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위흑화(밤에 피는 검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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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1.1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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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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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5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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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왕, 인간으로 부활하다

DUMMY

1

넓은 교실에 스무 다섯 명 남짓한 아이들이 조용히 자리에 착석하여 여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뜨거운 바람이 계속 들어와서 교실은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후덥지근해졌다.

천장에 달린 4대의 선풍기가 일제히 돌아가며 아이들의 체온을 식혀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안내문을 돌리며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자, 그럼 ‘방학’기간에 다치지 않게 안전에 주의하며 놀도록 하세요.”


“네~!”


“그럼, 반장. 인사하고 마치자.”


반장이 자리에 일어나 구호를 외쳤다.


“전체, 차렷.”


아이들이 평소와 다르게 잔뜩 오버를 하며 차렷을 하였다.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인사를 함과 동시에 일제히 책상에 걸어두었던 책가방을 등에 맸다.

1학기에 썼던 책들을 전부 가방에 넣어서 그런지 제법 묵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전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나풀나풀 뛰어다닐 정도였다.

둑에서 물이 새듯 아이들이 순식간에 교실을 빠져나갔다.

단, 한 아이만 빼고 말이다.

맨 뒤쪽 창가 자리에 앉은 남자아이는 하품을 길게 한 뒤 느긋하게 책가방을 챙겼다.


“‘시우’야.”


담임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담임은 뭔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시우를 쳐다봤다.


“요즘······집에 별일은 없니?”


담임은 시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시우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을 어깨에 맺다.

담임은 자리에 일어나 나가려는 시우의 왼손을 꼭 잡았다.


“혹시 방학 중에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꼭 전화해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 시우 전화라면 언제든 받을 테니깐.”


시우는 붙잡힌 왼손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지······요.”


시우는 담임의 손을 뿌리치고 교실을 나갔다.

학교에서 15분 거리인 빌라에 도착한 시우는 현관 입구 비밀번호를 누른 후 계단을 내려갔다.

시우의 집은 반지하로 이미 집 안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아이고, 이 화상아! 며칠 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짤리냐? 내가 어떻게 구해온 일자린데!”


엄마가 맨발로 아빠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화를 냈다.


“네가 별 그지 같은 곳을 소개해주니깐 그렇지.”


“뭐?! 이게 진짜!”


이때 시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낮부터 시끄럽구나.”


시우가 들어오자 엄마와 아빠가 후다닥 달려와 시우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학교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부모는 아들인 시우에게 이상하리만치 격식을 차렸다.

장난이나 놀아주는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니다.


“이제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아직은 이게 편합니다. ‘마왕님’.”


엄마는 시우에게 마왕이란 호칭을 부르고 아빠는 시우가 벗은 책가방을 받들었다.

범상치 않은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가정.

이 가족의 속사정을 알려면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

야심한 밤, 지하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고함과 비명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이 여편네가 미쳤나?!!!”


“아아악!!”


‘아씨, 또 시작이네.’


소음이 발생하는 곳 바로 윗집에 머무는 대학생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곧 있을 기말고사 공부를 했다.

한편 아랫집의 고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롱에 머리를 기댄 채로 쓰러져있는 자신들의 아들을 내버려둔 채로 남편은 아내의 머리채를 붙잡고 뺨을 연신 때려댔다.


“내 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어디서 말대꾸를!”


아내는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아들 ‘시우’를 보며 남편에게 매달렸다.


“우, 우리 시우 좀 이상한 거 같아. 벼, 병원에 데리고······.”


애원하는 아내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남편은 아내에게 화풀이를 하듯 이번엔 주먹질을 하였다.

그러는 사이 아들 시우의 심장은 조금씩 멈추어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

.

.

.

············두근, 두근, 두근.

몇 초가량 잠시 멈췄던 심장이 다시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네킹처럼 굳어있던 시우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였다.


“내가······죽······.”


“제발, 여보······병원에······.”


‘······시끄럽군.’


시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서서히 떴다.

그와 동시에 남편이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아내를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퍽!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차려놓았던 작은 술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찧고 말았다.

술상은 전부 엎어졌고 아내의 머리엔 안주로 내놓았던 김치가 쏟아졌다.

둔탁한 소리에 남편도 순간 큰일이 났음을 인지하고 천천히 아내를 살폈다.


“뭔······지랄 연기하지 말고 어, 얼른 일어나!”


아내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숨소리도 불규칙했다.

아내의 뒤통수에서 새빨간 김치 국물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하아, 씨X············X됐네.”


