불이 끼어들었다.


“도망치자고?”

“예, 저쪽이 화기라도 사용한다면 저희는 그대로 죽습니다.”

“네 판단대로 하자.”

“갈거면 빨리 가요. 은신처로 돌아가나요?”


잠재적 적이 목전에 있는 시급한 상황이니만큼 찬호도 기르불도 불평하지 않고 지원의 의견에 따랐다. 지원은 찬호를 다시 일으켜세우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때 지원이 얼어붙었다. 찬호가 팔에 힘을 주자 그가 올라가는 게 아닌 그녀가 내려왔다. 지원은 그대로 찬호를 땅바닥에 밀어붙였다.


“늦었습니다······.”


지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각배에 탄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배가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단순히 급류에 걸린 움직임이 아니었다.


지원은 그 사람들이 뭔가를 꺼내들어 강을 향해 겨누는 걸 보았다. 총인지 대포인지 구분은 안 갔지만 무기인 건 확실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찬호는 그녀가 불안해서가 아니라, 여차하면 자기를 강으로 집어던지려고 힘을 주는 것임을 알았다.


날카로운, 하지만 시끄럽지는 않은 소음들이 들렸다.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화기가 아니라 작살이었다. 지원은 긴장을 유지한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강 전체가 울렁였다. 자연적인 파도가 아니었다. 일행은 조각배에 탄 사람들이 소리치는 말을 듣고 파도가 만들어진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이 그 무괴야! 계속 작살을 쏴!”


“지원, 가방 열어! 내가 다 태워버리면 돼. 너희가 배를 타고 강에 나가 있으면, 불갈대로 전부 쓸어줄게!”


찬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원도 단호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저희 적이 아닙니다. 저자들도 저희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요. 그러니 태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옥토끼를 쫒아온 거면 보나마나 주브만칼리 정부에서 보낸 추적대야! 군인, 하다못해 공무원이라고. 민간인이 아니야, 굳이 살려둘 필요 없어!”

“당장 죽여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추방자를 상대할 때와는 다릅니다.”

“그럼 내가 불안하지 않게 빨리 뭐라도 지시해 봐!”


지원은 머뭇거리다가 가방을 열었다. 입구를 최대한 벌린 뒤, 기르불의 봉인을 한겹한겹 조심스레 벗겼다.


“찬호, 기르불을 마저 풀어주십시오.”


지원은 찬호에게 기르불을 떠민 후 일어섰다.

그녀는 주위의 불갈대를 뭉텅뭉텅 잘라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강에다 던졌다. 요란한 행동이었지만 추적대는 강 밑의 생물과 싸우느라 그녀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 풀었어요.”


찬호가 가방 안을 지원에게 보여주었다. 기르불이 기지개를 켜듯 몸을 키웠다.


“아으, 살겠다.”

“기다리십시오. 제가 강에 띄워놓은 갈대들이 보이십니까? 추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아주 작게 몸을 줄인 다음, 저 위에 올라타 상황을 살펴 주십시오. 조심하셔야 합니다.”

“좋아, 그건 내 전문이지.”


기르불은 지원의 말대로 했다. 줄어든 그는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어둡고 시퍼랬다. 달빛 말고는 광원이 없었는데도 기르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에 눈이 익숙해진 추적대는 그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저는 뭘 하면 되죠?”


지원은 팔짱을 끼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가방에서 어포나 좀 꺼내주십시오. 여차하면 바로 입수해야 하니, 상황을 지켜봅시다.”


그들은 훈제 어포를 꺼내 씹었다. 초조함을 달래기 딱 좋았다. 지원은 특히 더 힘을 주어 잘근잘근 씹었다.


기르불은 머지않아 전체적인 상황을 완전히 분석해서 일행에게 전해주었다.


“무괴가 강 아래에서 계속 물살을 일으키고 있다. 저놈들은 주브만칼리 정부 추적대가 맞아. 배에 만칼리 삼각형이 있는 걸 똑똑히 봤다. 옥토끼도 있어. 강 반대쪽 깊이 있는 바위 사이에 숨어 있더라.”

“무괴가 저희가 며칠 전에 싸웠던 그 무괴입니까?”

“맞는 것 같아. 콧등에 네가 냈던 칼자국이 있어.”

“그럼 저들이 찾는 옥토끼도······.”

“그래, 그놈이야.”


지원은 어포 하나를 더 꺼내 반절을 한꺼번에 물어뜯었다. 찬호가 못참고 말을 꺼냈다.


“며칠동안 계속 이 근처에 있었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아니면 하류로 도망쳤다가 다시 왔을 수도 있지요. 그 옥토끼는 마약에 엄청 취해 있었으니······중독 증세를 달래기 위해서······.”


지원은 계속 턱을 움직이며 마치 혼잣말 하듯 대답했다. 실제로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사고의 회오리에 매몰되어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되어 갈 것이며 자신은 어떻게 거기에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까요?”


찬호가 물었다. 지원이 대답했다.


“추적대가 임무를 완수할 겁니다. 오늘은 달이 밝으니까요.”


지원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무괴를 사살하고, 옥토끼를 생포해서 데려가면 저희로서는 잘 된 일입니다. 그럼 이번 여정은 순탄해질 겁니다. 아마도요.”

“아마? 너까지 그런 단어를 쓰면 어떡해?”

“그건 무슨 뜻이에요?”


찬호가 물었다.

지원은 격렬하게 출렁이는 조각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겉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묘한 안정성이 보였다. 사람들은 균형을 잘 잡고 있었고, 함부로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위치를 바꿔 무게중심을 뒤흔들지도 않았다. 강에 빠지는 사람도 없었다. 우려와 달리 화기를 사용하는 멍청이도 없었다.


“주브만칼리 정부가 준비를 정말 철저히 했군요. 저 수준의 인력을 저만큼이나 파견할 정도면. 옥토끼와 무괴가 아주 중요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때 추적대 중 하나가 소리질렀다.


“거의 다 됐어!”

“거의 다 됐다는군요. 생각보다 상황이 일찍 정리될 것 같습니다. 기르불, 어떻습니까?”

“무괴가 영 힘을 못 쓰네. 흠······어?”


갑자기 기르불이 찬호가 대충 붙잡고 있던 가방 속으로 쏙 들어왔다. 찬호는 놀라서 손을 델 뻔했다.


“왜요? 이쪽으로 와요?”

“그래, 온다. 무기 들어!”


지원은 칼을 뽑아들었고 찬호는 습관적으로 총을 들었다. 지원은 앉은 채로 강을 주시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한쪽 팔로 찬호를 가리려 했다.


“뭐가 온다는 겁니까? 무괴는 여전히 저쪽에서 싸우고 있는데?”


추적대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그들의 작살이 향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토끼 말이야! 놈이 깨어났어!”


물이 조그맣게 첨벙였고, 옥토끼가 솟아올랐다. 무괴가 만든 물보라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지원을 충분히 적실 정도의 물을 튀겼다. 그녀가 가리고 있던 찬호는 젖지 않았다.


지원은 물 속에서 튀어나온 그 형체를 재빨리 잡아채 땅에다 내리꽂았다. 머리를 향해 칼을 들어올렸을 때, 다급한 텔레파시가 방해했다.


<잠깐, 잠깐!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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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9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8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3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20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9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8 2 10쪽
28 평화 22.06.21 27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6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6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1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1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6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 제 3의 세력 22.06.07 23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0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30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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