남편은 짜증 섞인 한숨을 쉰 뒤 머리를 긁적였다.


“시끄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군······근데 여긴 어디지?”


“응?”


시우가 목을 양옆으로 꺾는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났다.


“크흠, 흠. 목이 좀 마른 걸? 거기 인간, 마실 것 좀 가져와라.”


“무, 뭐?! 이게 어딜 아빠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스릉.


남편이 주먹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목이 잘려나갔다.


“······어?”


워낙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남편은 자신의 목이 잘렸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닥에 머리가 떨어지고 자신의 몸을 보고 나서야 목이 잘렸음을 인지했지만 그때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나에게 덤비려하다니, 용기는 가상······응?”


시우는 자신의 작고 고운 손을 보았다.

시우는 주먹을 쥐락펴락 하며 자신의 손임을 확인하였다.


“그렇군, 정말로······.”


[후후, 새로 태어나자마자 바로 살인을 저지르시다니.]


“?”


시우의 머릿속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우의 주변이 고풍스러운 유럽양식의 방으로 바뀌었다.

7평 남짓한 작은 정육면체의 방 한가운데에는 조그마한 탁자가 놓여있었다.

탁자 위에는 새싹이 솟아나있는 작은 화분과 함께 홍차가 담긴 하얀 주전자와 찻잔 세트가 세팅되어 있었다.

오른쪽 벽엔 창문이 설치되어있었다.

창문 아래에도 화분 4개가 놓여있었는데 대부분 시들어져 죽기 직전이었다.

창틀 위에도 2개의 작은 화분이 있었는데 한쪽은 싹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아보였고 다른 한쪽은 꽃봉오리가 나있었다.

창밖에는 거대한 거목이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우두커니 서서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추태의 거목이었다.


끼이익.


왼편에 있던 문을 통해 누군가 들어왔다.

눈, 코, 입이 없는 온몸이 새까만 마네킹같은 인간이었다.

몸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면서 연갈색의 중절모와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네가 날 찾아왔던 ‘다른 세계의 신’이냐? 상상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군.”


“후후, 맞습니다. 새로 태어나신 소감은 어떤가요? ‘마물의 왕’이여.”


둘은 서로 구면인 듯 했다.


“정말로 약속을 지켰군. 그런데 이 몸은 뭐냐?”


시우는 창문 옆에 세워져있는 전신거울로 자신의 몸을 보았다.


“인간 꼬맹이의 몸이라니······.”


“좋지 않습니까? 젊은 육체인데.”


“이건 젊다기 보단 어리다고 봐야 하잖아.”


신은 중절모를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것보다 앉으시죠. 이렇게 대면한 건 처음이지 않습니까? 차나 한잔 하시죠.”


“그러지.”


신은 차를 따른 찻잔을 시우에게 건넸다.


“용사와의 마지막 전투는 어땠습니까?”


“여느 때와 같았어. 용사 녀석, 조금도 실력이 늘지 않았더군.”


“용사의 손에 죽으신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용사와의 전투로 인해 지쳐 앉아있던 나를 인간 후발대 놈들이 마무리 했지.”


시우는 차를 마셨다.

차 끝맛이 제법 씁쓸했다.

창문틀에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이 새 역시 신처럼 눈이 없었으며 깃털하나 없는 마치 플라스틱 모형 장신구 같았다.

새를 본 신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회색빛의 종이 하나를 꺼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군요. 마지막으로 이걸.”


신은 종이를 시우에게 전했다.


“앞으로 이 세계에 살아가면서 지켜주셔야 할 사항입니다.”


총 5가지의 사항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첫 번째로 있던 문구는.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지 말 것.]

이었다.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간단합니다. 영혼을 다시 회수하여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거죠.

저도 이 세계를 관리하는 신의 입장이니 위협이 될 외부 인자는 아무래도 제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영혼의 회수라······그건 곧 ‘죽음’이라 받아들이면 되나?”


신은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지 마시죠. 그냥 인간으로 환생하셨으니 인간답게 인간 사회에 녹아드시면 됩니다.”


“인간답게라······쓰읍, 감이 안 잡히는군.”


“그러실 줄 알고 인간생활을 도와줄 당신의 조력자도 챙겨왔습니다. 마침 적당한 재료 두 개가 생겼으니 지금 만들도록 하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파랑새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럼 대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우의 눈앞이 점차 흐려졌다.

아주 찰나의 순간 정신이 끊겼다가 돌아왔다.

주위를 보니 시우는 빌라 복도에 서있었다.


[시간이 좀 걸릴 거 같군요. 그 동안 바깥 구경이라도 하고 오시지요.]



3

시우는 빌라 건물을 나와 단지 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건축물이 전부 밋밋하군.”


비슷비슷한 형태의 빌라 건물을 보며 소감을 남겼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높은 고층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불빛을 내는 빌딩은 시우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보아하니 저기가 귀족놈들이 모이는 곳이겠군.”


시우는 한동안 건물을 주시하고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단지 내를 반바퀴 정도 도니 놀이터가 나왔다.

놀이터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셋 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다.


“너 술 어떻게 뚫었냐?”


“우리형 신분증 좀 빌렸지. 형이랑 나랑 비슷하게 생겨서 웬만하면 뚫려 ㅋㅋㅋㅋ.”


“덕분에 잘 마신다, 새꺄 ㅋㅋㅋㅋ.”


흥겹게 맥주캔을 맞대며 짠을 하였다.


“야 근데, 이 시간까지 밖에 있어도 괜찮냐?”


“새끼, 쫄았냐?”


“쪼, 쫄기는 무슨!”


“저 ‘가로등’이 켜진 놀이터니깐 안심해도 된단다, 쫄보야.”


“야이씨! 쫀 거 아니라니깐!!”


한 녀석을 놀리며 떠들어댔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치킨 한 조각을 뜯었다.


“푸하하, 그러니깐 내가 그 새끼 대가리를 발로······응?”


한명이 신나게 썰을 풀고 있는데 다른 두 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야? 왜 둘 다 똥씹은 표정을 하고······”


콰직!

썰을 풀던 남학생의 상체가 뜯겨 나갔다.

다량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바로 앞에 있던 치킨은 핏물을 완전히 뒤집어썼다.


‘으적으적.’


남학생의 상체를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는 새하얀 괴물.

둥그런 몸체에 머리도 팔도 없는 단순한 형태였다.

달린 거라곤 몸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입과 얇실한 두 다리뿐이었다.


“아···아···‘암귀’가 어떻게···.”


뜻밖의 상황에 술기운이 전부 가셨다.

뒤늦게 사태파악이 된 두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하자 새하얀 괴물이 입으로 보라색 가스를 내뱉었다.

가스를 마신 두 남학생은 순식간에 기절하듯 쓰러졌다.

괴물은 입맛을 다시며 쓰러진 둘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호오, 참으로 희한한 생물이군. 생긴 건 마물같은데 마물과는 달라.”


어느새 시우가 괴물에게 접근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넌 뭐하는 놈이지?”


시우의 물음에 괴물은 대답 대신 달려들었다.

허나.


쿵!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꾸엑! 꾸에에엑!”


괴물은 어떻게든 시우를 잡아먹으려고 몸을 밀어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너무나 견고하였다.


“흐음, 말을 못하는 개체인가? 뭐, 상관없겠지. 정보는 나중에 얻으면 될테니깐.”


시우는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인간답게라면 이런 거겠지?”


짝!


시우가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뿌직!


괴물이 책 사이에 낀 벌레마냥 짓눌러졌다.

보라색의 피로 놀이터바닥이 흠뻑 젖었다.

납작하게 짓눌린 괴물의 시체는 쓰러져있던 두 남학생의 위로 이불처럼 덮여졌다.

이 모습을 보며 시우는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인간을 구했다. 이 정도면 나름 인간답게 보였을라나?”

.

.

.

[후후후,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그 정도면 합격점···이라고 해두죠.]


작가의말

편안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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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8(하) 비범한 아이의 체육시간 24.05.13 6 0 6쪽
11 8(상) 비범한 아이의 체육시간 24.05.10 7 0 5쪽
10 7(하) 토벌(마무리)-흑석 24.05.06 9 0 7쪽
9 7(상) 토벌(마무리)-흑석 24.05.02 12 0 6쪽
8 6(하) 토벌(3)-흑석 24.04.27 10 0 7쪽
7 6(상) 토벌(3)-흑석 24.04.23 10 0 6쪽
6 5(하) 토벌(2)-흑석 24.04.21 9 0 6쪽
5 5(상) 토벌(2)-흑석 24.04.19 6 0 6쪽
4 4. 토벌(1) 24.04.15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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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초등학교로 간 마왕님. +2 24.03.31 14 1 12쪽
» 1. 마왕, 인간으로 부활하다 24.03.25 1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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